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occer genius becomes a great coach RAW novel - Chapter (177)
177. 독불장군(2)
* * *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경기가 열리는 당일.
아약스의 홈구장인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는 경기장을 가득 채울 정도의 관중이 들어 차 있었다.
“바이에른을 꺾었으니 이번 첼시전도 기대해도 되는 거 아니겠어?”
“그럼. 첼시가 유럽 최강팀으로 군림하고 있다지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니까!”
“지금까지처럼 얀센이 아약스를 승리로 이끌 전술을 만들어 왔을 거야.”
경기장에 모인 아약스 서포터즈는 이번 경기를 낙관하는 모습을 보이며 경기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모습은 첼시 원정 서포터즈에게는 너무도 신기한 광경으로 비춰졌다.
“이봐 테일러, 저 반대편에 아약스 서포터즈들 봐봐.”
“응? 왜?”
“표정들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분위기는 마치 이길 수 있는 경기를 관람하는 느낌이라 조금 이상해서.”
“흠…. 확실히 그렇게 보이기는 하네. 홈경기라서 그런 게 아닐까?”
“글쎄, 바이에른을 잡아서 우리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걸 수도 있을 것 같고.”
“하하. 농담도 잘하네. 지금의 첼시는 맨체스터 시티나 세르히오 토레스가 있는 세비야도 한 수 접어줘야 하는데?”
양 팀 서포터즈의 이런 반응과는 달리,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나온 루드 얀센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반대편에 서 있는 하준의 표정을 흘끔 바라본 얀센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모든 대비를 완벽하게 하고 나온 모습이군. 이래서야….’
얀센 본인도 첼시를 무너뜨릴 최선의 방법을 가지고 나온 상태였지만, 자신이 내린 최선의 선택을 최상의 선택이라고 보기도 힘들 뿐더러, 그 방법을 가지고 나오는 데에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던 터라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파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얀센이 이렇게 하준을 의식하는 것이 겉으로도 티가 많이 났던 모양인지 조르지뉴가 하준에게 말을 걸었다.
“쭌, 루드 얀센이 많이 긴장한 모양인데?”
조르지뉴의 말에 하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음…. 글쎄, 기분 탓일 수도 있지.”
하준 역시 루드 얀센이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것을 느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하준은 경기 준비를 하면서 얀센에게 약간의 호감을 가지게 된 상태였다.
‘상당히 재능 있는 지도자야.’
나락으로 향하던 아약스를 구해낸 것은 물론이고, 유럽 대항전에서 자이언트 킬링을 자주 해내는 전술가의 모습, 그리고 리그에서 보여주는 전술들을 본 하준은 얀센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였는데.
“나처럼 머리를 맞대고 같이 발전할 팀이 있었다면 더 빨리, 그리고 더 높이 올라갔을지도 모르지.”
“그래?”
하준의 말에 조르지뉴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구태여 말을 더 이어나가지는 않았다. 감독 역량 부문에서는 이미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단계에 오른 하준이 그렇게 봤다면 자신이 보지 못한 다른 것이 있다는 뜻일 테니.
한편.
그라운드 입장을 기다리며 터널에서 대기 중인 양 팀 선수단 사이에는 반가운 재회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태준이 형, 오랜만이에요.”
“응. 우정아, 오랜만이야. 네가 마인츠로 이적한 이후로 처음이니까 굉장히 오래됐네. 활약하는 모습은 잘 지켜보고 있었어.”
임우정과 인사를 나눈 이태준은 이내 이혁호를 보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이태준이라고 합니다.”
데뷔 때부터 내내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온 이혁호는 처음 보는 이태준의 예의 바른 인사에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선배님의 플레이를 보고 배웠습니다. 오늘 경기에서도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이태준의 반응에 이혁호는 임우정을 보며 왜 이러는지 아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임우정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하긴, 혁호 형 팬이라고 하긴 했지.’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시절, 종종 이혁호의 플레이에 대해 얘기하곤 했던 이태준의 모습이 떠오른 임우정은 졸지에 이루어진 팬과 스타의 만남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태준이 형도 대표팀에 뽑혔더라면 저번 월드컵에서 수월했을 텐데.’
이상하리만큼 대표팀 운이 없던 이태준의 케이스에 임우정이 안타까움을 느낄 찰나, 진행 요원의 입장 안내가 이어졌다.
“선수들 모두 입장해주시기 바랍니다.”
와아아아!
