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52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52화
강예빈은 눈을 떴다.
“뭐야?”
근래엔 좀처럼 겪어보지 못한 현상이었다. 눈을 감았다 뜨는 건. 잠들었다가 깨는 건.
“잤어 내가? 웬일이래? 왜 악몽을 꾸지 않았지?”
의문은 잠깐이었다.
그냥 잔 것도 아니라, 꿀잠이었다. 언제 잠든 지도 몰랐을 만큼 스르륵 잠이 들어, 악몽 한번 꾸지 않고 기절한 듯이 숙면했다.
몸이 날아갈 듯하다.
근 한 달 만에 숙면 덕분인지 컨디션은 완벽했다. 강예빈은 몸을 일으켜 길게 기지개를 켠다.
어깨도 한번 돌려보고, 목도 한번 돌려보고. 다리도 한번 흔들어보고.
“끄그그그그~ 그 마력의 통도를 뚫는다는 건 끝났나? 어?”
그런 뒤에야 알았다. 다리 한쪽이 묵직했다. 내려다보니 누군가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뭐야. 신혁 씨?”
저 잘생긴 뒤통수는 박신혁의 것이었다. 부유섬 게이트에서 그의 등 뒤에 업혔을 때, 보이는 게 저것밖에 없었어서 아주 잘 안다.
“뭐 해요?”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 채 침대 위로 엎드려 있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강예빈은 퉁명스럽게 물었다.
“여기에 왜 엎드려 있어요?”
남의 침대에서 뭐 하는 거람.
이가을 남자 친구 주제에.
“…….”
그제야 그가 고개를 든다. 미약한 불만을 품은 눈빛이었다.
“뭐예요?”
강예빈은 그의 매우 어이없어하는 눈빛이 조금 어이가 없었다. 왜 저러고 날 보는 거지?
“그 좋은 이가을 집 놔두고 왜 여기에 엎드려 있나요?”
“……너무 당당하니 잠꼬대 같긴 하네요. 기억이 안 나나 보죠?”
“뭐가 기억이 안 나요? 악몽? 마력 통도를 뚫는다는 거?”
그가 되물었다.
“……혹시 그 악몽에서 깨어나게 한다는 생각이, 제 생각입니까?”
강예빈은 흔들리는 동공을 감추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 알았지? 눈치 고자 아니었나?
“아, 아닌데요.”
“그럼 뭔데요?”
“그건 알려 드릴 수가 없어요. 쉽게 말할 거였으면 진작 말했겠죠.”
“……그럼 이거 한번 봐보시죠.”
그가 폰을 내밀었다.
뭐지 싶어서 한번 봐주었다.
“뭐야? 이게 저예요?”
동영상이었다. 화면엔 자고 있는 강예빈,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네. 강예빈 클랜원입니다.”
문제는 자신이 자는 와중에 박신혁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다는 것.
“내가 왜 이랬지?”
“그걸 내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곤 화면 속 자신은 초점에서 훌쩍 멀어진다.
아마도 박신혁이 영상을 찍으면서 뒤로 훌쩍 물러난 모양.
그때였다.
퉁.
침대에 있던 자신은 문자 그대로 침대에서 튕겨져 나와서-
데굴데굴데굴데굴.
바닥을 격하게 구른다.
“…….”
영상을 찍고 있는 누군가의 발밑에 도달할 때까지.
[……쿨…….]화면엔 바닥에 누운 채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는 여인이 보였다.
당연하게도…… 나였다.
“부유섬 게이트를 나온 이후로 악몽이 시작되었다고 했죠?”
“……네.”
“그 전엔 한 번도 악몽을 꾼 적이 없고?”
“네.”
박신혁이 눈빛으로 영상을 가리켰다.
“그 시기를 구분 짓는 게 뭘까요? 영상을 참고하면 언뜻 알 것도 같지 않습니까?”
“시기를 구분 짓는다고 하면…….”
강예빈은 과거를 떠올려 보았다.
‘부유섬에 들어가기 전엔…….’
박신혁을 처음 만났다. 다음 날 바로 그와 노숙하며 미공략 게이트를 전전했다. 1차 브레이크 이후로 안전 가옥에서 그와 같이 지냈다. 그러곤 그와 부유섬 게이트를 들어갔다.
잘 때면 늘 그가 곁에 있었다.
‘그리고 나선…….’
부유섬에 나온 후.
박신혁과 헤어져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악몽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오늘.’
꿀잠을 잤다. 하필 재등장한 박신혁 옆에서.
“말도 안 돼.”
정리하자면, 박신혁이 없으면 악몽을 꾸고, 박신혁이 있으면 꿀잠을 잘뿐더러 그에게 데굴데굴 굴러간다는 건데…….
“그럴 리 없어.”
인정할 수 없었다. 남의 남자 친구가 옆에 있어야 잠드는 몸이 되어버렸다니.
