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occer genius becomes a great coach RAW novel - Chapter (144)
144. 공놀이와 가족(1)
우리의 일정은 순탄히 흘러 어느덧 4월 챔피언스리그 8강을 앞두고 있었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제대로 된 매물을 찾지 못해 아무 영입 없이 이적시장을 마감했지만, 리그에서는 여전히 압도적인 1위를 수성 중이었다.
리그컵과 FA컵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어찌 됐든, 제일 중요한 대회라고 할 수 있는 챔피언스리그와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중이라 두 개의 컵대회에서 탈락한 사실은 내게 그리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다만.
“하필 이때 부상이라….”
8강 1차전을 앞둔 현재.
임우정과 캐슬다인이 경미한 부상을 입어 1차전에 출전이 불가능하다는 의료팀의 연락을 받은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주전 선수들 중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는 둘의 이탈로 전술 변경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찰나.
똑똑—.
“네. 들어오세요.”
끼이익—.
내 허락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는 다름 아닌 스테판 데 니프.
“안녕하세요, 감독님.”
“그래. 무슨 일이지, 스테판?”
면담 시간이 아니고서는 굳이 찾아오지 않는 녀석이 찾아오다니.
나는 홍차를 우린 주전자를 들고 녀석의 잔에 차를 부으며 말했다.
“고민거리라도?”
내 물음에 녀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본 나는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무슨 고민이길래 섣불리 말을 못 해?”
거듭된 나의 재촉에 한숨을 내쉰 녀석이 겨우 입을 떼기 시작했다.
“저…. 이번 8강 1차전 경기에 불참할 수는 없겠습니까?”
으음.
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예상외의 종류였기에 나는 잠시 멈칫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흐음…. 무엇 때문에?”
과거, 랑글레의 파벌에서 한 축을 담당하며 문제를 일으키긴 했었지만, 한바탕의 소동 이후 팀 케미를 어지럽히는 행동은 일절 하지 않던 녀석이기에 더욱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 그게, 1차전이 열리는 날에 아내가 출산할 것 같아서….”
“으음….”
아내의 출산.
녀석이 경기를 불참할 수 없겠냐고 물어볼 만한 사안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출산이 예정된 녀석의 아이는 첫아이였고, 아무런 경험이 없는 데 니프에게 아내의 출산은 생각보다 복잡한 심경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후우….”
나의 짧은 한숨이 곧 거절의 의사라 생각한 모양인지, 녀석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아냐.”
나는 손을 들어 녀석의 말을 저지하고는 계속해서 내 말을 이어갔다.
“휴가를 줄 테니, 아내와 곧 태어날 네 아이를 잘 챙기고 그러고 돌아와.”
녀석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저, 정말…. 제가 어….”
“쯧, 가족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어?”
“그렇긴 하지만…. 임과 캐슬다인이 부상인 시점이라….”
그렇다.
임우정과 캐슬다인의 부상이 녀석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 일터.
팀의 주축 중 두 명이 부상으로 출전이 불가한 상황에 자신까지 빠지는 것은 팀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란 것을 저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됐어. 아내를 제대로 보살피고 돌아와. 가족을 챙기지도 못 하게 하는 축구가 무슨 스포츠겠어? 그깟 공놀이 때문에 가족을 보살피지 못한다면 존재할 필요가 없는 종목이겠지.”
“감독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녀석의 표정을 보고 나는 혀를 두어 번 찬 후,
“됐으니까, 출산 휴가받는 걸로 알고 나가 봐.”
녀석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다 큰 녀석의 눈물을 보는 취미 따위는 없었으니까.
“감사합니다…!”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이던 녀석이 감독실에서 사라진 후.
“하아…. X 됐군.”
고민의 깊이가 훨씬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진행된 코칭 스탭 회의에서도 이 사안이 알려졌고, 데 니프의 사연과 내 결정을 모두가 긍정하기는 했지만 당장의 경기에 대해서는 걱정스러운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으음…. 이 상황에서 데 니프까지 빠지게 되면 중원이….”
침음성을 흘리는 조르지뉴를 흘끗 본 나는 고개를 돌려 루카에게 물었다.
“루카.”
“네, 감독님.”
“조지를 중원으로 올려서 써볼까 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내 말을 들은 루카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확실히…. 조지의 재능이라면 중원에서도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일 수 있을 겁니다. 수비수임에도 높이 전진해 빌드업을 주도하고 패스를 뿌리는 것을 본다면 말이죠.”
처음에는 긍정적인 답이 나오는 듯했으나.
