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44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44화
나는 이가을에게 이어서 말했다.
“어쩌면 최태수의 끄나풀이 이미 붙었을 수도 있고요. 단지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놈의 이능은 세뇌다. 특히 저번 브레이크에서 놈이 얻었을 이능의 속성은, 비각성자에 대한 세뇌를 소모값 없이 가능케 한다.
“예를 들면 이가을 클랜원에게 붙었을 수도 있겠죠.”
누구든 세뇌자일 수도 있다. 주변에 있는 모든 비각성자는 최태수의 끄나풀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헌터 복합 쇼핑몰이며, 이가을 갤러리며, 이가을 건설사며, 직원으로 종사하는 비각성자가 많으니.”
이가을의 고운 아미에 주름이 깊게 졌다.
“아. 직원 전수 검사를 해봐야 되나? 아니, 그보다 세뇌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있고?”
“없습니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앞서 말한 건 단지 예시일 뿐이니.”
“예시?”
“네. 사실 가능성만 따지자면, 이가을 클랜원한테 붙었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습니다.”
최태수가 미래 정보를 빼내려 한다면 누구에게 접근하겠는가.
“예언자, 강예빈 클랜원한테 접근하겠죠. 단순 각성자 세뇌에서 그칠 게 아니라 미래 정보를 악용할 수 있으니까요.”
“아……. 그렇겠네.”
난 바로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강예빈 클랜원한텐 비밀로 합니다.”
“왜? 최태수를 잡으려면 미리 대비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녀가 표한 의문에 단호히 답했다.
“잡으면? 끄나풀을 잡는다고 해서 이능적으로 세뇌당한 이가 입을 열까요?”
“아…….”
“설령 입을 연다고 해도 최태수를 잡을 수 있을까요? 놈의 곁엔 항상 텔레포트 각성자가 있을 텐데.”
텔레포트 각성자, 최진혁 때문에 이미 나도 놈을 놓쳤다.
들은바 이가을도 그래서 그를 놓쳤다 했다.
그에게 정공법이 통하지 않는 건 확실했다. 놈을 죽이려면 함정을 파고 기다려야 한다.
“강예빈을 세뇌하려 최태수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고서야, 우리는 움직일 겁니다.”
그래서다.
놈을 위한 함정이 완벽해지기 위해 미끼인 강예빈은 이를 모르는 편이 낫다. 모르는 척하는 연기보다야 진짜 모르는 게 더 자연스러울 테니.
“보기보다 매정하네? 물론 그래서 더 맘에 드는 계획이긴 하다만.”
“그녀가 똑똑하다고 해서 연기까지 잘하는 게 아니니까요.”
물론 이 방법이 급한 성미의 이가을에겐 다소 답답할 수 있는 방법일 수는 있다.
“그럼 기다려야 하는 거네. 최태수가 미끼를 물 때까지?”
“네.”
그러나 최태수를 죽이려면 이 방법밖에 없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는 잘 기다리고 있는 편입니다.”
놈을 빨리 찾아오게 하려면, 놈이 등판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클랜의 우월함을 널리 증명하는 수밖엔 없으니.
“잘? 기다리는 것도 잘할 수 있나?”
“예언 영상의 흥행, 대중의 신뢰를 이끌 부유 도시 계획, 막대한 사체 판매 수익, D급 헌터가 강혁과 대등한 무력을 보유하는 것까지.”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혁예 클랜이 특별해질수록, 놈도 세뇌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테니까요.”
오. 짧은 감탄사를 내뱉은 이가을이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그건 마음에 드네.”
나름의 동의 표시겠다.
* * *
C-187 게이트.
난 단죄 퀘스트로 모아둔 코인을 지금 소모한다.
[체력+0.3]첫 번째 구매는 스텟.
[C급 헌터로 승격하셨습니다.]이로 말미암아 목표한 것은 승격.
승격의 순간 난 몸을 순환하던 마력이 요동치는 것을 실감했다.
승격할 때마다 겪었던, 익숙한 일이었다.
헌터의 승격은 일정 기준을 넘어선 스텟의 상승으로 이뤄지나, 그 결과는 결국 마력으로 귀결된다.
F급 마석과 A급 마석이 내재한 마력의 질이 다르듯, 헌터 역시 급에 따라 마력의 격이 달라진다는 것.
난 인벤토리에서 검을 빼 들었다.
우우우우웅.
마력을 불어넣자, 검명은 이전과 비교해 더욱 선명해졌다.
난 96에 달하는 [마력]으로, S급의 마력회로를 운용해 검에 씌인 마력을 정제하고 겹겹이 응축시킨다.
그리고 휘둘렀다.
콰가가가가가광.
