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96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96화
톡톡.
누군가 손을 건든다.
나는 마력으로 청각을 돋워 주변의 소리를 듣는다.
후우우우, 하아아아.
저 깊은 호흡은, 근래 시간이 날 때마다 주진헌이 하고 있는 습관이다. 그리고 저 소리가 이는 곳은 코앞이 아니었다. 툭툭. 그러므로 바로 앞에서 손을 건드는 건 한예리.
파리 쫓듯 손을 쳐냈다.
톡톡. 그러자 한예리가 다시 손을 건드린다.
무시했다.
그러자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낸다. 귓속말을 하려는 듯 몸을 일으키려는 모양이었다.
“…….”
급하지 않다면 차라리 필담이 나았다. 어쩔 수 없이 손을 펴주었다.
곧 손바닥 위로 한예리의 손끝이 닿았다.
[어느 정도 올라온 거예요?]소녀가 손바닥에 쓴 글자는 이러했고, 질문을 인지한 즉시 소녀의 손바닥에 악필로 휘갈겼다.
[반.]아주 짧게. 귀찮다는 듯이. 눈치껏 물러나라고.
그런데도 소녀는 끈질겼다.
[반이나요? 꽤 많이 올라왔네요? 시스템 메시지에 표기된 제한 시간이 이 주라, 거의 그 정도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찍……]수놓는 글씨가 꽤 길어지자, 나는 손을 털어내었다.
‘어차피 한 번은 설명해야겠지.’
아니면 계속 물어올 것 같았으니.
그리 생각한 나는 자세를 고쳐 잡고 소녀와 양손을 마주했다.
각성자의 신경은 왼손으로 필담을 전하며, 동시에 오른손에 쓰이는 필담을 읽는 것을 가능케 했다.
마주한 양손을 통해 서로의 빠른 필담이 오고 간다.
[소화액에 항체가 녹는 거 봤나?] [네!] [소화액이 차오르고 있는 건 필히 봤을 테고.] [네!] [그렇다면 이곳의 공간을 100이라 치자. 처음엔 소화액이 0이었고 빈 공간이 100이었다.] [이해했어요!] [그리고 일주일 뒤엔 차오른 소화액이 50이, 이 주일 뒤엔 차오른 소화액이 100이 되지.]소녀의 손바닥에 네 글자를 적었다.
[이해했나?] [??? 네???] [멍청하군. 아직까지 깨닫지 못했다면 사실상 너는 이미 죽은 거다.] [네…….] [쓸데없는 기호는 전부 생략하도록.] [네.]어쩔 수 없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풀었다.
[항체는 소화액을 피하지. 즉 빈 공간에 머무른다.] [그렇겠죠?] [닥치고 일단 들어. 아직도 이해 못 한 것 같으니까.] [……ㅠㅠ] [그런데 소화액이 차오를수록 그 빈 공간도 줄어든다. 반면, 항체의 수는 거의 줄지 않아. 애초에 강할뿐더러, 각성자라 한들, 함부로 덤볐다간 이 공간에 있는 모든 항체와 싸워야 하니까. 시간이 지나도 처음 들어왔던 때의 개체 수는 거의 유지된다.]결론을 지었다.
[그럼 어떻게 되겠나?] [아.] [맞아. 100의 빈 공간에 퍼져 있던 항체들이 결국 1의 빈 공간에 뭉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좁은 공간에 득실거리게 되는 거지.]항체의 공간밀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진다.
[늦으면, 이동하기도 전에 죽을 거야. 결국 고장 난 분비샘에도 항체가 가득 찰 테니까.] [그럼 어떻게 해요?] [방법 있나? 그전에 이곳을 나가야지. 그럼 돌아와 다시 묻겠다. 아직도 이 주의 시간이 넉넉해 보이나?] [……아니에요. 사실상 마지막의 시간은 없다고 봐야겠네요.] [정답이다. 이제 이해했군.]한동안 필담을 전하지 않고 손을 긁적거리던 소녀가 문득 물었다.
[그럼 전 이곳에 왜 온 거예요?] [일단은, 말했던 대로. 내 눈앞에 있어야 하니까.]물론 이건 표면적인 이유다.
아직 밝히지 않는 이유로는, 이 [생존]의 상황에서 소녀가 어떻게 행동할까 관찰해 보려는 마음도 있거니와…….
[헤헤. 그런데 일단은요? 음. 아. 뭔가 제가 도움이 될 줄 알았, 하긴. 여긴 식물도 없으니까요.]토막 난 필담이지만, 소녀의 심정은 짐작이 가능했다.
