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64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64화
게이트 11일 차.
두 개의 보름달이 뜬 밤.
난 차폐막에 올라 공중에 서서 아래를 굽어본다.
한눈에 들어오는 보랏빛 숲의 정경.
한동안 숲을 살펴보다가, 사사삭, 시선은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를 쫓는다.
“…….”
그곳엔 나무 뒤에 숨어 날 멀뚱히 올려다보는 이가을이 보였다.
까닥까닥.
눈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 이가을은 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러곤 손바닥을 접어 내게 이리 오라는 의사표시를 한다.
“…….”
당연히 응하지 않았다. 공중에 부유한 채로 그곳에 조명을 던졌다.
번쩍.
그 불빛에 주변이 밝혀지자 보이는, 이가을 주위로 숨어 있던 주진헌, 강예빈, 강혁, 그리고 또 다른 나.
당연히 전부 다 도플갱어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준비한 함정에 대한 내 대답은 이거다.
쾅! 먼저 도플갱어 박신혁과 강예빈의 머리 위에 부유석을 꺼내 주어 그들의 몸을 터뜨려 준 뒤엔.
피융! 폭(暴)의 마력을 담은 화살을 남은 이들을 향해 쏘았다.
피융! 연검으로 쳐내는 이가을.
피융! [가속]을 운용해 간발의 차이로 피한 강혁.
피융! 그리고 화살에 어깨가 터져 버린 주진헌.
이후 난 충격에 넘어진 주진헌만 노린다.
그에게만 연사한다.
먼저 두 다리에 각각 화살을 박아주었고.
콰가가가강-!
다리가 [재생]되기 전, 꿈틀거리는 놈의 머리통을, 남은 모든 마력을 모두 담은 화살로 터뜨려 주었다.
이후엔 다시 주변을 살핀다.
…….
예상대로 잠잠하다. 도플갱어 이가을과 강혁은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휘이이이잉.
바람이 불었고 수풀이 흔들릴 때마다 그곳을 살폈지만, 아무도 없다.
이후 두 시간 가량이 지날 때까지 도플갱어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난 화살을 인벤토리에 넣고서 계속해 아래를 살폈다. 그리고 기다린다. 새로운 도플갱어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
다시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 밤이 새도록.
전투 난이도가 격상함에 따라 내가 행하는 유격이 놈들의 숫자를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되었으니.
“…….”
밤이 돼서도 홀로서 전투를 치르고 있는 이유였다.
3일 후, 게이트 14일 차.
전투는 여전히 지난했다.
그래도 긍정적인 건 느리게나마 꾸준히 도플갱어의 숫자를 줄여가고 있다는 거다.
첫날엔 무려 200개체가 넘는 몬스터를 죽였고, 지금은 그로부터 12일이 지났다.
얼추 기억나는 것만 세어봐도 1,000 이상의 개체는 죽였을 터.
“박신혁 클랜장님 혹시 기척에 잡히는 도플갱어가 있습니까?”
오늘의 전투가 끝나니 그걸 실감할 수 있었다.
강혁이 내게 물어 왔다.
“제 눈엔 없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오늘은 어째 한 무리가 전부였다. 추가되는 도플갱어는 아직까지 없다.
“일단 제가 한번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난 차폐막을 딛고서 하늘로 올랐다.
위에서 내려다본 광경엔 온통 나무뿐이다.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없다.
난 하이오크를 잡을 때처럼 검 두 개를 꺼내 충돌시켰다.
쾅!
이목을 끌기 위해 억지로 소음을 내본다.
“…….”
그러나 변화는 없다. 여전히 이곳으로 향하는 몬스터는 전무했다.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일단 이 주변엔 확실히 없습니다. 오늘은 좀 더 멀리까지 나가 보죠.”
해서 우리는 걷는다.
한 시간쯤이 지나선 부유석으로 함정을 확인하는 작업을 생략한 채로 속도를 올렸다.
“…….”
그런데, 여전히 아무 일도 없다.
이윽고 내가 차폐막으로 누볐던 지역까지 넘어 게이트의 끝에 도달했는데도 나타나는 도플갱어는 한 개체도 없었다.
해가 저물 무렵에 다시 강혁이 물었다.
“혹시 다 잡은 걸까요?”
“그럴 리가요. 아직 클리어 메시지가 뜨지 않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그럼 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까요?”
“그건 모르겠으나, 분명 제가 오늘 새벽에 놓쳤던 도플갱어 중엔 이가을도 있습니다. 오늘 잡지 못했으니, 그 도플갱어가 자살이라도 하지 않는 한, 어딘가에 반드시 살아 있을 겁니다.”
“아……. 그렇겠네요.”
난 강혁 너머로 지는 노을을 보았다.
“아무튼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다들 캠프로 돌아갑시다.”
해가 지기 전엔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는 게 나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급습하는 이가을은 꽤 상대하기 어려우니.
난 걸음을 옮기며 모두에게 대처 상황을 읊었다.
