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occer genius becomes a great coach RAW novel - Chapter (107)
107. 세계인의 축제(1)
시즌의 모든 일정이 종료되고, 월드컵 개막을 이 주일 앞둔 어느 날.
나는 세실리아와 함께 월드컵이 열리는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호주에 가는 건 처음인데 너무 설레네요!”
이제는 어색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관계가 되어서일까.
해사한 미소와 함께 밝은 모습을 보여 주는 그녀를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자리 비워도 되는 거예요? 일이 바쁘진 않고?”
“일에 지장 안 가게 스케쥴 조정해 놓은 상태예요. 그래서 일주일밖에 같이 못 있는걸요.”
모르긴 몰라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손해를 많이 봤을 그녀를 보고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월드컵이 아니었다면, 내가 런던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면 되는 일이었지만.
‘매물들을 직접 봐야 하니까.’
정상기가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이기도 했고, 다른 포지션도 추가 보강이 있어야 하는 만큼 월드컵 무대를 직관하며 내 왼쪽 눈으로 괜찮은 매물을 솎아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게다가, 한국의 방송사에서 조별 예선 첫 경기 객원 해설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해서 어차피 호주에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해서, 이 주일 정도 먼저 호주로 출발해 세실리아와 시간을 보내고 나는 호주로 도착할 한국의 방송사와 만나 해설 준비를 할 스케쥴을 잡아 놓은 상태였다.
‘일주일 정도는 편하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리고.
세실리아와 함께한 일주일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 김하준 감독님!”
“안녕하세요. 김하준입니다.”
떠오르는 중계 강자 듀오인 이철우, 박현준과 인사를 나눈 나는 방송사가 잡아 놓은 호텔로 이동하여 해설에 대해 입을 맞춰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보통 해설 준비를 위해서 한 달도 넘게 준비하시던데 제가 폐만 끼치는 게 아닐까….”
나의 걱정스러운 말에 이철우와 박현준이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에이, 아닙니다.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감독님이 객원 해설로 합류하기로 하자마자 저희 방송사 중계를 보겠다는 반응이 얼마나 많은데요?”
“맞습니다. 축구에 관해서는 저희보다 훨씬 더 잘 아실 테니, 멘트가 들어올 타이밍만 연습하시면 충분할 겁니다.”
“아…. 그런가요?”
“그럼요! 현재 대한민국 축구계에서 가장 핫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감독님인데요!”
저렇게까지 말을 하니 나로서도 할 말이 없어져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지만, 연습을 하면 할수록 이들이 프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아! 고오오오올! 정상기! 정상기가 환상적인 득점을 올립니다! 저 선수의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
적절한 타이밍과 탄탄한 발성, 그리고 소위 국뽕이라고 하는 울림을 주는 멘트까지.
‘음. 이거 잘할 수 있으려나.’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아무래도 밤을 새워 가며 연습에 매진해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일주일을 보내고 대한민국의 조별 예선 첫 번째 경기인 잉글랜드전 중계에 앞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몸을 푸는 선수들을 볼 수 있었다.
‘신기하네.’
예전, 월드컵 관련해서 선수 출신 해설자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 선수들을 격려하던 장면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내가 될 줄이야.
“이야! 이게 누고? 김하준이 아이가?”
“하하…. 잘 지내셨죠?”
큰 경기를 앞에 두고 긴장할 법도 하지만, 넉살 좋은 미소를 띠며 내게 다가온 최용환 감독을 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오는 건 투정 섞인 야단이었다.
“하이고, 이제 지 바쁘다고 내한텐 연락 한 통도 없더니만 여기서 다 만나뿌네.”
끄응.
“자주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이래저래 바빠서….”
“하기사. 대한민국 최고 감독이 전화할 시간이 있겄냐마는.”
삐져도 단단히 삐진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풀리려면 좀 오래 걸리겠는데?’
나 서운하다고 얼굴에 대문짝만 하게 써놓은 최용환 감독을 보며 나는 어색하게 웃고는 근처에 있는 선수들에게 눈을 돌렸다.
근처에는 내가 아는 얼굴들이 즐비했는데.
정상기와 임우정, 그리고 혁호와 명호 녀석에 서울 유나이티드 시절 세비야에서 영입했던 김채우까지 몸울 풀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나도 정상적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 나갔으면 저 자리에 있었으려나…?’
의미 없는 가정을 해 보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상념에서 깨어나는 찰나.
“감독님!”
“하준아!”
내가 온 것을 확인한 네 명의 선수들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오늘 경기 어떨 것 같아? 컨디션은?”
지난 10년간 대한민국 대표팀의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을 고려했을 때, 잉글랜드와 첫 경기를 치러야 하는 이들의 부담감은 상당할 게 분명했다.