“다만.”
“다만?”
“데 니프나 캐슬다인같이 그를 이끌어 줄 수 있는 베테랑 자원이 있을 때의 얘깁니다. 지금 상황에서 조지를 올리게 되면 조지와 펜톤이 중원을 구성하게 될 텐데, 너무 위험요소가 많습니다.”
이런.
루카라면 내 말을 지지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실전 경험을 많이 쌓다 보니 자신의 이상적인 생각보다도 현실적인 문제를 더 많이 생각하게 변한 모양이지.
“맞아, 쭌. 캐슬다인이나 데 니프 둘 중 하나만 있었더라도 조지의 전진 배치는 나쁘지 않은 옵션이었을 거야. 아니, 임이 부상이 아니었다면 그럴 이유도 없었겠지만.”
조르지뉴의 말대로,
임우정이 부상이 아닌 상황이었다면 이 문제는 입에 올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2선과 최전방에 배치되는 임우정이지만, 원래 3선에서 활약하던 선수였으니 펜톤과 더블 볼란치를 이루는 대형을 짜 버리면 그만이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예컨대, 너희들 말은 조지와 펜톤으로 이루는 중원의 레벨은 너무 낮아서 할 수 없다?”
“맞아. 그 말이야.”
조르지뉴와 루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최용환 코치는.
“그렇지만…. 딱히 대안이 없는 것 아이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물론, 내가 입에 올린 선수들 말고도 중원을 구성할 수 있는 자원들이 선수단에 있긴 하였지만, 그들의 수준은 아직 챔피언스리그에 발을 들일 만한 그것은 아니었다.
‘겨울에 중원을 보강하지 못한 것이 이렇게나 크게 돌아오는구나.’
지휘하는 클럽의 수준이 커지고, 이적 자금이 많아진 만큼.
우리 팀에 맞는 선수들의 몸값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이 결국 마인츠 때와 다르지 않은 이적시장 풍경을 만들어 버린 탓에, 나는 또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뭐, 좋아. 레벨이 안 맞아서 문제라는 거잖아?”
“음? 쭌,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조르지뉴가 반색하며 묻자, 나는 천천히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문제라면 강제로 레벨업 시켜 줘야지. 안 그래?”
* * *
강제로 레벨업 시킨다.
하준의 그러한 방침이 정해지고 하루 뒤, 선수들은 훈련장에 모여 평소와는 다른 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그러니까…. 제가 중원에 서야 하고, 그 때문에 직접 훈련을…?”
당혹스러운 표정의 조지가 말을 꺼내자 하준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직접 어떻게 플레이해야 하는지를 알려 줄게.”
만약, 이 자리에 임우정이나 정상기가 있었다면 거품을 물고 넘어갈 얘기였지만, 첼시에는 아직까지 하준이 직접 뛰며 훈련에 개입한 적이 없었기에 아무도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오스본의 훈련을 최 코치님이 도와주셨다는 얘기는 너희도 익히 들어서 알 테고…. 미드필더의 플레이 방식을 속성으로 때려 박아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나와 조르지뉴가 너랑 펜톤에게 붙을 거야.”
꿀꺽—.
조지와 펜톤은 마른침을 삼켰다.
하준과 조르지뉴.
첼시의 오랜 팬이라면 그 둘이 상징하는 바를 모를 수가 없었다.
비록, 어이없는 실수를 동반하긴 했으나 터질 때는 역시조신이라는 말을 들으며 최고의 레지스타의 모습을 보이던 조르지뉴와,
파괴적인 윙어의 모습과 중원을 장악해 경기를 지배하던 플레이메이커의 모습을 보인 하준의 개인지도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득이 많은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이들의 핑크빛 상상과는 달리, 현실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는 하준과 조르지뉴가 선수들과 함께 어떻게 플레이해야 하는지 시범을 보였다면.
지금은.
타다다다닷!
터억!
“윽…!”
“이 정도 압박에 흔들거려서 어떻게 중원 싸움을 이겨낼 거냐!”
“패스하든, 탈압박을 해내든! 미리 생각을 하고 움직여라!”
상대 팀 역할로 나온 하준과 조르지뉴의 압박과 호통에 조지와 펜톤은 이리저리 굴려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중원 자원인 펜톤은 조금 더 수준 높은 플레이를 위해 굴려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으나,
조지의 경우는.
철푸덕—.
