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252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252화
눈을 떴다.
정확힌, 술 냄새가 사방에 진동을 하니 저절로 떠졌다.
“뭐야……”
오른팔이 배겼다.
뭔가 묵직하다.
고개를 돌린다.
곧바로 흠칫했다.
한예리가 왜 여깄을까?
왜 내 왼팔을 베고 누워 있을까?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침대 위엔, 강예빈, 엠버, 임솔 등이 서로를 껴안은 채로 자고 있었고.
침대 아래 맨바닥엔, 나와 한예리를 비롯해 주진헌, 강혁, 김우주, 이 총괄팀장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다만 남자들의 자리 배치는 인위적으로 보였다.
모양새를 보면 누워 있다가 파도에 떠밀려 간 것 같았다.
잠결에 굴러갔다기엔, 동심원이 퍼진 듯 정갈하게 같은 거리만큼 밀려나 있으니…… 누군가가 밀어내지 않았을는지 싶다. 파도처럼.
“헤헤헤.”
한예리가 한 것이라 의심되었다.
잠꼬대하는 한예리와 내 주변엔 아무도 없는 것과, 여자들은 전부 침대에 있건만 혼자만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아하니 분명히.
“헤헤헤헤헤.”
“……너답다.”
그녀가 베고 있는 팔을 거두려다가……
“아, 안 돼.”
그냥 두었다. 한예리가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러면 안 돼…….”
무슨 자면서도 저렇게 나라 잃은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입에서 풍기는 알콜향이 아직 진한 걸 보아하니 자는 척이 아니라 정말 기절한 것 같긴 한다만…….
“취해보도록 마셔본 적은 처음이니.”
몸에 힘을 빼고, 머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해하였다.
태어나 이십 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와인향이나 음미해 봤지, [S급 알콜 해독 기능 억제제]까지 사용해 술을 마셔본 적은 처음일 테니.
“다들 취한 마당에 누가 누굴 탓할까.”
공범인 나는 한예리를 탓하지 않았다.
대학생처럼 진탕 술을 마시고 대학교 MT 때처럼 널따란 바닥에서 누워 있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없었다.
그저 멍하니 한예리가 베고 누운 반대쪽 팔을 들어 올렸다.
[성장 조건] : SSS급 몬스터 살해(몽마 처단, 1/2 완수)따지자면, 여섯 번째 보상이었다.
물질적인 보상이 아닌 정보지만, 그래도 보상이라고 할 만한 가치는 있었다.
“어떻게 하는지만, 알면 나머지야.”
반신급의 무력을 갖춘 드래곤.
까다롭기는 SSS급마저 초월한 몽마.
당장 그런 몬스터와 정면으로 맞붙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나는 공명(共鳴)이 약점인 SSS급 몬스터를 몇 알고 있다.
“데모고곤, 마네스, 테카.”
순물질로 구성된 것들은 공명이 체내로 쉽게 퍼지고, 그런 류의 몬스터에겐 내가 상극이었다.
미래에서 이미 처리해 보았다. 어느 게이트 브레이크에서 출몰하는지를 아는 것은 당연했다.
“그중 가장 빠르게 조우할 수 있는 게…… 다음 게이트 브레이크에서의 테카.”
그럼 찾아가면 된다.
그럼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
[속성] : 원거리 마력 간섭 페널티 감소. [공간의 팔찌]의 해당 속성이 강화되어, 상대의 몸 안에서 아무 물건을 꺼낼 수 있을 때까지.머리통 안에 [인벤토리]로 암석을 꺼내기까지.
아니, [열사석]만 꺼내줘도, 뇌가 전부 타버리겠지.
“마력이 98이야. 누가 내 인벤토리를 취소할 순 없어.”
이제 인벤토리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만으로 즉각적인 살상이 가능하리라.
“좋군.”
잔존하던 술기운이 조금씩 가시니 생각은 깊어진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모든 계획에, 고양감마저 차오르던 중.
