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80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80화
“그 골드 회원?”
‘신혁인나랑제일친해’는 아는 아이디였다. 골드 회원으로 종종 댓글을 남기는 사람. 꽤 오랜 시간 팬카페에서 활동해 왔다.
갑작스레 물건 좀 사달라 한다거나, 도를 믿느냐고 묻진 않을 거다 아마도.
딸칵.
한예리는 수락 버튼을 눌렀다.
[신혁인나랑제일친해 : 아, 안녕하세요. 예리한 님? (하하)] [예리한 : 네.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혹 불만 사항이나 어떠한 문제라도 생겼을까요?]* * *
같은 시간, 다른 공간.
타다다닥. 강예빈은 다음 말을 쓰기 주저한다.
“문제? 문제야 있지…….”
문제는 초면에 어떻게 고민 좀 들어줄 수 있냐고 묻는 것인데…….
“갑작스레 고민이 있다고 하면 바로 나가지 않을까?”
뭐 처음엔 호구조사부터 해야 하나? 아니면 멀리 빙빙 에둘러 말해야 하나?
[예리한 :편하게 말씀하세요. 여태껏 개인 톡은 주지 않으셨는데 갑작스레 대화를 신청한 걸 보니 뭔 이유가 있으실 거라 짐작합니다.]그런데, 이어진 상대의 채팅이 그 고민을 무색하게 한다.
“생각보다 성격이 좋네?”
용기를 내본다.
[신혁인나랑제일친해 : 다름이 아니라……. 이런 말 하기 진짜 이상한 거 아는데, 제가 고민이 있는데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요. 익명의 공간을 찾다가 우연히 연락 드리게 됐습니다.] [예리한 : 고민이요?]되물음엔 상대가 당황한 게 훤히 비쳤다. 얼굴로 열기가 확 치솟았고, 식은땀이 삐질 흘렀다.
잠시 피어난 용기는 금세 사그라들었다.
[신혁인나랑제일친해 : 하하하. 당황스러우시죠? 네. 제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네요.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ㅋㅋㅋㅋ]채팅을 치고서, 바로 [나가기]를 누르려던 참.
[예리한 : 아니요. 좋아요. 고민 상담.]예상외로 긍정적인 답변이 왔다.
[예리한 : 저도 지금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을 하고 있거든요. 익명의 상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서로 조언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고요.(웃음)]* * *
타다닥.
한예리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고민을 이곳에 털어놓는 게.
어차피 혁예 클랜과 관련이 없을 사람일 테고, 구체적인 이름만 피하면 별문제는 없으리라.
[예리한 : 먼저 말씀하세요.] [신혁인나랑제일친해 : 그렇다면야……. 실명을 거론하긴 그렇고, 상황을 빗대면…… 아. 혹시 의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세요?]쉬운 질문이었다.
[예리한 : 네.]“신혁 님.”
본인의 이상형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이자 수단이 되어주는 사람이며, 언젠가는 옆에 서고야 말리라는 희망과 동기를 부여해 주는 사람.
[신혁인나랑제일친해 : 혹시 그 사람이 나쁜 일을 하고 있다고 가정할게요.] [예리한 : 어렵네요. 어느 정도로 나쁜데요?] [신혁인나랑제일친해 ; 상상에 맡길게요. 다만 최대한 나쁘게.]최악?
그렇다면 살인.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나쁜 일은 없다.
“신혁 님이 누군가를 죽인다?”
아주 말도 안 되는 가정이긴 하다만, 일단 상황을 가정하면 그렇게 된다.
[신혁인나랑제일친해 : 네. 그리고 전 그 사람이 그 나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예리한 : 익명인 이유가 있었군요.] [신혁인나랑제일친해 : 네. 그런데 그 사람한테 정말 도움도 많이 받고, 신세도 많이 졌어요. 소, 솔직히 얘기하자면 조금 호감도 있는 것 같고요.]“연애 상담이었어?”
[신혁인나랑제일친해 : 어쨌든 그 사람의 그런 아, 악행으로 인해 저도…… 음 피해라면 피해를 받았거든요.] [예리한 : 어떤 피해인지는 밝히지 않으시겠죠?] [신혁인나랑제일친해 : 네. 그것도 상상에 맡길게요.]“누군가를 죽이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는다라.”