“어서 일어나! 파울이 아니면 경기는 중단되지 않아!”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터프한 압박을 가하는 조르지뉴의 경우는 차라리 나았다. 그도 어디 가서 밀리는 피지컬은 아니었으니 피지컬로 압박을 흘려내고 움직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문제는 하준의 경우였다.
휙!
타다닷!
촤앗—!
“어엇…!”
조르지뉴와는 전혀 다른 하준의 압박.
마치 자신의 움직임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절묘한 상황에 볼을 빼앗아 가는 기예를 펼치는 하준을 보며 조지는 어이가 없음을 넘어 전의를 상실한 듯 보였다.
“쯧….”
가볍게 혀를 찬 하준이 휘슬을 불어 잠시 휴식을 알리고는 조지에게 다가갔다.
“네가 뭐가 부족한지 알겠어?”
“감독님….”
하준의 말에 조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천재라고 불리던 사람의 방식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그게 가능했다면 자신은 벌써 주전 자리를 꿰차고 A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을 텐데.
조지의 반응을 본 하준은 낮게 혀를 차며 말했다.
“조지, 수비수로의 네 능력은 출중해. 전진해서 패스를 뿌리고 빌드업에 관여하는 능력 또한 일품이지. 그렇지만, 지금 네가 부족한 한 가지가 뭔지 모르나 보구나.”
조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를 보던 하준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두들겼다.
“중요한 건 머리야.”
“머리요…?”
“생각하고 또 생각해라. 상대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 또, 너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강조하는 것이 바로 판단이다. 중원은 어려운 자리지. 그만큼 더 생각을 해야 해. 무슨 말인지 알겠나?”
하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조지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하준은 휘슬을 불어 훈련 재개를 알렸다.
그리고.
이 훈련은 이틀간 지속되었다.
* * *
시간이 흘러, 1차전을 하루 앞둔 날.
하준은 8강 상대인 도르트문트의 홈 지그날 이두나 파크의 인터뷰 룸에 발을 들였다.
찰칵!
찰칵—!
경기 전 기자회견답게, 기자들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며 취재 욕구를 불태웠고 질의응답이 이어지던 중.
“감독님, 이번 원정에 스테판 데 니프가 참여하지 않았는데요.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몇 명의 부상이 겹친 상황에서 데 니프까지 결장하는 것은 너무 잃는 게 많지 않나요?”
데 니프의 원정 불참에 대해 기자가 묻자, 하준은 천천히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댔다.
“데 니프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휴가를 부여한 상태입니다. 개인적인 일이다 보니 제가 얘기할 부분은 아닌 것 같군요.”
두루뭉술하게 답한 하준이였지만, 기자들의 소식통은 여간 빠른 것이 아니었다.
“데 니프가 출산 휴가를 받아 런던의 모 산부인과에 있다는 소식은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만…. 선수의 출산 휴가도 중요하지만 지금 경기는 정말 중요한 경기이지 않습니까?”
“흐음…. 뭐, 중요한 경기임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중요한 경기보다 가족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할 때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죠.”
하지만 기자에게 원하는 답변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기자는 계속해서 그 말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첼시는 감독님의 부임 후 압도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리그컵과 FA컵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리그에선 부동의 1위, 거기다 챔피언스리그는 순항 중이죠. 이러한 때에 8강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그 선수를 제외했다는 것은 감독님의 야망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네요.”
기자의 집요한 말꼬리 잡기에 살짝 열이 받은 하준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입을 열었는데.
“기자님.”
하준의 목소리가 어찌나 얼음장 같던지 순식간에 주위 분위기가 얼어붙고 말았다.
“……네.”
“기자님에게도 가족이 있지요?”
기자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 같은 겁니다. 누구에게나 가족이 최우선이고 제일 소중하죠. 축구는 물론 아름다운 스포츠이지만 동시에 선수들의 직업이자 일터입니다. 세상에 어느 일터에서 출산 휴가를 보내지 않죠?”
“그렇지만….”
기자가 더 말을 이어 가려 했으나, 하준은 기자의 말을 끊고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아무리 중요한 경기라고 해도 선수 개인의 가정보다 더 우위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상태로 데 니프가 왔다고 해서 백 퍼센트의 경기력을 선보일까요? 아뇨. 그러지 못하겠죠.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축구는 스포츠가 아니라 흔히 깎아내리는 데로 ‘그깟 공놀이’ 밖에 되지 못할 겁니다. 자, 더 이상 질문은 받지 않도록 하죠. 그럼, 이만.”
찰칵! 찰칵—!
하준이 자리를 떠난 뒤로 인터뷰 룸에는 몇 분간 정적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