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49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49화
10분 뒤, F-15 게이트, 초원.
게이트의 배경인 넓은 초원의 태양 빛 아래에서 박신혁은 말했다.
“이 게이트의 지형은 보시다시피 초원입니다. 지형, 날씨를 비롯한 어떤 환경요소도 대련에 적합합니다.”
엠버, 자신을 데려온 이유가 이것이라고.
“엠버 세리아드 씨가 패배에 대한 어떤 변명을 할 수 없는 곳이죠.”
엠버는 검을 빼 들며 박신혁을 노려봤다.
“그럼 전 뭐부터 보여 드리면 되겠습니까? 검? 이능?”
일종의 도발인 동시에 검을 쓰든 이능을 부리든 당신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지금이라도 아까의 말을 취소하고 정중한 사과를 한다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더불어 박신혁이 감당할 수 없는 기세를 피워 올리며 그를 압박했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는 어째선지 태연했다.
“그 두 개 중 하나만 쓰겠다는 소리입니까?”
피식, 웃기까지 한다.
“그럼 뭐, 저도 맞춰 드리죠. 전 이능만 쓰겠습니다.”
빠드득, 절로 이가 갈리는 말로 이어진다.
“인벤토리로 말씀이십니까?”
“네. 무슨 문제라도?”
“하.”
그의 이능은 널리 알려진바, [인벤토리].
물건의 수납과 인출이 전부인 그 이능으로만 자신을 상대하겠다는 말은, 객기로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절로 격한 말이 튀어나왔다.
“장난하십니까?”
“장난이라. 제게는 엠버, 당신의 검과 이능 중에 하나만 쓰겠다는 말이야말로 그렇게 들립니다만.”
그와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부디 지금의 대련이 악감정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저 또한 바라는 바입니다.”
“…….”
그렇다면 남은 건 실력 행사뿐.
“이가을 씨가 있으니 사정은 두지 않겠습니다. 치료하면 되니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엠버는 전방으로 뛰쳐나갔다.
저 건방지게 쭉 뻗은 다리를 한 번에 베어버릴 참이었다.
예상대로였다. 길었던 공간을 격했음에도 그는 꿈쩍도 못 했다.
‘종적마저 놓쳤을 테지.’
그 행위를 위해 불과 두 걸음도 남지 않았을 때였다.
쾅.
어딘가에 부딪혔다.
엠버는 예상치 못한 충격에 그대로 나자빠졌다.
“뭐야……?”
분명히 그와 자신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근데 뭔가에 부딪혔다.
손을 뻗어봤다.
보이진 않지만, 차가운 금속 같은 게 만져졌다.
뭔지 모를 투명한 막이었다.
“이능만 쓰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너머로 여유로운 박신혁의 미소까지 보였다.
어디서 이가을을 통해 좋은 아티팩트라도 구한 모양. 남의 능력으로 거들먹거리는 게 몹시도 거슬렸다.
“이딴 게 당신을 지켜줄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그냥 돌아가면 그뿐이다.
재빨리 몸을 옆으로 움직이며, 손끝의 감각으로 이 투명한 막의 끝이 어딘지를 확인해 본다.
타다다닥.
한 바퀴를 돌았다.
타다다닥.
이어서 두 바퀴를 돌게 되었다.
“……?”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은 이 투명한 막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밖으로 나갈 어떠한 틈도 없었다.
“이게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던 찰나.
“이 악무세요. 꽤 아플 겁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초원이 어두워졌다.
마치 태양이 사라진 것처럼.
즉시 머리 위를 확인했다.
슈우우우웅.
웬 암석 하나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주 빠르게.
피할 틈도 없었고, 피할 곳도 없었다.
콰아아아앙-!
암석의 확인과 동시에 충격이 밀려온다.
“……!”
전속력의 달리던 전철에 몸을 던지면 이러할까.
자신의 [내구]는 떨어지는 암석의 무게와 속도를 감당하지 못했다.
우드드드득.
