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occer genius becomes a great coach RAW novel - Chapter (26)
26. 공간의 지배가 곧 승리다(1)
와아아아!
“흐음. 생각보다 응원 오는 서포터들이 많네요?”
리그 11라운드를 위해 김천의 홈구장에 들어서자, 꽤 많은 서포터들의 함성이 우리를 반겼다.
“그럴 수밖에. 이 지역을 연고로 하는 팀이 여기뿐이다 아이가? 자연스레 서포터들이 몰릴 수밖에 없지. 뭐, 리그의 인기가 올라간 것도 크게 한몫했지만 말이다.”
“최 코치님, 예전에는 안 그랬습니까?”
“그럼. 예전에는 관중석의 반이나 차면 많이 왔다 했지. 아, 김 감독은 유럽에 있느라 국내 사정 잘 몰랐제? 지난 10년 동안 리그 사무국이 고생하면서 파이를 키운 성과가 이제야 나타난기다.”
최용환 코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리그의 인기나 파이가 커졌느니 마느니 하는 류의 이야기가 그동안에는 이해가 잘 안 됐는데, 이렇게 관중석에 들어선 서포터들과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리그 사무국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김 감독아, 진짜 괘안캤나?”
“뭐가 말입니까?”
“상무가 아무리 리그에서 중하위권을 전전한다고 해도···. 오늘 라인업은 너무 실험적인 거 아인가?”
아아. 난 또 뭐라고.
최용환 감독이 말한 대로, 오늘 나는 라인업의 변화를 줬다. 이적 후 교체로 간간이 내보내던 성현수를 선발 라인업에 올린 것은 물론이고, 아딜손을 중원으로 내리기도 했으니까.
“성현수는 이제 담금질 끝난기가?”
“그럼요. 이제 슬슬 선보일 때가 되었죠.”
세간에서는 15억이라는 거액으로 상암에 입성한 성현수가 리그 초반부터 선발로 출전할 것이라 예상했었지만, 나는 성현수를 10라운드까지 단 한 번도 선발로 기용한 적이 없었다.
그것을 두고 사람들은 괜한 돈 낭비를 한 것 아니냐는 둥 구설이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성현수는 그저 팀에 융화될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었으니까.
성현수는 치명적인 오프더볼 움직임을 선보이면서 상대에게 비수를 꽂는 타입의 선수였다. 패스와 연계, 그리고 패턴과 포지션 플레이를 베이스로 삼는 우리 팀에서 그가 활약하기 위해서는 팀의 전술에 녹아드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석 달의 담금질이 끝난 직후.
‘녀석의 특성이 점멸했더랬지.’
그러니까 이번 라운드를 앞두고 훈련을 진행할 때였다. 녀석의 머리 위에는 별 세 개반과 함께 공간 연주자라는 특성이 점멸하고 있었다.
“최 코치님, 저랑 내기하실래요?”
“어떤 내기?”
“성현수가 공격 포인트를 올린다 못 올린다로요. 저는 올린다에 걸게요.”
내 말에 최용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고,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저놈아가 오늘 한 건 하겠구만. 안 할란다. 뭐 한다고 지는 내기에 걸고 있겠노.”
아, 들켰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최용환 코치는 나와 함께하면서 내 말에 무한한 신뢰를 보이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이러한 내기를 걸면 죄다 빼기 일쑤였는데.
‘아. 지난번에 너무 거하게 털어먹어서 그런가.’
고급 한정식집 한턱내기로 최용환 코치를 크게 털어먹은 적이 있은 뒤로는 내기의 내자만 들려도 고개를 젓고는 했다.
잠시 뒤, 선수들이 터널에서 입장하기 시작했고 나는 지나가던 정상기를 발견하고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물론, 돌아오는 반응은 정상기의 썩은 표정이었지만.
“씁. 이렇게 냉담한 반응일 줄이야.”
유럽에 있을 때, 감독들의 애정표현을 보며 배웠던 것인데 아무래도 나는 이거랑 안 어울리는 모양이다.
* * *
왼발잡이 이태준을 왼쪽에 배치해 정발 윙어 형태로 기용했던 하준과는 달리, 김천의 이재영 감독은 오른쪽에 역발 윙어처럼 배치하여 인사이드 포워드 형태로 기용했고, 이를 본 하준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예상대로 기용하네요.”
“지금 상무의 스쿼드로는 선택지가 없을기다. 김 감독, 니처럼 전술적으로 머리가 말랑하거나, 아니면 스쿼드가 빵빵하거나 하지 않으면 정발 윙어는 쉽사리 쓰기 어렵지.”
“흐음. 정인우 감독 체제에서 태준이가 어땠는지를 봤으면 저렇게 기용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뭐, 저 양반이 그런 것까지 챙겨 봤겠나? 빵 뜨고 난 뒤만 챙겨 봤겠지. 애초에, 상무가 이 선수 좋다고 데려오고 할 수 있는 팀도 아닌데.”
[이어서, 원정팀인 서울 유나이티드의 라인업을 살펴보겠습니다.]이번 경기에서 하준이 꺼내 든 선발 라인업은 이러했다.
