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86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86화
[이제 들어와도 된다.]답장은 바로 왔다.
[네! 그래도 이왕 나온 김에 조금만 더 사고 들어갈게요! 죄송해요! 금방 처리하고 들어가겠습니다~]어이가 없는 답장에 난 잠시 멍해졌다. 쓰라고 준 게 맞긴 하지만 주목적은 이가을을 피해 잠시 나갔다 오라는 것이었다.
“어디 도망갈 준비라도 하나?”
나는 순수의 마석을 꺼냈다.
한예리의 뒷목에 박혀 있는 작은 파편을 따라가려는 순수의 마석이 이리저리 방향을 뒤틀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 거리가 멀지 않다는 방증이며 빠르게 이동 중이라는 의미였다.
과연 소녀는 이곳저곳을 들르고 있다.
우우웅.
[TF VIP 카드 승인, 박*혁 03/12 16:47 결제 LJ몰]우우웅.
[TF VIP 카드 승인, 박*혁 03/12 16:49 결제 TG플러스]우우웅.
[TF VIP 카드 승인, 박*혁 03/12 16:51 결제 T마트]무언가 마구마구 결제하고 있다.
“뭔 아빠 카드라도 생겼나?”
웅웅. 웅웅. 웅웅.
그 이후로도 몇몇 결제 내역이 왔지만, 확인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직 죽일 수 없는 칠악 때문에 갉아먹히는 내 신경의 할당이 아깝다.
똑똑.
다만 나는 새로 온 의자에 앉아서, 한예리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한다.
“왜 한예리는 칠악이 되었을까?”
내가 알지 못하는 미래.
예비 칠악이 칠악이 되는 그 과정.
“한예리에게서 읽은 기억과 미래의 사실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지금의 소녀가 그대로 자라 칠악이 되었다고 하기엔, 그 정서의 변화가 너무나 극심하다.
-우리 예리의 인간적인 모습이 너무 싫더라. 그래서 내가 전부 없애려고. 너가 날 이해할 수 있게. 결국엔 우리가 같아질 수 있게.
예상컨대 아마 정지석에게 물들었겠지. 아니면 정신이 무너져 내리고 무방비 상태로 그의 사상이 주입되었거나.
“어쩌면 한예리도 피해자라 볼 수 있겠지.”
물론 이 부분에 관해 참작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게 예비 칠악을 살려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이 세상의 악이 고작 정지석뿐일 리가.”
만약 최태수에게 물든다면?
한예리가 최태수와 정지석에게 비견될 악인에게 물들어 미래의 학살을 반복한다면?
“문제는 ‘누구에게’가 아니야.”
주안점은 누구를 만나든 변하지 않을, 이번에는 미래와 다를 수 있다는 소녀의 멘탈 확인이다.
이른바 큰 힘을 책임질, 굳건할 멘탈.
소녀의 찬란한 재능이 어떠한 일에도 인류를 반하는 데에 사용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어떻게?”
문제는 ‘어떻게’.
사실 제일 확실한 방법은 한예리를 그대로 정지석에게 두는 것이다.
소녀가 미래의 밟았을 전철을 그대로 되풀이시켜 보면 그게 제일 명확하다. 이번엔 과연 미래와 다를지, 아니면 미래처럼 칠악이 될는지 구분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일이야.”
그러나 그때까지 지켜본다는 것은 명백한 시간 낭비기도 하다. 한예리가 칠악으로 활동하는 건 대략 몇 년 뒤다.
그때까지 소녀를 감시하며 산다는 것은 너무나 비효율적인 일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방법은…….”
먼저 소녀의 정신이 온전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그리고 시간을 당겨서, 언젠가 미래에 소녀가 급변하는 순간을 기다리지 않고서-
“내가 정지석이 되는 것.”
내가 직접 소녀의 멘탈을 터뜨려 주어-
혹시 이번엔 소녀의 정신이 온전히 유지되는지 확인하는 것.
다시 말해, 이번 생에선 소녀가 학살을 자행하거나 몬스터에게로 전향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얻는 것.
“그게 유일한 방법이겠지.”
한 달 내로 한예리에 관한 일을 처리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그게 제일 깔끔하다. 그게 안 되면 소녀를 죽이고 다음 칠악을 처리하는 게 나로선 제일 명료하다.
우우우웅.
새로운 진동음에 나는 상념에서 깨어난다.
[죄송해요. 신혁 님. 제가 늦었죠?]한예리였다.
[지금 바로 올라가요!]소녀의 톡이 온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녀는 문자 그대로 행동한다.
타다다다닥.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웬 소란스러운 발걸음이 계단을 타고 올라오더니 집 앞에서 멈췄다.
띵동.
“신혁 님! 저 예리예요! 저 왔어요!”
소녀가 고양된 어조로 날 부른다.
난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켜 느긋하게 문을 열어주었다.
