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okie in the Baseball Team is Too Good RAW novel - Chapter (589)
야구단 신입이 너무 잘함 589화(589/590)
야구단 신입이 너무 잘함 589화
123장 때늦은 사랑이라도(3)
서울 지하철 양재역 3번 출구로 나와 걸어서 대략 5분 거리.
이곳에는 한국 프로야구 리그 사무국, 소위 [도곡동 야구회관]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국 프로야구의 전반적인 운영을 책임지는 곳이고, 실행위 같은 회의가 열리기도 하고. 여러모로 한국 야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바로 그곳.
“…….”
솔직히 말하면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비해 그리 멋들어진 건물은 아니었다.
뉴욕 한복판, 그 유명한 타임즈 스퀘어 근처에 우뚝 솟아 있는 메이저리그 사무국과는 달리, 도곡동 야구회관은 서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7층짜리 낡은 빌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일까 싶기도 했다. 저 멀리 한국 프로야구의 로고가 보이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지섭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으니까.
KH 캐논즈의 단장을 맡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실감이 나기도 하고, 언젠가 서창기 단장과 함께 이곳을 찾았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여기에 무엇보다, 야구회관 입구에서 만난 이 사람을 빼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섭…… 아니지, 김 단장님!”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세상 반가운 얼굴로 다가오는 이 사람.
그는 바로 ‘검은 커튼 차차’, 차윤진 전(前) 운영팀장이었다.
이제는 캐논즈를 떠나 진양 벅스의 단장이 되셨으니, 차 단장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겠지만 말이다.
“아아, 단장님!”
지섭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아휴, 제가 진작 찾아뵈었어야 하는 건데…….”
“하하, 김 단장님? 우리 서로 불가능한 일로 미안해하지 말자고요. 김 단장이 어떻게 날 만나러 오겠어? 바쁜 거 뻔히 아는데.”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은 그대로였지만, 검은 커튼 차차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아 보였다.
오래전 함께 현장을 누비던 후배를 이렇게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반가웠던 모양.
“어때요, 요즘 정신없죠? 메이저리그에 비하면 한국 프로야구는 완전 주먹구구로 느껴질 텐데?”
“에이, 아닙니다. 예전보다는 체계가 많이 잡혔던데요? 전력분석의 수준도 높아졌고요.”
여기서 지섭은 슬쩍, 선배를 띄워주는 한마디를 던졌다.
“차 선배님께서 캐논즈의 기틀을 아주 잘 마련해 주신 덕분에, 제가 편하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틀은 무슨! 우리 김 단장님, 미국 다녀오시더니 능글능글한 게 더 심해지셨네?”
말은 그리하면서도, 기분 좋은 표정으로 지섭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는 검은 커튼 차차.
그렇게 인사도 나누고, 선수들 이야기도 하고, 은근슬쩍 상대 구단의 상황을 찔러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도곡동 야구회관의 문을 열고 들어서던 바로 그때.
“으음?”
지섭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야구회관 1층 로비 한가운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한 사람이 서 있었던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여러분, 새해엔 대박이 나실 겁니다! 하하하하!”
무대 의상이라고 보아야 할까.
반짝이가 잔뜩 들어간 양복 재킷을 입고 서서, 아주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있는 중년의 남자.
처음에는 살짝 긴가민가했던 지섭이었으나, 그리 오래지 않아 남자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저는 이번 시즌부터 한국 프로야구의 홍보대사를 맡은…….”
그는 특유의 볼 하트를 선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가수 남궁찬입니다!!!”
그랬다. 트로트 가수 남궁찬.
지섭의 어머니, 진영화 여사님께서 요즘 아주 푹 빠져 지낸다는 바로 그 가수.
어머니의 표현에 따르면 당신의 ‘최애’, 그 실물을 마주한 지섭은 얼른 가방 안에 손을 찔러넣었다.
‘싸인, 싸인을 받아야 하는데…….’
밖에서는 나름 능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집에만 가면 무심하다며 타박을 듣는 김씨 집안 둘째 아들이었다.
이럴 때 저 남궁찬 아저씨의 싸인을 한 장 받아가면, 그동안 까먹은 점수를 단박에 만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가방 안에는 포장을 뜯지 않은 공인구가 하나. 지섭은 속으로 ‘옳지’ 하면서 얼른 공을 꺼내 들었다.
마침 남궁찬 씨도 지섭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했다. 그가 더없이 다정한 표정으로 지섭을 향해 다가오던 바로 그때.
