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occer genius becomes a great coach RAW novel - Chapter (19)
19. 치솟는 주가(1)
“······해서, 협회에서는 U-20 대표팀 코치직 제의를 드리는 바 입니다.”
“흐음···. 그렇군요.”
“별로 놀라지 않으시네요.”
미적지근한 내 반응에 눈앞의 남자는 다소 당황한 티를 내며 물었다.
하긴.
커리어로 내세울 만한 것도 없는 초짜에게 U-20 대표팀 코치직을 제안하겠다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으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겠지.
지난번, 경남과의 경기 직후 걸려온 협회의 전화를 받고 오늘 미팅에 참여했으나, 나에겐 그다지 흥미를 끌 만한 내용이 없었다.
여태껏 연령별 대표팀 인사에 이런 발탁은 없었으니,
‘파격적이라면 파격적이긴 한데···.’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감독도 아니고 굳이 코치를?’
물론, 지금 나에게 감독직을 제안하는 미친 짓을 협회가 할 리 만무했지만, 어찌 되었건.
감독대행이긴 해도, K리그 최연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경신하며 리그 우승과 승격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굳이 U-20 대표팀의 코치로 갈 메리트는 전혀 없었다.
차라리 지금의 기세를 이어서 화제를 더 모으는 게 차후 내 커리어에 더 좋을 테지.
‘국내에서만 있을 생각도 아니고.’
대표팀은 나중에.
정말로, 기회가 닿아 감독직 제의가 온다면 모를까 지금은 아니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제가 이끄는 팀이 우선입니다. 대표팀에는 저보다 더 좋은 인재가 가야 맞겠지요.”
“으음···.”
협회의 생각도 어느 정도 유추는 됐다.
한창 이슈 몰이를 하는 나를 코치로 데려가며 화제성을 조금 더 챙길 심산이었겠지. 그랬는데, 성적에 기여까지 해 주면 더 좋고.
‘하긴. U-20 대표팀이 엄청난 성과를 냈던 11년 전 이후로는 별다른 성과가 없으니.’
협회는 지난 10년간 각급 대표팀 경기와 대회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국내 축구 팬들의 많은 관심을 이끌었다.
그것만으로도 지난날의 협회의 일 처리보다는 훨씬 나았으나,
문제는 성과.
‘성과가 없으니, 관심도 떨어졌다.’
관심이 떨어지면 적은 규모로라도 창출되던 수익마저 사라지게 된다.
“그렇군요. 혹시라도 생각이 바뀐다면 제 번호로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의사가 확고한 것을 확인한 협회 직원은 짧게 인사를 하며 먼저 자리를 떴고, 그가 나간 것을 확인한 나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흐아아아암. A대표팀이나 올림픽 대표팀이었으면 혹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스마트폰으로 내가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스포츠 뉴스였다. 스포츠 뉴스는 해외 스포츠 리그, 국내 스포츠 리그 할 것 없이 모든 기사가 올라왔는데, 나는 그중에서 K2 리그 섹션을 눌렀다.
“음?”
섹션을 누르자마자 화면에 뜨는 것은 나와 서울에 관한 기사들이었고, 옆에는 내 얼굴이 찍힌 사진이 박혀 있었다.
[우승이 코앞, 김하준이 만들어 낸 서울의 리그 역전극.] [선수들 모두가 입을 모아 극찬, 김하준은 덕장?] [전술 이모저모 : 김하준이 사용한 전술은 무슨 특징이 있을까?]“생각보다 나로 쓸 기사가 많나 보네.”
선수 시절부터 나는 좋은 소식으로든, 나쁜 소식으로든 스포츠 뉴스의 단골손님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단지, 선수로 오르내리던 것에서 팀을 지도하는 입장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이 신기할 뿐.
[2030시즌, 서울이 쓴 한 편의 드라마. 꼴찌부터 1위로 도약의 과정.] [김하준과 3년 계약을 준비하는 서울 유나이티드?]글쎄. 프런트에서는 별 소식 없던데.
“찌라시도 그럴 듯한 걸로 낼 것이지···. 원.”
늘어질 만큼 늘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
띠리리링—!
스마트폰 스피커로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주호?”
지난번에 마주쳤던 SA 매니지먼트의 정주호의 연락이었다.
“네. 김하준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감독님.
“네.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하셨는지?
-지난번 말씀드렸던 에이전트 계약 건으로 전화 드렸습니다. 감독님과 계약을 맺고 싶어서요.
이 작자도 기사를 본 것일까?