“저 왔어요! 시장하시죠? 제가 먹을 거 잔뜩 사 왔어요!”
웬 식료품이 잔뜩 담긴, 제 몸통만 한 비닐봉지를 번쩍 들며 환하게 웃는 소녀.
“저 요리 잘해요! 제가 맛있는 식사 대접해 드릴게요!”
“……시장을 봐 왔나?”
“네! 냉장고가 오늘 온 거니까 텅 비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준 카드로.
제게 필요한 게 아니라 날 위해서 저런 것을 사 온, 누가 봐도 날 좋아하는 한예리.
난 일부러 차게 말한다.
“시키지 않은 것만 골라 하는군.”
“헤헤헤.”
소녀를 시험하려면 저 웃음기를 싹 지워야 하므로. 그 결과, 소녀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봐야겠으니까.
* * *
소녀가 준비한 건 구첩반상이었다.
요리를 하는 데에 [식물 조작]까지 동원하더니, 짧은 시간 만든 것치고는 그 양질이 매우 좋다.
무생채, 곰취 숙채, 갈치구이, 연근 조림, 해물 전, 간장 게장 등등.
한식을 정식으로 배웠는지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의 음식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뤘고, 풍기는 냄새 또한 식욕을 당긴다.
난 노릿하게 튀겨진 새우튀김을 입에 넣은 뒤, 알배추 된장국마저 뜬다.
“맛은 정상이군.”
동시에 마력회로를 돌린다. 비정상적인 마력 반응이 없음을 확인한다. 고로 소녀가 만든 식사에 독은 없다.
‘현재의 한예리는 내게 해가 되지 않아.’
난 나머지 음식들도 입에 넣는다.
난 인정했다.
내가 소녀의 목에 단검을 가져다 대어도, 소녀는 어떤 반항도 하지 않는다.
내 말에 밤새 화장실을 참고서 방문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을 만큼 내 말을 잘 따른다.
이 식사는 단순한 호의다. 여태껏 소녀는 내게 어떠한 적의도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현재의 한예리를 의심하는 건 심력 낭비이자 시간 낭비이다.
의심해야 하는 건 미래의 한예리로 국한한다.
따라서 내가 ‘정지석이 되기 위해서’ 어떠한 사전 조사가 필요하겠다.
“음식을 따로 배웠나?”
“헤헤헤. 네. 미튜브에서 독학한 것도 배운 걸로 치면요.”
“정경 길드에 있으면서 음식을 따로 배울 시간과 여유가 있었는지 묻는 거다.”
물음의 저의는 더 자세히 소녀의 과거를 캐기 위함이었다.
“아. 그건 아니에요. 어머니가 편찮으신 지 오래됐거든요.”
“그래서 혼자 자주 해 먹었다?”
“네. 게이트가 열리고 나서 정경 길드에 들어가기 전까진 살림은 전부 제가 했었어요.”
대답은 하는 순간에도 소녀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손등에 턱을 괸 채로 날 보고 있다.
저러니 독이라도 들었나 의심할 수밖에 없지.
“그렇게 보고 있으면 밥이 넘어갈까?”
“헤헤헤. 죄송해요.”
“넌 왜 안 먹지?”
“전 신혁 님이 드시는 걸 보고만 있어도 배불러요.”
“헛소리.”
난 수저를 들며 문득 물었다.
“어머니의 지병은 어떤 거지?”
“……마력 중독이요.”
국을 뜨려던 수저를 잠시 그곳에 담가둔다.
“마력 중독?”
마력 중독은 이가을에게 치료받는 함진석의 딸과 같은 병명이자, 소녀의 기억에서 본 이찬혁이 앓던 것과 같은 질병이었다.
미래에서도 완치될 수 없는 불치병이었다.
“네. 마력 중독이요.”
좀 더 소녀에 대해 파고든다.
“살아는 계시나?”
“점점 더 안 좋아지기는 하는데 그래도 잘 버티고 계세요.”
“그래서 납치에 관여했군.”
“네. 점점 더 힘들어하시니까요. 정지석이 류성근 박사를 납치하면 치료제를 개발해 준댔어요.”
“그 말을 믿다니.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멍청하다고 해야 하나.”
“헤헤. 그러게요. 그런데 그때는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아직 어리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기댈 곳이 없었으니까요…….”
나는 식사 중에 인벤토리에서 노트를 꺼내어 소녀에게서 얻은 정보를 기재한다.
[다른 칠악과 달리 싸이코적 정신 질환은 보이지 않음. 아직까진 정상적인 정서를 함유한 것으로 추측.]다시 인벤토리에 넣고서 물었다.
“그럼 그 면회가 그 면회였나?”
“네. 엄마를 보는 면회였어요.”
“상황이 그려지는군. 엄마는 환자가 아니라 인질이 되었겠지.”