“전략을 수정하겠습니다. 내일부터 강혁 부길드장과 저를 제외한 인원은 캠프에 머무르며 마력회로를 수련합니다.”
전투를 하지 않을 거라면, 나와 강혁이 빠르게 움직이며 수색하는 게 효율적이며 안정적이었다.
“강혁 부길드장은 캠프 주변을 수색하고, 저는 차폐막을 통해 더 멀리 있는 지역을 수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다른 의견 있습니까?”
내가 제시한 정론에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 휴식을 취했고-
다음 날엔 일찍부터 나와, 강혁과 수색 작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는 어제와 같았다.
“혹시 오늘 발견한 도플갱어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온종일 수색해 봤지만, 발견한 도플갱어는 없었다.
“오늘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혹시?”
“없었습니다.”
그다음 날에도.
그다음 다음 날에도.
“……빌어먹을.”
도플갱어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이 게이트는 클리어되지 않았는데도.
* * *
“으윽.”
강예빈은 일어나 천장을 본다. 아니, 어제 자신이 누워 있었던 이 층 침대의 바닥을 본다.
2층에서 잔 자신이 1층에 있다는 것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박신혁이 며칠 만에 침대에서 잤다는 것.
과연 옆을 보니 박신혁이 누워 있었다.
전투와 유격으로 며칠 밤을 새우다가, 근래엔 또 수색으로 며칠 밤을 새워 버렸던 클랜장 말이다.
‘대단한 사람이야.’
각성자라 한들, 피로가 쌓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전투 이후엔 반드시 휴식이 필요하다. 굳이 몸의 컨디션뿐이 아니라, 무릇 피(血)라는 것은 사람의 원초적인 무언가를 자극하니까.
더구나 사람의 모습을 훔친 도플갱어와의 전투는 더더욱 사람의 정신을 지치게 했다.
‘고생은 혼자 다 하네.’
그런 와중에 낮과 밤으로 활동하며 며칠 밤을 새운 사람이었다.
그 정신력은 어떠한 존경심마저 일게 한다.
저도 모르게 그의 머리칼을 매만지던 강예빈은, 한참 후에야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인지했다. 즉시 손을 뗐다. 고생한 그를 자신이 깨울까 봐서.
이후 조심스레 이불을 걷은 뒤 고양이 걸음으로 캠핑카를 나왔다.
“후우우우우.”
분위기를 환기하려 크게 숨을 내쉰다.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게이트는 아직 클리어되지 않았다.
수련. 수련을 할 때다.
저리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돕진 못할망정 회로 수련이라도 열심히 하고 있어야지.
그런 심정에 밖으로 나와보니 강혁이 있었다.
“우주.”
“양파.”
“강혁 부길드장. 어제도 없었어요?”
“네. 없었습니다. 빌어먹을 몬스터들이 다 어디 갔는지…….”
“하……. 이번 게이트는 왠지 부유섬 게이트보다 긴 느낌이에요.”
“동감입니다.”
실제로 강혁의 눈 주변에 진 그늘이 어둡다. B급 헌터인 그마저도 막대한 전투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증표였다.
“강혁 부길드장도 지금 휴식이 필요해 보이네요. 식사는 있다 제가 알아서 해 먹을 테니 좀 쉬세요.”
“아닙니다. 저야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만 수색한다지만, 며칠 전 해 뜰 때부터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잖습니까.”
박신혁 얘기였다.
“신혁 씨 지금 캠핑카 안에서 자고 있어요. 오늘 오전 수색은 없는 것 같으니, 강혁 부길드장도 좀 쉬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얼굴이 퀭하네요.”
“아, 그렇다면야……. 박신혁 클랜장이 일어날 때까진 그러는 게 낫겠습니다.”
“식사도 이젠 각자 알아서 챙겨 먹을 테니 그러셔도 돼요. 저도 이만 수련하러 가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베이스캠프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조용한 곳이라 마력회로를 연마하기엔 적합한 곳이었다.
단검을 들고서 수련을 한다.
키이이이이잉-
먼저 회를 점검해 보고.
팡. 팡.
자리에서 일어나 폭을 이용한 박신혁의 입체 기동도 따라 해보고.
웅?
여전히 아무런 성과도 없는 그 공명이라는 것도 시도해 보고.
그러다 문득 기척이 들렸다.
“우주.”
“양파.”
암구호를 말하며 온 이는 박신혁이었다.
“어? 벌써 일어났어요?”
“아, 네. 잠깐 눈만 붙인 거라.”
“그래요? 아까는 한밤중이더니만?”
아까는 옆에서 자던 사람이 일어나도 모를 만큼 깊게 자더니만?
물론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더 쉬어도 돼요. 고생한 사람한테 회로 좀 알려달라고 붙잡지 않을게요.”
“아닙니다. 쉴 만큼 쉬었어요. 그나저나 강예빈 씨는 요새 어떱니까?”
“저야 뭐 수련만 하고 있죠.”
“그게 아니라 몸에 뭐 이상이 있다거나. 요새 하는 고민이라도 있다거나.”
