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occer genius becomes a great coach RAW novel - Chapter (2)
2. 재능의 대가(2)
꿈을 꿨다.
얼굴과 목소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떠한 존재가 내게 남긴 말 한마디는 확실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네게 주어진 재능이 너무나 커서 육체가 감당하지 못했구나.’
말도 안 되는 재능이다, 불세출의 재능이다.
이런 건 사기다.
규격 외의 재능이다.
역대 스타플레이어들을 모두 뛰어넘을 자질이다.
프로에 발을 들이고 내가 들어왔던 찬사들이었다. 확실히 재능이 너무나 컸던 것은 맞는 말일 것이다. 그 재능으로 인해서 선수 생활을 접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그래서 부상으로 인해 내 선수 생활이 나락으로 떨어질 때, 세간에서는 이렇게 말했었다.
너무나 큰 재능을 받은 대가라고.
‘좌절에 삶을 낭비하지 않고 그래도 잘 버텨 주었구나.’
정말로 축구의 신이라는 작자가 맞는 것인지, 말투에는 자애로움과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네 재능을 만개시킬 육체를 줄 수는 없지만, 다른 선물을 하나 주도록 하마.’
그리하여 내 왼쪽 눈에 통찰안이라 불린 그것이 들어오게 되었다. 문제는 그것의 사용법도 컨트롤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으윽···.”
왼쪽 눈이 타오를 듯한 고통에 짧은 신음을 내뱉자, 옆에 있던 동료 코치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김 코치. 왜 그래? 몸이 많이 안 좋아?”
“아닙니다. 그저, 갑자기 두통이···.”
왼쪽 눈에 고통이 가해진다. 이것이 신호였다.
통찰안의 발동 원리도, 컨트롤 방법도 알 수 없었지만, 이것이 발동되는 신호는 알 수 있었다. 왼쪽 눈에 이러한 고통이 시작되면 내 시야에는 볼 수 없는 다른 것들이 보였으니까.
나는 고개를 들어 팀 내 청백전 경기를 바라봤다. 경기를 치르는 많은 선수의 머리 위에 한 가지의 단어들이 떠올라 있었다.
골게터, 치타, 철벽, 강심장, 지휘자 등등.
각 선수들의 특성이 한 단어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특성이 밝게 점멸하는 선수는.
‘그 주에 펼쳐지는 정식 경기에서 한 건 하게 되지. 연습경기는 덤이고.’
꿈속에 나타난 축구의 신이 어째서 선물이라 칭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전술이 완벽히 준비되어 있는 상황에서 선수의 상태와 컨디션을 미리 알게 된다면 그 경기에서 승리할 확률이 대폭 상승하게 되는 것이니까.
즉, 선발 라인업과 교체 타이밍을 고민할 때 엄청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런 능력을 얻어도 선발 라인업에 내가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선수 선발과 교체는 감독의 절대적인 권한. 일개 코치인 나는 조언 정도만 할 수 있는 부분이라 제약이 많았다. 더구나, 정인우 감독은 굉장히 독선적인 인물로, 어지간해서는 내 조언은 거의 무시한다고 봐야 했다.
‘자기 목이 간당간당 할 때가 아닌 다음에야···.’
리그가 개막 후 벌써 한 달이 지난 지금. 6경기를 치른 서울 유나이티드의 성적은 3무 3패. 승점 3점으로 K2 리그에서 최하위를 달리는 중이었다. 이런 미친 부진을 겪는 와중에도 구단의 모기업인 K건설에서는 정인우 감독의 경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기고만장하지.’
리그 정규 일정이 36라운드까지임을 고려한다면 아직까진 두고 보는 것이 맞긴 했으나, 팀을 강등시킨 감독이 하위 리그에서도 이따위 성적을 내는 것을 유럽에서는 두고 보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경질이라는 철퇴를 때렸겠지.’
뭐, 어찌 되었건 나는 청백전에 임하고 있는 선수들의 면면을 살폈다. 당장, 이틀 뒤에 있을 FA컵 1라운드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선수 상태를 점검해야 했으니까.
많은 선수가 구슬땀을 흘리며 청백전에 임하고 있었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하나의 듀오가 있었다.
찰나의 순간, 공간을 가로지르는 쓰루 패스.
그리고 그것을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오프더볼로 슈팅까지 연결.
뻐엉—!
게다가 슈팅의 구질과 정확도까지 대단히 좋았다. 상대로 나온 골키퍼는 몸을 날려 보았지만, 골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철렁—!
