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s Magic Should Be Special RAW novel - Chapter 313
313화. 에필로그 (1)
에필로그
화창한 오후의 햇빛이 거리를 비추었습니다. 찌는 듯이 무더운 여름입니다.
덜컹덜컹.
규칙적으로 덜컹대는 마차의 울림에 몸을 맡긴 채, 저는 가만히 마차 바깥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새삼스럽지만, 조금 믿겨지지가 않네요.”
이 도시의 건물은 유난히 웅장하면서도 화려합니다. 거리를 매운 빌딩은 드높이 치솟았으며, 거리는 고풍스러운 기색을 유지한 채 널찍이 뻗어 있습니다.
이 눈부신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그 누구도 이곳이 전쟁이 벌어졌던 도시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4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이렇게나 복구가 될 줄이야.”
이곳은 제도 드레스덴.
천 년간 헤브리온 제국의 심장이었으며, 그 어떤 곳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던 대륙 최고의 도시.
그러나 4년 전 불미스러운 사건에 의해서 모두 불타 버린 도시. 동시에 과거의 상처를 씻어 내고 다시 일어서려 하는 도시입니다.
아차,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제 이름은 프람 슈나이저입니다.
헤브리온 학원 출신이자, 제국의 기사 중 한 명입니다.
“프람 님, 안녕하세요!”
가끔 저를 알아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괜스레 헤실헤실 웃고 맙니다.
저는 그들에게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화답해 주었습니다.
“프람 님은 여자인가요? 남자인가요?”
“호칭이 헷갈려요, 프람 님! 누나라고 해야 하나요, 형이라고 해야 하나요?”
가끔은 짓궂은 질문을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저는 못 들은 척하고 창문을 닫았습니다.
‘우우…….’
저는 꾸욱 하고 주먹을 움켜쥡니다.
분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터무니없는 오해를 할 수가 있죠?
저는 남자라고요!
그런 오해를 피해 보려고 열심히 근육을 붙이려 노력해 보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붙질 않습니다.
체질이라는 걸까요.
아마도 평생토록 저런 질문을 받을 테죠.
슬퍼요. 참으로 애석합니다.
“도착했습니다, 프람 슈나이저 님.”
실의에 빠지기 직전, 마차가 목적지에 도달하였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지금 막 차라리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뻔했거든요.
“감사합니다! 금방 돌아올게요!”
마차에서 내린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헤브리온 학원의 정문,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직경 수백 미터를 가진 돔을 가진 거대한 건물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건축 양식이 교묘하게 균형을 이루어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곳은 헤브리온 학원의 신(新)본관입니다.
동시에 교육부의 본부이기도 합니다.
아, 교육부가 뭐냐고요?
3년 전, 황제 폐하의 특별 지시로 설립된 최고위 국가 기관입니다.
교육부에서는 국가적인 수준의 교육 제도를 운영합니다. 수많은 교수들을 채용하고, 많은 지역에 수많은 학교를 설립하는 역할을 수행하죠.
이른바 공교육의 확립입니다.
교육부의 설립은 제국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제국의 과감하고 전폭적인 지원 아래,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귀족 계층이나 일부 부유층 등 극소수 계층만이 사치품처럼 받았던 교육을, 모든 국민들에게 보급하는 데 성공한 거죠.
덕분에 임야에 숨어 있던 많은 인재들을 발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국의 미래가 밝습니다.
앞으로도 분명 밝을 것입니다.
한참 신본관을 향해 발길을 옮기던 저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열두 개의 비석.
그 추모비 앞에 서면 저는 숙연한 기분이 듭니다.
추모비에는 자그마치 3천여 명에 달하는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아르테미스 교단의 침략에서 희생된 이들의 이름입니다.
저는 그들을 향해 잠시 묵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이 제국이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 제국뿐만 아니라 이 세계가 멸망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강했더라면.
어쩌면…….
꾸욱.
저는 복잡한 감정을 뒤로한 채 다시 걸음을 옮겼습니다.
-프람 슈나이저 경, 확인되었습니다.
이내 신본관 내부로 들어오자, 미로처럼 얽힌 복잡한 복도가 펼쳐졌습니다.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으나,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한참을 복도를 따라 걸으며 길을 찾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머, 어머. 네가 여긴 어쩐 일이니?”
“오랜만이군, 프람.”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자, 사이좋게 손을 맞잡고 있는 한 쌍의 남녀가 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안녕하세요, 라도리아 님. 그리고 켈트 님.”
