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37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37화
연구실 안.
실험실과 구분되는 공간엔 TV가 있고, 그 TV엔 강예빈, 자신의 얼굴이 띄워져 있다.
뉴스 채널에서 본인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은 이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소장님.”
덤덤히 받아들이며 강예빈은 연구원들의 인사를 받았다.
“네. 좋은 아침입니다. 주말 잘 보내셨나요?”
“덕분에 아주 푹 쉬다 왔습니다.”
사뭇 달라진 연구원들의 태도를 실감했다.
어리다는 이유로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는, 저번 게이트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소장님! 어제 소장님 TV에 나온 거 봤어요. 잘 나오셨던데요?”
“아하하……. 어디에 나온 걸까요?”
“KBC, MBS, JBC, TVM 또…… 이제 실물보다 스크린으로 더 자주 보는 거 같네요.”
눈빛엔 존경의 감정만이 선연할 뿐.
다만 거리감은 여전하다.
“소장님~ 이번 프로젝트 결과 진짜 안 알려주실 거예요?”
강예빈은 예언자라는 가면을 쓰고서 대답했다.
“네. 말씀드렸잖아요. 제 말 한마디에 결과가 바뀌길 원치 않는다고.”
문득 또 박신혁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그이 앞에서는 이런 가면 따위 쓰지 않아도 되니까.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으니까.
“자자.”
일상을 공유하는 이들과 있는 게 오히려 다소 불편한 감이 있었다. 일부러 소속 연구원들과의 인사를 짧게 끝내려는 것도 그래서고.
자리에 가방과 겉옷을 풀어놓으며 일과의 시작을 알렸다.
“바로 회의 시작할게요. 화상회의에 참여하실 분들은 각자 접속해 주시고, 아닌 분들은 회의가 끝날 때까지 정숙 부탁드립니다.”
일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침마다 하는 정기 화상회의로 일과를 시작한다.
각성자 협회 관료, 유명 대학 교수, A급 각성자, 마력 관련 석박사들이 참여하고, 과거 자신이 어떻게든 마력회로에 관한 중요성을 어필하던 그 회의 말이다.
-강예빈 박사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그러나 이전과 비교해, 이곳에서 자신의 격상은 천지가 개벽한 수준이다.
전엔 내 말을 귓등으로 듣던 사람들이-
-강예빈 박사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죠?
서로 앞다투어 자신의 의견부터 구한다.
“글쎄요. 제 분야가 아니어서 선뜻 의견을 내기가 조심스럽네요.”
저 질문의 내용이 지금 종사하고 있는 마력 관련 분야가 아닌데도 굳이 묻는다.
아마도 자신이 하는 것들의 결과가 미래에 어떨지, 예언자에게 묻는 것이 아닐까.
-알지요. 다만 강예빈 박사께서 전망을 어떻게 내다보는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그럼 저번과 같은 말을 드려야겠네요. 제가 첨언한다고 뭔가 바뀔 만큼 지금 프로젝트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애초에 프로젝트의 목적성이 불분명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 명백한 선을 그었다.
질문을 한 이는 유명 대학의 교수지만, 이제는 그래도 된다.
-하하하하하.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제가 너무 가벼이 물었나 봅니다.
저 사람의 상사. 그러니까 저 사람이 소속된 대학의 총장에게 당장 이곳으로 오라 하면, 장담하는데 1시간 안에 올 거니까.
허세는 아니다. 왜냐하면 하루에 한 번씩 협업하자고 연락이 오니까. 밥이라도 한 끼 하자면서 얼마나 귀찮게 굴던지.
이를 빌미로 갑질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미래가 어떨지 묻지 마세요. 여러분이 아셔야 할 건 전부 클랜의 방송을 통해서 말할 거니까요.”
그냥 이제 이 사람들에게 연연하지 않는 거다.
이제 하려는 연구는 다른 사람들의 동의나 의견 따위가 전혀 필요치 않으므로.
