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occer genius becomes a great coach RAW novel - Chapter (1)
1. 재능의 대가(1)
-신은 그에게 불세출의 재능을 준 대신 그것을 펼칠 그릇을 앗아 갔습니다.
불세출의 천재.
동양에서 온 이레귤러.
악마의 재능.
모두 나를 가리키는 수식어였다. 두 번의 큰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는.
타다다닷—.
뻐엉—!
철렁—!
골망에 꽂히는 아름다운 슈팅을 보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럽네···.”
필드에서 열성적으로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을 보고 있자니 부러운 마음이 떠나질 않았다. 나도 저렇게 뛸 수 있는데.
아니, 저것보다 훨씬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데.
“옛날 얘기일 뿐이지.”
필드에서 뛰고 있는 저 선수들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외교관으로 일하신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가서 우연찮게 내 재능을 알게 되어 프리미어리그 유스팀에 들어가, 19살이 되던 해인 2022년. 첼시에서 화려하게 데뷔했었다.
말도 안 되는 주력과 드리블 능력. 아시아에서 온 이레귤러라는 별명을 들으며 프리미어리그에 내 존재를 단단히 각인시킬 때만 하더라도 내 축구 인생은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다.
발목 부상과 전방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맨 처음 발목 부상은 나의 무리한 드리블 때문이었다. 심각한 발목의 손상으로 나는 원래의 스타일을 유지할 수 없었다. 주력이 줄고 드리블 능력이 저하되었기 때문에.
그러나, 내게 주어진 재능은 신체적인 것뿐만이 아니었다. 현대 축구가 발전할수록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능력.
‘축구 지능.’
프로 데뷔 1년 차에 이레귤러라는 극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화려한 개인기와 돌파 능력에 뛰어난 축구 지능과 전술 이해도가 덧씌워졌기 때문이었다.
부상으로 인해 폭발적인 드리블과 속도를 낼 수는 없었지만, 내 축구 지능과 전술 이해도는 여전히 나에게 큰 무기가 되어 주었고, 나는 스타일을 바꿔 중원에서 플레이메이킹을 도맡아 하며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내게 내려진 재능이 너무 과해서 그걸 거두어 간 것일까?
전방십자인대파열이라는 심각한 부상이 내게 다시 한번 찾아왔다. 그때 나의 나이는 고작 22살. 선수 생명이 한참 남은 창창한 선수였던 나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었다.
‘그때부터는 뭐···. 저니맨 신세가 되고 말았지.’
첼시에서 스페인의 발렌시아로. 또, 발렌시아에서 마요르카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독일로 건너가 마인츠에 몸담게 되었다.
부상과 재활로 날린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각 팀에서 경기에 나선 시간은 무척이나 짧았고, 나를 안타깝게 여긴 각 팀의 감독님들은 내게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할 것을 권했다. 그렇게 이른 나이인 26살에 은퇴하기 직전, 나는 UEFA P 라이센스까지 취득할 수 있게 되었었다.
좋은 두뇌와 운이 겹쳐져 이른 시간에 취득하게 된 P 라이센스. 지도자로서 성공하겠다는 결심과 함께 빠른 은퇴 후 마인츠에서 코치직을 시작했지만···.
“X발. 감독 경질에 왜 나까지···.”
팀의 강등이라는 최악의 결과에 구단에서는 감독 경질과 함께 코치진을 싸그리 물갈이하는 강경책을 내세웠고, 나는 그 결단에 하루아침에 나가리되고 말았다.
그 뒤로 1년. 2030년의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K2 리그에 속한 서울 유나이티드의 1군 코치로 합류해 여전히 축구계에 몸담고 있었다.
커리어라고 할 것도 별로 없는 코치였지만 UEFA 자격증이 한몫한 것인지 구단에서는 쌍수를 들고 나를 환영했고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나는 1군 선수들을 지도하는 코치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하긴, P 라이센스면 조건만 따졌을 때 아무 팀에나 갈 수 있는 자격이었으니.
“하. 남들은 전성기의 초입에 들기 시작하는 나이인데. 나는 뛸 수가 없다니.”
스물일곱.
대게 선수들이 전성기에 접어드는 나이였다. 만약, 두 번의 부상을 피할 수 있었다면 나 역시 전성기에 접어들어 유럽 무대에서 팔팔하게 뛰어다니고 있었겠지.
“하준아, 김하준!”
“네. 듣고 있어요.”
