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okie in the Baseball Team is Too Good RAW novel - Chapter (590)
야구단 신입이 너무 잘함 590화(590/590)
야구단 신입이 너무 잘함 590화
123장 때늦은 사랑이라도(4)
여기서만 살짝 공개하자면,
탬파베이 레이스의 구단주 대행 존 라마 테일러는 고등학생 시절 가수 데뷔를 꿈꾼 적이 있었다.
장르는 R&B. 아버지의 벼락같은 호통에 포기하긴 했지만, 플로리다의 저스틴 비버를 목표로 연예 기획사에 이력서를 내기도 했다던가.
사실 존 라마 정도면 키도 크고 생긴 것도 멀끔했다. 가끔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면 음색도 썩 나쁘지 않았고.
때문에 지섭은 조금 아깝게 느꼈던 것 같다. 좀 더 해보지. 제법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지섭이었으나-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KH 캐논즈의 단장으로서 도곡동 야구회관을 찾았던 이 날.
보다 정확히는 실행위를 마치고 안내 데스크에서 사인 한 장을 챙겨 나오던 바로 그 타이밍.
지섭은 존 라마에 대한 과거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틀려먹었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영산 고개 철쭉꽃은 피어났건만, 떠나가신 내 님은 소식이 없네~”
아, 가수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야구랑 똑같구나. 프로와 아마추어는 아예 차원이 다르네.
지섭에게 이런 깨달음을 전해준 사람. 존 라마의 가수 포기가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알려준 사람.
그는 다름 아닌,
트로트 가수 남궁찬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무대도 없고 반주도 없었다. 야구회관 1층 로비에서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즉흥 공연.
그럼에도 사람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이끌어낸 가수 남궁찬 씨는 지섭을 향해 천천히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김지섭 단장님.”
그는 깍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단장님과의 첫 만남을 기념하는 의미로다가, 캐논즈의 응원가 ‘영산 고갯길’을 불러보았는데……. 어떻게, 마음에 드셨나 모르겠습니다.”
“아하, 그런 의미였군요.”
지섭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잘 들었습니다. 야구장에서 팬 여러분들의 떼창으로 듣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네요.”
“그럼은요! 원래는 아주 절절한 사랑 노래였으니까요. 이 노래가 야구장 응원가로 쓰일 줄은 아무도 예상을 못 했을 겁니다. 하하하!”
그러면서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하는 트로트 업계의 인기 가수.
지섭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의 답례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절 기다리고 계셨던 겁니까?”
“그런 셈이지요.”
남궁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인사를 나누기 위함은 아니었을 것이고……. 역시 아드님과 관련된 문제인가 보네요?”
“허허, 소문대로 아주 날카로우시군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여태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로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던 남궁찬 씨.
그가 별안간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인 것은 바로 이때의 일이었다.
“단장님, 제 아들 녀석을 한번 만나주셨으면 합니다. 입단 테스트의 방식이라면 더욱 좋겠고요.”
“아하.”
사실 처음부터 어렴풋이 짐작을 하고 있던 일이었다.
아들의 재취업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는 남궁찬 씨. 그런 그가 지섭을 그냥 보내줄 리 없지 않겠는가.
다만 이때 지섭은 아주 옅은 미소를 보이고 있었는데, 그것은 이 인기 트로트 가수의 태도가 예상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협상의 전략을 수정하신 겁니까?”
그래도 상대는 스무 살 가까이 연상이었다. 지섭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남궁찬을 부르고 있었다.
“협상의 전략…… 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다른 구단 단장님들께는 눈물로 호소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저는 예외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랬다. 이때 남궁찬의 태도는 무척이나 당당했다.
어깨도 쫘악 펴고, 눈에도 힘이 팍 들어가 있었고.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거나 눈물을 흩뿌릴 것 같지는 않은 모습.
“아아, 그게 말입니다.”
지섭의 물음에 남궁찬은 더욱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간 눈물로 호소하는 작전이 통하지 않았던 것도 있고, 무엇보다…… 김 단장님은 미국에서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말입니다.”
그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미국 사회는 철저히 기브 앤 테이크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감정에 기대기보다는 적절한 교환 조건을 제시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말이지요.”
“아하, 적절한 교환 조건! 확실히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표현이긴 합니다만…….”
흥미가 동한 지섭은 어느새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어떤 조건입니까? 아드님……. 그러니까 양우형 선수의 입단 테스트를 성사시켜드리면, 저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건가요?”
“장담하지요. 분명 단장님 마음에 드실 겁니다.”
남궁찬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진 걸 확인한 다음, 한껏 목소리를 낮추면서 말을 이었다.
“단장님, KH 캐논즈의 대표 응원가 ‘영산 고갯길’의 원작자가 누구인지…… 혹시 알고 계시는지요?”
“원작자? 글쎄요? 언젠가 한 번 들은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만.”
지섭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남궁찬의 얼굴에 참으로 의미심장한 표정이 떠올랐다.
“양만호라는 친구입니다.”
“양만호?”
“그렇습니다. 제 잘난 맛에 취해 살다가 아들내미 교육도 제대로 못 시킨 등신 같은 놈이었는데……. 그 친구가 젊은 시절 운 좋게 하나 작곡해 낸 노래가 바로 영산 고갯길이랍니다.”
남궁찬이 말을 이었다.
“발표하던 당시에는 완전히 망한 노래였지요. 곡을 받아 부른 가수도 흑역사 취급을 했고요. 하지만 KH 캐논즈가 생기면서 재발견이 되었고, 그 등신 같은 놈도 지금까지 저작권료를 쏠쏠하게 챙겨가고 있다던가.”