분명, 지난번의 대화에서 우리가 찾은 합의점은 리그 종료 즈음의 시기일 텐데.
“저는 지금 에이전트가 딱히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서요. 굳이 급하게 계약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독님. 해외로 다시 진출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해외.
해외라···.
당연히 해외로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국내에서 커리어를 쌓아서, 어렵겠지만 해외 리그의 문을 두드려라도 볼 수 있도록.
이런 내 생각을 간파하기라도 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넘겨짚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정주호는 내 관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뭐, 얘기나 들어 보죠.”
-에! 예. 제가 감독님을 찾아가겠습니다. 편하신 장소를 문자로 보내 주세요!
유럽에도 크게 한 발 걸치고 있는 SA 매니지먼트.
그리고 그 회사의 소속 에이전트인 정주호.
만약, 그가 정말로 실력 있는 에이전트라면.
어쩌면, 내가 계획한 진출 시기보다 더 빠르게 진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안녕하세요. 감독님!”
클럽 하우스 인근에 위치한 카페로 약속 장소를 정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나타난 정주호를 나는 묘한 눈으로 쳐다봤다.
‘왜 이렇게 나에게 공을 들이지?’
선수 시절, 그러니까 부상당하기 전의 나를 잡기 위해서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겠지만, 지금의 나는 이제 막 감독 커리어를 시작한 초짜인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셨네요.”
“하하. 제가 원하는 계약을 따내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죠. 그것이 에이전트의 숙명 아니겠습니까?”
뭐, 아무래도 좋았다.
일단 얘기나 들어보고, 별로 와닿지 않는다면 계약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니까.
“빠르게 일 얘기로 들어가시죠. 다음 라운드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인지라.”
“그럼요. 이 시기에 우승 경쟁을 하는 구단의 감독님들은 다들 바쁘시죠.”
불친절을 넘어 싸가지 없게 보일 수도 있는 내 반응을 넉살 좋게 받아넘긴 정주호는 서류 가방에서 서류 한 뭉치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 두고 말을 계속했다.
“우선, 감독님도 저희 SA 매니지먼트는 알고 계시죠?”
알다마다.
해외에서 축구를 시작한 케이스가 아닌, 국내의 학원 축구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해외로 진출한 선수 중 90프로 이상이 SA 매니지먼트 소속인데 모를 리가.
“그럼요. 혁호도 SA 소속일 텐데요.”
이혁호뿐 아니라, 명호도 저니맨 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SA 소속이었다.
“그럼 얘기가 더 빠르겠군요. 저와 저희 회사는 감독님의 해외 진출을 도울 수 있습니다.”
“흐음. 설마, 중국이나 동남아로의 진출을 해외 진출이라고 하지는 않으실 테고.”
중국과 동남아.
분명, 그쪽 리그도 해외 리그이기는 했으나, 그리로 가기 위해 굳이 에이전트 계약을 서두를 필요는 없으며, 그쪽으로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하.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중국 리그와 동남아 리그로 감독님을 데려가려고 저희가 접근하겠습니까? 저희의 본진이 아시아이긴 합니다만···. 저희가 노리는 것은 유럽 시장이죠.”
말을 내뱉는 정주호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그렇다면 하나 물어보죠. 제가 유럽으로의 진출을 추진할 것이라 확신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쉬워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나를 바라보는 정주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유럽에서 만개시키지 못한 재능을 감독으로서라도 꽃피우고 싶어 하시지 않습니까? 제가 틀렸을까요?”
정주호가 내뱉는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내 자랑이 아니라, 나는 불세출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실제 플레이로 그것을 입증하기도 했었고. 다만, 연이은 부상으로 몸이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어 그것을 더는 사용하지 못하고 은퇴했을 뿐.
그러나, 말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기분이 더러워졌다.
어쩌면 나에게 있어서 역린과도 같은 그것을 싱글벙글 웃으며 입에 담는 저 모습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SA가 아무리 큰 회사라고는 하지만,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초짜 나부랭이를 유럽으로 보낸다라···. 자신을 넘어 자만이라고 보이는데요.”
“이런. 제가 실언을 했나 보군요. 감독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감독님의 말씀대로 지금의 감독님을 바로 유럽으로 보낼 능력이 저희에겐 없죠. 다만.”
다만?
정주호는 테이블 위에 있는 서류 더미를 펼쳐 내 앞으로 밀었다.