벤치에 앉아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다급하게 부르는 이는 바로 감독님이었다. 서울 유나이티드를 이끄는 정인우 감독. 선수 시절 대한민국 4강 신화의 주축 중 한 명으로 한국 축구계에서 입지가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전술적인 안목은 형편없는 인물이었다.
“1:0으로 끌려가고 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뾰족한 수가 없겠냐?”
뾰족한 수라.
나는 헛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 양반이 뭘 잘못 먹었나? 평소에 UEFA 라이센스가 뭐 별거냐며 내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양반이 나에게 다급히 조언을 구할 정도라니.
‘하긴. 제 밥줄이 걸려 있으니.’
지난 시즌, K1에서 강등당해 K2로 떨어지게 되면서 감독 자리가 위태위태해진 데다, 이번 시즌마저도 성적이 좋지 않으니 경질설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정인우 감독이었다.
얼마 전, 수석코치와의 마찰로 인해 수석코치가 팀을 떠났으니 전술 논의를 할 만한 사람은 나를 비롯해 일반 1군 코치들뿐이었지만, 전술적으로 제대로 된 논의를 할 만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코치들을 학연·지연으로만 뽑아 놓은 결과였다.
“안양의 중앙 수비들은 발이 느리고 반응속도가 늦죠. 또한, 좌우 풀백들이 오버래핑 빈도가 잦아서 수비 복귀도 늦어지구요.”
나는 정인우 감독을 쳐다보지 않은 채, 그라운드 상황을 계속 응시하며 말했다.
“아니,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건지를 말해 보게! 선진 축구를 배워 왔으면 알 것 아닌가!”
이 인간은 꼭 이런 상황에서만 선진 축구 운운하고 난리였다. 평소에는 무슨 자격지심인지 UEFA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는 인간이.
“하프 스페이스를 노려야 합니다. 풀백들의 복귀가 늦기 때문에 저 느린 중앙 수비를 상대로 우리가 충분히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테죠.”
물론 공을 뺏어 역습을 진행한다는 전제하였지만 말이다.
“그래! 그거야! 하프 스페이스가 중요한 것은 이미 10년 전부터 대두되곤 했었지!”
정인우 감독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선수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말을 더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정인우 감독이 내 말을 들을지도 의문이거니와, 지금 필드 위의 선발 라인업은 그것을 수행할 능력도 없을 테니.
“최대한 빨리 공을 빼앗아!”
하프 스페이스로 침투를 하던, 소위 뻥축구라 불리는 킥앤러쉬를 하던 결국에는 볼 소유권을 가졌을 때 할 수 있는 법. 정인우 감독은 상대에게서 공을 빼앗아 올 것을 주문하였지만.
‘글쎄, 안 될걸.’
장담한다.
현재 우리 팀의 라인업으로는 상대에게서 공을 빼앗아 올 수 없다. 2부라고는 하나, 명색이 프로팀인데 선발 라인업은 온통,
‘감독과 연줄이 있는 녀석들로만 채워져 있으니.’
감독의 지인들의 자식이거나 한 다리 걸쳐 있는 녀석들이 주전을 꿰차고 있다 보니, 나는 이 팀에 기대할 것이 없었다.
그저, 급여만 받으면 될 뿐.
뻐엉—!
철렁!
“이런, X발! 뭐 하는 거야! 제대로 안 막아? 아아악!”
체계 없는 압박은 상대에게 빈틈을 노출할 뿐이었고, 그 상태로 한 골을 더 먹혀 스코어는 2:0이 되었다.
‘전술 훈련도 개판. 선수 개개인의 능력도 개판. 이기는 게 이상하지.’
나는 한숨을 쉬며 필드를 바라봤다.
X발.
부상만 아니었어도 무대를 호령하고 있었을 텐데.
* * *
삑삑삑삑.
띠리링—.
경기가 끝난 후, 나는 빠르게 퇴근길에 올라 사는 오피스텔의 문을 열었다. 서울 역세권에 미친 가격을 띠고 있지만, 평수는 해봐야 5평. 유럽에서의 생활과 너무 괴리감이 있어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
“하아···. 마인츠에서 잘릴 때만 하더라도 한국에선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빨리 취득해도 30살이 넘어야 취득할 수 있다는 UEFA P 라이센스를 굉장히 이른 나이에 취득하고 마인츠에서 코치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지금의 내 상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적당히 코치로 경험을 쌓고, 감독직을 찾아 떠나려고 했건만.
마인츠에서는 물갈이 대상자로 감독과 함께 잘려버리고, 한국으로 넘어와서는···.
“인맥. 개 같은, 그놈의 인맥. 아오. X발.”
