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255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255화
벽면에 수놓아진 스크린 속 인물들의 시선이 전부 강신우를 향했다.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강신우는 얼굴에 꽂히는 시선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들은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고 오롯이 강예빈만을 주시한다.
‘대통령도 예언자의 눈치를 보는 세상이야.’
강예빈의 지지만 얻을 수 있다면 인사 청문회는 순탄할 것이다.
세계를 주무르는, 여기 모인 이들 중 대다수가 혁예 클랜 옹호론자인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
잠시 말을 멈추자 모두의 시선이 강예빈 입으로 옮겨지는 데서, 강신우는 그걸 실감했고.
“어떻게요?”
예언자의 이어진 질문에 제 생각을 쏟아내었다.
“게이트는 주기적으로 생성됩니다. 그리고 단위 면적당 생성 게이트 수는 인구밀도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이 제가 펼치고자 하는 정책의 기제입니다.”
예를 들면 여기 혁예 자치구나 강남이나 어느 무인도나, 면적당 생성되는 게이트의 개수는 동일하다는 거다.
“장소에 따라 1명이 게이트 100개를 감당해야 하는 지역이 있겠고, 천만 명이 게이트 100개를 감당하는 지역이 있습니다.”
두 경우의 난이도 차이는 당연히 크다. 후자가 압도적으로 쉽다.
“그러니 인류는 밀집해야 합니다.”
따지자면, 우선적으로 혁예 자치구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밀집된 힘을 바탕으로 안정화 지역을 넓혀야 합니다.”
그렇게 혁예 자치구를, 다시 말해 안정화 지역을 계속해 넓혀가야 할 것이고.
“그러려면 열사석 탄환이 무제한적으로 필요합니다. 비각성자들이 열사석 탄환으로 현실의 몬스터를 처리하고, 거기서 나오는 Coin을 바탕으로 각성자가 되면, 그들이 게이트로 들어가 지역 안정화를 꾀하는 순환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비각성자가 몬스터 안정화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각성자 비율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져야 한다.
“그렇게 지구가 전부 안정화되면, 게이트라는 현상은 그저 늘 조심해야 하는 풍토병 같은 걸로 전락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재해가 아니라.
“좋은 얘기네요.”
강예빈의 주억거림이 쾌재를 부른다. 테이블 위로 올려진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것을 가까스로 막았다.
“그런데 강신우 씨.”
“네. 강예빈 부클랜장님.”
그런데 기분 좋은 건 딱 거기까지.
“열사석 탄환만 무제한적으로 쥐여주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나요?”
“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열사석 탄환이 없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게 아니라.”
강예빈이 묻는다.
“지금까지의 언급이, 당신이 추구하는 목표에 대한 고민의 전부인가 묻는 거예요.”
여전히 담담한 어조지만, 강신우는 공기가 달라지는 것을 체감한다.
그녀가 양팔을 벌렸다.
“당신 눈앞에 있는 이들은 딱지치기로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시선이 그녀의 손끝을 따라가니, 스크린 속 인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국가와 초대형 길드의 우두머리들. 그들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다들 당신이 한 생각을 한 번쯤은 했다는 얘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나요?”
대답도 듣지 않고 강예빈은 입을 닫았다.
“참석자분들은 해당 안건에 대해 질문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 즉시, 인물들의 포화가 쏟아진다.
“인구 밀집이 그리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 인류가 풍족하던 시절에도, 왜 이민에 제한을 두고 난민 수용을 조절했는지 아십니까? 하물며 지금은 전 인구의 90%가 난민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먼저 허드만이 인구 밀집에 대한 반론을 내었다.
“인구 밀집의 의도는 좋네. 모두가 한곳에 모이는 과정에서 열사석을 인간에게 사용하는 사이코패스나, 타인에게 본인의 기억을 주입하는 엘리 세리아드 같은 이들이 섞여 들어오지 않는다면 말이야.”
세계 협회장이 돌려서 비꼬았다.
“자네 혁예 자치구가 왜 특별한지 알잖나? 다른 도시에선 아직도 옆집에서 좀비가 튀어나와. 위치(Witch)에게서 각성자가 감염되고, 그 좀비에게 비각성자가 재전염되는 악순환은 아직도 진행 중일세. 그런 와중에 인구 밀집? 그 악순환이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되는 걸 막을 수 있겠어?”