“남은 건 이제 언제쯤 복귀-”
“무슨 생각 해요?”
생각이 너무 깊었나 보다.
부스스한 머리의 강예빈이 침대 위에서 날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걸 지금에야 알았다.
“복귀 시점을 언제로 잡을까 생각 중입니다.”
“아아. 대외적 복귀 말이죠?”
“맞습니다.”
참고로, 어제의 프라이빗 파티는 말 그대로 프라이빗 파티였다.
아직 내가 SS급 게이트 브레이크를 클리어하고 나온 건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다.
안 그래도 그녀가 내게 말을 건 시점은, 내가 세상으로 나오는 시기를 결정하려던 참이었다.
“저야 신혁 씨가 바로 일선에 복귀해 주면 편하긴 한데.”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없어도 된다는 분위기가 나쁜 게 아닙니다.”
중간을 잘 골라야 할 것이다.
인류에게서 혁예 클랜 없이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라지길 바라지 않는다.
너무 일찍 등장하는 것은 좋지 않다. 뭇사람들이 다시 우리에게 의존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었다, 이제는.
“그렇다고 너무 늦으면 제가 힘들어요. 신혁 씨가 없을 때 통제하느라 힘들었거든요.”
반면, 강예빈이 내가 일찍 복귀하길 바란다 했다.
인류에게 주었던 것들이 악용될 소지를, 내 존재 자체가 예방할 거란 기대. 그녀는 내게 억제력이란 단어를 사용했었다.
“그렇다면 이 공간의 팔찌를 마저 업그레이드하고 복귀하는 건 어떻습니까?”
“방법을 찾았어요?”
“SSS급 몬스터를 하나 더 잡으면 됩니다. 아마 다음 게이트 브레이크에서 업그레이드할 수 있겠죠. 제가 복귀하는 것도 그때면 어떨까 하는데…….”
대답 전에 강예빈은 부스스한 머리를 뒤로 넘기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일어날까요? 얘기가 길어질 것 같고, 마침 개인적으로 의논하고 싶은 일도 있고요.”
“네. 그러죠.”
조심스레 한예리의 머리를 들어 베개를 놓아주고선, 나도 따라서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한 층을 통째로 전세 내었다. 함께 이동한 장소는 바로 옆 객실이 되었다.
아직도 비키니를 입고 있는 강예빈에게 [인벤토리]에 보관 중이던 옷가지와 룸서비스로 올라온 커피까지 건넸다.
양손에 가득한 물건들을 내려다보며 그녀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다음 브레이크도 1년씩이나 걸리진 않겠죠? 그럴 것 같으면 저도 같이 들어갔으면 해요. 밖에서 기다리는 거, 두 번 할 일은 아니더라고요.”
나 역시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이미 클리어해 봤던, 한국의 게이트 브레이크로 진입할 겁니다. 소요 시간은 대략 1주일 정도. 물론 동행을 거절한다는 뜻은 아니니, 하고 싶은 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해요. 드론의 운용은 3개월 뒤, 대외적인 복귀는 6개월 뒤. 게이트 브레이크는 함께.”
직전의 주제는 그렇게 일단락났다.
“의논할 게 또 있다는 건, 어떤 겁니까?”
“앉아서 얘기할까요?”
“좋습니다.”
다음으로 티 테이블에 앉았다.
제주도 바다가 보이는 스위트 룸의 창가에서, 우리는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본다.
““…….””
함께 김우주를 만나, 위치(Witch)로 인해 촉발된 좀비 사태를 정리한 섬을.
함께 수단으로 넘어가, 제주도로 데려온 이자벨라의 [변환]이 진행될수록, 언옵테늄의 색깔에 따라 하얗게 변해가는 제주도를.
“요새 협회장이 자문을 엄청 구하거든요.”
그녀가 말을 꺼낸 건, 고오오오오오, 그녀가 맹활약했던 엘리와의 전쟁에서 데려온 레비아탄의 고동 소리가 호텔까지 울릴 때였다.
