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84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84화
난 강예빈과 한예리를 데리고 게이트에 나왔다.
“그럼 잠시…….”
“…….”
난 도플갱어 게이트 때처럼 내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강예빈을 내 등 뒤에 두고, 등 뒤에 서 있는 한예리에겐 앞으로 나오라는 눈짓을 보냈다.
뚜벅.
한 걸음 앞으로 나오는 소녀.
그리고 소녀의 어깨 너머로는, 이미 게이트 앞에 대기해 있던, 길게 도열된 정경 길드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정경 길드다웠다.
게이트는 별것 없었고 클리어도 간단했지만, 우리가 했던 거래의 규모 자체는 컸다. 그도 그럴 게 [도플갱어의 가면]은 저들에게 보물에 비견될 것이니.
아마 내가 수호 길드의 지원을 요청했듯, 저들도 불미한 상황에 대비했을 거다.
이미 중무장한 그들의 차림이 그 물건을 넘기지 않겠다면 전투까지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대변했다.
무리 중 대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정지석이었다.
“박신혁 클랜장님~ 어찌 좋은 공략이 되셨습니까?”
난 대답 전에 [순수의 마석]을 3번 흔든다.
웅웅웅. 수호 길드에게 전달됐을 3번의 공명은 미리 약속된 ‘철수’의 신호였다.
“아하하하하. 정지석 길드장님~”
그렇게 금일 정경 길드를 정리하기로 했던 계획을 미루며 정지석을 마중 나간다.
“역시나 정경 길드는 대단한 인재를 두었군요. 덕분에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게이트를 클리어했지 뭡니까?”
“하하하하하. 우리 예리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비스하는 입장에서 고객의 만족도보다 좋은 건 없지요.”
손을 비비며 정지석은 비릿하게 웃었다.
“그럼 이제 비용을 지불하셔야죠?”
“아무렴, 그래야지요.”
난 인벤토리에서 정경 길드의 창고에서 가져온, 진품 [도플갱어의 가면]을 꺼냈다.
그러나 앞으로 내민 채 아직 내어주지는 않는다.
“?”
정지석의 얼굴에 의문이 들어선다.
“뭔 문제라도?”
“그런 게 아니라, 비용을 지불하기 전에 먼저 서비스 연장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달 정도 더 한예리 길드원의 지원을 받고 싶습니다.”
그가 밝게 웃었다.
“오. 비용을 지불하신다면야 우리 길드에선 나쁠 게 없죠. 그런데 어떤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무턱대고 우리 예리를 한 달간 보낼 수는 없잖습니까. 하하.”
“뭐 있겠습니까, 게이트 공략이죠. 아쉽게도 이번 게이트에 끝내지 못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오, 저런.”
“네. 안타깝게도.”
한예리와 아직 할 일이 많은데 넘겨줄 순 없다.
[공간의 팔찌]의 업그레이드 요인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한 달간 한예리를 죽일지 말지 살펴보아야 한다.난 강예빈과 허투루 약속한 것이 아니었다.
“일을 매듭짓기 위하여 앞으로 한 달 정도 한예리 길드원과 함께 매일 게이트에 출입하고자 하는데…….”
난 말을 늘이며 내 앞에 서 있는 예비 칠악을 가리켰다.
“아예 장기 파견이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우리 클랜에게 임대를 한다고 보셔도 되고요.”
“오~ 우리 예리가 여간 마음에 드신 게 아닌가 보네요.”
정지석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그런데 혁예 클랜장에게 우리 예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나쁠 것 없죠. 그럼 값은 어떻게?”
“여분의 도플갱어의 가면과 그에 비견되는 물건들로 치르죠.”
“하하하하하. 농담도 참. 하하하하하.”
그 말이 정지석에겐 정말로 웃겼나보다. 한참을 웃던 그가 눈을 비이상적으로 휘어대며 말했다.
“혁예 클랜장님.”
“네.”
“수요가 높아진다면 당연히 가격도 올라가야 하겠지요?”
예상 못 했던 바는 아니었다. 나는 자약히 답했다.
“그렇습니까? 그럼 정보를 드리죠.”
비용으로 정보를 넘기겠다고.
내가 지금 건네는 건 놈의 창고에서 꺼낸 진품 [도플갱어의 가면]이지만.
“요새 도플갱어 가면의 모조품이 돈다고 하던데, 들어보셨습니까?”
지금 네가 창고에 보유한 도플갱어 가면은, 내가 바꿔치기한 가품이라는 정보.
‘그 정보를 주마.’
마침 오늘이 이자벨라에게 도플갱어 가면을 받은 지가 3일째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은 내가 정경 길드의 창고에 넣어놓은 모조품들이 전부 모래로 변할 때였다.