-강예빈 박사. 그 하려던 연구의 지원은 필요 없습니까?
부유석의 패턴 분석이든.
마력회로의 연구든.
“네. 협회장님.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들의 지원이나 조언 따위는 전혀 필요 없다.
사체 지원도 필요 없고, 지원금도 필요 없고, 사실상 박신혁이 연구 장비를 게이트 안으로 들일 수 있음에 근무지까지도 필요 없다.
저들이 줄 수 있는 걸 한곳에 모아둬 봤자, 박신혁이 툭 던진 말 한마디보다 못하다.
그걸 깨달았을 뿐이다.
-강예빈 박사? 무슨 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까 해요. 그 개요에 관한 문서입니다.
그걸 협회장도 안다. 답답한 사람이지, 멍청한 사람은 아니니까.
-참석자 여러분들. 요새 이런 의견들이 많이들 올라옵니다. 어차피 우리가 하는 게 전부 게이트와 관련되지 않았습니까?
협회장이 카메라를 응시했다.
-게이트 안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사람들을 굳이 연구소에 묶어놓을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그 사람들이 게이트 안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전부 연구 성과로 반영이 될 텐데 말입니다.
화면 속 협회장이 자신을 바라본다.
저 말이 자신한테 하는 말임을 확신한다.
-그래서 융통성을 조금 내보려 합니다. 재택근무를 하듯이 게이트로 출퇴근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종의 파견 근무랄까요? 물론 이것은 우리 협회의 내적인 일이지만, 모두가 어떤 형식이든 협회와 관련되어 있고, 그런 이들이 전부 참여하는 회의이다 보니 여러분의 의견을 구하고자 합니다.
“네. 저도 동의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모니터에 나열된 사람들이 자신을 따라 일제히 손을 들었다.
-상황이 변하면 규정도 바뀌어야죠.
-어디서 근무하느냐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연구소에서 연구하든 게이트에서 연구하든 어떤 결과를 내는지가 중요하지.
-협회장님의 유연한 사고에 매번 감탄합니다. 하하하하.
이제 이곳에 출근할 필요가 없다는 것.
게이트 출입 일지에 이름이 있다면, 게이트 안에서 무엇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
그것만이 이 회의에서 들을 가치가 있는 유일한 안건이었다.
-그럼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박신혁에게 톡을 보낼 만한 이유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안건인 것이다.
[작업 아직 안 끝났어요?] [지원자가 그렇게 많은가? 제가 도와드릴까요?] [정부에서 호위와 관련된 문서를 보냈어요. 어떻게 할지 몰라서 통째로 첨부할게요.]이틀 전에 보낸 톡에 아직도 답이 오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그 위로 또 하나의 메시지를 쌓았다.
[다음 게이트는 언제 갈까요? 어차피 연구는 거기서도 할 텐데, 아예 파견 근무 식으로 하면 어떠냐고 협회장이 먼저 말하네요. 확인하시면 연락 주세요.]그리고 이젠 평소처럼 톡창에 떠 있는 저 ‘1’이 지워지길 기다린다.
슬슬 리크루팅 관련 문서 작업도 끝날 때가 된 거 같은데…….
그러던 중이었다.
“소장님은 박신혁 클랜장이랑 어떤 관계예요?”
푸흡. 잠을 쫓기 위해 들이켜던 커피를 뿜었다.
소매로 급히 입가를 닦으며 눈으론 이상한 소리를 내뱉은 이를 좇았다.
“어?”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보이고 있는 이소라.
유일하게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연구원.
그나마 이곳에서 소통이 가능한, 사석에서도 볼 만한 유일한 사람.
그녀가 웃었다.
“하하하하. 뭘 그리 놀라세요?”
“어떤 관계냐니? 딱 봐도 클랜장이랑 부클랜장이잖아.”
