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27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27화
강예빈이 답했다.
“신용이 중요하겠네요. 우리 클랜 주변은 안전하다는 사람들의 믿음. 그 어떤 게이트도 클리어할 수 있다는 실력에 대한 신뢰.”
“네. 정작 게이트를 클리어하지 못하면 앞서 말한 건 다 무의미하게 되겠죠.”
난 창밖으로 시선을 두었다.
여기에 강예빈이 있다는 소식이 퍼진 지 고작 30분도 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한 결과는 자명했다.
도로 위 나가는 차도는 텅텅 비었는데, 들어오는 차도는 꽉 막혔다.
단순히 헌터 복합 쇼핑몰 센터로 오려는 인파는 아닐 것이다.
저기 있는 JBC, TBS, IBC 방송국 차량들이 쇼핑하러 이곳에 올 리는 없을 테니까.
다들 우리를 보러 오는 것이다.
“그래서 내일 강예빈 씨의 방송이 중요합니다. 저 많은 관심과 기대가 리크루팅까지 이어지면 많은 이들이 지원하겠죠.”
이어 클랜의 규모에 대한 이가을의 질문에 마저 응답했다.
“클랜원을 셋에서 얼마나 늘릴지는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이가을 클랜원이 들어왔으니 소수정예라는 상징성을 가져보려 하기 때문이죠.”
전생과는 다르게 한번 해보려 한다.
”하여 어중이떠중이만 지원한 거라면 아예 뽑지 않을 생각이고, 미래 정보를 바탕으로 성장 기댓값이 높은 인물이라 판단되면 클랜의 규모를 늘릴 겁니다.”
한참을 와르르 쏟아낸 후, 결론을 지었다.
“질문 있습니까? 혹 더 알고 싶은 점이나.”
곧 내 계획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다.
강예빈은 엄지를 치켜세웠고, 이가을은 나를 보며 또 한 번 박수를 쳤다.
“왜 예언자인 강예빈이 아니라 당신이 클랜장인지 알겠어.”
전생까지 통틀어 처음으로 보는 이가을의 호감 어린 눈빛이었다.
“혹시 헌터 짓 하기 싫으면 언제든 말해. 지금 비서도 괜찮긴 한데, 그래도 당신이 그 일을 하겠다면 바로 해고할게.”
난 피식 웃었다.
“그렇게 고용이 불안정해서야 누가 밑에서 일하겠습니까.”
“연봉이 얼만 줄 알아? 다들 못해서 난리인데 무슨.”
“일 년 뒤를 기준으로 한, 일 초치 이자 정도 되겠네요.”
“참나. 근데 진짜 그럴 것 같기도 하고…….”
이가을의 의문은 이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이제 한 가지 일만 남았다.
바로 어떻게 돌아가냐는 것.
다름이 아니라 창밖으로 보이는, 개미 떼처럼 몰려드는 인파를 뚫긴 힘들어 보였다.
‘가장 간단한 타개책은…….’
난 정말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혹시 헬기도 있습니까?”
역시 이가을은 이가을이었다.
“있지. 왜? 데려다줘?”
“……네. 강예빈 클랜원의 볼일이 끝나면 부탁드리죠.”
* * *
주진현은 한때 촉망받던 헌터였다.
전위 중에서도 가장 앞쪽에 서서 몬스터 웨이브를 막았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그 어떤 괴물과 조우하든 뒷공간을 열어주지 않았던 능력 있는 탱커였다.
빛바랜 표창장 하나가 이를 증명한다.
귀하는 헌신적인 역할군 수행 및 모범적인 헌터 사업을 통하여 국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2025년 11월 21일.
대통령 이인구.
3년 전엔 그가 독보적으로 잘했었다고.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저 때를 기점으로 이어진 주진현의 삶을 대변하는 가장 적합한 단어는 ‘추락’이었다.
점점 단단해지는 몸뚱이.
그에 반해 좀처럼 성장하지 않는 [마력].
그런 주진현의 비대칭적인 성장과 급수가 올라갈수록 영악해지는 몬스터의 지능이 결부되니, 탱커인 주진현에겐 결코 바라지 않는 현상이 일어났다.