한예리는 아까의 가정에 대입해 본다. 누군가를 죽이는 신혁 님이 내게 피해를 준다면?
“어떤 피해?”
살인자가 줄 수 있는 피해라면?
그게 내게 해가 된다면?
“신혁 님이 나를 죽인다?”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고작 그 정도 가정밖에 할 수 없었다.
뭐, 끔찍하지만 아무튼.
[신혁인나랑제일친해 : 그럼 예리한 님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을까?
[일단은 대화해 볼 거 같아요.] [그리고?] [왜 그런 악행을 하는지 알아볼 거 같아요.] [그리고?] [그 사람이 정말 소중한 사람이고 악행이 납득이 간다면야…….] [납득은 가요.] [사연 있는 악행이라, 뭐 그런 건가 보죠?] [비슷해요.]한예리의 눈꼬리가 처졌다.
“신혁님이 나를 죽이려 하고, 그 이유가 정말 납득이 간다면야. 내가 필히 죽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야. 그렇다면.”
[예리한 : 아마 피해를 감수할 수도?]점점 정경 길드에 물드는 내가.
이제 납치마저 동조하는 내가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죽게 된다면.”
누군가에게 단죄를 받는다면.
“그 사람이 오히려 신혁 님이었으면 좋겠어.”
썩 나쁜 죽음은 아닌 듯하다. 정지석에게 이용당한 채 개죽음당하는 것보단, 비교가 불가할 만큼 낫지.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러나 만약 정말로 신혁 님이 그러겠다고 한다면.
[예리한 : 물론 일방적으로 감수하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겠죠.]그러나 이왕 그에게 죽는 거라면, 적어도 그에게만은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고 변명 정도는 하고 싶다. 원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니라고.
가족의 치료를 위해 정경 길드로 들어왔고, 어쩌다 보니 몸이 이곳에 매였다고. 누군가에게 잘못 물려서 결국 원치 않는 일을 한 것이라고.
[예리한 : 결론은 같네요. 저라면 아까 말했듯, 먼저 대화를 나눠볼 것 같아요. 당사자와. 저와 같은 익명의 상대가 아니라.] [신혁인나랑제일친해 : 아…….]* * *
[예리한 : 혼자 생각해 봤자 답이 안 나오는 문제라면, 그 상대와 얘길 나누는 게 정답 아닐까요?] [신혁인나랑제일친해 : 맞네요.]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사실 제 용기의 문제였네요. 어쩌면 그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강예빈은 인정했다. 그저 용기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이게 맞다는 남들의 동의를 듣고 싶었나 보다.
[덕분에 생각을 정리하게 됐네요.]일종의 다짐과 같은 말이었다.
차일피일 미루던 숙제를 내일은 하겠다는 다짐.
진실을 대면할 용기.
일이 잘못된다면, 남들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변명과 자위.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뒤 물었다.
[신혁인나랑제일친해 : 당신의 고민은 뭐예요?] [예리한 : 음……. 저도 상황에 빗댈게요. 제가 존경하고 애정하는 사람이 있는데,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얻으려면 그가 바라지 않은 일을 해야 해요.]“연애 고민이었어?”
설핏 웃은 뒤, 말마따나 상황을 제게 빗대어본다.
“박신혁.”
호감 있는 사람.
그가 바라지 않는 일을 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각성자 납치 사건을 멈추려면, 그의 범죄를 밝혀내야 한다.”
응?
“나랑 비슷한 고민인가?”
그렇다면 방금 답을 내린 문제였다.
[신혁인나랑제일친해 : 저도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예리한 : 어떤?] [신혁인나랑제일친해 : 그를 곤란하게 하기 싫었어요. 그의 발목을 붙잡는 사람이 제가 아니길 바랐어요. 그게 아니었다면 고민할 일도 없었겠죠. 그리고-]“혼자서 고민해 봤자 답이 안 나온다면.”
[신혁인나랑제일친해 : 그 고민에 대한 답은 당신이 내려 주었네요. 대화해 보세요, 당신 말처럼. 어차피 혼자 내릴 수 없는 결정이라면.]* * *
“대화?”
한예리는 고소를 머금었다.