격통은 잠깐이었다.
몸에서 그런 소리가 들린 이후, 온몸에 감각이 사라졌다.
몸의 이상 신호를 알리는 통증마저도.
끄윽. 끄윽.
척추가 부러진 듯했다. 신경의 신호 전달이 온전치 못하다. 이거 치우라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말은 신음이 되어 몸 안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이가을 클랜원. 치료 부탁합니다.”
박신혁의 그 말이 있을 때까지 엠버는 완벽하게 무기력했다.
“커허허허헉.”
정신을 차리니 초원 위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그 위로 박신혁의 비웃는 음성이 꽂혔다.
“이번엔 무엇을 사용하실 겁니까? 또, 검이나 이능 중에 하나를 택해 보시죠.”
“…….”
“아니면 벌써 항복입니까?”
누워서 보는 파아란 하늘이 오랜만이다.
뭐가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방금의 투명한 막은 무엇인지. 저리 빨리 떨어지는 암석은 무엇인지.
그래도 확실한 건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것이다.
-여태껏 호의호식한 대가를 치러야지.
엠버는 자리서 일어나 곧게 직립했다.
“한 번만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허리를 숙였다.
박신혁은 비꼬며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손 하나 까닥 안 했는데 대결이 끝나 버렸으니, 평가할 것도 없어서. 파훼법은 찾으셨습니까?”
엠버는 이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투명한 막에 갇혀서,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암석 덩어리에 깔렸던 일을.
“아직.”
암석에 깔리기 전에, 그 집채만 한 암석을 부숴 버릴 수 있을까? 엠버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불가능하지 싶다.
“……아직 떠오르지 않습니다.”
한번 당해봤음에 어떠한 공격인지 훤히 아는 데도, 할 수 있는 건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아까와 똑같겠죠.”
아까처럼 바위에 깔려서 박살 날 거라는 박신혁의 말.
“저도 다른 방법을 쓰겠습니다. 인벤토리는 무기를 꺼내는 용도 외에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
그래서 봐주겠다는 얘기.
엠버는 그런 것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분 전에 그토록 폄하했던 이능인 인벤토리마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말이다.
엠버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단, 이번에도 아까와 같은 결과를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
팔다리를 돌리며 몸 상태를 체크한다.
대외적으로 알려진바, 박신혁의 주 무기는 검.
“그럼 시작하시죠.”
검은 많이 상대해 봤던 무기였다. 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상대가 곤란해하는지 잘 알았다.
‘시작은 빙결부터.’
엠버는 한껏 거리를 벌렸다.
멀찍이 떨어져서 언제든 [빙결]을 사용할 준비를 한다.
‘지금껏 그랬듯.’
그가 오지 않는다면 멀리서 그를 얼려 버릴 것이고.
냉기를 견디지 못하고 박신혁이 다가온다면, 몸이 굳어버린 그를 한 번에 베어낼 것이다.
그런 계산을 끝마쳤을 때였다.
펑-!
어깨가 화끈거렸다.
푸쉬시싯.
영문 모를 통증에 오른팔을 보니- 그곳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후우우웅.
그 너머로는 평생 잘 달려 있었던 팔이, 몸과 분리된 채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두 번째 기회도 그렇게 시작과 동시에 끝이 났다.
“이가을 클랜원. 치료 부탁드리겠습니다.”
한껏 벌려진 입을 닫고 담담한 음색을 쫓는다. 박신혁은 들고 있던 활을 인벤토리에 넣어버린 뒤,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말도 안 돼.’
손을 앞으로 뻗고, 인벤토리에서 활을 꺼낸 뒤 시위를 메긴 다음 바로 놓기까지.
화살를 쏘는 데에 있어 그 일련의 과정들을, 엠버는 전부 놓쳤다.
분명 그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는데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보다 적어도 세 수는 위였다.
“기회 더 드려야 합니까?”
굽히는 게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진 않았다. 그가 허리를 굽힐 만한 사내임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한 번만 더…….”