“컨디션은 문제없어요! 잉글랜드 골망을 찢어 버릴 준비가 다 됐는데요?”
분데스리가 득점왕 타이틀을 손에 넣은 탓인지 잉글랜드와의 대결에 큰 자신감을 보이는 정상기와,
“분데스리가 득점 랭킹에 들어가 있는 선수가 두 명이나 되는 공격진인데 이름값은 제대로 해야지.”
“그래. 이제 우리는 마지막 대회니까. 너도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이번에야말로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듯 눈에 불을 켜는 혁호와 명호.
그리고.
“감독님 덕분에 중원 싸움에서는 밀리지 않을 자신 있어요.”
이제는 태극마크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임우정까지.
“그래. 다들 자신감 있어 보여서 좋네. 최 감독님 지시 잘 따라서 오늘 잉글랜드한테 이겨 줘라. 그래야 중계할 맛이 나지.”
선수들의 격려를 마치고 몇 시간 뒤, 중계석에 앉아 스탠바이 준비를 하는 중에 이철우와 박현준이 내게 승산에 관해 물어왔다.
“감독님. 잉글랜드를 상대로 우리나라가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으음….”
승산이라.
솔직히 말해서 50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21세기만 따져도 월드컵 무대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잉글랜드였지만, 현재 신계에 올라 있는 알렉스 라이트의 등장 이후.
잉글랜드는 유로 우승과 월드컵 예선 무패 등의 기록을 세우며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라이트뿐만이 아니지.’
겨울 이적시장에 내가 팀에 데려온 다넬 에니스 또한 잉글랜드 오른쪽 측면에서 다양한 활용도를 보여 주며 팀을 더 강하게 만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월드컵을 앞두고 마지막 불씨를 불태우고 있는 필 포든과 제이든 산초의 능력도 간과할 수 없었다.
“아직 카메라 안 돌아가니까 말씀드리는 거지만…. 글쎄요. 50퍼센트도 안 될 겁니다.”
“50퍼센트도 안 되는 겁니까…?”
축구 중계를 업으로 삼은 이들이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나에게 물었지만, 거짓을 말할 수는 없는 노릇.
“물론, 지난 대회나 아시안컵 때 비해서 우리 대표팀이 다시 전력이 강해진 건 사실입니다만…. 이번 잉글랜드 대표팀은 우승 후보 중 하나니까요.”
다만,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대표팀이 이기기만을 바랄 뿐.
* * *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해설자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2034 호주-뉴질랜드 월드컵 D조 대한민국 대 잉글랜드전 중계를 보내드립니다! 저는 캐스터 이철우.”
“해설 박현준.”
“그리고 김하준입니다.”
그간 내가 해 온 걱정과는 달리, 중계 자체는 매끄럽게 이어졌다.
“임우정! 임우정이 포든과의 볼 경합에서 이겨 내는 모습! 임우정이 김채우에게!”
예상외로, 이번 대회 우승 후보인 잉글랜드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는 대표팀의 모습에 내 양옆에 앉아 있는 중계진의 텐션이 높아졌다.
“아! 터치라인 아웃되는 볼! 잉글랜드의 쓰로잉이 주어지겠습니다.”
쓰로잉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잉글랜드 선수는 알렉스 라이트.
멘트를 치기 위해 입을 열려는 찰나.
‘윽…!’
내 왼쪽 눈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알렉스 라이트.
[그라운드의 마에스트로]★★★★★
포지션 적합도 : 매우 좋음.
향후 발전 가능성 : 높음.
‘뭐…?’
현재 발롱도르를 양분하며 신계에 올라 있는 알렉스 라이트는 내 예상대로 다섯 개의 별이 매겨져 있었다.
이는 예상했던 점이기 때문에 그리 놀랄 일은 없었지만,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향후 발전 가능성이라는 항목이 내 이목을 이끌었다.
‘이것도 트로피를 들고 난 다음 이루어진 업데이트인가?’
우승과 승격 등.
감독으로서 커리어에 영향을 끼치는 성적을 냈을 때 눈의 능력이 상승했던 걸로 미루어보아, 이번 포칼 우승이 영향을 끼친 것 같았다.
‘그것보다…. 여기서 더 발전한다고? 미친…!’
알렉스 라이트의 현재 나이는 27세.
전성기가 시작될 나이였지만, 20대 초반부터 미친 퍼포먼스를 보이던 선수였기에 여기서 더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문구를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자면, 최전성기 시절의 메시가 더 발전한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는데.
‘하. 운빨X망겜.’
무지막지한 상태창에 걸맞게, 이후 라이트가 보여 주는 움직임은 무쌍 그 자체였다.