[안녕하십니까! 36/37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아약스와 첼시의 경기를 이곳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보내드립니다!] [이번 경기 홈 팀인 아약스는 지난 16강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1, 2차전 모두 승리를 거두고 올라왔죠?] [맞습니다. 루드 얀센의 기막힌 용병술로 모두 승리를 거두고 올라왔는데요. 언더독의 반란이 8강에서도 이어질 지 궁금하네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양 팀 선수단이 입장하는 모습입니다. 먼저 선발 라인업부터 확인하겠습니다. 홈 팀 아약스의 라인업인데요!]아약스는 4-4-2 대형을 가지고 나왔다.
최전방 투톱에는 페타르 랄라토비치와 론 바인달이 이름을 올렸고,
빅토르 마쎄도와 이태준이 양쪽 측면에 배치됐으며,
중원은 킹슬리 아루나와 토마스 피나스로 구성됐고,
후방에는 네이선 보에빈크, 빔 팀버, 산티아고 에스칼란테, 제이 데 부어로 이루어진 백 포라인 뒤에 라이언 그림이 골키퍼 장갑을 끼고 나온 형태였다.
[베스트 일레븐을 가지고 나온 아약스의 모습이네요.]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후, 가장 위협적인 4-4-2 전술이라 평가받는 아약스죠?] [맞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루드 얀센이 빅클럽을 맡아도 성적을 잘 낼 수 있으리라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죠.] [이번 매치 라인업에서 재미있는 점이 아약스의 오른쪽 측면에 배치된 리는 서울 유나이티드 시절 킴의 밑에서 임과 함께 뛴 전적이 있다는 점인데요,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만큼 서로가 이점을 가지고 경기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자, 다음으로는 첼시의 라인업입니다!]하준이 이끄는 첼시는 4-3-3 대형을 가지고 나왔는데.
알렉스 베컴이 최전방에 섰고,
양쪽 측면에는 이혁호와 임우정이 배치됐으며,
중원은 크리스티안 알트와 스테판 데 니프를 배리 펜톤이 뒤에서 받치는 역 삼각 형태로 구성이 됐고,
후방은 레안드로 칼라피오리, 에반 카마라, 타일러 조지, 자인 실콧듀베리로 구성된 백 포라인 뒤에 바비 한슨이 골키퍼 장갑을 끼고 나온 형태를 띠었다.
[오랜만에 4-3-3 대형을 가지고 나온 첼시의 모습입니다.] [특이하게도 이번에는 알렉스 베컴이 최전방에 배치된 모습인데요, 공격수 역할이라기보다 폴스나인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죠?] [아마 그럴 겁니다.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베컴과 임의 변칙적인 움직임을 신경 써야 하니 머리가 많이 아플 상황이네요.] [킴이 이번에는 어떤 그림을 그린 것인지 참 기대가 되는군요.]중계진의 말처럼 첼시의 라인업을 지켜보고 있는 얀센은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베컴을 폴스나인으로 둔다면…. 잠깐, 그러면 임은?’
하준의 변칙적인 전술에 대해 나름대로 연구를 했던 얀센으로서도 하준의 생각을 읽어낼 수 없었다.
‘일단은 경기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나…?’
삐이이익—!
[주심의 휘슬과 함께 경기 시작됩니다! 선축은 첼시가 가져갑니다!]툭—.
툭!
타닷!
툭—!
첼시는 시작과 동시에 짧은 패스로 빠른 빌드업을 이어나갔고, 아약스는 빠르고 터프한 압박으로 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타다다닷!
[아약스 터프한 압박을 시도합니다!] [볼을 잡은 알트에게 두 명이 동시에 달려드는데요!]아약스의 터프한 압박은 바이에른을 무너뜨렸던 투지 넘치는 움직임 그 자체였다.
그러나.
투웅—. 휙!
타닷!
타다다닷!
세대교체 실패와 부상이 겹쳤던 바이에른과는 달리, 안정적인 라인업의 첼시를 상대로는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움직임이었다.
오오오!
[크리스티안 알트!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압박을 무력화합니다!] [저 선수의 전매특허 움직임이죠? 부드러우면서 간결한 탈압박입니다!]독일 대표팀 중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알트는 손쉽게 압박을 벗어나 곧장 왼쪽 측면으로 볼을 뿌렸다.
투우욱—!
타다다닷!
[왼쪽으로 볼을 전개하는 알트!]촤앗!
타다다닷!
[리! 볼을 매끄럽게 받은 직후 측면을 타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아약스의 리가 첼시의 리를 뒤쫓습니다! 데 부어 역시 리를 마크하기 위해 올라오고 있군요!]볼을 달고 움직이는 이혁호를 막기 위해 이태준과 데 부어가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이혁호는 이들을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툭—!