“하. 그런 되지도 않는 정보를 가져다 대면 곤란-”
“하하. 제가 뭐 때문에 그러겠습니까? 못 믿으면 확인해 보시지요.”
“잘 있는 물건을 무엇 하러?”
“이상이 없다면 백지수표를 드리죠. 어떻습니까?”
내 눈을 빤히 살피던 정지석은 뒤쪽에 있던 길드원에게 손짓을 보냈다.
서로가 노려보는 대치 속, 대략 10분 정도가 지나서야 길드원은 돌아왔고-
“기, 길드장님.”
그가 정지석의 귓가에 뭐라 속닥거리자 곧 정지석의 표정은 문자 그대로 썩었다.
보물인 줄 알았던 것이 모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정지석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미래 정보입니까?”
“당연하죠.”
사실 내가 모조품으로 바꿔치기한 것이지만, 난 아주 태연하게 거짓을 말한다.
“당신께서 그렇게 꽁꽁 숨겨둔 한예리까지 찾아온 제가,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거리낄 게 없었다. 예언자를 등에 업고서 하는 거짓말은 허세 따위가 될 수 없으니.
“…….”
정지석의 침묵이 길다. 주도권이 내게로 넘어오는 신호탄이었다. 한참 뒤에야 그가 입을 뗐다.
“그럼 혁예 클랜장께선 모조품과 진품의 구별법을 아시는 겁니까?”
“네.”
“어떻게 아는 겁니까?”
난 대답을 미루고 아까의 정지석처럼 미친 듯이 웃으며.
“하하하하하하.”
“……한예리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알려주시지요.”
앵무새처럼 놈의 말을 따라 한다.
“수요가 높아진다면 당연히 가격도 올라가야 하겠지요?”
“…….”
“저번에 이어 이번에도 가격을 한껏 후려치셨는데, 그렇다면 이번에도 후불로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
“불만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그럼 한 달 뒤, 모조품과 진품에 대한 구분법을 알려 드리는 것으로 할까요?”
뻔한 얘기지만, 구분법은 쉽다.
지금과 같다. 그의 창고에서 훔쳐 직접 건네는 것은 모조리 진품이고, 몰래 그의 창고에 넣어놓는 것은 모조리 모조품이다.
쉽게 말해 내가 정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대답하지 않으시군요. 어려운 질문이었습니까?”
그 진실을 알려주면 정지석은 분명 대노(大怒)할 테지만, 상관은 없다.
어차피 한 달 뒤엔 죽을 사람이니. 한예리의 생사 여부를 떠나, 어차피 난 정지석을 죽일 테니.
어쨌든 그건 나중의 일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제안은 필히 놈에겐 거절할 수 없는 것이리라.
“아니면 그냥 파토를 내든가요.”
“……아닙니다. 예리를 데려가시죠. 그…… 예언자란 존재는 도움이 되면서도 참으로 거슬리네요. 하하하.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네. 염려 놓으시지요.”
난 예비 칠악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움직이라는 뜻이었다.
“그럼 한 달 뒤에 뵙도록 하죠.”
“네. 다시 봅시다. 혁예 클랜장님.”
한예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를 따랐다.
* * *
집.
이곳은 내 집이다.
이가을의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머물렀던, 회귀 전에 살았던 노트북 외에 아무런 가구도 없는 투룸.
귀찮아서 팔지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 칠악을 데리고 살 용도로 쓰일진 몰랐다.
난 뻘쭘히 서 있는 한예리에게 지시했다.
“저 방을 쓰도록.”
“네! 좋은 곳이네요. 정말로요. 평소 지내던 곳에는 콘센트도 없었거든요! 폰을 충전하려면 막 몰래 전기를-”
“그만.”
“아…… 아하하하.”
이곳이 좋은 곳인지 모르겠다만, 일단 소녀는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TMI였죠? 아하하하.”
난 대답하지 않았다. 평소 소녀가 어떤 곳에 머물렀는지 묻지도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다. 소녀가 어떤 시궁창에 살았던 내 알 바가 아니므로.
“신혁 님은 건너편 방에서 머무르시는 거예요?”
“그래.”
“그럼 매일 둘이서 게이트 갔다가 둘이서 이곳에서 지내는 거예요?”
“그래.”
“그럼 밥도 여기서 먹고 잠도 여기서 자겠네요?”
질문을 끊으려는 단답에도 이어지는 소녀의 물음에, 난 대답 대신 다시 쪽방을 가리켰다.
“?”
“시끄러우니 부를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마. 정말 급한 일이 있을 때만 문자 하고.”
“아……. 네…….”
소녀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방으로 향한다.
