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53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53화
협회 연구소.
“흐으음~”
강예빈은 운동화를 구두로 갈아신고 화장을 고친다.
새벽에 골라놓은 원피스와 잘 어울리게 좀 더 따뜻한 느낌으로.
거울을 보았다. 볼 터치가 다소 과한 감이 있지만서도-
“좀 너무 샤랄라한 느낌이긴 한데…….”
뭐 어때. 본디 쇼핑을 할 때엔 한껏 꾸미고 가야 하는 법이다. 츄리닝 입고 정장 자켓을 고를 순 없지 않나.
곧 쇼핑하러 가기 때문이라는 거다. 절대 박신혁 때문에 이렇게 꾸민 게 아니라는 거다. 절대. 암, 그는 여자 친구가 있잖아?
“소장님. 요새 얼굴이 확 좋아지셨네요? 휴가 복귀 후 한 달 간 피곤해 보였었는데 요새 몰라보게 좋아졌습니다.”
“뭐, 생체 리듬이란 게 있으니까요.”
“생체 리듬이라 하기엔…….”
연구원 중 하나가 영문 모를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남자 친구라도 생긴 게 아니라요? 어디 데이트 가세요?”
크흠. 강예빈은 목을 가다듬고 크게 말했다.
“아뇨. 저 혼자 살 거라니까요. 데이트는 무슨 데이트예요.“
괜히 이소라 들으라고 크게.
이소라는 아직도 누구를 소개받으라고, 같이 어디 좀 가보자고, 강요 아닌 강요를 계속하는 중이었다.
이소라가 이쪽을 보자 의식적으로 무시했다.
“선약이 있어서 오늘은 일찍 퇴근합니다.”
보란 듯이 퇴근 카드를 찍었다.
띡.
엄한 데서 기분을 망칠 수야 없지. 오늘은 좋은 날이다. 말했듯 반차 내고 박신혁과 쇼핑하러 가는 날.
-내일 하루는 쉽시다. 결국 조금씩이라도 하다 보니 통도를 뚫는 것도 끝이 나긴 하네요.
-쉬는 거 좋죠. 그럼 내일은 뭐 할까요? 집에 바로 와서 숙면?
-쇼핑합시다.
-오? 웬일?
이제 그 마력의 통도 뚫는 일도 끝났겠다, 오랜만에 쇼핑하고 집에 가서 꿀잠만 자면 되는 날.
“흐흐흐흐흐흐.”
“소장님?”
“흡. 제가 웃은 거 아닙니다. 아무튼 그럼 가봅니다. 수고하세요.“
타다다닥. 연구소를 나가서, 늘 그가 퇴근을 기다려 주는 장소로 달려간다.
오늘도 박신혁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여기입니다.“
차에 기댄 상태에서도 팔보다 긴 다리가 눈에 띌 만큼, 우월한 기럭지를 뽐내며 그는 자신을 기다린다.
‘흐흐흐흐흐흐흐.’
솔직히 말하면 근사하긴 했다. 저 얼굴과 기럭지로는 뭘 해도 대성하긴 했을 거다. 배우를 했으면 얼굴로 천만 관객을 찍었겠고, 영업을 했으면 영업왕이 됐겠지.
“오래 기다렸어요?”
팔까지 붕붕 돌리며 그에게 뛰어가던 강예빈은-
“?”
그러다 익숙한 이의 등장에, 일순 방방 뛰던 걸음을 멈춰 세웠다.
“죽은 사람이라도 봤어? 왜 그렇게 오다 말아?”
젠장, 이가을이었다.
조수석에서 나온 그녀가 차에서 내려 박신혁의 옆에 딱 붙어 선다.
“…….”
물론 저 둘이 사귄다는 소문을 모르는 이는 없으니까, 이상할 것도 없긴 한데…….
쇼핑하러 둘이 간다는 얘기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가을도 온단 얘기도 없었는데…….
“아…….”
괜히 제 머리를 쥐어박았다. 대체 난 뭘 기대한 걸까.
“뭐 해? 안 그래도 안 좋은 머리 더 나빠지게.”
“저 여기 연구소장이에요. 머리 나쁘단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봐요.”
“……그래?”
“아무튼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몰라서 물어? 나야 언제나 잘 지내지. 쓸데없는 거 묻지 말고 바로 타. 사람들 몰리기 전에.”
이가을은 대답도 듣지 않고 조수석에 탔다. 박신혁도 따라서 운전자석에 탔다. 강예빈은 그 뒤에야 뒷자리에 탄다.
왠지 보호자 뒤에 타는 어린이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실제로 앞 좌석에선 알 수 없는 말이 오간다.
“사체는 맡겼어?”
“네. 으깨진 사체라 다소 싸게 넘겼습니다.”
“뭐 하러? 어차피 으깨져도 쓸 데야 많잖아? 어차피 보호형 아티팩트 만들려면 으깨서 섬유로 뽑아내야 하는데 왜?”