[볼을 중앙으로 밀어주는 리!]촤앗!
[아! 임! 임이 잡습니다!] [중앙에서 볼을 잡은 임!]오른쪽 측면에서 경기를 시작한 임우정이 중앙에 나타나 이혁호에게서 볼을 넘겨받았고, 이러한 움직임은 아약스의 수비진에 커다란 빈틈을 만들어내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첼시를 상대하는 팀에게 임우정은 경계 대상 1순위의 선수나 다름없는데, 그런 선수가 전혀 다른 위치에 나타나게 되면 수비대형은 어그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에스칼란테와 피나스가 동시에 움직입니다!]임우정을 막기 위해 순식간에 어그러진 대형을 본 루드 얀센은 순간적으로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끼며 그라운드에 대고 소리쳤는데.
“안 돼! 베컴! 베컴을 놓치지마!”
임우정의 이동으로 일어날 일이 불 보듯 뻔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얀센이 터치라인 앞까지 나와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는데요.]그러나.
툭—. 타닷! 휘익—! 탓! 타다다닷!
“어엇!”
“익…!”
[임! 순식간에 제칩니다!] [임의 움직임으로 공간이 벌어집니다! 저 선수의 존재 자체가 상대팀에게는 천재지변이나 다름없군요!]임우정이 순식간에 두 명의 선수를 제치며 파이널 서드에는 구멍이 송송 난 듯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임우정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투우욱—!
[임의 스루패스! 베컴 쪽으로 향합니다!]타다다다닷!
“팀버! 보에빈크!”
타다다닷!
베컴이 볼을 잡지 못하도록 아약스의 두 명의 수비수가 재빠르게 움직였고, 베컴과는 한 뼘 정도의 차이만을 남겨둔 채로 접근에 성공했지만.
투우웅—!
[아! 베컴! 원터치로 볼을 넘깁니다!]베컴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신들린 오른발의 능력을 펼쳐 원터치로 왼쪽으로 볼을 넘겼고, 베컴의 패스가 향한 곳에는,
타다다다닷!
이혁호가 쇄도하고 있었다.
큼지막한 트라이앵글 형태로 이어진 볼의 전개에 뚫려버린 수비대형을 보며 얀센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지만 이 사태를 수습하기에는 늦은 시점이었다.
[완벽하게 열린 공간! 리의 앞으로 볼이 갑니다!]그리고.
페널티 박스 모서리 바로 앞에 떨어진 볼을 이혁호는 논스톱으로 감아 때렸고,
뻐엉—!
쐐애애애액—!
“이이익…!”
철렁—!
[고오오오오올! 골입니다! 리가 환상적으로 감아 때렸습니다! 그림 키퍼가 몸을 날렸지만 어찌 할 수 없는 궤적이었어요!] [예전, 토트넘의 쏘니를 보는 듯한 슈팅입니다! 코리안은 모두 저런 슈팅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가요!] [골로 이어진 슈팅 전, 볼 전개 또한 간결하고 빨랐습니다! 임의 패스를 베컴이 감각적으로 넘겨줬습니다!] [현대 축구에서 트라이앵글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첼시의 골 장면입니다! 크기가 작던 크던 감독들이 트라이앵글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까드득—.
실점 장면을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지켜본 루드 얀센은 이를 갈며 물통을 걷어찼고, 그의 옆에 있던 수석 코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감독님, 지금이라도 라인을 내리고 대인 방어로 바꾸는 것이 어떠신지….”
수석 코치의 말을 들은 얀센은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라인을 내린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 선수들에게 맨마킹을 시킨다고 해서 저들에게서 볼을 효과적으로 빼앗을 수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건가?”
“그렇지만….”
“우리 팀이 프리미어리그 상위권 스쿼드였다면 그 방법이 먹힐 수 있을지도 모르지. 자네, 어깨위에 있는 그건 장식이 아니지 않나?”
얀센의 신랄한 말에 수석 코치가 입을 다물자, 한숨을 내쉰 얀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들을 상대로 조금이라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몇 번 오지 않는 역습 기회를 모조리 골로 연결시키는 방법 밖에 없어. 바이에른을 잡았다고 해서 우리가 그 정도 수준의 클럽이 됐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이를 갈며 수석 코치를 다그친 아약스의 독불 장군은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다시 한번 이를 갈았다.
“이번 경기 승리는 장담할 수 없다 해도…. 맞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