“검, 활, 도끼, 창, 방패……. 뭐가 편하십니까? 어떤 무기를 많이 상대해 봤죠?”
“…….”
“당신이 제일 상대하기 편한 무기로 당신을 상대해 주겠다는 말입니다. 지원자인 당신의 실력을 봐야 할 텐데, 이대로라면 그걸 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네가 잘 받아칠 수 있는 무기로 상대해 줄게. 자존심 뭉개는 말을 쉬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일단은 검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때부터였다.
그때부터 엠버는 자신이 알던 전투에 관한 모든 상식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엠버는 박신혁의 검을 주시한다.
태양 빛에 번쩍이는 검이었다.
그러다 자신을 향해 검날이 돌아가는 순간.
반사된 빛에 잠시 눈이 팔린 순간.
“크륵.”
가슴 한가운데에 검이 박혔다. 폐를 찔렸는지 피가 식도를 타고 역류했다.
세 번째 패배였다.
“왜 진 것 같습니까?”
“크륵.”
“눈이 부셨겠죠. 하필 그때 검이 날아올 줄은 몰랐겠죠. 당신한텐 검이란 절대 손에서 놓으면 안 되는 제2의 심장이니까.”
반박할 수 없었다. 대련을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대면 면접에도 검을 차고 갔던 자신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검은 자신에게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크륵.”
그런데 검이 한 자루밖에 없는 이들은 제 검을 목숨처럼 여겨야 한다고.
당신은 인벤토리에 여분의 검이 있어서 그렇게 함부로 던질 수 있는 거라고.
그런 변명을 뱉을 수 없었다.
“결과는 이러네요. 손에 검이 없는 난 당신을 이겨서 아무 상처도 없고, 당신은 애지중지하는 검을 든 채로 지금 죽어가네요.”
결과가 모든 걸 말했다.
패배감은 가일층 짙어졌다.
“이가을 클랜원, 치료 부탁합니다. 엠버, 재차 대련하고 싶다면 준비하고 말씀하세요.”
엠버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준비됐습니다.”
허무한 패배는 이어진다.
퍽. 박신혁이 발로 차올린 모래가 얼굴을 덮었다.
눈에 모래가 들어가 반사적으로 눈이 감긴 순간, 이번에도 가슴이 꿰뚫렸다.
“어딜 봅니까? 제 어깨만 보면 어떡합니까? 상체 근육을 보고, 검의 궤적을 유추하시려고요? 아둔하군요.”
“…….”
“시야를 넓히십시오. 상대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작은 마력의 움직임 하나하나 유심히 살피세요.”
푹.
치켜드는 검을 쳐내려 했는데, 그의 검은 일시에 창으로 바뀌었다.
당연하게 검은 창보다 짧다. 쳐내는 거에 한발 앞서 그의 창에 어깨를 관통당했다.
예상치 못한 한 수였고 이번에도 졌다.
“당신이 기사란 것과 빙결과 검을 번갈아 사용하는 것은 누구나 알죠.”
“……네.”
”반면 제가 인벤토리로 이런 스위칭을 행할 수 있는 건 우리 클랜원들밖에 모르죠. 요컨대, 당신은 날 몰라서 졌고, 난 당신을 알아서 이겼습니다.”
“……인정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마세요. 미끼 식으로 유인할 게 아니라면.”
쩌저적.
전력으로 [빙결]을 펼쳤다. 수증기를 얼려가며 하얀 궤적을 그리는 냉기가 빠른 속도로 그에게 젖혀 든다.
태양이 내리쬐는 초원의 대낮에는 분분히 눈이 흩날린다.
그러나 그런 이능의 기세가 무색하게도.
스으으윽.
[빙결]은 아주 간단하게 그의 방패에 막혔다.“!”
저 마력에 시퍼렇게 물든 방패에.
그게 끝이 아니었다. [빙결]을 정면으로 뚫고 온 그가 방패를 휘둘렀다.