“아하, 일이 그렇게 되었군요.”
지섭의 입가에도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양만호 씨의 의사에 따라, 우리 캐논즈에서 매년 지급하고 있는 저작권료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겠네요?”
“하하! 또 모르는 일이지요, 아예 공짜가 되는 그림도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남궁찬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 양만호라는 친구의 아들이……. 단장님으로부터 적절한 대우를 받게 된다면 말입니다.”
* * *
지섭이 트로트 가수 남궁찬, 아니, ‘영산 고갯길’ 원작자 양만호 씨와의 협상 결과를 가지고 돌아온 것은 이날 오후 4시 무렵의 일이었다.
지섭은 KH 라이프 스타디움에 들어서자마자 팀장급 회의를 소집했고, 그렇게 단장실에 모인 사람들은 예상대로 아주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단장님, 그럼 뭡니까. 결국 양우형 선수의 입단 테스트를 허락하셨다는 건가요?!”
육성팀장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저는 솔직히 반대입니다. 양우형 선수는 현재 독립리그에서 뛰고 있어요. 게다가 올해는 플레잉 코치로 뛰었다더군요. 이게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양우형 본인도 현역에 대한 의지를 절반쯤 접었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전력분석팀장도 심각한 표정으로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평소의 단장님답지 않으십니다. 항상 공정하게 팀을 운영해 오셨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유명 가수라는 이유로 입단 테스트를 허용하시다니…….”
그는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왔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팀 분위기에도 썩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 겁니다. 뭐 언론이라고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사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의견이었고, 이에 대한 반론도 어느 정도 준비해 두었던 지섭이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다르게, 이날만큼은 지섭이 입술을 떼어놓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아휴, 이 답답한 사람들! 내가 속이 터져서 못 살겠네, 정말!!!”
책상을 쾅 내리치면서 몸을 일으키는 것은 마케팅 팀장이었다.
“최 팀장님, 이 팀장님! 방금 단장님 말씀 못 들으셨어요? ‘영산 고갯길’ 원작자라잖아, 영산 고갯길!!!”
마케팅팀에서는 구단 응원가의 저작권료를 관할하고 있었다.
KH 캐논즈 최고 인기 응원가의 저작권자가 나타났으니, 마케팅팀장은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어디 ‘영산 고갯길’뿐인 줄 아세요? 남궁찬의 ‘김치 싸대기’는 이수빈 선수 응원가고, ‘전국구 사랑’은 심성준 선수의 응원가라고요!”
‘김치 싸대기’가 우리 구단에서도 쓰이고 있었어?
지섭은 문득 원곡이 궁금해졌지만, 그런 걸 물어볼 타이밍은 아닌 듯했다.
“단장님께서 제안을 받아주지 않으셨다면, 당장 내년에 응원가 루틴이 다 꼬일 판이었는데……. 진짜, 자기 일 아니라고 너무들 하시네!”
“맞습니다. 게다가 1년에 들어가는 저작권료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지요.”
이번에는 재무팀장이었다.
평소에는 입을 굳게 다물고 한마디도 안 하는 그였지만, 이때만큼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입단 테스트를 허용하는 것만으로도 저작권료의 재협상이 가능해진다면 당연히 받아들였어야 하는 것이라 봅니다. 이번에는 단장님이 옳은 결정을 하셨어요.”
“하, 하지만…….”
입단 테스트도 구단의 자원이 소모되는 일 아니냐, 육성팀장과 전력분석팀장은 입을 쭈욱 내밀면서 투덜거리고.
이럴 때 예산을 아껴야지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마케팅팀장과 재무팀장은 책상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고.
이거 잘하면 남궁찬이 시구하러 올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홍보팀장 권대웅 씨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가운데-
“저기…… 단장님?”
단장실 안이 그야말로 시끌벅적. 아주 정신이 없던 바로 그때, 박명훈 운영팀장이 지섭에게 살짝 말을 걸어왔다.
“예.”
“단장님은 어느 쪽이십니까?”
박 팀장은 지섭의 노림수를 보다 정확히 알고 싶은 듯한 눈치였다.
“회의에 들어오기 전에 잠시 확인을 해보았는데……. 분명 양우형 선수, 호주 프로야구에서는 슈퍼 유틸리티급 활약을 보인 경력이 있더군요. 유성 워리어스 측에선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듯하지만.”
그는 혓바닥으로 마른 입술을 한번 훑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전의 일이고, 양우형 선수는 이미 3년 전부터 독립리그에서 뛰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저도 판단이 쉽진 않습니다만…….”
박 팀장이 지섭을 보았다.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고 계시는 겁니까? 양우형 선수의 자질을 한번 테스트해 보고 싶으신 건가요? 아니면 남궁찬…… 아니, 양만호 씨의 저작권에 좀 더 관심이 있으신 건가요?”
운영팀장의 질문에 지섭은 한동안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굳게 다문 채로, 여전히 격렬한 토론을 이어나가고 있던 동료들을 바라보았을 뿐.
그러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던 것이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물론이지요. 단장님의 생각을 알아야 저도 발맞추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니까요.”
어느덧 자신의 든든한 지원자가 된 박 팀장을 보며, 지섭은 옅은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톡 까놓고 말씀드리자면……. 사실 오지랖에 가깝습니다.”
“오지랖?”
박 팀장도 예상치 못한 답변인 듯했다.
“그렇습니다. 한 명의 아버지에 대한 오지랖, 그의 때늦은 사랑에 대한 오지랖.”
지섭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들에 대한 남궁찬 씨의 마음을…… 어떤 형식으로든 정리를 해주고 싶어져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