“어머나,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등 뒤에 서 있던 검은 커튼 차차가 지섭의 팔을 붙잡았다.
“김 단장님, 조금 서두르는 게 좋겠네요. 미적거리다간 우리만 지각을 할지도 모르겠어.”
“예? 오늘 회의는 10시부터 아니었습니…….”
아아.
차 단장의 두 눈을 바라본 지섭은 순간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아, 그렇죠?”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지섭.
들고 있던 공을 슬그머니 가방 안에 집어넣으며, 지섭은 말을 잇고 있었다.
“그, 그럼…… 바로 올라갈까요?”
* * *
지섭이 차윤진 단장의 두 눈을 보았을 때, 그의 귓가로 들려온 속마음은 다음과 같았다.
[아휴, 얘는 또 왜 이러지?] [남궁찬 소문도 못 들었나?]당혹스러움, 또 약간은 불편한 기색이 그대로 느껴졌던 목소리.
검은 커튼 차차는 왜 남궁찬을 껄끄러워하는가. 또 그를 둘러싼 소문이라는 건 무엇을 의미하나.
지섭이 이에 대한 해답을 듣게 된 것은 실행위가 열리는 회의실 안에 들어온 직후였다.
“김 단장님, 트로트 좋아했어요?”
회의실에 들어와 한숨 돌리자마자, 검은 커튼 차차가 말을 꺼냈던 것이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지섭이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자, 차 단장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랬구나? 하긴 요즘 그 양반 인기가 대단하긴 하지.”
입맛을 쩝 다시는 차 단장.
“그럼 이렇게 해요. 남궁찬 싸인은 내가 사무국 직원에게 살짝 부탁을 해둘 테니까, 나중에 실행위 끝나고 받아가요. 그게 나을 거야.”
“아아, 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마는…….”
지섭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배님, 왜 그러십니까? 남궁찬이랑 얼굴을 마주하면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는 건가요?”
“글쎄, 안 좋은 일이라기보다는 귀찮은 일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차차는 가방을 내려놓으면 휴우, 길게 한숨을 내리쉬었다.
“어머님이 남궁찬을 좋아하신다고 했죠? 그럼 혹시 들어봤어요? 남궁찬 아들이 프로야구 선수였거든.”
“아아, 그렇습니까?”
언뜻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눈을 끔벅이던 지섭은 뺨을 긁으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남궁? 성이 남궁인 야구선수가 있었던가요? 저는 어째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어, 몰랐어요? 남궁찬은 예명이야. 본명은 양…… 뭐시기였는데 정확히는 모르겠고.”
뭐, 어쨌든.
차 단장은 손을 내저었다.
“그 남궁찬 씨 아들이 양우형이라고 3년 전까지 유성 워리어스에서 뛰었어요. 포지션은 유격수였고.”
“아, 양우형? 양우형 선수라면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네요.”
지섭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언제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시범 경기에서 홈런 1위를 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공격형 유격수가 등장했다고 기사가 막 쏟아졌던 것 같은데요.”
“음, 아마 맞을 거예요. 한 방은 있는 선수였거든. 유격수 수비도 곧잘 하는 편이었고.”
유성 워리어스에서도 나름 큰 기대를 걸었던 유망주라고 했다.
한 방이 있는 유격수.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보기 드문 유형이었으니까.
개인 트레이너를 붙여주기도 하고, 미국 사설 트레이닝 센터에 파견을 보내기도 하고.
그렇게 육성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돌아온 성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 같았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구단과 갈등이 좀 있었던 모양이에요. 선수가 원하는 방향과 구단이 원하는 방향에 차이가 있었다던가.”
드문 케이스는 아니었다.
선수의 시각과 구단의 시각은 언제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니까.
어떻게든 절충점을 찾아야 하는 일이었지만, 양우형 선수도 유성 워리어스도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아하, 그렇게 되었군요.”
지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남궁찬 씨는 방출당한 아들의 재취직을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 뭐 그런 상황인 겁니까?”
“그런 셈이죠. 사실 오래되었어. 실행위가 열리는 날이면 야구회관에 와서 지라시를 돌리고, 감독이나 코치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한번 붙잡히면 아주 끈덕지게 달라붙는 통에, 단장들이 아주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 같았다. 한 번만 기회를 달라, 육성 선수라도 좋다, 눈물까지 막 흩뿌리는 그 모습에 진절머리를 치고 있다던가.