툭—!
휘익! 탓! 툭!
“권명호, 라이트의 움직임을 놓치고 마는군요!”
“우리 선수들 당황하면 안 됩니다! 조직력으로 막아내야 해요!”
괜히 발롱도르 수상자가 아니라는 듯.
라이트는 혼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수비진을 찢어 버리며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럴 때일수록 공간을 내주면 안 됩니다. 라이트에게 모두가 끌려 나가면 포든과 산초가 그 자리를 헤집고 들어올 겁니다. 공간을 빼앗기면 안 돼요!”
공간을 내주면 안 된다고 내가 멘트를 치자마자,
툭—!
“어어! 라이트가 볼을 내줍니다! 아! 빈 공간으로 움직이는 필 포든!”
내가 우려하던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다.
타다닷! 투웅—. 탕! 휘익—!
“포든이 수비진을 전부 제쳤습니다!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 슈팅 각을 줄여야죠!”
뻐엉—!
“포든 슈우우우웃!”
철렁—!
와아아아아!
“선제골을 허용하고 만 대한민국.”
“괜찮습니다. 아직 전반 초반이에요. 1점 차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점수 차입니다!”
이철우와 박현준이 양옆에서 한 골 차는 만회할 수 있다며 애써 희망적인 얘기를 이어 갔지만, 나는 탄식을 금치 못했다.
“우리 선수들 집중력이 부족합니다. 아직 전반 초반인데 저런 실점은 일어나서는 안 됐어요. 라이트에게 너무 많은 선수가 쏠렸습니다. 저러면 공간이 빌 수밖에 없어요.”
* * *
“저렇게 다른 레벨의 선수를 상대할 때는 방금과 같은 모습을 보이면 안 됩니다. 볼을 잡지 못하게 고립시켜야죠, 저렇게 볼을 잡게 만든 이후에 대응하면 늦습니다.”
실시간으로 중계를 보던 한국의 축구 팬들은 직설적인 하준의 해설에 호평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간, 대표팀의 성적 부진으로 인해 방송사를 막론하고 중계진이 최대한 대표팀을 옹호하는 해설을 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김하준 말이 맞지. 1점 차가 극복할 수 있는 점수 차라는 둥 이런 희망적인 말을 할 게 아니라, 상황을 냉정하게 보는 해설이 필요했음.
-그래도 1점 차는 극복 할 수 있는 점수 차는 맞잖아.
-ㅅㅂ, 저런 식이면 순식간에 2-0, 3-0인데 무슨.
-라이트를 고립시켜야지, 저렇게 라이트가 볼 다 잡고 나서 어그로 끌리면 어떡하냐? 최용환 표정 봐라 완전 썩었네.
-최용환 표정을 보면 선수들이 당황해서 나온 움직임인 듯.
-ㅇㅇ. 최종예선이나 평가전 보면 최용환이 대표팀에 요구하는 수비는 저런 모습이 아니긴 했음.
-근데 김하준 해설 잘하누 ㄷㄷ.
-축잘알인데 당연히 해설 잘하겠지 ㅋㅋㅋㅋㅋㅋ.
-축잘알인거랑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거랑은 좀 다르지 않나?
선제 실점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은 계속해서 위험 장면을 연출하며 축구 팬들에게 고구마를 선사했고, 그와 동시에 하준의 사이다 해설이 이어지며 팬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기서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건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아마추어도 하지 않을 실수를 하고 있어요!”
“하하…. 김하준 해설 위원이 너무 답답한 모양이네요.”
-ㅋㅋㅋㅋㅋㅋ 사이다 해설 지리누 ㅋㅋㅋㅋㅋㅋㅋ.
-앜ㅋㅋㅋㅋ 옛날에 안성환 해설 보는 것 같네 ㅋㅋㅋㅋㅋㅋ.
-경기는 극혐인데 김하준 해설 때문에 본다 진짜.
-가려운 데 확실히 긁어주는 해설이네.
-ㄹㅇ 저렇게 답답해하는데 김하준이 그냥 월드컵 대신 뛰면 안 되나?
-ㄹㅇㅋㅋ.
그렇게 90분 동안 두들겨 맞은 대한민국 대표팀은 3-0이라는 스코어로 경기를 종료하게 되었는데, 경기 결과와는 별개로 이날 중계로 인해 답답해서 못 해 먹는 김하준이라는 밈이 생기게 되었는데.
마이크가 꺼지지 않은 줄 몰랐던 하준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하, X. 답답해서 못 해 먹겠네. 네? 마이크요? 아직 켜져 있다구요?”
다시는 해설로 안 부르겠네. X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