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occer genius becomes a great coach RAW novel - Chapter (170)
170. 혹한기를 나는 법(1)
첼시의 감독실.
그 안에는 하준을 비롯해 조르지뉴, 컬럼 그리피스 총 세 명이 회의 테이블에 앉아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후우…. 이건 뭐, 영입 자금이 아니라 유스 자원 급료로 쓰면 끝이겠군.”
“맞습니다. 여름에 저희가 많은 지출을 하긴 했죠.”
조르지뉴와 그리피스의 말에 하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미치고 팔짝 뛸 판이네. 돈 나올 구멍도 없으니….”
이제는 전 구단주가 되어 버린 로만이 급하게 첼시를 매각했고, 새로이 첼시의 구단주가 된 곳은 런던을 기반으로 한 사업가 제임스 정이었고, 전권을 쥐고 있는 하준을 비롯해 구단 프런트의 실무자들과 아직 만남을 갖지도 못한 상태였다.
“쭌, 새로운 구단주는 한국 혼혈이라면서? 듣기로는 한국인들은 해외에서 더 끈끈하다고 하던데 어떻게 요청해보면 안 되나?”
조르지뉴의 말에 하준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임스 정은 아버지가 한국 출신이다 뿐이지 영국인이잖아. 애당초, 한국에 몇 번이나 가봤다고 한국인의 정을 운운하겠어? 구단 인수하는데 들인 비용 때문에 지원할 돈이 없다고 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하아…. 문제구만.”
“맞습니다. 감독님 요청대로 알렉스 베컴의 영상 자료와 분석 자료를 준비했지만 정작 영입할 자금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인데요….”
파격적인 여름 이적시장을 보낸 이후, 첼시에 남은 금액은 1,771만 파운드. 한화로 약 3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돈이었다.
12월 들어 갑작스레 부상자들이 속출하지 않았더라면 겨울 이적시장을 두고 이렇게 머리를 싸맬 일이 없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게 돌아가자, 하준은 FFP룰 위반 징계를 감수하고서라도 구단주가 직접 자금을 투입해주길 바라고 있었는데.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구단주가 갑작스레 교체된 이후, 구단을 인수한 새로운 구단주가 계속해서 얼굴을 비추질 않고 있으니 하준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마리나 그 여자가 구단을 떠나게 되면서 아직 단장과 이사진도 제대로 취임하지 않은 상황이잖아?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아.”
하준의 말을 그리피스가 받았다.
“일단은…. 제임스 정의 측근들이 자리할 것 같습니다만…. 축구에 문외한인 인물들이 실권을 잡는다면 자금 사정이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구단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돈의 움직임과 법에 능통한 전문가들이 실권을 잡아야 하는 것은 맞으나,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축구 선수 출신 행정가들의 수와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
그러나, 구단의 경영진이 바뀔 때, 새로운 구단주의 측근들로만 경영진을 꾸리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에 하준이 겨울 이적시장에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즈음.
띠링!
하준에게 한 통의 메시지가 전해졌다.
-안녕하세요, 킴. 이번에 첼시를 인수한 제임스 정입니다. 식사 자리를 마련하고 싶은데 가능한 시간을 정해 답을 줬으면 합니다.
“어…. 나 구단주한테 메시지가 왔는데?”
“뭐? 쭌, 뭐라고 왔어?”
“같이 식사하자는데? 시간을 알려 달래.”
하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르지뉴가 책상을 치며 말했다.
“당장! 지금 당장이라도 가겠다고 해! 얼굴 비추고 돈 좀 투입해달라고 말해봐, 응?”
그리하여.
하준은 신임 구단주 제임스 정과 함께 런던에 있는 고급 한식 레스토랑에 자리 잡게 되었다.
“제가 경영하는 회사의 일 때문에 구단 인사들과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했더군요. 다들 걱정 많이 했을 텐데.”
나긋한 제임스 정의 말에 하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일이 바쁘셨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속이 타들어 갔다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라, 하준은 별일 없었다는 듯이 둘러댔고, 제임스 정은 그런 하준의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첼시의 열렬한 서포터였습니다. 이민 와 적응이 힘든 시기에도 첼시의 경기는 꼬박꼬박 관람하셨다고 하셨죠.”
“아…. 그렇군요. 의외네요. 그 당시 한국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쪽이 더 인기가 많았을 텐데….”