그런 마음도 모르고 박신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 그러나 확인해 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본다. 상상 속에서 그리던 그의 눈빛, 그대로였다.
“일단 오늘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은 어떨지 지켜보죠. 악몽을 꾸는지 아닐지.”
그 악몽에서 깨길 바라며 애타게 박신혁을 떠올렸을 때의 그 눈빛.
“만약 오늘도 악몽을 꾼다면, 내일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어차피 오늘 마력의 통도를 하나도 못 뚫은 것도 있고-”
눈빛에 신뢰란 것을 담을 수 있다면 딱 저렇지 않을까 하는 눈빛 말이다.
“제가 무턱대고 기억을 보여준 잘못도 있으니, 같이 방법을 찾아보죠.”
“네.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강예빈은 한숨도 자지 못한 강예빈은 박신혁에게 문자를 보냈다.
[당신 말이 맞는 거 같아요…….]그의 말이 맞았다. 그가 없으니 또다시 악몽이 찾아왔다.
* * *
끄아아아아악.
난 오늘도 밤을 배회하며 약탈자, 전향자들을 죽인다.
“왔어?”
그러곤 이가을의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한 뒤, 괜스레 둘이서 아침 산책을 한다. 어제 각성자 실종 사건과 우리는 아무 관련 없다는 나름의 알리바이다.
오전이 돼서야 잠시 눈이 눈을 붙이곤, 일어나 인덕원에 찾아가 클랜 건물이 들어설 부유석에 마력 패턴을 새긴다.
“따님은 괜찮으신가요?”
“마력 중독이야 늘 그렇죠. 이가을 회장님께 치료받을 땐 괜찮고 그 뒤로는 다시 안 좋아지고요.”
“유감이네요.”
“이젠 그래도 익숙해졌습니다. 그나저나 이 용적 공간에 대한 쓰임을 좀 알고 싶은데……”
클랜 부지에 들린 김에 이가을의 씽크탱크 중 하나인 함진석에게 몇몇 지시를 해주고 나서.
[힘 +0.1] [힘 +0.1]……
[힘 +0.1]D급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사체를 팔면 개인적인 루틴은 끝이 난다.
“왔어요?”
이후엔 연구소에 들러 퇴근하는 강예빈을 데리고 그녀의 집에 간다.
“네.”
그렇다. 난 지금 팔자에도 없는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는 거다. 밤과 오전엔 이가을 집에서. 저녁엔 강예빈 집에서…….
“등신대…… 는 효과가 있었습니까?”
난 그녀의 방 구석에 놓인, 내가 3D 프린팅된 전신 등신대에 눈을 두며 말했다.
“오늘도 안 됐어요. 제가 진짜가 아니라 인식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일단은 제가 오는 수밖에 없겠네요.”
매우 자괴감 드는 방법이었지만, 나를 대신할 등신대, 인형, 사진 등을 가져다 놓아봤지만, 강예빈의 불면증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아하하함. 오늘은 자고 나서 할래요.”
그래서 매일 이곳에 와서 그녀가 잠드는 것을 지켜본다.
어쨌든 내가 기억의 금고를 통해 그녀에게 미래의 기억을 보여준 것임에, 의도야 어쨌건 결국 그 기억이 악몽이 된 것임에, 나는 그 책임까지 지려 하는 것이다.
“안 됩니다. 할 건 하고 자야죠.”
물론 마력의 통도도 뚫어줄 겸 겸사겸사.
참고로, 그 일의 진도는 무척 더디다.
“제가 갈 때까지 쭉 자버리려고요?”
뭐만 하려 하면 그녀가 잠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졸린데 그럼 어떡해요?”
“졸려도 할 건 하고 자야죠. 애기도 아니고…….”
“뭐예요? 애기?”
“자자. 딱 십 분만 해요. 십 분만.”
이미 곰돌이 잠옷을 입고 있는 그녀를, 난 잘 타일러 침대 위에 눕혔다.
침대에 오르며 그녀는 퉁명스레 말했다.
“딱 십 분이에요. 600까지 세고 바로 자버릴 거예요.”
“……네. 네. 그러시든가.”
참고로 요새 강예빈은 많이 변했다.
고작 며칠이 지나지 않았건만, 그녀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각성자긴 각성자였다.
앙상해 보였던 팔다리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까지 며칠이면 충분했다.
꾸욱.
마력의 통도를 뚫기 위해서 허벅지를 누를 수밖에 없는 나는 그 사실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꾸우우욱.
그런데 갑자기 그녀는 베고 있던 베개를 휘둘렀다.
“아! 통도만 뚫어요. 그 막! 떡 주무르듯이 주무르지 말고!”
난 억울했다.
“손가락으로만 누르는 게 뭔 떡 주무르듯이 주무른다는 겁니까?”
난 정말 손가락 하나로 누르기만 했다. 누가 떡을 그렇게 주무른다고.