후우우우우.
깊은 한숨과 함께 주진현은 어김없이 무능력했던 오늘의 공략을 떠올려 본다.
-날 봐!
팅-
휘두른 기세가 무색하게 튕겨져 나온 검. 마력이 담기지 않는 단순한 날붙이의 휘두름만으로는 괴물의 외피조차 흠집 낼 수 없었다.
화르르륵.
크와아아아아악.
반면 괴물은 주진현의 뒤에서 뿜어진 화염엔 더 없이 고통스러워했다.
머리가 있다면 누구부터 노릴 것인지는 분명했다.
괴물은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 각성자를 무시했다.
파리가 앵앵거린다고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주진현을 그냥 지나쳤다.
-날 보라고!
전력을 다해 괴물의 앞으로 가 한 번 더 알짱거려도.
-날 봐!
탱커는 목전서 본인을 지나치는 몬스터를 바라만 봤다.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씨X…….”
주진현은 주먹을 으스러져라 쥐었다.
자존감이 구겨진 만큼 세게.
현재의 주진현은 후위에서 동료를 밀어내고 대신 물어뜯기는 고기 방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런 역할은 사실 길드 수준까지 가면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길드가 바라는 건 과거의 주진현같이 전위서 듬직하게 버텨주는 수문장이지, 후위에 머무르는 고기 방패가 아니니까.
헌터 사회가 커질수록 마석과 사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수록, 헌터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건만, 주진현의 몸값은 3년 전을 기점으로 늘 하락세라는 게 그것을 증명한다.
띵동.
[주진현 헌터님. 혹시 임대에 대해 생각은 해보셨나요? 그래도 아직 C급이나 D급 게이트에서는 주진현 헌터님께서도 충분히…….]그리고 이번 재계약에서, 4년간 몸담았던 길드가 내민 조건은 고작 임대.
[길드장님께서 잘 생각해 보라고 전하시네요. 그럼 이만.]그것도 오랜 동료인 길드장이 직접 전하는 게 아닌, 얼굴도 모르는 아랫사람을 통해 무뚝뚝하게 전해진 제안.
“임대라.”
옛정은 생각해서 적은 길드에 두되, 본분에 맞는 곳에서 쓰여라. 엄한 곳에 끼지 말고.
“뭐, 그런 의미이지 않을까.”
서러웠다.
처음엔 임대. 그다음은 이적 제안. 그다음은 방출일 것은 뻔했다.
자격지심이 담긴 개인의 예상이 아니라, 요즘 길드 내 돌아다니는 자신에 대한 소문이 그러했다.
“고작 이런 길드를 위해서…….”
뭘 위해서 그리 헌신적으로 이들을 지켰을까.
이게 스포츠의 프로씬이라면 무능력에 따른 방출이 당연히 이해가 될 것인데.
게이트 내에서 우리가 치렀던 건 스포츠가 아니라 치열한 전쟁이지 않았던가.
길드 내 인원 중 자신이 목숨을 구하지 않았던 인물은 없다.
저 결정을 내린 길드의 수뇌부들마저도, 그들을 구명한 횟수를 세면 족히 열 번은 되리라.
근데 그런 관계의 끝이 고작 토사구팽이라니.
도태되어 버려지는 과정이 괴롭고 또 외로웠다.
-끝까지 가자. 네가 아니었으면 길드까진 못 왔을 거야.
-이번에도 고마워. 너 없으면 진짜 다 죽을 뻔했어.
-주진현 씨. 뭐 불사신이에요? 어떻게 저길 혼자서 버텼지?
이젠 다 옛일일 뿐.
“아예 그만둘까?”
차라리 깔끔하게 은퇴할까?
“이전처럼 돌아갈 순 없을 텐데.”
어차피 바뀌는 건 없을 텐데.
난 마력이 뭔지도 모르니까.
“하아아아아아.”
담배 연기보다 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소파에 앉아 덧없는 마른세수를 했다.
별 의미도 없는 말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고 싶었다. 이전의 그 찬란했던 때로.
“…….”
뭐 어디선가 SSS급 아티팩트라도 떨어지면 그게 가능하려나…….