“그래도요. 어쨌든 옵션은 줄어든 거니까.”
“뭐, 그야 그렇지만…….”
어른들 대화에 끼어들 타이밍을 찾는 아이처럼 뒷자리에 앉아 있자니, 한참 후에야 박신혁이 관심을 가져주었다.
“이가을 클랜원. 강예빈 클랜원.”
“왜?”
“네.”
“그동안 마력의 통도를 뚫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
“아?”
백미러로 이가을과 시선을 마주했다. 너도? 어, 나도. 서로의 눈빛으로 대충 그런 의사소통이 오고 갔다.
“다음 게이트에 진입하기에 앞서 정비할 겸 쇼핑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격려 차원에서 이번엔 두 분이서 필요한 걸 가져오면 인벤토리에 넣어드리죠. 다들 이제 게이트에서 인벤토리가 갖는 이점에 아실 거라 믿으니, 알아서 잘 선별해 가져오세요.”
“네!”
강예빈은 크게 답했다.
이점은 안다. 아주 잘 안다.
외부 온도를 차단하는 캠핑카, 빙판을 걸었던 아이젠, 어둠을 밝혔던 전등, 무엇보다 맛없는 몬스터 사체 식량 대신에 노릇노릇한 스팸 등등.
꿀꺽.
게이트에 가면 뭐 먹지? 어차피 저번처럼 돈도 다 내줄 거 아니야?
강예빈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럼 어느 정도 넣을 수 있는데요?”
“대충 백화점 카트의 부피로 따지자면…….”
카트 하나, 둘, 셋, 넷. 박신혁의 혼잣말이 길어질수록 강예빈의 입꼬리는 절로 올라간다.
“대충 카트 10개 정도?”
감동했다.
박신혁은 멋진 사람이었다.
얼굴도 멋지지만 그보다 마음이 더 멋진 사람이었다. 특히 씀씀이가 참으로 맘에 들었다.
“뭐 그 정도면!”
말도 없이 이가을을 부른 서운함도 조금 가셨다. 아주 조금.
대략 20분 뒤.
이가을의 헌터 복합 쇼핑물에 도착했다. 오늘도 저번에 왔을 때처럼 매장은 직원을 빼고는 전부 비워져 있었다.
“캠핑, 아니, 게이트 하면 고기지. 힘이 달리면 안 되잖아.”
강예빈은 카트에 고기를 쏟아 내었다.
“물은 에땅을 마셔야 해. 아무 물이나 마시고 탈 나면 어떡해. 암. 비싸도 좋은 걸 써야지.”
물과 같은 생필품을 사고-
“우산도 살까? 저번에 게이트에서 비 오니까 영 별로던데. 사는 김에 양산도? 오. 저거 이쁘네. 저거 주세요.”
그 외 필요한 물품들을 산 다음엔, 장비 매장으로 넘어간다.
“강혁 씨 말로는, 장비빨이 중요하댔는데…….”
최신형 아티팩트를 걸친 마네킹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흠……. 그래도 아무리 이가을이여도 이걸 공짜로 주진 않겠지?”
마네킹에 입혀진 번쩍번쩍한 세트 장비였다. 일반 플라스틱 마네킹에 입혀진 걸로 보아, 경량화 처리까지 확실히 된 명품이다.
물건을 가리키며 직원에게 물었다.
“와. 이거 얼마예요?”
“십억입니다.”
“아? 십억이요?”
10억은 물론 엄청 큰돈이지만, 지금의 강예빈으로선 충분히 감당할 금액이 되었다.
지금까지 모은 마석을 팔면 그 정도 돈은 충분히 나온다. 아니, 사고도 남는다.
생각보다 감당할 만한 가격이었다.
“그러면 이거 전부 주세요.”
“아? 손님. 장갑 말씀하신 거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했다. 직원이 말을 덧붙이기 전까진.
“네?”
“혹시 장갑 가격 물으신 거 아니었나요?”
뭔가 창피해서 수긍했다.
“네……. 맞아요.”
“한쪽에 십억이긴 한데, 양쪽으로 구매하시면 할인가로 18억 되겠습니다.”
“그럼 세트로 사면 얼마인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고객님?”
곁눈질로 포스에 찍히는 가격을 보자니, 띡띡띡, 그 앞자리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
강예빈은 들떴던 어깨를 내려놓았다. 역시 그럼 그렇지. 헌터 전용 물품이라 비싸긴 더럽게 비쌌다. 저 세트 꽤 맘에 들었는데.
“하하. 당장은 못 사겠네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아쉬워라.
그냥 일반 공산품이나 고르려 자리를 뜨려던 참, 매장을 벗어나려 할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그대로 주세요“
어느새 옆으로 온 박신혁이었다.
나중에 내가 살 건데! 좋은 물건을 뺏길까 싶어 얼른 그를 말렸다.
“사지 마요! 이거 제가 찜해 뒀어요! 돈 모아서 제가 나중에 살 건데요!“
“네. 강예빈 씨 쓰라고 사는 겁니다.“
“네?”