급히 피해보려 했지만, 선이 아닌 면의 공격을 온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쾅.
충격과 함께 몸의 절반이 뭉개진 채로, 타의로 허공을 날게 되었다.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박신혁의 말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이능은 마력의 작용입니다.”
아는 사실이었다.
“마력이 닿기 전에, 이능이 작용하기 전에, 더 크고 정교한 마력으로 상대의 마력을 집어삼키면 그만입니다.”
그건 몰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게 가능할 줄 몰랐다.
6번째 패인(敗因)이었다.
“단검을 상대하는 건 처음인가 보죠?”
대련은 재차 이뤄진다.
그는 단검 하나로 자신의 공격을 막은 뒤, 반대쪽 단검으로 내 팔을 난자하였다.
“철퇴를 보는 순간 바로 피하세요. 반격은 회피 후 이뤄져야 합니다.”
그가 휘두른 철퇴에 검이 부러졌다.
지금의 나처럼.
“한 번만 더……. 부탁드립니다.”
어쩔 수 없이 그가 인벤토리에서 꺼내 준 예비용 검으로 대련을 이어갔다.
“무기의 날이 휘어져 있으면 인력의 작용을 의심하세요.”
그가 위에서 내리찍은 도끼날에 검이 걸려 버렸다. 그가 거칠게 당기자, 검이 도끼날에 딸려간다.
한순간에 빈손이 된 상황.
쩌적. 그가 재차 휘두른 도끼날에 자신은 장작처럼 쪼개질 수밖에 없었다.
“한 번만.”
9번째 대련도.
“한 번만 더.”
10번째 대련도.
“한 번만 더 부탁드립니다.”
22번째 대련까지.
엠버는 그대로 당하기만 했다.
……
엠버는 지금 붉은 초원 위에 서 있다.
무기력하게 서 있기만 한 채였다. 힘없이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초원을 붉게 물든 피.
전부 자신의 피였다.
초원에 널브러진 잘린 팔다리, 내장 조각.
이가을 덕분에 유전학적으로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그것들은, 얼마 전까지 자신의 신체의 일부였던 것들이다.
‘하.’
그런데 자신은 멀쩡하다.
이가을의 치료를 받아 몸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몸 상태는 완벽하나.
“…….”
발걸음은 떼지질 않는다.
박신혁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검을 직시 못 했다. 반사된 태양 빛에 찰나의 시간을 놓칠까 봐.
심지어 저건 검이 아닐 수도 있다. 언제든, 활, 창, 철퇴, 방패, 단검 등등으로 바뀔 수가 있다.
모래가 차올라질까 봐, 그저 그의 발끝만 쫓는다.
뇌가 멈췄다.
그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아무런 수단도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엠버가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였다.
“한 번만 더…….”
패배 이후 습관처럼 내뱉는 말.
기회의 구걸.
다음엔 다르겠지, 하는 미약한 기대.
“아닙니다. 의미가 없을 것 같으니 여기서 그만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젠 그마저도 거절당한다.
“수고하셨습니다. 엠버 세리아드.”
그가 이름을 부르자, 처절한 무기력함이 온몸을 짓누른다.
몸의 활력은 넘쳐 나는데, 대항할 힘은 전무하다.
“엠버 세리아드. 듣고 있습니까?”
털썩 주저앉으며 무릎을 꿇었다.
“네.”
“리크루팅 최종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
“아시다시피 당신은-”
검 한 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한 나는.
“탈락입니다.”
예상했듯 탈락이었다.
“네.”
어깨가 들썩거렸다.
언제나 곧게 살려고 했다. 휘어질 언정 부서지려 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부서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말처럼 박살 나버렸다.
“…….”
아주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저기 떨어져 있는, 내 것이었던 팔다리처럼.
“네. 긴 시간 대련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억지로 쥐어짜 간신히 내뱉은 말이 도리어 자신의 가슴을 난자했다.
22번의 기회를 받고도, 아무것도 못 한 자신이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엠버는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