“하하. 그랬다고 하더군요. 사실, 아버지께서는 축구에 그리 큰 관심이 없었지만 우연하게 관람했던 첼시 경기에서 램파드와 드록바의 플레이를 보고 빠졌다고 하셨죠. 물론.”
제임스 정은 물을 한 모금 들이킨 뒤에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저 또한,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첼시를 응원하며 자랐죠. 그리고, 그중에서도 킴의 플레이를 무척이나 좋아했었습니다. 지금도 저의 집에는 그때 경기 영상이 쌓여 있거든요.”
예상치 못한 호의에 놀란 하준은 이내 머리를 차갑게 식히며 생각했다.
‘일단은 호의적인 것 같지만…. 아직은 모른다.’
제임스 정은 20대의 나이에 NFT와 VR,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사업을 시작해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자신의 회사를 영국 내 대기업의 반열에 들게 한 타고난 사업가.
축구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단순히 사업의 일환으로 구단을 매입했다면 그동안의 첼시나 맨체스터 시티가 아닌, 토트넘의 꼴이 날 수도 있기 때문에 하준은 제임스 정의 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킴을 만나기 전에 첼시의 사정을 대략적으로 검토하고 왔는데 말이죠…. 음, 구단 자체의 재정은 상당히 건전하게 잘 운영되고 있었더군요. 다만, 문제라면….”
“아….”
“곧 열릴 겨울 이적시장에서 사용할 자금이 없다는 점이겠죠?”
제임스 정의 말에 하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현재 스쿼드에 문제가 생겨 이적시장에 사용할 자금이 필요한 건 사실입니다.”
“오, 이런. 그렇게 경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지원을 하지 않을 생각은 없거든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은 제임스 정이 말을 이어 나갔다.
“제 아버지는 첼시를 응원했지만, 어머니는 토트넘을 응원하는 집안이었거든요.”
첼시와 토트넘이라.
경기 때마다 집이 시끄러웠겠는데? 따위의 생각을 한 하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구단 인수를 두고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어머니께서 신신당부하셨죠. 구단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을 거면 손 떼라고. 지원할 때는 물심양면 지원해야 한다고 말이죠. 해서, 이번 이적시장은 물론 계속해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제임스 정의 말에 하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적 자금을 추가로 투입하게 되면 FFP룰 위반이 될 판이더군요?”
“……네, 맞습니다.”
“그건 좋지 못한 일이죠. 자칫 잘못해 중징계라도 맞게 된다면 다음 시즌 영입 금지에 더불어 챔피언스리그 참가 자격 박탈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구구절절 맞는 말에 하준은 별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고, 제임스 정이 정말로 구단에 지원해줄 의사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해봤습니다. 늦은 만남에는 이 이유도 있었고 말이죠.”
“여러 가지 방법이요…?”
하준의 걱정과는 달리, 제임스 정은 구단에 애정을 들일 생각이 충만했던 모양이다.
“제 기업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갑작스러운 제임스 정의 물음에 하준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문화, 예술을 비롯한 다방면의 유·무형의 가치와 미디어의 결합…아닙니까?”
“맞습니다. 그 말인즉슨, 첼시의 가치와 결합해 매출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첼시 전담팀을 꾸려 첼시의 경영진에 넣을 생각입니다. 물론, 그들은 실제로 경영보다는 구단의 수익을 내는 부분에만 관여할 예정이고요.”
이어지는 제임스 정의 계획은 이러했다.
기존 첼시의 경기 영상을 바탕으로 선수 하나하나의 1인칭 시점 VR 체험 컨텐츠를 만들어 수익화한다는 것.
프로 선수들과는 달리, 취미로 축구를 하는 이들이나 매니아층의 축구 팬들에게는 이 컨텐츠가 여러모로 인기가 있을 것이기에 수입과 지출 차이를 어느 정도 메꿀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뭐, 기술의 발전으로 이러한 VR 체험은 이전에도 시도되어 왔습니다만…. 저희는 다릅니다. 실시간으로 사용자가 어떤 부분을 발전해야 하는지 체크하는 인공지능이 함께하니까요.”
제임스 정의 설명을 들은 하준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짧은 기간 안에 이런 사업 방향을 만들어 내다니….’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제임스 정은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게다가, 이러한 방식을 계속해서 빌드업 하다 보면, 5년 이내에 유소년 훈련 시스템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장담하죠.”
제임스 정의 말을 들은 하준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는 느낌을 받았다.
아닌 말로, 임우정의 움직임과 시야를 유소년들이 1인칭으로 공유하고 발전해야 하는 방향을 짚을 수 있다면.