“클랜원에게 주는 선물이자, 악몽을 꾸게 한 사례입니다.”
고개를 기울였다. 응? 뭔 무슨 선물이나 사례를 백억씩이나?
“신혁 씨 그렇게 돈 쓰다가 금방 거지 돼요. 마음만 받을게요, 마음만.”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오늘 번 돈으로도 이 세트는 충분히 사요.”
“오늘 번 돈?”
이어서 그는 직원에게 카드를 건넸다. 일시불이란다.
“요새 하루에 한 번씩 C급 게이트 클리어합니다.”
“언제요?”
“당신이 연구할 동안. 혼자서.”
“아…….”
D급을 독식?
“아. 요새 그랬었어요? 거기서 얼마나 벌었길래요?”
“음……. 아직 2차 계약금을 보낼 시기가 되지 않아 계좌에 돈이 많은 것도 있긴 한데…….”
“있긴 한데?”
“거기에 있는 돈만 해도, 대충 이 층에 있는 건 다 사도 괜찮을 정도는 됩니다.”
얼떨떨한 심정으로 강예빈은 주변을 휘둘러 보았다.
여기 명품만 취급한다는 이가을의 헌터 복합 쇼핑물이다. 연구소장이었지만 동시에 월급쟁이기도 했던 강예빈은 여기 있는 걸 다 사면 얼마인지 감도 오지 않는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됐어요. 안 받아요. 내가 경제 관념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큰 빚은 지기 싫어요.“
“이미 계산한 건데 그냥 쓰시죠. 방금 계산했는데, 환불하기도 좀 그렇고…… 제게 큰 부담은 아니니까 그냥 쓰세요.”
그러고는 자신을 지나쳤다. 강예빈은 그 자리에 서 있는다.
“…….”
아까 자동차에서 그 사체를 판다는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대화에 한순간도 끼지 못했던 아까의 그 시간 말이다.
“뭐, 대단한 사람인 건 알고 있었지만…….”
갑작스레 뭔가 격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는 멀어진다. 멀어져 이가을과 합류한다.
“입고 가실 건가요? 아니면 보내 드릴까요?”
직원이 옆에서 종알거리는 소리도 서서히 멀어진다.
“언제 저렇게?”
자신이라면 하나 구매하는 데 벌벌 떨 물건들을, 이가을과 함께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걸쳐도 보고, 결국 인벤토리에 마구 넣는 저 박신혁은.
“나랑 비슷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내가 살고 있는 세상보단 이가을의 세상과 가까워진 사람이 되어버렸다.
“…….”
카트 세 개를 낑낑 밀고 있는 자신이 아니라-
수행원들을 줄줄 거느린 이가을과 훨씬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10M도 떨어지지 않는 거리의 한 가운데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다.
그 선 너머에 있는, 밝게 웃는 이가을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강예빈은 가만히 서서 그녀를 감상하듯 바라본다.
“알고 보니 사는 곳이 아예 달랐네.”
그러곤 쓰게 웃었다.
“난 뭘 기대했을까.”
어젯밤부터 뭐에 들떠 있었을까 바보같이.
가슴을 먹먹히 채우는 이 원인 모를 패배감을, 강예빈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 * *
헌터 복합 쇼핑물 99층.
쇼핑을 끝나고 우린 예전에 왔었던 이가을의 개인 공간에 와 있다.
나는 먼저 오른 편에 앉은 이가을에게 물었다.
“이가을 클랜원의 치료 예약은 며칠까지 잡혀 있습니까?”
“3년 뒤까지. 왜?”
“……게이트는 언제 가시려고요?”
“달마다 몇 개씩 잡은 거라, 일정이 필요한 거면 전부 월말로 미루면 돼.”
“그럼 월말로 미뤄주세요.”
“알았어.”
다음엔 왼편에 강예빈에게 물었다.
“저번에 게이트에 들어가는 것도 연구의 연장선으로 처리된다고 했었죠?”
“……네.”
왠지 의기소침해져 있다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요새 많이 좋아지긴 했다만, 악몽으로 인한 불면증은 여전하다. 저런 반응은 불면증을 겪는 사람에게 대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럼 언제든 게이트에 출입 가능한 겁니까?”
“네. 가능해요. 아예 출근을 게이트로 하는 식으로 처리되는 거라서요.”
난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 계획을 알렸다.
“좋습니다. 3일 뒤 새로운 클랜원을 받는 동시에, 우리는 그를 데리고 우리는 B-213 게이트에 들어갈 겁니다.”
언제까지 혼자서 D급만 처리할 순 없다.
회귀를 했기에 오히려 더 잘 아는바, 다가오는 미래는 개인의 무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도 다수였다.
이를 위한 마력 회로의 개선과 게이트 클리어를 위한 쇼핑까지.
이젠 모두 준비되었음에 나는 무게감을 실어 이어 말했다.
“그럼 그 전까지 다들 준비하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들어가기 전에 전부 말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