유스부터 프로까지. 짧았던 선수 생활 내내 유럽에만 있었던 내가, 한국에 인맥이 존재할 리 만무했고, 여러 구단에서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나의 코치 선임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다 내 지도자 자격증과 선수 데뷔 시즌의 모습을 기억한 현 구단의 구단주가 나를 거둬 주긴 했으나,
‘내부가 썩은 팀을 어떻게 상위로 끌어올리란 말이야.’
감독부터가 글러 먹은 탓에, 선수단의 기강 또한 개판이었다. 길게 산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개판인 팀은 맹세컨대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이 팀에 붙어 있는 이유.
“별수 있나. 먹고 살아야 하는데.”
먹고 살아야 하니까.
단지 이 이유 하나뿐이었다. 물론 약 7년간 유럽 각지의 1부리그에서 선수 생활 같지 않은 선수 생활이라도 했던 터라 모아 둔 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 돈으로 집도 못 살 정도일 줄은 몰랐지.”
세계적으로 집값이 폭등한 게 벌써 10년 전. 구단에서 제공하던 집에서만 생활했던 나는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또, 선수 시절 부상 스트레스를 해소한답시고 사치를 부리기도 했었고. 그러다 보니 내게 남은 돈은 10억. 적은 돈은 아니었으나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뭐, 내 명의 집과 차가 있었다면 달랐을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그러한 연유로.
이런 감독 같지도 않은 감독이 지휘하는 팀에라도 붙어 있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에휴.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뭐하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눈앞의 티비를 틀었다. 하루종일 축구로 시달리고 왔지만, 켜진 화면에서 송출되는 것은 축구 경기.
“나도 참. 미친놈이란 말이야.”
축구에 오만 정이 떨어질 법도 한데, 축구 경기를 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축구 경기에 집착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혁호! 공을 몰고 질주합니다! 빠릅니다! 빨라요오오오!
화면 속에서는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질주하는 한 명의 동양인이 포커싱 되었다.
이혁호. 한때, 나와 같이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재목으로 지목되었었다. 같이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어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파리에서 다시 한번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나와 저 녀석의 차이점이라면 부상으로 고꾸라진 나와는 다르게 여전히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뿐일 것이다.
“짜식. 여전히 잘 뛰네. 아니지, 이제 전성기에 들 나이니까 당연히 잘 뛰어야 맞는 건가? 하하···.”
속이 쓰렸다.
“······재미없네.”
삑.
나는 티비를 끄고는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물었다.
팅—!
화르르륵!
후우우우—.
방을 채우는 희뿌연 연기를 보며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촉망받던 재능을 가진 선수에서, 이런 꼴이라.
툭!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한 권의 책. 그 책의 제목은 ‘특성카피로 축구도사’.
“소설이지만 부럽네. 하, 뭐 이리 청승인지···. X발. 오늘까지만···. 내일부터는 열심히 현실을 살아가야지.”
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던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 팀이었지만, 내게 남은 마지막 재능을 가지고 팀을 부흥시킨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어쩌면 내게도 다시 유럽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지 않을까?
“그래. 선수로 실패한 거지, 축구인으로 실패한 거 아니잖아. 김하준, 정신 똑바로 차리자.”
내게 남은 마지막 재능.
남다른 축구 지능과 뛰어난 전술적 능력. 이 두 가지는 선수가 아닌, 코치나 감독으로 생활할 때도 매우 좋은 능력이었다.
즉, 아직 나에게는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얘기.
“남들은 재능이 아예 없는데도 아등바등 올라가는데, 나한테는 다른 거 다 뺏어 갔어도 머리는 남았잖아?”
치이이익—.
재떨이에 피우던 담배를 지져 끄고는 침대로 향했다.
“일단 한숨 자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 보자. 언제까지 패배자처럼 찌그러져 있을 수는 없으니.”
침대에 몸을 맡기며 나는 다짐했다. 어떻게든 성공할 거다. 인맥? 그딴 거 다 뚫고 올라갈 생각이다. 이미 라이센스는 차고 넘치는 상황. 내 능력만 입증하면 어느 팀이든 갈 수 있다.
그렇게 다짐하며 눈을 감으려는 찰나.
[‘축구의 신’이 안타까워하면서도 대견스러워합니다.]응?
축구의 신이 그냥 별명이었던 게 아니라 진짜 존재하는 거였어?
[‘축구의 신’이 통찰안을 선물로 하사합니다.]“통찰안? 그게 뭔데?”
말도 안 되는 이 현상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눈이 스르르 감기며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