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78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78화
정경 길드장, 정지석이 두 팔 벌려 날 반긴다.
“어서 오십시오~ 혁예 클랜장님~”
“하하하하하. 반갑습니다~ 정경 길드장님~”
나 역시 팔을 벌려 그에게 다가간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의 주변에 응축되어 있는 마력의 통제를 내 [마력]으로 집어삼킨다.
엠버의 [빙결]을 무효화시켰던 [지배]라는 회로의 원리 중 하나였다.
정지석의 [염력]으로 변할지 모르는 마력이, 괜히 허공에 떠다닐 필요는 없었다.
‘모를 리가 없는데?’
그 변화를 그도 알 것이다.
아직 [마력] 수치가 나보다 한없이 낮을 정지석이 대항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본인이 근처 깔아둔 마력의 통제가 소멸했다는 것을 당사자가 모를 수 없는바.
“하하하하. 잘 오셨습니다! 그 유명한 혁예 클랜장님을 언제고 꼭 뵙고 싶었는데 말이죠! 하하하하.”
그런데 그의 얼굴엔 내색 하나 없다.
여전히 환하게 날 반긴다.
대략 4년 뒤쯤에 의문사하는 정지석에 관한 정보는 많이 없다만, 한예리를 기른 인물답게, 저 표정만 봐도 속에 구렁이 백 마리쯤은 품고 있을 놈으로 보였다.
“하하하하. 저 역시 곧 10대 길드에 오를 정경 길드장을 뵙고 싶었습니다.”
“하하하하. 예언자께서 그런 미래를 보셨답니까?”
“미래랄 것도 없지요. 헌터 바닥 사람 중에 그걸 모르는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
난 장단을 맞춘다.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그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미래 정보를 팔러 오셨다면 아주 잘 오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길드가 의약 쪽에선 누구나 알아주지 않습니까? 마침 이번에 신약을 개발하고 있는데, 그 성공 여부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경 길드의 미래는 더없이 창창합니다. 마침 좋은 물건을 구해 인사차 들른 것도 정경 길드의 가능성을 알고 선을 대기 위함이죠.”
“아! 그 묵직한 브리프 케이스에 뭘 들고 왔나 싶었더니, 그런 물건이었군요.”
오고 가는 말이 곱다. 나도 속내를 감추고, 약탈자 길드로 변모할 정경 길드의 길드장도 속내를 감춘다. 겉으론 평화롭다.
주저 없이 브리프 케이스를 열었다.
“네. 최근 게이트에서 좋은 물건을 여럿 입수했습니다.”
성인 남자 몸통만 한 크기의 브리프 케이스 안에 빼곡히 쌓인 [도플갱어의 가면]이 드러난다.
“오호~”
그 와중에 내 눈은 한시도 정지석의 얼굴을 떠나지 않는다.
1초도 놓치지 않고 정지석의 표정을 살폈다.
“이게 뭡니까?”
확대되는 그의 동공 안에 욕망이 가득 찬 것을 확인한다.
애초에 이 아티팩트를 알고 있든가, 아니면 보자마자 물건의 가치를 알아봤다든가. 필히 그 둘 중에 하나로 보이는데-
“처음 보는 물건이군요. 근데…….”
그런데 표정을 고치고서 놈은 이렇게 말한다.
“남의 모습을 훔치는 물건이라. 이런 게 몬스터 잡는 데에 쓸모가 있을까요?”
“몬스터를 잡는 데엔 쓸모가 없겠죠.”
“그래 보이긴 합니다만……. 아이고~ 아이고~”
가져온 물건에 대한 폄하.
갑작스레 웬 읍을 하듯, 놈의 입에선 안타까움이 잔뜩 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걸 어쩝니까? 좋은 의미로 가져오신 물건이나, 저희 길드 내에선 딱히 수요가 없을 듯하네요.”
“그렇습니까?”
“물론 호의가 담긴 선물이야 감사히 받겠습니다만…….”
가져온 물건을 폄하는 놈의 눈빛엔, 아직도 저열한 욕망이 일렁거리는 데도.
그렇다면 좋다.
난 가진 패를 좀 더 드러내었다.
“이건 딱 봐도 몬스터에게 쓰는 아티팩트가 아닌데요……. 제 실수인듯합니다. 미래서는 아주 활발히 하시던데 아직 그쪽 사업은 시작 안 하셨나 봅니다?”
“사업이라 하시면?”
이 아티팩트가 놈한테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살인 청부. 정경 길드장님께서 돈 받고 염력으로 사람 모가지 꺾어주는 거 있잖습니까? 하하하하하하하.”
놈은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힌, 염력으로 온몸을 속박한 뒤, 밧줄에 스스로의 목을 매게 하는 거요.”
처음으로 놈의 얼굴이 굳었다.
“거, 말을 좀 삼가주셨으면 합니다만?”
