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23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23화
멍하니 있던 이가을이 표정을 표독하게 고쳤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미친놈.”
동시에 그녀가 책상 위에 있던 재떨이를 집어 던졌다.
투명한 유리에 맺혀 있는 푸른 광채.
마력이 담겨 있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난 바로 [차폐막]을 펼쳤다.
쨍-
그녀와 나 사이에 생긴 투명한 막에 의해 유리로 만들어진 재떨이는 산산조각이 난다.
“니가 뭔데 내가 치료할 사람을 정해?”
난 눈처럼 분분히 흩날리는 그 유리 조각 사이로, 그녀의 두 눈을 마주했다.
“말은 끝까지 들어보시죠.”
차분한 어조로 그녀를 타일렀다.
물론 그녀가 충분히 화낼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환자를 가려 받으라는 건, 또 내가 거기에 관여하겠다는 건 분명 선을 넘는 일이었다. 내가 그녀의 부모님도 아니고 직장 상사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하물며 그녀가 일반인의 경우라 해도 그럴진대, A급 헌터이자 현존 제일의 치유사이니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그런 이유에서 나는 한발 물러섰다.
“뭐. 당연히 공짜로 바라진 않습니다.”
“외상 얘기할 거면 그냥 꺼질래?”
“말했잖습니까? 난 당신이 뭐가 필요할지 알고 있다고.”
분노로 일렁거리는 그녀의 눈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때쯤 당신이 필요한 건 아마…… 페리튼의 심장 아닙니까?”
난 미래의 그녀가 특정 물건들을 찾는다는 것과 그것들을 그녀가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를 당연히 안다.
최고의 치유사로 유명한 그녀가 어떤 물건을 구한다면, 그건 항상 이슈였으므로.
“……강예빈? 걔가 그러디?”
이가을이 아까보단 차분해진 음색으로 물었고, 난 그녀가 그렇게 해석하게 두었다.
“미래를 모른다면 어떻게 그 물건을 입에 담겠습니까?”
정보의 출처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애달게 찾는 물건을 내가 그녀에게 줄 수 있다는 거다.
“앞으로 당신이 찾을 물건들에 대한 정보를 전부 제공하죠. 또 당신이 원한다면 그 물건들을 얻는 데 도와줄 수도 있고.”
“…….”
혹할 것이다. 그녀가 소속을 바꿀 때마다 항상 저런 물건들이 그녀의 결정에 관여를 해왔으니까.
“……그게 그 치료와 부탁의 대가냐?”
그리고 난, 이번엔 두 발 앞으로 나아갔다.
“아니,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는 이어질 제안을 당신이 승낙한다는 전제하에 드리는 대가입니다.”
그녀는 괴인이다.
그러나 약탈자 무리에 속해 있을 때도, 하대호를 통해 인류에게 다시 왔을 때도, 계약을 어긴 법은 없다.
하기야 그녀의 계약이 믿을 만하니까 뭇 사람들이 거금을 들고서 그녀를 찾는 것이었고.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저희 클랜으로 오시죠.”
요컨대 그녀가 납득할 만한 가치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줄 수 있다면, 이가을은 적보단 아군에 가까운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헌터로서의 당신과 치유사로서의 당신을 모두 포함한 전속 계약이라는 겁니다.”
“미친놈.”
그녀가 뭐라건 난 미리 준비했던 클랜 가입 신청서를 꺼내었다.
펄럭.
물론 인벤토리로. 그녀의 얼굴 바로 앞에다가.
“감히…….”
이가을의 미간이 깊숙이 파였다.
* * *
두 시간 후 이가을의 방문 앞.
수십 명의 사람들이 방문 앞 대기실에 우르르 몰려오더니 중앙을 비운 채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그 사이로 외팔의 중년, 교주 최태수와 [텔레포트] 각성자 최진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최진혁이 앞으로 나와 이가을의 비서에게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갑자기 치료를 못 한다는 거죠?”
“치유사님께서 잠시 생각할 게 있다고 금일의 치료를 전부 미루셨습니다.”
“그럼 치료는 언제 받을 수 있다는 겁니까?”
“……그건 치유사님이 정하시겠지요.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돌아가세요.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을 치유사님께서 알면 치료는 연기가 아니라 취소가 될 겁니다.”
그 말을 남기고 비서가 시선을 거두자 최진혁은 그의 멱살을 잡았다.