“아자아아! 프랑코! 나이스 패스으!”
“좋은 움직임. 멋진 골. 쌍키.”
주전인 A팀에게 통쾌한 골을 선사한 비주전 B팀의 듀오가 환하게 웃으며 골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정상기와 프랑코 트라몬타나.’
골을 만들어 낸 둘의 머리 위에는 각각의 특성이 밝게 점멸하고 있었다.
정상기의 머리 위에는 골게터가, 프랑코의 머리 위에는 찬스메이커라는 특성이 밝게 점멸 중이었고,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연습경기일 뿐이었지만, 저들은 정인우 감독이 선발로 내세우는 선수들보다 훨씬 뛰어난 움직임과 합을 보였다. 저 둘의 조합이라면 당장 부족한 득점력을 메우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지.
“김 코치. 왜 한숨이야? 경기 내용이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아. 물론, 나도 A팀 녀석들의 움직임이 마음에 들진 않아.”
옆에서 수다스러운 입을 다물지 않는 동료 코치를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감독님께 저 둘의 선발을 건의해야겠어요.”
“응? 상기랑 프랑코?”
“네. 어차피 FA컵 2라운드니까 부담은 없잖아요?”
“음. 그렇긴 하지. 구단에서도 FA컵은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고 있으니까.”
이번 시즌, 구단에서 코칭 스탭들에게 내건 목표는 단 하나였다. 바로, K1 리그로의 복귀.
즉, 승격만 할 수 있다면 FA컵 조기 탈락은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실력 있는 자원들을 썩히고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거기다, 로테이션이 되어야 주전 자원들도 체력을 비축할 수 있을 테고.”
“맞는 말이지. 우리도 같이 힘을 실어 줄 테니까 한번 건의해 보자고.”
그러나.
나의 일말의 기대는 산산조각 나듯 부서졌다.
“선수 선발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 내 권한을 침범하려 들지 마라! 네가 유럽물 좀 먹었다고 감독 위에서 놀 수 있다. 이 말이냐?”
X발.
그럼 좀 제대로 선수 선발해서 좀 이겨 보시던가요.
누가 선수 선발 권한을 침범하겠다고 했나? 구단에서 이번 시즌에 기대하지 않는 대회니까 괜찮은 자원들 실험해보자고 ‘건의’한 것을 이리 성을 내니 원.
당장이라도 사직서를 저 감독 얼굴에다가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한국 프로리그는 좁다. 감독들끼리도 아는 사이가 많았기 때문에 정인우 감독이 앙심을 품는다면 두 번 다시 프로 축구계에 발을 들이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 저딴 실력으로 감독직을 잘도 해 먹네. 구단에서는 왜 경질 안 하나 몰라.’
차마 입으로는 뱉을 수 없는 말이었기에, 속으로 삼켰다. 저 인간의 실력이라면 분명 경질되고도 남을 텐데.
그리고.
머지않아 실제로 정인우 감독의 경질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 * *
“하. 고발할 거면 좀 일찍 하시지. 이렇게 개판 난 상황에 감독까지 부재라니. 아니, 오히려 잘된 걸지도.”
무슨 대표팀이나 학원 축구도 아니고.
뇌물을 준 쪽의 선수들을 주전으로 꾸리다가 걸리다니. 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현재 서울 유나이티드의 성적은 굉장히 처참했다.
8라운드가 끝난 K2 리그에서 3무 5패. FA컵 2라운드에서 탈락. 그것도 실업팀을 상대로.
이런 상황에서 감독이 불법적인 일로 형사 입건되면서 경질되었다. 선수단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지만, 나의 경우에는 오히려 좋았다.
‘누가 감독으로 오던 그 자식보다야 낫지 않겠어?’
이 바닥에 감독 하고 싶어 하는 양반만 수두룩 빽빽한데 그 인간보다 나은 사람 한 명 찾지 못할까. 더군다나 우리 구단은 시민구단이 아니라 모기업이 있는 구단. 모기업인 K건설에서 어련히 잘 찾아 주겠지.
문제는.
“하아···. X발. 코치가 나만 남은 게 말이 되냐고.”
정확히는 1군 팀에 속한 코치 중. 나를 제외한 다른 세 명의 코치들이 정인우 감독과 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형사입건이 된 것이었다.
구단 상황이 이리되었어도 리그 경기는 계속 치러야 했기에, 나는 먼저 프런트로 찾아갔다. 프런트에서 앞으로 감독과 코치 선임이 어떻게 될지를 알아야 나도 그에 맞춰 준비를 다 해 놓을 수 있을 테니.