“그는 내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걸?”
여기까지다.
그럴 상황이 아니란 걸 상대는 알 리가 없고,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할 수는 없다.
혹시나 했는데, 익명의 상담은 역시 한계가 있었다.
“여기까지가 좋겠지.”
[그럼 여기까지 할까요?] [아.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네요.(울음)] [네, 충분히. 답답한 상황이었는데 들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해요.] [아닙니다. 남들도 다 똑같이 말할 조언이었는데요.] [충분히 도움 됐습니다. 그럼 이만 일이 있어서 가볼게요.] [혹시 다음이라도 언제든 답답한 일이 있으면 주저 없이 톡 주세요.] [(웃음). 네 그럴게요.]그렇게 한예리는 대화를 종료했다.
[채팅이 종료되었습니다.]허름한 모포를 깔고 바닥에 눕는다.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찍찍. 찍찍. 방 어딘가에 있을 쥐 때문은 아니다. 그건 익숙하다.
“내일이네.”
내일이면 신혁 님을 보기에.
강예빈의 기억을 가져온다면, 근 반년간 거절당했던 면회가 이뤄질 것이고.
“대화? 풉. 그런 게 될 리가. 동료 기억을 훔치겠다는데 누가 허락할까.”
그리한다면 그가 매우 싫어할 것이기에.
“면회……. 다음에 해야 할까? 엄마 못 본 지 오래됐긴 한데…….”
한예리가 아주 늦은 시간에서야 잠이 드는 이유는 제 몸을 타고 오르는 쥐, 또는 벌레 때문이 아니었다.
* * *
다음 날.
오전.
한예리를 만나러 가기에 앞서, 난 이가을과 강혁을 불러두고 최종 점검을 한다.
“말씀드렸다시피 정경 길드에서 게이트 공략 지원자만 보낼 거라고 장담은 할 수 없습니다.”
“몇 명이 나오든 상관없어. 대한민국에서 누가 감히 날 겨눠?”
이가을의 말이 정론이긴 하나, 상대는 정경 길드다.
“……상대가 상식이 없는 놈들이라서요. 그러니 강혁 부길드장께서도 현장까지 동행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나. 이가을. 강혁.
이렇게 셋이 있으면 정면 대결은 힘들지라도 미연에 대비해 몸을 뺄 순 있을 것이다.
A급 헌터가 둘이고, 나 역시 전력만 따지면 B++급 헌터 정도는 될 테니.
“덕분에 받은 보답으로 승격했는데 어찌 안 가겠습니까.”
대답 뒤에 강혁이 이어 물었다.
“그럼 나머지 우리 수호 길드원들은 그 발견했다던 정경 길드의 창고로 보내면 되겠습니까?”
“네. 거기서 증거를 확보하시면 됩니다.”
당연히 그 창고에 있는 건 도플갱어의 가면이 전부가 아니다. 얼핏 보아도 정경 길드가 자행하는 불법적인 사업의 증거물들이 그곳에 한가득이었다.
“실종된 류성근 박사와 관련된 것도 있을 테니, 정경 길드를 정리하는 데에 필요한 명분은 충분할 겁니다.”
수호 길드의 지원을 쉽사리 얻은 이유였고, 동시에 내가 수호 길드를 택한 이유였다.
머리싸움에서 한없이 밀리는 클랜이 길드를 제압하려면 지원이 필요했고, 전리품을 나눌 지원 대상은 당연히 수호 길드가 적절하다.
“자. 받으세요.”
난 순수의 마석을 꺼내 파편으로 나눈 뒤, 이가을과 강혁에게 분배하였다.
“작전은 제가 게이트에서 나온 직후에 이뤄질 겁니다. 신호는 순수의 마석으로 하죠. 혹여나 EMP 같은 거 때문에 전자기파가 차단되어도, 신호가 끊길 일은 없을 겁니다.”
난 순수의 마석을 흔든다.
“한 번이면 그대로 시행. 두 번은 대기. 세 번은 철수.”
고개를 끄덕인 이가을이 물었다.
“세 번? 철수할 일이 있을까?”
난 대답한다.
“아무래도 몬스터가 아닌 인간과 싸우는 일인 만큼, 어떤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