“교주님께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할 그런 분으로 보여?”
비서는 잡힌 멱살을 본 후 이죽거렸다. 그에게 이런 진상 손님은 익숙했다.
결과는 늘 같았고.
“치유사님의 성격 모르십니까?”
언제나 환자는 을이었고 치유사는 갑이었다. 나중에 그들이 무릎 꿇고 반성해 봤자, 차후에라도 이가을에게 치료받은 경우는 전무했다.
“아니면 그냥 외팔로 사시든가요. 어쭙잖게나마 법복이라도 입은 걸 보니 어디 사이비 교주라도 되는 모양인데……. 참나. 세기말도 아니고 요새 누가 저런 걸 믿는다고.”
그의 시선이 최태수에게서 무릎을 꿇고 있는 교인들에게 향하자 비웃음 더욱 진해진다.
“쯧. 병신들. 가족도 없나……. 왜 저러고 살지?”
최태수가 앞으로 나온 건 그때였다.
평소 그답지 않게 조금은 굳은 얼굴이었다.
“진혁아. 이분도 신도로 모셔라. 이가을의 측근인 듯하니 쓸 일이 없진 않을 거다.”
“예. 아버지.”
최진혁은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고, 이내 그는 빛에 휩싸인 채 사라졌다.
그러곤 최진혁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그 둘을 벌레 보듯 바라보고 있던 비서의 등 뒤였다.
“뭐, 뭐야? 컥.”
어느새 최진혁의 한 손엔 단검이 들려 있었고 그가 가볍게 손을 휘젓자, 팟, 비서의 아킬레스건에서 시뻘건 핏줄기가 비산했다.
비서는 그의 앞에 교인들처럼 무릎을 꿇었다.
“아아아아아악.”
“환자가 둘이면 이가을도 이제는 치료하지 않을까?”
제 발목을 잡고 고통에 울부짖는 비서를 뒤로하고 최태수는 발을 뗐다.
“저 신도는 속죄를 마친 뒤 세례하도록 하고, 일단 치료부터 받자꾸나.”
“예. 아버지.”
최진혁이 얼른 앞으로 나와 이가을이 있을 방문을 열었다.
“…….”
문이 열리며 이가을의 집무실이 드러난다.
참으로 가관이었다.
벽을 가득 채운 대형 TV엔 웬 골프채가 박혀 있고, 바닥엔 수백 장의 종이들이 마구 흐트러져 있었으며, 그 위로는 유리 조각과 사기 조각들이 지리멸렬해 있다.
“감히-!”
그 안에서 그 유명한 [치유] 각성자, 이가을이 대노한 고성을 지르고 있었다.
앞에 놓인 책상의 양 끝을 잡고 들어 올리더니, 찌이이익, 말 그대로 책상을 무슨 종이처럼 찢어버린다.
그대로 그녀가 양손에 든 반쪽짜리 책상을 내던졌다. 훙. 책상을 찢은 괴력이 담겨 거친 파공음을 내는 원목 책상. 그게 하필 최태수에게로 날아왔다.
번쩍.
물론 [텔레포트] 각성자가 있으므로 당연히 그가 다칠 일은 없었지만.
최진혁이 책상을 턱 하고 내려놓으니, 그제야 이가을이 출입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네 뭐야? 누가 들어오래?”
“최태수. 오늘 치료받기로 한 사람이오.”
“비서한테 연락 못 받았어?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이번 대답은 최진혁이 했다.
“아. 치유사님께서 생각이 많다고 해서.”
그가 다리를 흐느적거리는 비서의 머리채를 붙잡고선 질질 끌고 온다.
“여기 급한 환자가 생겼는데, 치유사께서 아직도 생각할 게 있을까 봐.”
비서의 발목을 밟자, 아아아아악, 비명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깨진 유리 조각 위로 나뒹구는 자신의 비서를 보더니 자연스레 이가을의 눈빛이 더욱 흉흉해졌다.
“하. 나 참. 오늘 개거지 같은 새끼들이 다 날 호구로 아네. 너네 나 몰라?”
“아니까 치료받으러 오지 않았을까?”
“이따위로 하는데 치료를 받을 거라 생각하는 병신들이 아직도 남았구나?”
“애초에 오라 가라, 치료를 무기한 연기한 건 당신일 텐데?”
최진혁이 최태수에게 깊게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이가을을 바라봤다.
