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occer genius becomes a great coach RAW novel - Chapter (182)
182. 기록을 세우는 감독(1)
비관주의자는 모든 기회에서 어려움을 보고, 낙천주의자는 모든 어려움에서 기회를 본다.
영국 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했던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은 현재 나에게도 전혀 연관이 없다고 볼 수는 없는 말이기도 했다.
“흐음…. 어째 결승 라인업이….”
리그 우승을 결정지은 우리에게 남은 것은 FA컵과 챔피언스리그. 두 대회 모두 결승 경기만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정해진 결승 상대는 썩 좋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대들이었다.
“맨체스터 시티에 세비야라….”
찌푸린 내 미간을 본 탓일까?
조르지뉴가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쭌, 뭐 어때? 시티나 세비야 모두 우리가 무릎 꿇렸던 팀인데. 거기다 우리는 이번 시즌에 적수가 없는 팀이잖아?”
조르지뉴의 말마따나 맨체스터 시티나 세비야 모두 첼시를 이끌고 무찌른 적이 있다. 특히, 맨체스터 시티의 경우는 내가 부임한 이후 전적만 보자면 압도적 우세라고 볼 수 있기도 했고.
“네 말대로 그렇긴 하지. 문제는 남은 경기들이 모두 결승전이라는 거지만.”
최근 전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더라도, 맞닥뜨릴 경기가 결승전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리에게 패배하고 눈앞에서 트로피를 놓친 두 팀이라면 더욱이 이를 갈고 있을 터인데.
그리고.
“알렉스 라이트와 세르히오 토레스를 연달아 상대하는 결승전이라니, 생각보다 끔찍한 일정인데?”
신계의 일원인 알렉스 라이트와 세르히오 토레스를 결승전에서 상대해야 한다는 것은 썩 좋은 일이 아니었다.
우리 팀에 있는 임우정 또한 이제 신계를 넘보는 위치라고는 하지만, 결승전 경기에서 끼치는 라이트와 토레스의 영향력은 절대 평가절하할 수 없는 수준이니.
“비관주의자는 모든 기회에서 어려움을 보고, 낙천주의자는 모든 어려움에서 기회를 본다.”
“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쭌?”
“이 나라의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했던 말이야. 뭐…. 나는 그 두 케이스에 전혀 해당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나는 비관주의자도, 그렇다고 낙천주의자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승부사에 가깝다고나 할까.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랬다. 선수로 그라운드를 누비던 현역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게 위기가 아니었던 적은 단언컨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뭐, 요즘은 위기라고 보기 어렵긴 하지만.
두 결승 경기의 대진이 굳이 위기라고 한다면야, 기회라는 것은 쿼드러블이라는 역사를 쓰는 것이겠지.
“뭐, 그건 그렇고. 애들 상태는 어때?”
내 물음에 조르지뉴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어떻긴 사기가 최고조에 달했지. 이미 2관왕에 남은 두 경기도 다 결승전이야. 쿼드러블이라는 역사를 쓸 수도 있게 됐는데 사기가 떨어질 리가 없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첼시에 부임한 지 이제 겨우 두 시즌 째.
처음 부임했을 때, 엉망진창이었던 선수단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의 모습이 어색하기도 했다.
“너는 어떨 것 같냐?”
“응? 뭐가?”
“내가 아니, 우리가. 정말로 쿼드러블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니면 실패할 것 같아?”
“답지 않게.”
조르지뉴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웃었다.
“당연히 잉글랜드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쿼드러블 달성하는 거지!”
익살스러운 조르지뉴의 표정을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게 되었다.
“푸흐…. 그래. 그렇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린데 말이야.”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최초, 최연소의 타이틀을 새로 쓰며 커리어를 이어 왔다. 그럼에도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째서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공황이나 양극성 장애의 증상인가…?”
물론 그런 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요즘 들어 불안감에 잠을 못 이루다 보니 이런 의심을 하는 일이 잦아지곤 했다.
“나이가 들어 그런기지.”
언제 들어온 지도 모를 최용환 코치가 나지막이 내뱉은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이를 먹어서 불안한 거라고요?”