곧 은퇴 예정인 한국 협회장이 인구 밀집에 따른 전염 확산을 우려하였다.
“강예빈 부클랜장이 특별한 이유는 예언자인 그녀의 말이 전부 현실이 되어서라네. 그런데 자네의 주장은 어떠한가? 실현을 위한 현실적인 근거가 마련되었나? 그저 그렇게 하면 좋겠다에서 그치는 게 아닌가?”
한국 대통령은 왜 예언자를 찬양하는지 타당한 이유를 대었고.
“현실성 없는 정책은 없느니만 못하네. 특히 지금과 같이 전시에 준하는 상황이면 더욱. 평시와는 무게 자체가 달라. 정책의 실패는 전부 죽음이고, 다른 것과 달리 목숨은 복구도 불가능하지.”
미국 대통령이 말을 받아 불완전한 정책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다음은, 강예빈 다음으로 발언권이 강한 이가을이었다.
“열사석 탄환을 마구 배포하는 건 좋은데, 문제는 자가 증식이라는 속성이야. 반대로 인류를 향한 열사석 탄환도 무제한적일 경우는 생각해 봤어? 만약 그걸 해결 못 한다면? 뿌린 것을 거둘 수가 없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따로 고안한 대비책은 있어?”
이가을의 눈빛이 저릿하다.
“모두가 말하듯, 중요한 건 현실성이야. 그런 뜬구름 잡는 말로, 여론을 이끈 게 참으로 용하다 용해. 네가 희망이라는 단어로 대중을 꾀는 사기꾼과 다를 게 뭐지?”
가슴을 파고들어 와 심장을 후비는 것만 같았다. 적대적인 말은 그녀의 권위에 힘입어 어느 칼보다도 날카로웠다.
“예언자님과 대통령님과 협회장님께선 한국 협회장 선임에 대해 재고해 보심이 어떨는지요?”
세계 협회장이 한국 협회장 선임의 결정권자들에게 물었고, 그녀의 말에 전부가 동참했다.
“동의합니다.”
“미비한 정책을 정답인 양 대중에게 말하는 건 곤란하지요.”
“너무 위험합니다. 협회장으로 확정될 시, 많은 이들이 리스크에 노출될까 봐 심히 우려되는 바입니다.”
강신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직 제 반론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애써 머리를 차게 한다. 숨을 돌리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한다.
-뻔하죠. 열사석 보급로를 털자. 웜홀로 역침투해 보자. 무자비한 테러를 통해 그들의 견고한 명성을 흠집 내보자. 이런 거 아닙니까?
열사석 악용과 인구 밀집에 대한 부작용은 펼치고자 하는 정책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었다.
고민을 안 했던 게 아니다.
그러나.
“저 역시 많은 고민을 해봤습니다. 짚어주신 문제점들에 대하여.”
최선을 다해 찾았으나, 뚜렷한 해답이라고 내놓을 수 있는 게 없는 건 인정한다.
“몇 가지 대비책이 있습니다만, 보아하니 그게 원하시는 답변이 되긴 어려울 듯합니다.”
그런 게 있다면 저들이 이미 시행했겠지. 쉬운 답이 있다면 벌써 찾았겠지.
대다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전에 되묻겠습니다.”
강신우는 도리어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들의 방법이 옳다는 데엔 동의할 수 없었다.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화면 속에 들어 있는 기득권층에게 되묻는다.
“돌아오지 않는 박신혁 클랜장을 기다리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까?”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고 해서, 현 상황을 고수하는 게 최선이 맞냐고.
“당신들이 쌓아 올린 게 무너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전부입니까? 좀비가 무서우면 모두 집 안에만 계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협회장 자리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신념에 관한 문제였다.
“웅크리고 있다고 해결이 됩니까?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천천히 기다리는 게 유일한 정답입니까? 언제까지 혁예 클랜에 의존하게 할 생각입니까?”
의도치 않았지만, 언성은 높아진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릅니다. 맞더라도 일어설 겁니다. 다시 일어날 수 없게 되더라도, 그때까지 계속해 일어설 겁니다.”
크게 소리치고.
“그렇게 희망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게 잘못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리스크 없는 보상이 세상에 존재는 합니까?”
그러곤 이가을을 보았다.
“이 모든 게 희망이라는 단어의 사기입니까?”
* * *
같은 시각.
제주도, 드론 생산 공장.