한탄만 하다가 또 날을 새울까 싶어 주진현은 침대에 누웠다.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고.
도저히 잠이 안 와서, 잠을 자려면 곤두선 신경이라도 죽여야 할 것 같아, 근래에 자주 들어가 봤던 강예빈의 채널에 들어가 보았다.
“오늘은 올라왔으려나…….”
별 기대는 안 했는데,
“어?”
놀랍게도 새로운 영상이 두 개나 있었다.
[2028년 상반기 게이트, 게이트 브레이크 관련 안내 방송.] [2028년 상반기 혁예 클랜 리크루팅 관련 안내 방송.]홀린 듯 아래 영상을 클릭했다.
이유는 조회 수가 더 높아서.
[새로운 혁예 클랜을 소개합니다.]영상이 시작되고 모델처럼 아주 늘씬한 몸매에 암고양이처럼 표독한 인상을 가진 미인이 등장했다.
아주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가을.
그러니 왜 이 영상에 등장했나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가을? 그 이가을? 돈에 미친 성녀 이가을?”
이에 설명이라도 하듯 자막이 떴다.
[클랜원 : 이가을.] [이능 : 치유.] [등급 : A급 헌터.] [경력 : 프리랜서 헌터, 5년.]그 이가을이 맞다고.
각성자 비율이 높은 한국에서도 고작 5명밖에 없는 그 A급 헌터라고.
“이가을이 고작 클랜원으로 들어갔다고?”
영상은 그녀를 360도 돌며 클랜원을 홍보한다.
카메라를 보며 아름다운 얼굴로 아주 언짢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영상은 이어서 그녀의 유능함을 입증한다.
[외상 치유 속도, 전 세계 1위.] [폐암 말기, 이만희 회장. 암 치료에 더해 젊음을 되찾는 데까지 걸린 시간, 고작 10초.] [절단된 신체 부위도 재생을 시키는 이가을. 치유의 한계는 어디까지?]…….
사실 그녀의 업적은 볼 필요도 없다. 어느 외국인이 한국의 대통령 이름은 모를 수도 있지만, 이가을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주진현 역시 나열된 사실들을 잘 알고 있었다.
“끝이야?”
그러다 화면이 암전됐다.
이가을이 클랜원이라면 한 시간 동안 그녀만 홍보해도 될 텐데, 그녀의 영상은 생각 외로 짧게 마쳤다.
홍보 방식에 의아함이 든 것도 잠깐.
이어서 강예빈이 영상에 등장했다.
[부클랜장 : 강예빈.] [등급 : C급 헌터.] [이능 : 타임 슬립.] [경력 : 각성자협회 연구소장 5년.]“뭐 강예빈이면…….”
방금의 의문이 다소 가라앉는다. 이제 강예빈이면 유명세만 따졌을 때 이가을에게 비빌 수준은 되니까.
그도 그럴 게 그녀는 무려 예언자가 아닌가.
등장도 화려했다.
별다른 CG가 없어도 얼굴 하나면 충분했다. 이가을이 세련된 인상이라면 강예빈은 따뜻한 인상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뭔 홍보를 외모로…….”
오죽하면 그런 생각도 들었다.
무슨 아이돌이라 보는 것처럼 홀린 듯 보게 된다.
모두가 기다리던 미래의 정보보다 이 영상의 조회 수가 높은 게 이거 때문이려나.
등장과 소개.
영상의 구조는 단순했다.
이어서 마찬가지로 강예빈의 업적이 나왔다.
[재해 브레이크, 일주일 전 예언]그 유명한 ‘낙엽단풍개화새싹’부터.
[유일한 타임 슬립 각성자의 이능 사용법.]끼이이이이이익-
얼마 전 ‘왜 강예빈은 염력까지 다룰까?’ 화제를 모았던 자동차를 움직이던 영상까지.
그러곤 퇴장한다.
“…….”
그게 끝이었다.
화가 치밀었다.
“아니, 왜 홍보 영상을 이따위로 찍은 거야?”
구독자가 뭘 보고 싶어 하는지 몰라?
영상을 끊고 댓글 테러를 하려던 찰나.
[협력 길드 : 수호 길드.]믿기지 않는 문장이 등장했다.