“아. 김 코치님 오셨어요?”
프런트의 직원이 턱 밑까지 다크서클을 늘어뜨린 채 나를 반겨준다. 프런트 역시 항의 전화와 각종 업무로 인해 업무가 터지고 있었겠지.
마음 같아서는 그들에게 일적인 것을 묻고 싶지는 않았지만, 지금 나에게도 발등이 불이 떨어진 터라 어쩔 수 없었다.
“고생 많으십니다. 다름이 아니고 새 감독과 코치들 선임 건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내 말에 표정이 더 어두워지는 직원을 보며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 그게···. 차기 감독 건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네요.”
응?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니. 이게 무슨 헛소린가?
감독을 경질했으면 구단의 대표이사가 후보를 물색해서 결정한 후에 모기업에게 비용 처리에 관한 것을 알려야 하는 게 아니던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아니, 어떻게요? 리그 경기가 며칠 남지 않았어요. 1군 팀의 코치는 저 하나구요. 그렇다고 우리가 2군이나 유스팀 감독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2군에서 감독 대행을 끌어오자니 2군팀 역시 전담 코치 한 명과 골키퍼 코치 한 명으로 운영되고 있었기에 적절치 못했다.
‘인프라가 개판이야.’
거기다.
서울 유나이티드의 유스팀은 서울시 소재의 중고등학교 축구부와 협약을 맺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당연히, 유럽처럼 감독대행으로 U-18 감독이나 U-23 감독을 불러올 형편이 아니다.
“예예.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전화를 안 받으세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직원을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한 구단의 대표이사가 이 시기에 전화를 안 받는다니.
‘모기업에 끌려가서 털리고 있기라도 한 건가?’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높았다. 한국에서 기업이 운영하는 프로 축구팀의 경우, 대표이사로 모기업의 인사가 앉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니까.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모기업인 K건설도 이미지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을 테고, 관리를 못 한 대표이사는 제대로 깨지고 있을 터.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런 행정적인 일로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닌데. 당장 선수단의 사기를 올리고 훈련에 매진해도 성적을 반등시킬 수 있을까 말까 한 때였다.
“코치님 걱정도 이해는 됩니다만···. 저희도 죽을 판입니다. 이런 사태가 어쩌다 터졌는지 원.”
안다.
저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저들 또한 그저 구단에서 주는 돈을 받으며 일하는 월급쟁이들일 뿐인데. 죄가 있는 사람은 비정상적인 일을 저질러 시즌 초반에 구단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그 양반이겠지.
“후우···. 일단은 알겠습니다. 감독은 그렇다 치고. 코치들도 구해야 할 텐데···.”
코치마저 충원을 안 해 줄 리는 없겠지.
“아. 코치 충원에 관해서는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그것마저 진행되지 않고 있었으면 저도 진지하게 사표를 쓸까 생각 중이었거든요.”
물론 구라였다.
커리어라고는 쥐뿔도 없는 상태라 다른 팀으로 옮기기도 요원했으니.
“하하···. 저희 좀 살려 주세요. 코치님마저 공석으로 나가시면 더 힘들어집니다.”
거의 울기 직전으로 변한 직원을 보며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 양반, 아무래도 시달리다 못해 말라 죽기 직전인 것 같았다.
“농담입니다. 아무튼, 결정된 사안이 있으면 제 번호로 연락 좀 부탁드릴게요.”
“네네. 코치님 그렇게 할게요.”
그렇게 프런트에 신신당부하며 발걸음을 옮긴 나는 훈련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프런트에서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띠리리링—.
“네. 김하준입니다.”
-코치님! 차기 감독 건이 결정이 나서 연락드렸습니다!
오. 내가 프런트에 들렀다 와서 그런 건지 생각보다 일이 빨리 진행된 것 같기도 하고?
“아, 어떤 분이 감독으로 부임하신다나요? 아니, 그보다. 당장 다음 경기 지휘하시려면 오늘 당장 오셔야 할 것 같은데···?”
-아···. 그게 말이죠.
갑자기 뜸을 들이는 프런트 직원. 뭔가 느낌이 싸했다.
-구단에서는 차기 감독을 바로 구인하지 않고 이번 시즌을 코치님을 감독대행으로 세워 치르겠답니다.
빌어먹을. 이딴 주먹구구식 운영이라니.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