[이 모든 게 희망이라는 단어의 사기입니까?]“잘하고 있네.”
“네. 알고 있어요.”
“아……?”
미안하지만, 손짓 한 번에 언옵테늄을 찍어내는 이자벨라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대도시에서 받아온 쓰레기가, 고철이, 재활용 불가능한 비닐과 플라스틱이, 전부 언옵테늄으로 [변환]되는 기적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이번엔.
[기회를 주신다면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TV 속에서 인사 청문회를 진행 중인 강신우를 말하는 거였다.
“이자벨라야 언제든 잘해주시고 계십니다. 다만 저기 강신우도 잘해주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아아. 강신우 헌터요?”
“네.”
제주도로 온 뒤, 이전보다 100배는 자주 웃는다는 그녀가 과장스러운 동작으로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흑진주란 말이 어울리는 미소와 함께였다.
“음? 혁예 클랜장께선, 혁예 클랜의 편을 들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조금 서운한데요?”
“저야 언제나 혁예 클랜 편입니다. 강신우가 잘해주는 게, 혁예 클랜의 편을 드는 거니까요.”
“네? 강신우는 우리의 반대편 인물 아니었나요?”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는다.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박신혁 클랜장이 없어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누누이 말했듯.]위이이잉.
동시에 드론 네 대가 들어와 그녀가 만든 언옵테늄을 옮기자, TV 속에서 열변을 펼치는 강신우가 드러난다.
나는 스크린 속 그를 가리켰다.
“딱 저 말이 제가 원하는 대답입니다.”
진심이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한 인류의 의존성을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강신우는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과 완벽히 부합되는 인물이죠.”
“아…… 그래서 드론으로 살펴봤던 거예요? 반혁예파의 수장이라서가 아니라?”
“맞습니다.”
몇 달간 드론을 통해 그를 살펴왔다.
-굳이 조용한 곳에서 할 얘기가 뭐겠습니까? ……이해를 못 한 거 같은데, 꺼지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는 그간 데이비드와 했던 대화 그대로의 삶을 살았고.
-왜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로 가? 헌터가 힘으로 뺏어오면 되지, 여론 설득이 왜 필요해?
-그럼 당신은 그렇게 하십시오. 나중에 적으로 만나도 후회하지 마시길.
어느 범죄자와도 타협하지 않았다. 전생에서도 죽을 때까지 약탈자와 전향자를 증오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언제까지 혁예 클랜에 의존하게 할 생각입니까?
그러니 이번 인사 청문회는, 이를 재확인하는 하나의 행사이자.
[이번 브레이크가 끝나면, 옛 북한의 황해도 지역까지 수복해 보이겠습니다. 열사석 탄환만 주어진다면, 문제를 해결하고 안정화 지역을 넓힐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즉, 제가 협회장이 된다면-]대중들이 강신우의 의견에 동조해 주길 바라는 방송이며.
[혁예 클랜이 없어도, 인류가 게이트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일 것입니다.]“우리가 없어도, 인류가 게이트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일 거라 기대합니다.”
그와 나의 생각이 일치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가능할 겁니다.”
이제는 정말 우리가 없어도 될지도 모른다.
[강신우 헌터! 우리는 당신의 의지 말고,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을 듣고 싶은 겁니다. 왜 자꾸 말을 돌리십니까!]아닌 게 아니라, 인류가 자립할 요건이 슬슬 갖춰지고 있다.
나는 이자벨라에게 물었다.
“현재까지 생산된 드론은 몇 대입니까?”
이곳, 거대한 공장의 공정 끝에, [변환]된 언옵테늄 원자재로부터 가공된 기계족 기술의 산물, 드론.
“어제까지 총 1억 대였고, 하루에 백만 대씩 계속 생산하고 있어요.”
“좋습니다. 이 년 정도 뒤엔 전성기 시절 인류 총인구보다 많아지겠군요.”
하나의 전원을 켜자, 우우우웅, 열사석 탄환과 AI를 탑재한 드론이 공중에 떠오른다.
[감정적인 설득 말고 해당 질문에 정확히 대답하세요. 열사석의 오용, 인구 밀집화에 따른 범죄, 좀비 바이러스 감염, 안정화 지역 확장을 위한 몬스터 토벌의 위험성, 이런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냐는 겁니다.]나는 말했다.
“게이트 브레이크가 시작되는 즉시, 모든 드론을 가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