“능력을 입증하면 됩니다. 이 서류에 적힌 크고 작은 구단들은 저희와 깊든, 얕든 관계를 맺고 있죠. 입김이라고 하기엔 약하지만, 추천 이상의 효과는 보장할 수 있습니다.”
능력을 입증하면 자신들이 물심양면 서포트하겠다. 뭐 이런 건가?
“서울은 9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다음 시즌 K1 리그로 복귀하겠죠. 그렇다면 복귀 첫 시즌에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 그리고 두 번째 시즌에 두 대회를 포함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까지. 자신 없으십니까?”
복귀하자마자 더블, 그다음 시즌에 트레블이라.
내 나이까지 고려한다면 그러한 성적을 내는 것만으로도 유럽의 구단들에게 지원서가 반려되지는 않을 수 있겠지.
5대 리그를 벗어난다면 감독으로 선임 될 가능성도 더욱 높아질 것이고.
“자신이라···. 없군요.”
통찰안을 얻게 된 그 꿈에서, 그것을 선물해 준 어떤 존재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규격 외의 재능이라고.
그것은 플레이어로서의 재능뿐만이 아니었다. UEFA 라이센스를 취득하던 과정 중, 내가 들었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하나 있었다.
‘오, 맙소사! 플레이어로서의 재능뿐 아니라 전술가의 자질도 타고났군!’
동양인이라면 일단 깔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유럽 축구계에서 직접 했던 말이었다.
거기다, 나에게는 이제 통찰안이라는 사기적인 무기까지 더해졌으니.
“도저히 실패할 자신이.”
내 답변을 들은 정주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
“하하. 역시 제가 사람을 잘못 보지는 않았군요. 사실, 제가 언급한 조건은 최상의 시나리오일 뿐입니다. 우승컵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어느 정도 구색만 맞춰주시면 2부리그에서 출발 할 수도 있지요.”
SA의 영향력이 그리도 컸던가?
“뭐, 어차피 아직 오지도 않은 일은 접어 두고. 선수도 아닌 감독을 유럽으로 보내는데 열을 올리는 이유가 뭡니까?”
내 물음에 정주호는 좋은 질문이라는 듯, 반색하며 입을 열었다.
“시장에서 저희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죠. 감독님도 선수 시절 멘데스의 고객이었으니 잘 아시겠지만, 멘데스와 같은 거물급 에이전트들은 선수뿐 아니라 스타 감독들도 고객으로 두고 있죠.”
맞는 말이었다.
선수 시절 나의 에이전트였던 멘데스 역시, 무리뉴를 고객으로 두고 있었으니까.
“감독님이 아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난 10년간 축구판의 판도가 바뀌고 있습니다. 영세 에이전트 회사는 살아남지 못하고 있죠. 그곳이 유럽이든, 아시아든, 남미이든 간에요.”
“흐음. 에이전트의 일까지는 잘 몰라서.”
“아시다시피, 아시아 에이전트와는 유럽 감독들이 계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독님께 제안하는 겁니다. 감독님은 저희의 서포트를 받고, 저희는 감독님의 활약을 발판삼아 유럽에서 판을 더 크게 벌리는 거죠.”
정주호의 말은 서로 윈-윈 이라는 것이었는데.
“그런데, 왜 굳이 저를 찾아온 겁니까? 국내에 널린 것이 감독인데.”
“아아. 물론, 국내에도 지도력이 좋은 감독님들이 많이 계시죠. 그렇지만, 그분들은 화제성이 없지 않습니까?”
화제성.
작금의 국내 축구판에서 화제성으로 나를 이길 감독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람을 이용하는 비지니스는 결국 스토리텔링이 중요합니다. 감독님의 경우, 유럽에서 인지도가 있고 또, 어립니다. 자. 생각해 보세요. 불세출의 천재 선수가 불운한 은퇴 후, 어린 나이에 자국에서 스타 감독이 되어 유럽으로 돌아왔다. 벌써, 스토리 한 편이 완성되었죠?”
“하지만, 축구판은 실력이 최우선입니다. 스토리가 어떻고, 인성이 어떻고 하는 문제 따위는 실력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이런. 저는 스토리텔링으로 사기를 칠 생각이 아니랍니다. 저는 감독님의 전술 성향과 경기 운영을 보고 접근한 겁니다. 이 기본적인 것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스토리를 만들 필요도 없죠. 어차피, 감독님에게 손해는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감독님에게서 가능성을 봤죠.”
열변을 토하던 정주호는 목이 탄 모양인지, 앞에 놓인 물을 벌컥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저는 감독님을 한국의 나겔스만으로 만들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