어쩌면 이번 시즌 한국 프로야구의 홍보대사를 맡은 것도 실제로는 아들의 재취업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는 듯했다.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냐.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는데, 방출을 당한 아들을 어떻게 그냥 두고 보겠어요? 게다가 본인은 요즘 아주 끗발 날리는 인기 가수고.”
하지만,
벌써 3년이나 되었잖아요?
검은 커튼 차차는 한숨을 쉬었다.
“방출을 당한 지 3년이나 되었고, 그동안 영입제안을 받은 팀이 한 곳도 없었다면, 이제는 슬슬 포기를 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어쨌든 조심하세요.
차윤진 단장이 씁쓸하게 말했다.
“최대한 걸리지 않도록. 남궁찬이 보기에 김 단장님은 마지막 기회로 여겨질 수도 있을 테니까.”
* * *
실행위원회가 마무리된 것은 이날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프링 캠프 잘 다녀오시고요!”
원래는 점심 식사라도 하고 헤어지는 게 관례였지만, 이날은 그런 행사가 열리지 않았다.
FA 시장이다 방출 선수 영입이다 해서 기자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는 시점이었으니까.
괜히 식사 자리라도 가졌다는 뜬소문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그래서 단장들은 실행위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부리나케 흩어지는 모양새.
그리고 지섭은 리그 사무국 안내 데스크에서 검은 커튼 차차가 준비해준 ‘선물’을 받아들고 있었다.
“아아, 남궁찬 씨의 싸인 말씀이시죠? 예, 여기 있습니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네는 사무국 직원.
그 안에는 요즘 최고 인기 가수 남궁찬 씨의 친필 싸인이 얌전히 들어 있었다.
[진영화 씨, 건강하세요! 당신의 최애, 트로트 가수 남궁찬]싸인을 확인한 지섭의 얼굴에는 뿌듯한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어머니 이름까지 들어간 싸인 한 장. 이로써 나는 불효자 소리를 당분간 면할 수 있겠구나.
휘파람까지 불면서 싸인지를 챙겨 넣으려던 찰나, 봉투 안에 무언가 하나 더 들어 있는 게 보였다.
“이건…….”
지라시였다. 광고지 말이다.
남궁찬이 아들의 재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뿌리고 다닌다는 그것.
지섭이 싸인을 요청해 왔다는 소식에, 남궁찬은 이 지라시까지 한 장 넣어둔 모양이었다.
“흐음.”
엄밀히 말하면, 그냥 슬쩍 보고 넘겨도 되는 일이었다.
방출 선수, 그것도 이미 3년 전에 방출을 당한 선수다.
차차의 말마따나 재취업을 희망한다는 건 터무니없는 이야기.
그러나 이때 지섭은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지라시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양우형의 야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양우형은 아직 여러분께 보여드릴 것이 많습니다!]아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한 남궁찬의 사진을 배경으로, 굵은 글씨로 적혀 있는 광고 멘트.
그 밑으로는 양우형의 약력과 커리어 하이라이트가 적혀 있었으나, 사실 그건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섭이 주목했던 건 그 아랫단에 적혀 있던 바로 이 멘트.
[양우형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유틸리티 플레이어다. 한국의 벤 조브리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드라이브 라인 대표 존 커슨] [내야 전 포지션은 물론, 외야까지 커버할 수 있다는 게 큰 메리트입니다. 슈퍼 유틸리티의 자질을 타고났습니다. – 브리즈번 밴디츠 감독 데이빗 닐슨]미국 최대의 사설 트레이닝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이브 라인, 그리고 호주 야구 리그의 단골 우승팀 브리즈번 밴디츠.
두 곳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남겨준 멘트에, 지섭은 아주 살짝 흥미가 동했던 것이다.
‘한국의 벤 조브리스트라고?’
검은 커튼 차차는 그런 이야기를 언급한 바 없었다.
서양인들 특유의 립서비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고.
그러나 ‘슈퍼 유틸리티’라는 단어가 어디 쉽게 나오는 것이었던가. 지섭이 마른 입술을 혓바닥으로 훑고 있던 바로 그때.
“영산 고개 철쭉꽃은 피어났건만, 떠나가신 내 님은 소식이 없네~”
등 뒤에서 들려오는 KH 캐논즈의 응원가, ‘영산 고갯길’의 노랫소리.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구성진 그 노랫소리에, 지섭은 홀린 듯이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