두 분은 제가 헤브리온 학원에 재학하던 시절, 찌르레기 파티와 더불어 학원 최강의 파티라 불리던 푸른달 파티와 레드드래곤 파티를 이끌던 분들입니다.
지금은 헤브리온 제국을 대표하는 6서클 마법사임과 동시에, 마법학 연구소의 공동 대표로서 제국의 마법계를 이끌어 나가고 계시죠.
“어라, 프람 선배님 아니십니까?”
흠칫.
저는 두 분의 뒤를 이어 말을 건넨 사람의 눈빛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흠칫했습니다. 아는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저에게 적의를 품고 있었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론데 님! 정말 반가워요. 무척 오랜만이네요!”
론데 피즐뱅.
그는 헤브리온 학원의 조교수직을 맡고 있는 우리 찌르레기 파티의 자랑스러운 후배입니다.
“그런데 안색이 좋지 않네요. 마치 며칠간 잠도 안 잔 것처럼…….”
“정확히 보셨습니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워낙 많은지라 며칠 밤을 샜거든요.”
“세상에…….”
제가 안쓰러운 시선을 보내자, 론데는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습니다.
“뭐, 제가 그만큼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이니 나쁘지 않은 기분입니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휴가를 받을 생각이기도 하고요.”
확실히 그의 말대로입니다.
제국을 대표하는 교육 기관인 헤브리온 학원의 조교수직을 맡았다는 것부터가 그의 유능함을 증명하는 셈이긴 하니까요.
“그런데 선배님께서 여긴 무슨 일로…… 아, 혹시 그 일 때문이십니까?”
“네, 맞아요. 하지만 길이 아직도 헷갈려서 조금 헤매고 있네요.”
론데는 빙긋 웃으며 한 곳을 가리켰습니다.
“퍼그맨 학장님과 브리지이트 님은 이 복도 끝에 있는 방에 계실 겁니다.”
“고마워요.”
저는 그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는 론데가 가르쳐 준 길을 따라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 퍼그맨 교수님은 저스틴 학장님께서 정년으로 은퇴하신 뒤, 헤브리온 학원의 새로운 학장이 되셨습니다.
그는 평민을 향해 불공평한 차별을 계속해 왔기에 평가가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그러한 부분이 사라지자 금세 신뢰를 얻기 시작한 덕분이죠. 실력은 더할 나위 없이 우수한 분이었으니까요.
여전히 괴팍한 모습은 남아 있으시지만,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훌륭한 교육자이시죠.
이윽고 복도 끝에 도달하자, 문패가 걸려 있는 방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노크를 하려던 그 순간, 교육부 장관 집무실이라고 적힌 문패가 걸린 방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다지 문제 될 사항 없는 일 아닙니까. 부디 승인해 주시죠.”
퍼그맨 학장님의 목소리입니다.
그런데 항상 오만함이 엿보이던 분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어조네요.
“어림도 없어요. 이런 빈약한 서류로 그 많은 예산을 승인받으실 생각이시라면 크나큰 오산이랍니다.”
그리고 그에 답하는 어조는 부드럽지만, 똑 부러지는 강단이 느껴집니다.
브리지이트 교수님, 아니 브리지이트 교육부 장관님의 목소리네요.
“하지만 장관님께서 요구하시는 서류는 실제 필요로 하는 절차보다 두 배 이상은 많잖소.”
“거대한 예산이 움직이는 만큼 더 엄준한 절차를 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시간이 없잖습니까. 이제 곧 나가 봐야 하니 말이오.”
“천천히 하시죠.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교수 시절부터 끊임없이 대립해 왔던 두 분은 지금도 여전한 관계를 유지하고 계십니다. 다만, 지금은 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모습이지만요.
제아무리 개과천선을 하셨다지만, 재학 당시 제가 당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에 웃음이 흘러나오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똑똑.
저는 웃음을 흘린 뒤 가볍게 노크를 한 후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두 분 모두 이제 나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제가 안에 들어서자 희비가 교차합니다.
브리지이트 장관님은 아쉽다는 표정이, 퍼그맨 학장님은 구원이라도 받은 표정이네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요. 그래도 아직 조금은 여유가 있지 않을까요?”
“유감스럽지만 그다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마치를 준비해 놓았으니 어서 가시죠.”
“어쩔 수 없네요. 우리 자랑스러운 아제스트 양의 즉위식에 늦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쿵.