“협회장이라면?”
나는 변해가는 제주도를 감상하던 시선을 천천히 옮겨 그녀에게 물었다.
“한국 협회장을 말하는 겁니까? 아니면 미국이나 세계 협회장을 말하는 겁니까?”
물어야 하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예언자의 자문을 구하는 건 모든 국가와 단체가 행하는 것이었으니.
“한국이요.”
“한국의 협회장이면 믿을 만한 사람 아닙니까? 아는 건 대답해 줘도 되지 않습니까?”
“다음 대 협회장을 추천해 달라는 건데, 내용 자체가 다소 곤란해서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전생엔 협회장이 이즈음에 사망했어서, 임기가 있는 줄도 몰랐었다.
제주도처럼 현재가 달라진 것을 체감하게 했다.
“아마 추천해 준 대로, 선임할 것 같아 조심스럽네요.”
“한국의 협회장이라면 그러겠지요.”
이제는 정부든 협회든 우리의 눈치를 과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가령, 밉보이면 다음 날 부유 도시가 미국이나 영국에 가 있을 테니까.
물론 실제로 그러기야 하겠냐만.
“부담돼서 처음엔 거절했더니, 다음엔 차기 협회장 후보군 목록을 보내더라고요.”
그녀가 폴더블 폰의 화면을 띄우곤 내밀었다. 중간에 놓인 폰의 스크린 안엔 여러 인물이 담겨 있었다.
“한번 보세요. 신혁 씨가 추천해 줄 만한 이는 있어요?”
“알겠습니다.”
아는 인물이 있나 빠르게 훑다가…… 나는 중간에 위치한 어느 남자를 가리켰다. 나머지는 더 볼 것도 없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어떻습니까?”
“아? 강신우 씨요?”
이미 강예빈에게 언급한 적이 있다.
현생의 강예빈이 아닌, 전생의 강예빈에게.
나는 회귀의 순간을 떠올렸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어차피 다 죽었어. 강신우도, 임 환도, 하대호도. 이제 우리만 남았어.
나와 노선을 달리했지만,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안 그랬다면 망해 버린 세상에서 굳이 목숨 걸고 그에게 식량을 조달할 필요는 없었겠지.
“반골 기질이 있긴 한데…….”
그래서 죽이 잘 맞았다. 한때 한국을 휘어잡던 아라한 길드가 극히 계산적이고 편협하기만 한 결정을 내릴 때면, 옆에 서서 맹렬히 그들을 비판하던 이였다.
“모르십니까?”
“제 미래에선 본 적 없어요.”
그러나 그녀의 미래에선 일찍 죽어버린 모양.
“그런데 ‘현재’에선 알아요. 저번에 만나 봤거든요. 사람이 괜찮아 보이긴 하던데…….”
말을 길게 늘이던 강예빈은 되물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협회장이 돼도 괜찮은 거 맞아요?”
“제격일 겁니다.”
말했듯, 그는 전형적인 강강약약이다.
헌터답지 않게 대의부터 생각하는 헌터이기도 하다. 협회장으로서 강신우만 한 적임자는 없을 터.
“협회를 이끌기에 충분할 겁니다.”
“음…… 그럴까요?”
그런데 어째 그녀의 대답이 미지근했다.
“혹 마땅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까?”
“그런 것까진 아닌데…… 요새 여론이 반반이라고 했잖아요. 반은 여전히 우리에게 호의적이고, 반은 기득권을 내놓으라 날을 세운다고.”
“네.”
“흔히들 후자를 반혁예파라고 부르는데-”
그녀가 강신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강신우 씨가 반혁예파의 수장 격 인물이에요.”
“잘못 아신 거 아닙니까?”
변해 버린 미래에 난 또다시 놀랐다.
“뉴스만 봐도 나오는 데 그럴 리가요. 아마 지금도 혁예 자치구 앞에서 열사석을 내놓으라고 시위 중일걸요?”
몰랐다.
그 반골 기질이 이번엔 나를 향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