“이건 선물 따위가 아닙니다. 거래를 하기 위해 가져온 것이지요. 그런데 거래를 하려는 데에 있어서 상대가 가격을 후려칠 생각에 폄하만 해대면 거래의 진전이 없겠죠.”
“…….”
반면, 난 의연하게 웃는다.
“저희 혁예 클랜을 너무 우습게 보신듯하네요. 하하하.”
웃으며 놈의 치부를 후벼 판다.
“마약도 의약품이라면 의약품이겠지요. 치사율이 50%를 넘는 트롤의 피도, 의약품이라면 의약품이겠지요. 운이 좋다면 두 명 중 한 명은 살아나지 않습니까?”
놈의 속내를 여실히 까발린다.
“장기 밀매는 어떻습니까? 이것도 뭐, 의료 사업입니까?”
“…….”
“계속 모르는 척하실 건가요? 저는 생각보다 정경 길드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
“몰래 청부살인의 의뢰를 받는 데도, 계약대로 살인을 행하는 데에도, 남의 얼굴이 필요할진대…….”
장신의 키로 우뚝 서, 그를 내려다본다.
“길드 내 수요가 없다니? 그게 뭔 개소리입니까? 하하하하하하하하.”
결국 공간엔 내 웃음소리와 정경 길드장의 침묵만이 남는다.
“제가 우리 정경 길드장 얼굴을 베낀 다음, 대통령 암살 시도라도 해드리면 그제야 이게 뭔지 아실까요? 아니면 정지석 길드장님의 얼굴로 미친 척 아리앗 길드에게 전쟁을 선포하면 그제야 이게 뭔지 아실까요?”
한 번 더 몰아붙인 후, 최종적으로 묻는다.
“사실 겁니까? 안 사실 겁니까?”
정지석은 그제야 협상 테이블 위로 올라섰다.
“얼마를 원합니까?”
“제가 돈은 많아서.”
“그럼 무엇을 원합니까?”
“사람.”
난 정경 길드를 무너뜨리기 전, 확실하게 한예리를 처단할 수 있길 바란다.
“게이트에 관한 정보는 밝힐 순 없지만, 모종의 이유로 우리는 자연계 각성자가 필요합니다. 근데 아시다시피 우리 클랜엔 자연계 각성자가 없죠.”
“아무 자연계 각성자면 됩니까?”
“식물 조작이여야 합니다.”
“……뭘 알고서라도 오신 것 같군요. 미래 정보라도 되는지?”
“글쎄요?”
난 그저 [도플갱어의 가면]이 잔뜩 쌓인 브리프 케이스만 두들겼다.
“선택은 그쪽이 하시죠. 다만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이걸 원하는 사람이 정경 길드만 있진 않을 거라는 것은 장담하죠.”
“……그럼 정경 길드부터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여기 식물 조작 각성자가 꽤 우수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하참……. 그놈의 미래 지식, 미래지식. 좋습니다, 속아드리죠. 도플갱어의 가면을 얻는 데에 게이트 공략 지원이라면야.”
“속는 게 아니라 진실입니다. 맹세코.”
난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 공략 지원이 맞다. 아마 한예리는 사고로 게이트에서 죽을 테지만.
“자. 그럼 얘기는 끝난 것으로 알겠습니다. 일단 이것부터 받으시죠.”
이후 차곡히 쌓아둔 도플갱어 가면에서 가장 왼쪽 상단에 있는 것을 그에게 건넸다.
물론 유일한 진품이었다.
“나머지는 게이트 공략이 잡히면 그 식물 조작 각성자한테 직접 전하겠습니다. 가격을 후려치려는 상대에게 선불을 할 만큼 멍청하진 않아서.”
“…….”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너무 늦으면 다른 이에게 팔아버릴 수도 있으니 참고하시길.”
난 그대로 가품이 담긴 브리프 케이스를 닫고서 집무실 문으로 향한다.
곧 대답하지 않던 정지석 길드장이 뒤늦게 날 불렀다.
“박신혁 클랜장님?”
“네.”
“좋은 물건을 가지고 계시니, 꼭 몸조심하셔야겠습니다. 특히나 밤길에 누군가에게 덮쳐지면 목숨과 함께 물건도 사라질 테니.”
난 돌아보지도 않고서 짧게 답한다.
“걱정 감사합니다. 정지석 길드장님.”
그리고 도플갱어의 가면이 담긴 브리프 케이스를 보란 듯이 툭툭 쳤다.
“저도 덕담 하나 드리죠. 정지석 길드장님은 밤낮으로 조심하세요. 믿는 이의 얼굴을 한 이가 당신의 등에 칼침을 꽂을 수 있으니.”
대답은 듣지 않았다.
쾅!
그대로 문을 세게 닫고서 그의 집무실을 떠났다.
* * *
한 시간 뒤.
정경 길드원, 윤정식은 믿을 만한 길드원 몇몇과 함께 [도플갱어의 가면]을 옮긴다.
차를 타고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화성까지 이동한 후, 공사를 하다만 건물 앞에 내려선다.