브리지이트 장관님이 마침내 서류에 도장을 찍으시자, 퍼그맨 학장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자부심 넘치던 분이 저런 사소한 데서 기쁨을 느끼는 분이 되어 버리다니.
브리지이트 장관님과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웃었습니다.
* * *
황궁은 언제 봐도 호화롭습니다.
특히나 레온하트 궁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휘황찬란한 빛깔의 분수대,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샹들리에, 복도 곳곳에 전시된 수많은 예술품들.
모든 것이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들이라고 합니다.
국가의 재건을 위해 많은 수의 장식품과 미술품을 처분했음에도 불구하고, 황궁의 화려함은 여전히 변함없습니다.
과연 제가 있어도 될 곳인가 생각될 정도로 말이죠.
“몇 번이고 생각하는 거지만…….”
장소의 격을 생각하니, 저는 자연스럽게 제 복장도 돌아보게 됩니다.
“역시나 이런 옷은 저랑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요.”
어깨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빛 사자 휘장을 보니 마음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제국에서 단 네 명, 로열 가드만이 짊어질 수 있는 휘장이니 당연한 걸까요.
그렇습니다.
아르테미스 교단과의 전쟁이 끝나고 4년이 지난 지금, 사이드 가드의 단장이었던 저는 로열 가드가 되었습니다.
일만에 이르는 검술을 익혔다 하여 만검공(萬劍公)이라 불린, 진 유렘린.
그분은 아르고와의 결전에서 자신의 실력의 부족함을 느껴, 수련에 매진하기 위해 로열 가드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제가 이어받게 되었죠.
누구도 제 검로를 읽을 수 없다 하여 부여받은 무형검(無形劍)이라는 별호와 함께.
“뭐야, 지금 내가 손수 디자인한 옷이 너랑 어울리지 않다는 거야?”
“그, 그 말이 아니라…….”
“후후. 농담이야, 프람. 넌 정말 놀리는 맛이 좋단 말이야.”
“…….”
“귀여워라!”
제 볼을 쭈욱 당기며 환하게 웃으시는 분은 로맨티카 님입니다.
로맨티카 님은 전쟁이 끝난 후 패션 사업을 시작하셨고, 지금은 여러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패션계를 선도하고 계시죠. 게다가 헤브리온 황실의 수석 디자이너이기도 하답니다.
“우우. 그만해 주세요, 로맨티카 님. 호위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고요.”
“알겠어, 알겠어.”
로맨티카 님은 그렇게 말하고서도 여전히 볼만 꼬집지 않을 뿐, 절 뒤에서 인형 껴안듯 끌어안고는 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립니다.
뭐, 이 정도라면 봐줄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손길에 머리를 맡긴 채 회랑 내부를 훑었습니다.
“저기 위스키를 병째로 들이켜고 계신 분이 바로 그 북방의 패자라 불리시는 도네이프 아슬란 님이로군.”
“세상에……. 소문대로 어마어마한 덩치야. 거대한 도끼로 산마저 가른다는 소문도 사실일지도 모르겠어.”
“이봐,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프릴레챠의 무역왕이라고!”
“저번 무역 협정으로 떼돈을 벌었다던 그분?”
수많은 기자들이 웅성대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헤브리온 제국의 새로운 황제가 탄생하는 자리이니만큼 당연히 기자들뿐만 아니라, 각국의 귀빈분들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지 않을까요?
“놀랍군.”
어느새 제 옆으로 라파헬로 경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현재도 로열 가드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참석할 줄이야.”
저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전쟁 전까지만 하더라도 헤브리온 제국과 서방 왕국회의 관계는 몹시도 안 좋았으니까요.
그저 그림자 세계라는 공통된 적 앞에서 임시적인 동맹을 맺었을 뿐, 대립 관계는 여전했죠.
그분이 아니었더라면 이러한 풍경은 영원히 볼 수 없었을 거예요.
“그놈도 함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
로맨티카님도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던 걸까요.
저는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데지르 아르망.
제 영원한 멘토.
지금의 저를 있게 한 분.
역사상 최강의 마법사.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세계를 구원한 영웅.
잠시 추억을 회상하던 그때, 회랑 내부에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자세를 바로 잡고 정면을 응시했습니다.
직후 회랑의 정문이 열리고, 아제스트 님이 인파를 가로지르며 안쪽을 향해 걸어 들어갔습니다.
아름답습니다.
로맨티카 님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순백색의 드레스와 백금발이 조화를 이루어 그 아름다움을 더더욱 돋보이게 만드네요.