영상에 잡힌 건 그 유명한 강혁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클랜이 길드와 협력 관계를 맺은 것도 놀라운데, 그 길드가 무려 한국을 대표하는 길드 중 하나인 수호길드일뿐더러, 거기에 부길드장씩이나 되는 인물이, 그 유명한 강혁이 클랜의 홍보 영상에 나오다니?
입이 떡 벌어진 그때.
연이어 박신혁이 나왔다.
[클랜장 : 박신혁.] [등급 : D급 헌터.] [이능 : 인벤토리.] [경력 : -]“…….”
김이 팍 새는 기분은 나만이 느낀 게 아니리라. 광대가 주저앉았다.
급도 이능도 경력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다못해 공대라도 이끌 수 있을까 싶은 초라한 이력들.
“홍보팀이 없나? 왜 영상을 이렇게 만들었지?”
눈에 들어오는 건 딱 두 개뿐이었다.
매혹적이라 칭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의 우월한 외모.
외모로 클랜장을 뽑은 거라면 누구라도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인벤토리] 각성자치고 등급이 꽤 높다는 것.
이것 역시 인정할 만은 하다. 그래 봤자 꽤 쓸 만한 짐꾼에 불과하겠지만.
“보여줄 게 있으려나?”
별 볼 일 없을 거란 생각에 바로 넘어갈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르게 박신혁의 영상은 더 이어졌다.
그가 아까 등장했던 강혁과 마주 선다.
그리고 갑자기 손에다 웬 장검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인벤토리?”
그저 [인벤토리]에서 검도 꺼낼 수 있다고 보여주는 건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상한 건, 그 앞에 서 있던 강혁이었다.
그가 순간 흐릿해지더니 어느새 그의 손에는 장검 하나가 들려 있다.
서로 검을 들고서 마주 보는 둘.
“뭐야?”
이후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 둘은 충돌한다.
쾅-!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고, 영상엔 박신혁과 강혁의 검이 부딪히는 장면이 포착됐다.
서로의 외관은 멀쩡하다.
겉으로 봤을 땐 동수였다.
“미, 미친.”
짐꾼으로 활동했다 알려진 박신혁이, 헌터 중 선두에 속해 있다 평가받는 강혁과 동수.
“…….”
이어서 강혁은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박신혁의 하체가 시퍼런 빛을 띠더니, 그 역시 사라진다.
마치 [가속] 각성자 강혁처럼.
박신혁은 화면에서 사라졌다.
“어어?”
그 마음을 대변하듯 카메라는 빠른 속도로 줌아웃된다.
드론인 듯싶었다. 높은 고도에서 찍어서 그 둘이 서 있던 공터가 한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다만 멀리서 전체를 잡아도, 여전히 그 둘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쾅-!
폭발음과 함께, 충돌의 순간 잠시 멈춰진 그 둘이 카메라에 잡히더니-
그 둘은 다시 사라진다.
“어디야?”
쾅-!
또 한 번.
쾅-!
또 한 번.
쾅-!
계속해서.
D급 헌터가 곧 A급으로 승격할 거라는 수호길드의 부길드장과 대등하게 맞선다.
“말도 안 돼.”
심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떻게…….”
어떻게 고작 D급 헌터가?
봐주는 건가? 근데 강혁은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있잖아?
쾅-! 쾅-! 쾅-! 쾅-! 쾅-!
연이은 충돌 이후에 둘은 자리를 바꿔 서로가 있던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둘은 검을 고쳐 잡고, 각자의 검에 마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누가 봐도 서로가 전력을 다하는 거다.
박신혁뿐만 아니라, 예의 그 강혁도.
“아니…….”
다른 점도 눈에 띄었다.
강혁의 청광은 거대하되 계속 출렁이며 일렁이는 데에 반해, 박신혁의 청광은 그 크기가 강혁보단 작으나 더없이 선명하다는 것.
무슨 마력을 극한까지 정제한 것처럼 보였다.
곧 그 둘은 다시 사라졌다.
콰가가가가쾅-!
그리고 정확히 그 둘이 있던 가운데서.
이제껏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번쩍.
화면을 뒤덮는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