마찬가지로 폭발음 역시 이전과 격이 달랐다. 이가을과 다시 붙는다면 이젠 이전처럼 크게 밀리진 않을 수도.
“운 좋으면 동수(同手).”
이번엔 다리로 마력을 인도했다.
청광이 뿜어져 나오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다리 자체가 아예 퍼렇게 변색된다.
마력의 격이 격상함에 응집력 또한 달라져서다.
허공으로 새는 마력의 손실이, 이제는 전무하다는 방증이다.
난 그대로 발끝의 마력을 터뜨렸다.
펑. 펑.
두 걸음이었다.
족히 100M가량은 떨어져 있었던 거리를 이동하는 데에 두 걸음이면 족했다.
이젠 강혁과의 속도 경쟁에서 근소하게나마 우위를 점할 거라 예상한다.
난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어서 남은 코인을 모두 사용했다.
[부유석(하락 패턴 각인)을 구매합니다.]그리하여 얻은 건 하강 패턴이 새겨진 부유석.
“지금은 구매가 낫겠지.”
원래는 직접 새겨서 사용할까도 했지만, 결국 코인을 소모해 구매했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부유석 사용의 시기를 앞당겨야 했다.
“난 분명 저번 주에 백억 넘게 벌었건만.”
회귀자가 면이 상하게도, 돈이 없어서.
벌어온 돈이 무색할 만큼 나가는 돈이 엄청나서.
“왜 계좌엔 0이 찍혀 있는가…….”
이는 내 실수였다.
최후의 도시를 건설함에 있어서, 전생에서 지었을 당시는 생존의 시대였고 지금은 자본의 시대란 걸 간과했다. 이전처럼 ‘살기 위해서’ 사람들이 자원하는 것은 당연히 전무했다.
그때를 기준으로 수주 금액을 산정한 게 착오였다. 시대는 현저히 달랐고, 자재 구입부터 인건비까지 전부 돈이었으니.
“회귀했건만 돈이 부족할 줄은…….”
참고로 그 L-타워 건설 비용이 3조다.
9,999억에서 1억을 더한 돈의 세 배.
내가 지을 부지는 타워가 아니라 도시에 가까운 규모일 테고, 상업이 주요 목적이 아닌 만큼 비용은 그보다 훨씬 더 발생한다.
“내구는 더없이 단단해야겠지.”
비상시의 대피 시설과 혹시 모르는 재배 시설, 그리고 미사일을 비롯한 방위 시설까지 갖출 게 많았다.
계좌에 돈이 백억이 들어 있다 한들, 하루 만에 증발한 건 당연했다.
그 돈은 고작 1조의 1프로밖에 되질 않으니.
“갈 길이 멀다…….”
여하간 지금 게이트에 온 것은 그런 사정의 연장이다.
헌터니까, 게이트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아무도 데려오지 않는 것은 보상을 독식하기 위해서.
C급으로 승격도 했겠다, 부유석으로 범위 공격도 가능하겠다, 이제 C급 게이트 솔로잉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 다행이었다.
“일하자.”
그런 이유들로 난 이곳을 공략하려 한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울창한 수풀림과 매캐한 비린내, 멀리서 들려오는 취익, 취익 거슬리는 숨소리.
익히 아는 공간이었다. 지금은 미공략 게이트로 세간엔 존재조차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전생엔 주로 활동했던 게이트였다.
자주 왔던 이유는 이곳의 패턴이 단순해서.
이 C급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오로지 하이-오크.
다양성이 없는 대신 물량은 어마어마하다.
난 몬스터를 찾아 주변을 수색했다.
탁.
이번에도 차폐막을 딛고 공중을 걷는다. 단 이전과 달리, 고도는 너무 높지 않게.
난 몬스터가 내 존재를 인지하길 원했다.
“놈들이 내게 먼저 다가오는 게 공략이 빠를 터.”
굳이 난이도가 낮은 C급 게이트를 선택한 만큼, 클리어 속도를 주안점으로 삼았다.
언덕이 굽이진 지형을 공중에서 넘었다.
최단 거리로 앞으로 나아가며 아래를 살폈다.
하이-오크의 부락 하나를 발견하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난 허공에 떠 있는 차폐막 위에서, 놈들을 내려다보았다.
취이이익.
몬스터답게 헌터를 보면 즉시 달려들어야 하건만, 멍청한 몬스터는 아직도 날 발견하지 못해서 여전히 전방만 보고 있다.
원치 않는 반응이었다.
고지(高地)에 있음에도, 활 대신 두 자루의 검을 꺼내 양손에 쥐었고, 곧 그대로 두 검을 충돌시켰다.
쾅쾅쾅.
내가 이곳에 있음을 알라고.
쿠워어어어어어.