“나이만이 아니겠지. 서울에서 재기하기 시작했던 그때와는 다르게 이제는 지킬 것도, 잃을 것도 많아졌으니 당연히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시선을 느낀 최용환 코치는 씩 하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불안함이라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이다. 불안한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할 기고, 돌다리도 수십 번을 두드리며 건너게 되겄지. 그럼 안 그래도 완벽을 추구하는 네 전술은 더 완벽에 가까워질 것 아이가?”
평소에는 옆집의 친근한 아저씨 같은 푸근함을 보여주는 최용환 코치였지만, 이럴 때 보면 정말 어른은 어른이다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 코치님이 필요한 건 선수들이 아니라 나일지도 모르겠네.’
많은 사람들이 내가 꾸린 나만의 팀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을 했지만, 유독 최용환 코치에게만은 물음표를 띄우곤 했었다. 축구에 미친 그들에게 최용환 코치는 굳이 내 팀에 있어도 없어도 별반 다르지 않다 느껴진 것이겠지만.
“좋은 말씀이시네요.”
다른 코치들보다도 최용환 코치야말로 내게 있어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동료이지 않을까.
* * *
늦은 밤,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 집무실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는 상태였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부스케츠는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네, 들어오세요.”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은 다름 아닌 맨체스터 시티의 수석 코치, 케빈 데 브라위너.
“아, 케빈.”
“감독님, 아직도 퇴근하지 않으셨습니까?”
데 브라위너의 말에 부스케츠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만전에 만전을 기해야 하니 말이야. 남은 시간 동안 계속해서 연구하고 또 연구해야지.”
FA컵 결승까지 남은 기간은 일주일.
부스케츠의 말은 남은 일주일 동안 최소 5일 이상은 밤늦게까지 무리할 것이라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그럼 저에게 같이 남아서 해보자고 말씀이라도 주시지 그러셨어요?”
“내가 남아서 오버페이스 하는 것을 동료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잖아.”
너털웃음을 짓는 부스케츠를 보며 데 브라위너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현역 시절부터 코치가 되어 맨체스터 시티에 남을 때까지 자신과 함께 했었던 과르디올라와는 또 다른 유형의 감독을 보며 데 브라위너는 나직이 물었다.
“이번에야말로 이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첼시를 아니, 킴을.”
하준이 프리미어리그로 돌아온 이후로 맨체스터 시티는 첼시에게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고, 데 브라위너는 항상 첼시를 이기기 위해 감독을 보좌하며 고군분투했다. 그런 그의 노력을 알고 있는 부스케츠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는데.
“하하…. 이것 참. 그 친구는 빈틈을 영 주지 않으니 말이야.”
말을 내뱉은 부스케츠는 생각했다.
자신의 은사인 과르디올라가 하준에게 승기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은 그가 퇴물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녀석이….’
하준이 말도 안 되는 괴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지도 못한 수를 두는 전술적 접근도 접근이지만, 녀석의 선수 보는 눈은 어딘가 특별해.’
부스케츠는 하준이 선수를 영입하고 포지션 변화를 강행하는 것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알렉스 베컴이나 이혁호, 크리스티안 알트, 그리고 미하엘 포가테츠 같이 이미 검증된 자원을 영입하는 것은 자신도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미구엘 부스케츠를 영입해 아예 윙백으로 내려 쓴다든지 하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니.
또한, 그런 하준의 행보를 보며 부스케츠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준이 선수를 보는 시야는 자신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경지에 있다는 것을.
“케빈,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
“……무엇을요?”
“결승전에서 어떤 방식으로 킴에게 대항하겠나?”
부스케츠의 물음에 데 브라위너는 도무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데 브라위너 본인도 느낀 것이다.
하준을, 첼시를 상대할 방법에 여러 가지 의문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떠오르는 방법은 많지만, 그게 통할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래서 머리가 정말 아프지. 나는 말이야, 축구의 신이라는 것은 우리 때 메시나 호날두처럼 경지에 오른 선수에게만 허용되는 말인 줄 알았지만….”
차를 한 모금 마신 부스케츠가 말을 이었다.
“킴과 같은 지도자 역시 축구의 신이라고 불릴 수 있지 않을까? 축구 그 자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런 결과를 만들 수가 없을 테니까.”
“적이지만 대단하네요. 예전에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선수로 경쟁하던 사이였는데, 지금은 도무지 쳐다볼 엄두도 나질 않는 상대가 되었으니까요.”