“약속하지. 교주님만 치료해 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대금도 그대로 치를 거고 여기서 바로 사라져 주지.”
이가을은 최태수를 보곤 코웃음을 쳤다.
“하? 교주? 저 외팔 대머리 중년?”
“누구 앞이라고 입을 그따위로-”
“쟤가 너한테나 교주지 나한테 뭐라도 돼? 그리고 왜 자꾸 네가 지랄이야? 넌 뭐 저 인간 밑이라도 닦니? 다 헐겠다.”
“이, 이런 미친X이!”
자신을 향한 욕설을 뒤로하고 이가을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하. 나 참. 차라리 그 인간은 그래도 신사였구나. 치료하지 말란 말이 일리가 있었어.”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은 뒤에는 최진혁에게 물었다.
“야. 하나만 묻자. 넌 그렇게 사는 게 좋냐? 누구 밑이나 닦고 살면 그게 좋아?”
“……미친X.”
부들부들 떨며 최진혁은 당장에라도 튀어 나갈 듯 몸을 들썩이다가.
“대답 잘하면 치료해 줄게.”
그 말에 격한 감정을 애써 억눌러 본다. 언제나 그랬듯 세뇌된 각성자에겐 항상 최태수가 우선이었다.
“그 말을 믿으라고? 오늘만 벌써 두 번이나 말을 바꾼 게 너인데?”
“믿기 싫으면 믿지 말든가.
“…….”
결국 최진혁은 이가을을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도 여느 교인들 앞에서 수백 번 강조했던 말을 꺼내었다.
“교주님께선 자비로우시다. 네가 오늘 부렸던 패악질은 천벌을 받아야 마땅하나-“
“그렇게 포교하니?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막 믿고 따라와?”
“……속세의 번뇌를 잊고, 육체에 얽매인 연을 끊어냄으로써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게 된다면-”
“하하하하하하하하.”
말을 끊으며 웃는 이가을의 눈빛엔 경멸의 기색이 역력했다.
“사이비 새끼들이 좋아 보이는 말은 다 갖다 쓰네.”
“뭐, 뭐?”
“속세의 번뇌? 안정적인 삶의 영위? 누가 봐도 니들이 살고 있는 곳은 지옥인데 무슨.”
그녀가 돌연, 팔찌를 쭈욱 잡아당겨 연검으로 변환시켰다.
“고민이 많았는데 말이야, 덕분에 생각은 잘 정리했다.”
“?”
“뭐 나도 그 안정적인 삶 정도는 영위해 보마. 돈 때문에 성질 죽이며 니들 같은 애들을 치료할 바엔, 누구 밑으로 들어가 실리라도 챙기는 게 낫겠지.”
연검에 마력을 담아서 그대로 휘둘렀다.
촤르륵.
연검이 길게 펴지니 검의 궤적이 늘어져 곧 최태수에게 닿는다.
“교주님!”
최진혁은 곧바로 움직였다.
번쩍하고 최태수 옆에 나타난 그는 연이어 최태수와 함께 다시 빛에 휩싸였다.
대처는 빨랐으나, 워낙에 지척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촤아아악!
온전히 자리를 벗어났을 떈 이미 연검이 제 몸의 절반 정도를 가른 뒤였다.
제가 모시던 교주와 같이 팔 한 짝을 남기고 뒤로 물러난 최진혁. 외팔이가 된 그가 피를 토하며 외쳤다.
“쿨럭. 제, 제압해!”
그의 뒤에서 신도들이 불쑥불쑥 앞으로 튀어나왔다.
어떤 이들은 손에서 화염, 빙결, 바람, 식물 등을 내뿜으며, 어떤 이들은 무기를 빼 들며.
아니면 무언가로 변하든가, 또는 무언가를 몸에 덧씌우든가.
저마다의 이능을 꺼내며 세뇌된 교인들은 모두가 이가을에게 달려들었다.
콰가가가가강-!
다수와 일인의 충돌.
그러나 물러난 것은 개인이 아니라 다수였다.
이가을은 그 수십의 각성자를 상대로도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한바탕 충돌로 상처는 고작 볼에 새긴 아주 작은 생채기 하나.
그마저도 순식간에 아물어 그 흔적을 감췄다.
“벌레들이 모인다고 달라질 건 없어.”
그녀는 늘 그렇듯, [치유] 각성자론 믿기 힘든, A급 헌터다운 위세로 주변을 압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