“네? 소장님만 그렇게 생각할걸요? 클랜 홍보 영상에 달린 댓글 확인 안 하셨구나?”
어? 댓글?
“무슨 댓글? 클랜장과 나와 관련된?”
“네. 미래에서도 둘은 아는 사이 아니냐는 댓글 못 보셨어요?”
“어? 어…….”
“그러니까 소장님이 과거로 돌아와 박신혁 클랜장부터 만난 거 아니에요? 그가 믿을 만한 인물이니까 영상도 같이 찍고, 거기에 더해 클랜장까지 맡기신 거 아니에요?”
선 채로 굳어버렸다.
잠을 쫓아 버리는 종소리가 머릿속에서 댕댕댕 울린다.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라고 당신에게 말하더군요. 제가 봤던 기억에서.
박신혁은 기억의 금고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보낸 시간을, 여태껏 같이 보냈던 미래를, 봤다고 했었지만, 어째 지금은 이소라의 주장이 더 신빙성 있게 들린다.
이미 미래에서 알고 지낸 사이냐는 말이.
“왜 그렇게 생각해?”
“딱 봐도 서로 엄청 친해 보이잖아요. 그런데-”
“그런데?”
“소장님이 미래에서 오시기 전까진, 그러니까 이 주 전까진 박신혁이란 사람은 아예 모르는 사람이었을 꺼 아니에요?”
“으응, 모르긴 했지.”
“그러면서 그런 어그로 영상을 같이 찍는다고요? 상대의 무엇을 믿고요? 이미 박신혁 클랜장을 잘 아니까, 미래를 털어놓을 만한 상대니까, 영상을 같이 찍자고 제안하신 거 아니에요?”
아…….
저 말을 반대로 생각해 본다.
박신혁이 왜 굳이 내게 영상을 찍자 했을까?
-아티팩트에 담긴 미래 기억의 일부를 봤고 그대로 행동했다? 저한테 온 것처럼?
미래를 따라 했다는 그의 말보단 이소라의 말이 훨씬 그럴싸하게 들린다.
개연성으로 치자면 그가 나에 대해 이미 알고 있으니 영상을 찍자고 제안한 게, 클랜에 들어오라고 한 게, 그때 상황에 더 들어맞긴 한다.
박신혁의 말을 온전히 믿기에는…… 그는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그게 맞아.’
처음 그의 손을 잡을 때부터, 그의 손은 내 손에 딱 맞았으니까.
늘 그이가 내 머리 위에서 내려다본다고 생각했으니까.
마치 날 너무 잘 아는 것처럼.
“댓글에서 그래?”
“네.”
사실 이소라 연구원의 말처럼, 그는 원래 나에 대해 잘 아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럼 그 댓글에서는 우리가 미래에 어떤 관계로 보인대?”
미래에 우리는 무슨 관계였을까? 지금처럼 단순한 클랜장과 클랜원?
아니면…….
“연인.”
“뭐, 뭐?”
“다들 두 분이 사귀는 줄 알걸요? 소장님 눈에 꿀 떨어지는 장면만 모아놓은 영상도 있어요. 쿡쿡.”
진심 당황했다. 이번엔 커피를 엎지를 뻔했다.
“뭐, 뭐라는 거니. 그런 거 아니거든. 됐고 가서 얼른 연구나 해!”
“에이~ 소장님 좋은 소식 있으면 좀 공유도 하시고 그러시지~”
너무 당황스러워 평소에 시키지도 않는 걸 시켰다.
“너 저번에 보라던 논문은 다 읽었어?”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네. 마나 네이쳐에 올라온 거요? 다 읽었죠.”
“그럼 그거 가서 요약해 와.”
“…….”
“얼른!”
연인이라니.
우리가 그렇게 보인다니.
아직 연애 한 번 못 했는데. 벌써 그런 소릴 듣는다니.
“클랜장. 이거 안 되겠네.”
억울하잖아.