“아, 몰라요. 그냥 수치스러워요! 느낌이 그래요, 느낌이.”
“이게 수치스러우면 통도는 어떻게 뚫습니까? 회로 연구는 F급에서 그칠 겁니까?”
“……아, 몰라요! 잘 좀 해봐요.”
“이게 잘하는 겁니다.”
괘씸해 일부로 마력을 잔뜩 담아 허벅지를 찔렀다.
“으갸갸갸갸갸각.”
“참으세요. 비명도 그렇게 지르지 마시고요.”
“아파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건데, 뭔 비명 소리를 조절해- 으갸갸갸가가가각!”
강예빈은 크게 버둥거리더니, 돌아누워 이불을 폭 뒤집어썼다.
“…….”
이불을 확 걷어버렸다간 다소 남사스러운 모양새가 될성싶어, 난 잠자코 그녀를 쳐다보았다.
“뭐 하자는 겁니까?”
“잠깐. 잠깐만 있다가 해요. 얘기 좀 나눠요 우리.”
“말해요. 입을 누르진 않을 거니까.”
“할 말이 있어!”
“있어?”
“있어요!”
“……뭡니까?”
강예빈이 주먹 불끈 쥐고 크게 말했다.
“저희 연구실에 이상한 사람이 있어요! 저한테 막 포교하려 하는데요!”
난 빤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소라.
알고 있다. 최태수의 끄나풀일 가능성이 존재하는 연구원. 현재 이가을이 뒷조사 중인 사람이다.
“그래서요?”
그러나 아는 체는 강예빈이 자연스럽게 최태수를 양지로 끌어낼 수 있을 때 하는 게 좋다.
재차 말하지만, 내가 이를 알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모르는 게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으므로.
그래서 짐짓 차게 말했다.
“뭐 포교당하지 말라고 조언해 드리면 됩니까?”
“……뭔 말을 그렇게…….”
“됐고. 이불 걷고 돌아누우세요.”
“냉혈한!”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그녀는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연애를 하나 몰라!”
이것 역시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이가을과 함께하는 알리바이에 대해선 강예빈이 모르는 편이 나으니까. 그녀 성정상 미래 정보를 바탕으로 사람을 죽인다고 하면 반드시 반대할 테니까.
“남이사.”
“와……. 며칠 전엔 클랜장과 클랜원이 남이냐고 하더니.”
“공은 공이고 사는 사죠. 왜 남의 사생활을 궁금해합니까?”
“…….”
강예빈은 볼에 바람을 잔뜩 넣은 채로 돌아누웠다.
난 그녀의 어깻죽지를 누르며 넌지시 물었다.
“각성자 실종 사건 알죠?”
“으으으으으윽. 네 알죠. 왜요?”
“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질문은 조금 서늘한 답변이 되어 돌아왔다.
“미친놈들이죠.”
“들?”
“네, 들. 악행을 저지른 실종자들이나 그런 이들을 데려간 납치범이나.”
난 농담처럼 말했다.
“왜요? 다크 나이트는 인기가 많잖습니까?”
키득키득. 그녀는 농담에 동조했다.
“참나. 그건 영화고요. 이제 보니 영 낭만적인 사람이었구만~”
그녀가 엎드린 채로 말을 이어간다.
“현실이라면 끔찍한 일이죠. 누가 납치범한테 누군가를 처단할 권리를 준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나 그 사람이 나름의 이유와 기준을 갖고 행하는 거라면요?”
“그러다 그 사람이 실수로 엄한 사람을 죽인다면요? 개인이 저지른 실수는 누가 책임질까요?”
“영화에서처럼이라면, 개인의 판단이 매번 옳을 수도 있죠.”
“그럴 순 있겠죠.”
그러곤 그녀는 전생에 했던 말을 고스란히 따라 했다.
“그러다 모방 범죄라도 생겨난다면요? 다수의 개인이 저마다 옳지 않은 일이라 판단하고 아무나 납치를 한다면? 그 모든 판단이 과연 전부 옳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나을 수도?”
그녀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근데, 왜 꼭 신혁 씨가 한 것처럼 말해요? 꼭 변명이라도 하는 듯이?”
난 웃음으로 답했다.
“아시잖습니까, 전 그 시간에 이가을의 집에 있었습니다.”
듣기 싫은 말을 들었다는 듯,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그녀에게 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데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죠.”
“그래요. 아주~ 좋은 시간~ 보냈겠네요~”
비꼬는 그녀를 다시 꾸욱 눌러주었다.
“그럼 이어서 하겠습니다.”
“잠깐, 잠깐, 으갸갸가가가각!”
다시 꾸우우우욱.
“참아요.”
“으갸갸가가각!”
누르며 확신했다.
역시 강예빈에겐 모든 걸 밝히지 않는 게 옳은 선택이 될 수 있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