[도움이 된다.] [제가요?] [그래.]소녀를 응원해 주려는 것은 아니지만, 소녀도 알아야 하는 부분이 있긴 했다.
손가락을 움직인다.
필담을 나누는 소녀의 손바닥 위를 타고 올라가, 손목에 위치한 팔찌를 툭 건드렸다.
[공간의 팔찌. 이곳의 상황에서 그게 어떻게 변할지 확인해야지.] [아! 잊고 있었는데, 어떻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해 볼게요!]“…….”
지금까지 안 하고 있는 게 놀라웠다. 왜 괜히 다시 돌려주었겠는가. 당연히 [원기]라는 에너지가 가득한 이 공간에서 성장의 연구를 강구해 보라는 의미였다.
[그래. 느껴질진 모르겠지만, 이곳엔 원기라는 에너지가 가득 차 있다. 참고해서 고민해 보도록.] [원기요?] [느껴지는 게 없나?] [어두움? 신혁 님?]“…….”
머릿속이 온통 꽃밭이구나. 어쩔 수 없이 소녀의 손바닥에 화살표를 그렸다.
[→]그 방향은 주진헌을 향하는 것이었다.
[그럼 여태까지 저 행위가 단순한 호흡인 줄 알았나?] [? 한숨을 깊게 쉬는 줄 알았는데요?] [넌 정말 멍청하군.] [네?] [19살이니 참작해 주겠다.] [헤헤. 아직 어려서요.]이어 필담을 전했다.
[알다시피 브레이크의 보상은 특별하다. 특히나 이곳은 더 특별하지. 원기라는 에너지로 가득 찬 곳이니까. 그래서 이 게이트에서 취해야 할 보상은.]이 S급 브레이크에서 필히 얻어야 할 보상은 2가지가 있다.
[‘스텟 원기 생성’ 그리고 ‘스킬 원기 흡수’. 둘 중 하나다.]물론 양자택일의 문제다.
후우우우. 하아아아.
저토록 [원기]에 재능이 있는 주진헌은 당연히 전자를 선택해야 하고, 한예리의 경우에는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보상으로 원기 흡수를 택해.] [원기 흡수요? 원기?] [넌 알 필요 없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 [네…….] [어차피 네가 쓸 에너지가 아니니까.] [네?]한예리를 이곳에 데려온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약속한 한 달이 지나기 전, 한예리가 본인을 증명한다면.
한예리가 본인의 미래에 대한 내 의심을 모두 지울 수 있다면.
예비 칠악이 아닌 한 명의 헌터로서, 소녀가 강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어차피 네가 ‘원기 흡수’로 흡수한 에너지는 네가 아니라 너의 식물이 사용할 테니.] [아…….] [네가 조작하는 식물은 그 원기를 발판삼아 미치도록 풍성하게 자랄 것이다. 씨앗은 돌아보면 거목이 돼 있을 것이고, 베어낸 줄기는 금세 두 갈래로 자라나겠지.]또 다른 신화급 몬스터인 히드라처럼.
[식물 조작]과 [원기 흡수]의 조합은 진정 환상적이다. [식물이 더 두껍고 더 급격하게 자라게 하는 원동력. 그 원기라는 에너지는 상대에게서 추출한 거다. 네가 강해진 만큼 상대는 약해지는 거지.] [와! 진짜 얘기만 들어도 저 엄청 세질 것 같아요.] [그래. 성능은 월등하다. 다만 사용자가 문제겠지.] [제가 아직 어려서 그래요! 아직 많이 못 배워서 그런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그런 뉘앙스가 아니었다.
그래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월등한 능력이 아군을 향했다는 사실을 소녀에게 알려주기엔 아직 이르므로.
손바닥을 접었다. 더 이상 필담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톡톡.
소녀가 다시 손을 건드렸지만 다시 펴지 않았다. 이제 할 말은 다 했다.
그런데 그런 내 의사와는 별개로 한참을 칭얼거리는 소녀가 결국엔 손등에까지 글자를 써놓는다.
[네! 저 정말 열심히 할게요.]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네! 네!] [날 귀찮게 안 하는 거다.] [ㅠㅠㅠㅠ]그렇게 전한 뒤, 아예 손을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톡톡.
그런데도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톡톡.
소녀는 계속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톡톡.
톡톡.
톡톡.
“…….”
집요했다. 예비 칠악의 집요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최후의 생존자인 나는 절대 손을 꺼내지 않았다.
* * *
촤아아아악.
윤환은 썩은 물을 잡아둔 비각성자의 정수리에 부었다.