그제야 날 보고 포효하는 무리.
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냥 자리를 떴다.
다만 아까보다는 천천히. 날 놓치지 말라고 속도까지 조절해 가며.
난 부락 하나 규모의 몬스터를 등 뒤에 달고서 다음 부락을 찾는다.
쾅쾅쾅.
다시 부락 하나를 찾으면, 이전처럼 두 검을 충돌시켰다.
내 존재를 알렸음에 새로운 부락에서 나온 오크들은 기존에 있던 오크와 합류했다.
난 이를 확인한 뒤에야 다시 이동했다.
날 쫓는 오크의 수는 두 배가 되었다.
쾅쾅쾅.
찾는 부락이 늘어날수록 나를 따르는 몬스터는 점점 많아진다.
쾅쾅쾅.
전부를 데리고 다음 부락으로 이동하며 반복한다.
쾅쾅쾅.
오크의 숫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물경 몇천은 될, 오크의 군세.
쿵쿵, 땅이 울리는 소리가 지천에 울렸고, 이어서 허공에까지 퍼졌다.
쾅쾅쾅.
이게 마지막 알림이었다.
이제는 굳이 나를 알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 거대한 군세의 존재감에 다음 부락의 오크는 알아서 마중 나왔으니까.
“그렇지.”
그때부턴 난 그냥 공중에서 달리기만 했다.
오크의 대이동은 C급 게이트의 구석구석까지 이어졌고, C급 게이트을 전부 두르고 난 뒤에야 허공에 멈췄다.
그러곤 발밑을 바라보았다.
“…….”
장관이었다.
흡사 개미 떼와도 같다.
쿠워어어어어어어어.
발 디딜 틈도 없이 서로 뭉치고 쌓인 채로, 위를 올려다보며 포효하는 오크의 군세.
이 넓은 게이트에 서식하던 모든 오크가 한자리에 모여 있는 인위적인 형국.
그러나 딱히 위협은 되지 않는다.
팅, 화살은 튕겨져 나간다. 놈들이 아래서 쏘아 올린 어떤 공격도 발밑에 차폐막에 막힐 뿐이니.
짝.
“이제 몰이는 끝났고.”
정리만 하면 된다.
이를 위해 구매했던 부유석을 꺼냈다.
꽤 비싼 코인을 주고 구매한, 직경이 10M에 달하는 거대한 암석.
하강 패턴이 새겨져, 기존 중력에 열 배에 달하는 가속을 받는 부유석.
허공에 나타나자마자, 과연 종단속도보다 빠르게 떨어진다.
콰아아아아앙-
모습을 드러낸 것과, 굉음을 남기며 바닥에 떨어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
그 결과는 처참하다.
압살(壓殺).
[공간의 팔찌]로 부유석을 회수한 자리엔 오롯이 으깨진 고깃덩이만이 존재한다.빠른 낙하 속도에 부유석 그림자 아래에 있던 오크는 단 한 마리도 피하지 못했다.
이후론 단순한 반복일 뿐이다.
난 회수한 부유석을 다시 놈들의 머리 위로 꺼냈다.
허공에 선 채로, 그저 부유석만 재차 떨어뜨린다.
콰아아아아앙-
사체는 형체조차 알 수 없게 으깨졌으며.
사체 위엔 다시 사체가 쌓였다.
짓눌러져 죽었다.
수천 오크의 피가 쥐어짜듯 체외로 뿜어졌고.
바람이 불어도 피비린내는 가시질 않았다.
피가 강이 되어 흘렀음에, 무성한 수풀은 파랗지 않고 붉었다.
단 5분이면 족했다.
전생에서 이곳에 활약할 당시엔 하루를 잡았을 공략이, 몰이를 제한다면 그 정도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날 내가 공략한 게이트는 총 7개였다.
[보상을 선택하세요.] [힘 +0.1 : Coin : 1] [민첩 +0.1 : Coin : 1]……
[C급 아티팩트, 말라니의 눈(반지형) : Coin 50]사체 외에도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이 있다면 모조리 챙겼으며, 남은 Coin은 전부 스텟을 골랐고.
[퀘스트 클리어!] [클리어 조건 : 반목자 3인, 김우현, 신우재, 이미나 사망. 게이트 침식 예정일 20일 지연.]밤에 처리한 약탈자와 전향자는 총 3명이다.
[부유석(하락 패턴 각인)을 구매합니다.] [단죄 퀘스트]의 보상으로 인해 거대한 부유석은 두 개로 늘어났다.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떨어지는 암석이 두 배가 되었으니, 두 배 더 빨리 처리할 수 있는 건 당연했고.
“…….”
클랜도 나도, 슬슬 성장에 가속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