“네……. 그런 것 같아요. 정지석이 제가 그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매번 엄마 얘기를 꺼내거든요. 치료 안 할 거냐면서.”
난 아주 담담하게 물었다. 그게 정상이라는 듯이.
“화가 나지 않나? 나였으면 정지석을 죽이고 싶었을 텐데.”
아름다운 소녀는 붉은 입술에 손가락을 대었다.
“음……. 화가 나긴 했는데 그렇다고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왜? 정지석이 죽으면 치료제 개발을 못 할까 봐?”
“아, 아니에요. 그런 건 전혀 아니에요…….”
소녀는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밉다고 죽이면 안 되잖아요.”
“왜? 너무 미우면 죽일 수도 있지.”
“아 물론 정지석은 그러겠지만…… 전 별로 그렇진 않더라고요.”
“……그래?”
“헤헤. 네! 처음엔 막 몬스터도 못 죽였었어요! 막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았으니까!”
“자랑이나? 멍청한 거였군.”
“……조금 그런가 봐요. 헤헤.”
눈을 게슴츠레 뜨며 소녀를 살핀다.
아무리 봐도 소녀는 정상으로 보였다. 아니, 정상이었다.
하여 다시 노트를 꺼내어 세 가지 가능성을 적는다.
[이중인격자? 또 다른 인격의 발현?] [아포칼립스. 그 극한 상황에서의 자아 붕괴?] [내성적 성격이 쌓아놓은 무의식적인 분노? 충동적 분노 조절 장애?]일단은 이것뿐이었다.
이런 정상적인 소녀가 칠악이 되는 과정에서, 그 심적인 변화의 요인에 대해 떠오르는 것은 일단 이 세 가지가 전부였다.
난 노트를 덮었다.
“다 먹었다. 치워라.”
“헤헤헤. 감사해요. 저한테 물어봐 주셔서요.”
“감사? 왜?”
“다른 정경 길드원은 아무도 그런 걸 묻지 않거든요. 제 사정만은 궁금해하지 않아요.”
“사정만은?”
조사가 이상하기도 하고, 또 소녀의 과거를 좀 더 알아볼 겸 잇따라 물었다.
“그럼 다른 걸 궁금해하나?”
“네.”
“뭐를 궁금해하는데?”
“……그건 비밀이에요.”
소녀는 처음으로 대화를 끊었다.
식기를 치우느라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니, 특히나 신혁 님에겐, 이것만은 말하고 싶지 않아요.”
“…….”
그러나 난 알 듯하다.
치안이 무너진 미래에서 온 사람이 나였다. 소녀가 비밀이라지만, 난 그게 무언지 짐작이 간다.
악의 소굴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경 길드에 있기엔, 소녀는 너무 아름답다.
“헤헤헤헤. 다른 얘기 하면 안 될까요?”
아마 소녀가 각성자가 아니었다면 이미 사달이 났을 정도로.
이것도 어쩌면 소녀가 칠악이 되어 인류를 원망하게 되는 한 가지 요인일지도.
-진짜 몬스터는 니들이야. 서로를 갉아먹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벌레보다 역겹고 진창보다도 더러운 새끼들.
물론 이건 너무 뻔한 내용이니 굳이 노트에 기재하지 않았다.
“네가 다시 정경 길드에 돌아갈 일은 없다.”
“네?”
“어머니의 면회를 위해 정경 길드에 들를 일은 있어도, 네가 다시 정경 길드에서 일할 일은 없다고.”
어차피 둘 중 하나다.
소녀가 내게 죽게 돼도 정경 길드에 돌아갈 일은 없고, 살게 되어도 정경 길드가 내게 무너질 것이니 돌아갈 곳은 없어진다.
어쨌든 소녀는, 그 말이 듣기 좋았나 보다.
“아……. 정말 감사해요! 그럼 계속 같이 다니는 거예요?”
“일이 운이 좋게 그렇게 된다면.”
그 말이 소녀에게 어떻게 들렸든 난 그대로 오해하게 두었다.
발화의 의도는, 소녀가 좋아할 긍정론 따위를 제시하려는 게 아니다. 한예리를 한 달씩이나 데리고 있어야 하는 비용을 본인에게서 받아내려 하는 것일 뿐이다.
“여하간 내일부턴 브레이크가 터지기 전까지 매일 게이트에 들어갈 거니 알고 있어라.”
원주인을 통해 성장하지 않는 성장 아이템인 [공간의 팔찌]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것.
혹 소녀를 죽이게 된다면, 그전까지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모두 미리 해봐야 하지 않겠나.
“혹 필요한 게 있나? 네가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면, 관련된 모든 것을 지원해 주지. 아티팩트든 혹 또 다른 장비든.”
“음……. 당장에 떠오르는 건 없지만 나중에 생각나면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내 의도를 어떻게 해석하든 간, 소녀는 눈을 반짝이며 깊게 허리를 숙였다.
“저 정말로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