동시에 손으론 그의 입을 막으며, [금속 조작]을 시전한다.
곧 보호구에 기다란 철사로 연결된 11개의 비수가 허공을 떠올라, 감히 자신에게 대든 비각성자의 목을 두른다.
읍! 읍!
그 차가운 감촉을 느꼈는지, 허튼수작을 부리면 죽이겠다는 의사가 전달되었는지.
“…….”
이내 벌레 같은 비각성자는 조용해졌다.
그의 귓속에 조용히 속삭이는 건 그 이후가 되었다.
“쉬~ 이름이 뭐야?”
“이, 이성진이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성진아. 왜 나한테 대들었어?”
“네, 네?”
한 개의 비수를 움직여 그의 눈 위에 대었다. 눈꺼풀 위로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느끼라고. 언제든 눈을 파고들어 간 비수가 너의 뇌를 찌를 수 있다고.
“한 번만 더 되물으면 그땐 바로 죽는 거야. 알았어?”
“…… 네.”
“혹시 대든 이유가 최태수 때문이야? 그를 변호하려고?”
-아주 좋은 말씀 드리러 왔습니다~ 교주 최태수이올시다.
최태수.
비각성자들을 일 초 만에 동요시킨 비행기 테러범.
“…….”
“어쭈. 대답을 안 해?”
“…….”
괘씸해 목에 있는 비수 중 하나를 전진시켰다.
예리한 칼날은 아주 쉽게 살갗을 파고들었다.
그쯤에서 멈추고 다시 속삭였다.
“아. 얘기 안 했나? 대답을 안 해도 죽을 거야.”
“네, 네. 할게요.”
“최태수를 변호하려 한 거 맞아?”
“네.”
“왜?”
“교주님이시니까요.”
“…….”
교주? 골 때리는 대답이었다.
“원래 종교가 있었어?”
“아니요.”
“그럼 최태수를 원래 알고 있었어?”
“아니요.”
“근데 왜?”
“…….”
이성진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주 괘씸하게도.
원래라면 죽어야 마땅하나.
솔직히 말하면.
“최태수 X새끼 해봐.”
윤환은 지금의 현상이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배고프지? 말하면 식량도 줄게. 죽이겠다는 말도 취소할게. 응?”
“…….”
“쉽잖아? 말 한마디면 배도 채울 수 있고 살려도 준다니까?”
“…….”
“고작 여섯 글자야. 최. 태. 수. X. 새. 끼. 이게 어려워?”
그때 이성진이 입을 열었다.
정신이 나갔는지 아주 큰 목소리였다.
“뭔 대답을 하라고? 이 씨X놈아.”
따다다다다다닥.
상황을 뻔히 알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X새끼는 너인데, 왜 교주님을 X새끼라 하래? 미쳤냐?”
그 말을 할 바엔 같이 죽자는 듯이.
동굴 안에 쩌렁쩌렁 울린다.
“이 버러지 같은 새끼가 잠자코 있으니까 내가 만만해 보여? 내가 나 혼자 죽을 것 같아-!”
“……하. 골 때리네 이거.”
윤환은 어쩔 수 없었다. 호기심으로 인해 죽을 순 없었다.
푹.
그래서 일단은 이성진부터 죽였다.
“내가 왜 죽어?”
그리고 그의 몸에 비수를 꽂아 넣고서, 비수를 번쩍 든다. 당연히 이성진의 시체도 붕 떠올랐다.
이후는 쉽다.
비수를 움직여 그의 시체를 먼 곳으로 옮긴 후.
깡. 깡. 깡. 깡. 깡.
단검을 짝지어 충돌시킨다. 소음을 낸다.
따다다다다닥. 따다다다다닥. 따다다다다닥.
몬스터를 그리로, 저 멀리로 유인한다.
상황은 그걸로 끝이었다.
멀어지는 몬스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윤환은 생각한다.
하이재킹. 그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최태수가 일면식도 없는 이성진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는 모른다.
어떻게 제 목에 날붙이가 닿은 채로 그를 변호하게 하고, 어떻게 그에게 목숨까지 바치는 헌신을 하게 했는지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그가 어떠한 작용을 부려서 비각성자를 마치 도구처럼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옳았다. 그 자폭으로 인해 자신이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 존재했다.
벌레라 여겼던 비각성자 때문에.
“도구라?”
그리고 윤환의 시선은 어둠으로 향한다.
저곳에 숨어 있는, 이곳으로 합류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그래. 니들은 도구지.”
최태수가 옳았다.
애초에 이들은 도구로 쓰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