웬일이래. 그가 걱정을 해준다. 말하는 도중에 근사한 미소까지 짓는다.
괜스레 심장이 두근댔다.
미려한 얼굴로 저리 고혹스럽게 웃어서가 아니다. 평소 이가을에게나 웃어주는 그런 웃음이 자신에게 향하는 게 놀라워서.
“뭐예요. 왜 갑자기 그, 그렇게 웃지? 뭐 잠을 잘못 잤나?”
“이상합니까?”
“아, 아니, 이상한 건 아니지만.”
하도 나대는 심장 소리가 들킬세라,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러면 저 회로 좀 봐줘요. 요새 여기가 욱신거리는데 여기가 그 통도를 뚫을 때도 아팠거든요.”
그러자 박신혁은 엉뚱한 소리를 해댄다.
“통도?”
“? 네. 통도. 마력의 통도.”
“……아. 통도. 통도 좀 오랜만에 뚫어드릴까요?”
“또 뚫어요? 그땐 일단락되었다면서, 아직도 할 게 남았어요?”
그땐 통도를 뚫는 일은 한동안 없을 거라 했는데?
아니, 근데, 그래도 박신혁이 남았다면 남은 거긴 한데…….
“네. 남았죠. 엎드려 보세요.”
“이, 이번엔 안 아프겠죠?”
강예빈은 제게 다가오는 박신혁을 보며 난처하게 웃었다.
* * *
캠핑카를 나와 보니 벌써 해가 떠있다.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생각보다 오래 잠들어 버렸다.
난 급히 강혁을 찾았다.
“강혁 부길드장. 어디 있습니까?”
“아. 여기 있습니다!”
텐트에서 강혁과 주진헌이 동시에 나왔다.
급히 이곳으로 오는 강혁에겐 먼저 사과부터 했다.
“아, 죄송합니다.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꽤 오래 잤군요.”
변명을 하자면 매우 피곤한 상태이기도 했고 누가 캠핑카의 암막 커튼을 쳐버렸다. 그래서 해가 뜬 줄 몰랐다.
“괜찮습니다. 클랜장이 고생한다는 건 누구나가 다 압니다.”
“그래도 미리 말해 드렸어야 했는데. 아무튼 수색 작업 시작하기 전에 식사라도 하시죠. 늦게 일어났으니 제가 오늘은 차리겠습니다.”
“아닙니다. 불침번도 안 서는 식사 당번인데 제가 해야죠. 그게 제 맘이 편합니다.”
억지로 냄비를 가져가는 강혁에 결국 난 자리에 착석했다.
앉자마자 옆에 앉는 주진헌이 내게 물었다.
“어제 새벽에도 도플갱어는 없었습니까?”
요새 내 수색 작업의 결과를 모두가 궁금해한다. 몬스터는 안 보이는 데 게이트 클리어는 안 되니 답답할 수밖에.
“네. 어제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어제는 지상으로 탐색했는데도 나타나지 않더군요.”
“아……. 꽤 길어지겠군요.”
“그래서 내일부턴 전부 벌목할 생각입니다. 숨을 곳이 없어진다면 결국 도플갱어도 나타나겠죠.”
생각보단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부유석으로 나무를 전부 쓰러뜨린 뒤, [인벤토리]로 나무만 한곳에 모으면 되니.
“그래도 면적이 면적이다 보니 며칠 정도는 소요될 겁니다. 물론 그전에 도플갱어가 튀어나온다면 오늘이라도 끝날 수도 있고요.”
“괜찮은 방법 같습니다.”
“네. 그리고 지금 해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죠.”
그때 강혁이 음식을 내왔다.
내게는 야채 볶음밥을, 주진헌의 앞에는 간장 비빔밥을 놓는다.
“잘 먹겠습니다.”
숟가락을 뜨는 중, 주진헌이 그릇을 강혁 쪽으로 밀어내었다.
“아. 음식은 너무나 감사한데, 먹진 못할 것 같습니다.”
“왜?”
“저도 게이트에서 이런 얘기를 할 줄 몰랐습니다. 게이트에 계란이 있을 줄 몰랐으니까요.”
“어?”
주진헌은 난처하다는 듯이 시선을 깔며 말했다.
“계란 알레르기가 있거든요. 재생 각성자가 이런 말 하기 웃기긴 하지만.”
강혁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럴 리가? 너 며칠 전부터 이것만 먹었잖아?”
“네?”
“간장 비빔밥. 계란이 들어간 간장 비빔밥.”
“저 말씀이십니까? 혹시 다른 사람이랑 착각한 거 아닙니까?”
“내가 그럼 박신혁 클랜장이랑 헷갈렸겠어? 너 맞는데?”
강혁의 목소리엔 강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분명 네가 먹었고. 매번 아무 이상 없었어.”
“전 먹은 기억도 없고, 제가 먹을 리도 없습니다만…….”
서로가 기억하는 다른 기억.
“…….”
“…….”
그것이 야기한, 오랜 정적의 뒤에.
나는 말했다.
“이가을 클랜원과 강예빈 클랜원은 지금 어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