‘미친…. 괴물 유스들을 대거 양산할 수 있는 건가?’
물론, 타고난 신체 능력이나 센스 같은 부분은 본인의 능력보다 더 끌어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축구 지능과 시야, 그리고 빠른 상황 판단 같은 부분은 무궁무진한 발전을 이끌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마친 하준은 저도 모르게 입을 떡하니 벌리고 말았다.
“물론, 그 정도로 기술이 발전되었을 때는 첼시에 보급하는 물량 이외에 다른 구단에 그 머신을 판매할 생각입니다. 감독님 입장에서도 치트키 쓴 것처럼 시시한 게임보다는 치열한 게 좋으시잖아요?”
“무, 물론이죠.”
“그리고…. 또, 다른 부분에서 자금을 물어올 생각입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어질어질한 하준이였지만, 제임스 정은 자신의 계획이 조금 더 남아있다며 말을 이었다.
“마침, 메인 스폰서 자리가 계약만료 임박이더군요. 그래서, 메인 스폰서를 물어올 생각인데…. 혹시, 한국의 GX 전자 아시나요?”
하준은 황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
한국의 재계 서열 1위인 기업에다 과거, 첼시의 메인 스폰서를 한 적도 있으며 미국의 APL 전자와 함께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대기업 아닌가?
“하하, 하긴 모를 리가 없겠군요. 아무튼, 최근 저희가 GX 전자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것이 GX 전자의 매출에 큰 이득을 주고 있는 모양이에요.”
제임스 정의 말에 하준은 지난해 새로 발매된 GX 전자의 스마트폰이 미국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AR 시스템까지 구현했다는 기사를 떠올렸다.
‘아이X맨 기술을 만든 게 당신이었어?’
언젠가 자신도 코치진 회의에 저런 걸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하준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래서 최근 GX 전자에서는 우리와 더 밀접한 관계를 맺길 원하고 있는 상황이고, 연이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어 하는데…. 뭐, 일단 기업 기밀이라 무슨 프로젝트인지는 얘기할 순 없지만 어쨌든, 제가 넌지시 스폰서 제의를 하면 저쪽에서는 덥석 물 거란 얘기입니다. 그것도, 예전의 액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액수로요.”
순식간에 말도 안 되는 금액을 구단에 만들어 줄 비전을 설명하는 제임스 정을 보며 하준은 꿈이라도 꾸는 듯한 기분으로 입을 열었다.
“대단…하네요.”
“대신.”
“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갑자기 걸린 조건에 하준은 정신줄을 바로 잡았다.
‘역시, 그냥은 줄 수 없다는 건가?’
그리 심한 요구만 아니라면 수용해야겠다 마음먹은 하준의 귓가로,
“저는 킴의 종신 계약을 원합니다.”
상상하지도 못한 말이 날아와 꽂혔다.
“……네?”
“오랫동안 감독직을 역임해주는 것은 물론, 성적 부진 등의 이유로 감독직에 해임되더라도 킴은 첼시에 남아 일해주길 바란다는 소리입니다. 기술 이사의 형태나, 아니면 단장의 형태로라도 말이죠.”
어찌 보면 다른 도전을 할 것이 아니라면 하준에게 너무나도 유리한 조건.
하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제게 무척이나 유리한 조건인데요. 어째서죠?”
“당신의 눈은 좀 특별한 모양인 것 같아서 말이죠. 선수 시절이야, 당신의 천재적인 재능으로 퍼포먼스를 보였다지만, 감독은 조금 다른 영역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흥미가 돋아서 개인적으로 킴의 지도자 커리어를 훑어봤습니다. 다른 감독들은 보지 못하는 재능을 너무나도 쉽게 파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실제로 선수 영입에 관련해서 킴이 실패했다는 기사는 여태껏 한 번도 없었지 않나요? 게다가, 과감한 포지션 변화도 전부 성공했고 말이죠.”
“아…. 그렇군요. 네, 감사합니다.”
제임스 정은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제가 구단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첼시를 계속해서 맡아 최강의 팀으로 만들어 달라는 말입니다. 이 조건만 맞춰주신다면 제가 전폭적인 지원을 하지 않을 리가 없죠.”
제임스 정이 내민 손을 하준이 맞잡으며 입을 열었다.
“구단주님의 조건. 받아들이겠습니다. 첼시에서 제 커리어를 끝마치도록 하죠.”
첼시가 혹한기를 거쳐 돈방석에 앉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