그토록 혐오하던 아름다운 얼굴이 사라지자, 그제야 곤두섰던 신경이 잠잠해진다.
후우우우.
이곳의 휑한 공간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그때였다.
“정말 아무것도 없군.”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땐 회귀를 한 직후라,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멸망한 세계에서 생존자들이 지냈던 곳도 대충 이러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난 어젯밤만 해도 이가을의 저택에 머물렀던 몸이었다.
그곳의 바닥엔 물고기들이 노닐었으며, 가구와 가전과 장식품 하다못해 식기까지 전부 최고급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지금은, 게이트 안에서도 모터홈에서 지낸다.
“차라리 게이트 안에서 지내는 게 나을 수도.”
즉,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난 문명의 편리함에 몸이 길들어져 버렸다.
앉을 곳이 없어 멀뚱히 서 있던 나는 저도 모르게 이가을의 집과 이곳을 비교해 본다. 이곳에 무엇이 필요한지 그곳에 빗대어 가늠해 본다.
“저기는 작은 냉장고라도 하나 두어야겠고, 저기는 노트북을 올려둘 책상을…….”
머릿속에서 공간을 재창조하게끔 하던 시선은, 문득 한예리가 들어간 방문 앞에서 멈췄다.
‘저 방은 그대로 둬도 되겠지.’
저 방은 생존자의 은거지처럼 두어도 된다. 아무렴 한예리를 당장에 죽이지 않겠다는 것이지, 잘 돌보겠다는 약속을 한 건 아니었으므로.
예비 칠악의 편의까지 봐줄 이유는 단연코 없다.
그럼 심정을 갈무리한 뒤, 난 폰을 켜 쇼핑몰을 훑는다.
“이불도 하나만.”
이불도 내 것만 사면 된다. 각성자가 맨바닥에 잔다고 죽진 않을 것이니.
그런데 온라인 쇼핑을 하는 중, 나는 아주 이상한 일을 겪는다.
[New 원 플러스 원 세일! 프리미엄 극세사 이불 : 80만 원.] [프리미엄 극세사 이불 : 90만 원.]이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왜…… 하나 사는 것보다 두 개 사는 게 더 저렴하지?”
심지어 같은 제품이다. 그런데 어째 두 개를 사는 게 하나 사는 것보다 저렴하다.
“……괜히 필요 없는 물건을 살 필요는 없으므로 하나만……. 아니, 굳이 그래야 하나?”
열 개를 사도 가격은 문제 될 게 없지만, 굳이 한예리를 의식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게 되었지만, 내 자존감이 그걸 허락지 않았다.
칠악 때문에 그런 것을 의식하는 것 자체가 난 맘에 들지 않았다.
“이불 정도야…….”
난 결국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원 플러스 원을 구매했다.
“뭐, 뭐지?”
그래도 그나마 이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신혼부부 특전 같은 게 있을 수 있으니, 애초에 2인용 상품일 가능성이 있으니.
그런데 왜일까.
“왜 책상도 원 플러스 원이 더?”
노트북을 올려둘 책상도 아주 이상하게도.
[New 원 플러스 원 세일! 다크우드 원목 데스크 : 420만 원.] [다크우드 원목 데스크 : 560만 원.]하나보다 두 개가 더 저렴하다…….
“뭔 말도 안 되는?”
쇼핑몰의 주소를 체크한다.
TF몰이다. The Fall몰이다. 이가을의 계열사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아무도 이곳에서 사기를 칠 수 없다.
“판매자도 대기업이거늘…….”
심지어 신뢰도와 이미지를 중시하는 대기업의 특성상, 가격으로 장난치지는 않을 것인데, 뭔 가격 책정을 이따위로 하고 있었다.
“왜 장사를 이따위로…….”
내 안목을 충족시키는 모든 것들이 죄다 그랬다.
침대도, 이불도, 책상도, 원목 수납 가구도, 가전제품도, 디퓨저도 전부 다 원 플러스 원이 단품보다 저렴한 것이었다…….
난 아주 기묘한 기분에 휩싸여 쇼핑을 마쳤다.
“뭐, 뭐지?”
들어올 제품들의 사이즈를 내 방 견적에 맞추어본다.
아주 딱 맞다. 더 들어갈 것도 없고, 휑하게 보일 빈 공간도 없다.
“그렇다면…….”
근데 문제는 모든 게 두 개씩이라는 거다. 어쩔 수 없이, 하나 남은 제품들은 다른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난 어쩔 수 없이 남은 방 하나에 시선을 둔다.
“중고로 팔 때까진 아무래도…….”
저 방에 둬야 하나……? 저기 한예리가 머물고 있는 방에?
“…….”
의도치 않게, 저곳도 사람 살 곳이 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