데 브라위너는 문득 예전 클럽 월드컵 결승전을 떠올렸다.
‘그때만 하더라도….’
하준이 서울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클럽 월드컵 결승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맞닥뜨렸던 그 시절. 데 브라위너는 하준을 유럽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지도자 정도로 평가했었다.
‘그랬던 킴은 이제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하나가 됐다.’
하준이 마인츠로 다시 돌아왔을 때만 하더라도, 그 누구도 하준의 성공을 예상하지 않았지만, 하준은 그런 여론을 깡그리 부숴버리고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언젠가, 감독이 되어 팀을 지휘할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킴을 보고 있자니, 감독을 할 엄두가 잘 나질 않네요.”
자신보다도 어린 하준은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계속해서 유럽에서 손꼽히는 명장으로 축구계를 호령할 터.
데 브라위너는 그런 하준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지조차 못했다.
“케빈.”
“네, 감독님.”
“그래도 부딪혀 봐야지. 볼은 둥글잖아?”
그렇게.
양 팀 수뇌부들이 서로 다른 불안감을 느낀 채로 시간이 흘렀다.
* * *
와아아아아!
“아따 마, 억수로 많이 왔네.”
웸블리에 울려 퍼지는 함성소리를 들으며 말하는 최용환 코치를 보며 나는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결승전이니까요. 처음 오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러세요?”
내 말에 최용환 코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뭐,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그러지. 한국 축구의 흥행도 많이 올라왔다지만, 잉글랜드 무대를 보고 있자니 영 부러운 마음이 안 가시네.”
과연.
한국 축구의 레전드 중 한 명이라 그런 것일까.
타지에 와서도 한국 축구의 발전에 대해 생각하는 모습은 멋있다고 볼 수 있었다.
‘나는 글쎄.’
선수 생활도 잉글랜드에서 시작했고, 은퇴도 독일에서 했던 나는 국가대표에 차출되어 메달을 따기도 했지만 최용환 코치처럼 한국 축구에 이렇다 할 애정이 없었기에 멋있지만 그다지 공감은 되지 않았다.
“그럼 나중에 서울 유나이티드로 다시 돌아가셔서 감독하시는 거 아녜요?”
장난스러운 내 말에 최용환 코치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예끼, 내가 가길 어딜 가? 단물 다 빨아 먹고 이제 버릴라고 그라는기제?”
“크큭, 아뇨. 그냥 한국 축구를 더 부흥시켜야 한다 뭐 이런 사명감을 보이셔서요.”
“됐다 마. 국가대표 감독도 해봤는데, 더 이상 미련은 없다. 그리고 이런 기회 아니믄 어떤 한국인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코치를 해보겠노?”
“그럼요. 저 은퇴할 때까지 같이 계셔야죠.”
최용환 코치와 더 시시덕거린 이후에 나는 우리 팀에 배정된 드레싱 룸으로 향했다.
끼익?.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각자 저마다의 루틴으로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단의 모습이었는데.
짝짝!
손뼉을 쳐 내게 시선을 집중시킨 다음 나는 입을 열었다.
“자. 해가 바뀌고 나서 벌써 두 번째 웸블리다. 이제는 홈구장 같지?”
“네!”
“스탬포드 브릿지나 여기나 심적으로는 별 차이 없는데요!”
선수단의 대답에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오늘 경기에서도 너희가 평소대로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우승컵을 가져간다면 언론에서는 첼시가 웸블리의 주인이라며 떠들어대겠지.”
나는 시선을 돌려 선수들 한 명 한 명을 훑어 봤다.
“언론에서는 계속 우리의 쿼드러블 달성에 대해 떠들어 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단어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다.”
쿼드러블.
그 단어에 대해 부담을 갖지 말라는 것은 곧 나 자신에게 하는 얘기이기도 했다.
“우승은 우리에게 아주 당연한 일이고, 이번의 결승전도, 며칠 뒤에 열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도 마찬가지다. 트레블이니 쿼드러블이니 하는 단어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의 것을 당연하게 가져오면 된다. 자, 질문?”
“없습니다!”
“그래. 그럼 나가서 웸블리에 맡겨 놓은 우리 것을 가져와라.”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