낙인이라도 찍히면 어떡해.
그럼 나 앞으로 연애 못 하잖아.
바로 박신혁과 연결된 갠톡창에 들어갔다.
그토록 기다리던 그의 답장도 와 있었지만, 당장엔 그게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읽지도 않고 재차 메시지를 보냈다.
[뭐 해요 지금?]책임져야지.
본인 때문에 엉뚱한 소문이 돌았으니 그가 책임을 지는 게 응당 맞지.
뭐…… 그게 어떠한 형태이든 간에.
“아무렴.”
[시간 되면 바로 봤으면 좋겠어요.]단단히 물을 거다. 미래에 어떤 관계였고, 우리가 뭘 했는지 확실히.
“…….”
물론 이건 연애 감정 따위가 아니다. 아마 아닐 거다.
미래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클랜장과 부클랜장. 그 사무적인 관계에서 어떤 감정적인 기류가 있으면 안 되니까 그런 거지. 암.
강예빈은 지금의 감정을 일단은, 그렇게 정리했다.
그때였다.
“와…….”
“엄청 잘 어울리는데?”
갑작스레 연이은 감탄사가 들려왔다.
연구원들이 옹기종기 TV 앞에 모여 있다. 그리고 힐끔힐끔 자신을 쳐다본다.
그 미심쩍은 시선을 좇았다.
시선의 끝에선 TV에 나오는 박신혁과 이가을이 보였다.
화면의 밑에 써 있는 Live가 실시간임을 의미한다.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근사한 장소에서, 한껏 빼입은 채 서로 마주 보고 웃고 있는 게 ‘지금’이라는 뜻이었다.
“뭐야…….”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누가 명치라도 한 대 세게 때린 것 같다.
“와……. 박신혁 클랜장님, 진짜 너무 멋있어요!”
어느 연구원이 한 저 말이 고깝게 들렸다.
“원래도 잘생긴 걸 알았는데. 저렇게 꾸미니까 진짜 장난 아니네요. 실물도 저래요?”
화면에 비친, 자신이 없는 곳에서 한껏 차려입은 박신혁의 수려한 외모가 오늘따라 거슬린다.
“아닙니다. 저거 다 화면빨이에요.”
“화면빨? 그럼 이가을은요? 저 이가을 팬인데, 이가을이 저런 원피스 입은 거 처음 봐요. 평소에도 저렇게 예뻐요?”
“그것도…….”
늘씬한 몸매가 여실히 드러나는,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기색이 역력한, 이가을의 저 원피스 또한 마음에 안 든다.
‘왜 저러고서 둘이 밥을 먹는 건데!’
사실 박신혁과 아무 관계도 아니지만.
그에게 사적인 감정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지만.
클랜장과 클랜원이 단순히 밥만 먹는 것일 수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팍 상한다.
참나.
이틀간 서류 작업에 몰두했을 박신혁이, 그 작업이 끝나자마자 저러고 있는 게.
나만 빼고 둘이 식사를 하는 게.
둘이 저리 다정히 웃고 있는 게.
대놓고 내 신경을 벅벅 긁는다.
“소장님은 저기 안 가세요?”
가긴 어딜? 저길? 저 둘이 만나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긴 왠지 싫다.
“응. 난 바빠서 안 간다 했어.”
차갑게 답한 뒤 뒤를 돌았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톡을 쳤다.
[뭐예요? 왜 나 빼고 둘이서만 맛있는 거 먹나?]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거슬리는 모니터까지 꺼버리고서 또다시 답장을 기다린다.
“…….”
그러나 십 분. 이십 분. 한 시간. 두 시간. 네 시간. 시간이 지나도 답장은 오지 않는다.
“소장님. 퇴근 안 하세요?”
“……먼저 퇴근해. 난 할 일이 있어서.”
저도 모르게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왔다.
강예빈은 지금, 기분이 정말 정말 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