평소에 워낙 많이 봤기에 무감각해졌다고 생각했건만, 오늘의 아제스트 님은 차원이 다릅니다.
모두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이내 아제스트 님은 성유가 담긴 병과 황제의 관을 들고 계신 길티안 황제 폐하 앞에 섰습니다.
“왔느냐, 아제스트.”
“폐하.”
길티안은 몹시도 감회 어린 눈동자로 아제스트를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부녀 사이에는 잠시간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침묵을 깨고 나온 말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습니다.
“미안하구나.”
아제스트 님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습니다.
“그대를 강하게 키우기 위한다며 내가 택한 것은 무관심이었다. 내가 보호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억압이었고, 내가 옳다고 믿은 것은 강압이었다.”
길티안 폐하는 스스로의 치부를 들추는 데 망설임이 없으셨습니다. 제국의 황제라는 절대자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곤 믿기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황제로서는 어떠할지 모르겠으나, 아비로서는 실격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하나 그럼에도 너는 너무나도 완연하게 성장하였다.”
길티안 폐하는 아제스트 님의 머리 위로 성유를 뿌리며 축복해 주었습니다.
“내 딸아, 네가 정말로 자랑스럽구나.”
아제스트 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는 조금 물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아버님께는 영원히 자랑스러운 딸이, 제국에게는 영원히 의지할 만한 여제가 되겠나이다.”
이제 신성한 맹세를 하고, 관을 수여받는 것으로 계승식은 끝나게 됩니다.
수순대로 맹세를 시작하려던 순간이었습니다.
우웅!
한 차례 이명이 울려 퍼지더니, 눈앞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붉은빛 마나가 피어올랐습니다.
그것이 공간 이동 마법의 전조라는 것을 알아차린 기사들은 황급히 경계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제 옆에 서 있었던 라파헬로 경도 어느새 움직여 황제 폐하와 아제스트 님의 앞을 가로막고 섰으며, 저 또한 검을 뽑아 들며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사상 초유의 사태입니다.
하필이면 각국의 귀빈들이 자리한 황위 계승식에 침입자라니.
고요했던 회랑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바보가…….”
하지만 로맨티카 님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그저 골치 아프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몇몇 귀빈들도 기대감 어린 시선을 보낼 뿐이었습니다.
사실 저를 포함한 다른 기사분들도 그저 형식상 움직인 것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서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건 단 한 명뿐이거든요.
우우웅!
이내 일그러진 공간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습니다.
“너무 늦은 건 아니지?”
밤하늘과 같은 흑발을 가진 사내입니다.
데지르 아르망.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소란스러웠던 분위기가 한층 더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내게 귀띔했던 것보다 조금 늦긴 했다만…….”
길티안 황제 폐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본 계승식이 아직 시작하지 않았으니 괜찮네.”
황위 계승식이 진행되던 도중 난입한 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기분이 상하신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데지르 님이 하고 계신 일을 생각하고 충분히 그럴 만하긴 하죠.
“데지르 님!”
저는 현 상황과 제 입장을 잊은 채 데지르 님을 향해 체중을 실어 안겨 들었습니다.
“자, 잠깐. 무겁잖아, 프람.”
“일부러 그런 거예요!”
늦게 온 벌입니다. 황제 폐하는 용서하셨을지 몰라도, 저는 용서 못 해요.
“바보. 이런 자리까지 지각하기는.”
로맨티카 님 또한 저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차진 소리가 날 정도로 데지르 님의 등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쳤습니다.
“미안. 일이 생각보다 늦어져서 말이야.”
그에 데지르 님은 멋쩍은 듯 웃으셨습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아제스트 님을 바라봤습니다.
아제스트 님은 시선이 마주치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따스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슬며시 움직이는 입. 소리는 없었지만 그 내용을 아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고마워, 와 줘서.
데지르 님 또한 그에 소리 없이 대답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야.
소란이 잠잠해지자 황위 계승식은 다시 이어졌습니다.
저는 데지르 님과 로맨티카 님의 손을 붙잡고, 두 사람과 아제스트 님을 번갈아 바라봤습니다.
“……행복하네요.”
“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냥요. 헤헤헤.”
데지르 님은 그런 저를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제 머리카락을 헤집어 놓았습니다.
저는 가만히 그 온기를 만끽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언젠가.
몹시 외롭고 슬펐던 적이 있습니다.
가족들의 온기가 그리웠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외롭지 않습니다.
슬프지도 않습니다.
지금의 제게는 가족과도 같은 분들이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