“나다. 이상 없지?”
“네. 4팀장님.”
평소 24시간 경호 인력이 상주하는 이곳은 정경 길드의 비밀 지부다. 이곳의 목적은 불법적인 물품의 보관이다. 트롤의 피, 아직 팔리지 않은 장기, 마약, 국가가 사용을 금지한 아티팩트 등등.
근래에 보이는 족족 사들이는 [도플갱어의 가면] 역시 이곳에 보관해야 할 물건이었다.
“오셨습니까.”
“그래.”
“실례하겠습니다. 절차에 따라 잠시간 금속 탐지기 확인 작업이 있겠습니다. 보관할 물품을 꺼내고, 팔을 벌려주시겠습니까?”
그 건물의 8층.
보안 절차와 길드원 수십을 통과하고 나서야 도달할 수 있는 이곳엔 그 지름만 3M에 달하는 대형 금고가 있다.
각종 현대적인 보안 체계가 갖춰져 있고, 동시에 [파마석]이라는 마력의 작용을 억제하는 금속으로 지어진 금고다.
사실상 금고 자체가 보물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비싸다.
윤정식은 그 대형 금고로 안으로 들어가, 가장 구석진 곳에 숨겨져 있는 용기를 연다.
[도플갱어의 가면] [등급] : 일반, B급. [분류] : 소모성 보조 아티팩트. [속성] : 30분간 기억 속 대상의 모습 재현.켜켜이 쌓여 있는 [도플갱어의 가면] 위로 이번에 획득한 것을 추가로 쌓는다.
“다시 닫아.”
그러면 임무는 끝이었다.
이후 윤정식은 다시 폐건물을 나가, 제가 있던 정경 길드 제1지부로 돌아간다.
…….
다시 고요해진 건물 8층.
창문 너머로 노을이 지고 다시 달이 떠오른 시각.
창문이 사라진다.
방금까지 창문이 존재했던 자리로, 검은색으로 온몸을 도배한 박신혁이 건물 8층에 들어선다.
들어서자마자 다시 창문을 [인벤토리]에서 꺼내어 제자리에 놓는다. 이제 변화는 없다. 창문에 달려 있던 전자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다.
귀를 기울여 누구의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순수의 마석을 꺼낸다.
저번 게이트의 보상 중 하나였던 순수의 마석.
지금 꺼낸 것은 가장 큰 [순수의 마석] 파편이고, 정지석에게 진품을 넘기기 전, 진품에 부착했던 [순수의 마석]은 가장 작은 파편이다.
그리고 [순수의 마석]은 [응축]의 성질에 따라 큰 놈이 작은 놈을 따라간다.
[조건부 스킬, 방향 추적이 활성화됩니다.]손에 쥔 순수의 마석이 어디로 향하는지 살핀다.
자신을 여기까지 안내한 [순수의 마석]은.
도플갱어 가면에 붙어 있는 작은 파편을 따라가려는 [순수의 마석]은.
‘금고.’
금고를 향한다. 벽 한 면을 모두 채우고 있는 금고에.
장지석에게 넘긴 도플갱어 가면은 저 안에 있다.
일순 금고를 살핀다.
금고를 이루는 금속의 광태는 익숙하다.
‘파마석.’
짧게 설명하자면, [파마석]은 마력 작용과 충돌을 일으키는 금속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마력도 깃들어 있지 않다. 따라서 [중립물]이다. 그러므로 [중립물 수납]이 가능함에-
사아아악.
금고문은 아까의 창문처럼 [인벤토리]에 들어간다.
이내 훤히 드러난 내부의 공간.
문이 없는 대형 금고의 안으로, 박신혁은 들어간다.
여전히 손에 쥐고 있는 순수의 마석이 이끄는 방향에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걸음을 멈춘 곳은 어느 용기 앞이었다.
용기를 풀어본다.
수십 개의 [도플갱어의 가면]이 그곳에서 드러난다.
‘그럼 그렇지.’
과연 최악의 전향자 길드로 자라날 정경 길드답다.
자신이 [도플갱어의 가면]을 선보이기 전에도, 이미 이 아티팩트의 존재를 파악했고, 이렇게 한가득 수집해 놓은 것을 보아하니.
박신혁은 브리프 케이스를 열었다.
착. 착. 착.
그리고 이자벨라가 복사해 준 가품 [도플갱어의 가면]을, 이곳에 있는 진품 [도플갱어의 가면]으로 바꾼다.
이제 전부 진품만 들어 있는 브리프 케이스를 다시 인벤토리에 넣는 것은, 그 작업이 완료된 이후다.
그 일련의 동작들은 빠르고 조용했다.
이후 들어온 과정을 역순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곳을 뜬다.
…….
적막이 맴도는 건물 8층.
박신혁이 남긴 그곳의 흔적은, 금고에 있던 진품이 3일 뒤에야 모래로 변할 모조품으로 바뀐 것 말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