성현수, 구정운, 정창훈으로 구성된 쓰리톱과,
신영준과 아딜손 제수스가 중원에, 그리고 윤상우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그 둘을 받치는 역삼각형 형태의 3 미들을 형성했고,
길정현, 문태진, 루이스 코스타, 진호수로 이루어진 포백라인과 정우현 키퍼가 장갑을 낀 4-3-3 대형이었다.
[김하준 감독이 즐겨 사용하는 4-3-3 대형이긴 한데, 오늘의 선발 라인업으로 볼 때, 제로톱은 아닌 것 같군요.] [맞습니다. 제로톱 사용 시에는 보통 아딜손 제수스나 트라몬타나가 그 역할을 맡거든요? 그런데, 제수스는 오늘 중원으로 내려가 있네요. 물론, 저 선수가 중원에서도 좋은 기량을 보여 줍니다만, 잘 기용하지 않던 방식이거든요?] [그렇군요. 그리고, 지난 시즌 보여줬던 윤상우 시프트가 이번 경기에서 다시 한번 가동된 모습입니다. 아, 주심이 휘슬을 입에 갖다 댑니다.]삐이이익!
[주심의 휘슬과 함께, 경기 시작됩니다! 서울 유나이티드의 선축으로 진행되겠습니다!]서울은 경기가 시작되자, 패스를 주고받으며 간격을 넓히기 시작했다.
툭!
툭—!
[공간을 넓게 가져가는 서울 유나이티드. 매끄러운 패스들이 이어집니다.]공간을 넓혔음에도 김천의 선수들은 서울의 공을 커트하지 못했다. 분명, 넓게 선 대형이었지만 패스를 주고받는 선수들의 간격은 좁았다.
[아, 서울의 움직임이 좋습니다. 패스를 주고받을 때, 선수들이 움직여 주거든요? 이렇게 되면 압박에 대응하기도, 다음 움직임을 가져가기에도 용이합니다.]매끄럽게 이어지는 서울의 패스 플레이를 끊어 내기 위해 김천의 선수들은 강한 전방 압박을 시도했지만.
툭-!
툭!
타닷! 타다닷!
서울은 이대일 패스와 삼자 패스가 연이어 펼쳐지며 김천의 압박을 부드럽게 벗어나며 전진 패스를 찔러 넣었다.
투우욱—!
[아딜손의 절묘한 패스! 김천의 선수들을 지나쳐, 구정운에게로 향합니다!] [등을 지고 볼을 키핑하는데 성공하는 구정운!]패스를 차단하지 못한 김천의 선수들이 거세게 압박을 해 왔지만 구정운이 수비를 등진 채 공을 지켜냈고, 이를 지켜보던 하준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반대편의 측면을 바라봤다.
‘판은 깔렸다. 네 능력을 보여 봐라.’
하준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에는 구정운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 성현수가 있었고, 성현수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김천의 오른쪽 풀백이 끌려 나오면서 파이널 서드 왼쪽의 공간이 열렸다.
툭—!
[구정운이 성현수에게!] [아! 원터치로 돌려놓는 성현수!]성현수는 구정운의 패스를 감각적인 원터치로 돌려놓았고, 성현수의 발을 거친 패스는 열려 있는 파이널 서드 왼쪽 공간으로 쏘아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타다다다닷!
[아! 성현수가 원터치로 보낸 패스를 받는 선수는··· 신영준! 신영준입니다! 저 선수 언제 저기로 침투했나요!]촤앗!
타다다닷!
성현수의 움직임으로 만들어 낸 공간으로 침투한 신영준은 과감하게 중앙으로 치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영준이 중앙으로 꺾어 들어옵니다!] [페널티 박스 근처에 네 명! 네 명의 서울 선수가 포진했습니다!]과감하게 돌파를 시도하는 신영준에게 어그로가 끌린 오른쪽 풀백과 센터백이 다급히 달려왔으나, 신영준은 돌파를 지속하는 대신 컷백으로 다시 공을 내주는 선택을 했다.
투욱—!
[신영준의 컷백! 성현수에게 공이 갑니다! 슈팅할 기회에요!] [성현수, 때리나요?]오른발잡이 선수에게는 슈팅을 때릴 수 있는 최적의 위치였다. 더군다나, 성현수는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선수. 성현수에 대한 정보가 있던 김천의 하나 남은 센터백은 주저 없이 성현수를 향해 달려왔지만.
툭!
[아! 또다시 원터치로 공을 넘기는 성현수!]원터치로 내준 성현수의 패스는 순간적으로 프리 상황에 놓인 구정운에게로 향했다.
구정운은 자신에게 오는 패스를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임팩트를 맞춘 슈팅을 시도했고,
뻐어엉—!
쐐애애애애액!
상대 키퍼가 손을 쓸 수 없는 구석에 공을 꽂아 넣는 데 성공했다.
철렁—!
[고오오오오올! 골입니다! 구정운의 깔끔한 슈팅이 골로 연결됩니다!]“보셨죠? 제가 저 녀석이 공격 포인트 올릴 거라고 그랬잖아요.”
“허, 이것 참. 만약에 내기라도 했으면 오늘도 바가지 쓸 뻔했네.”
어이가 없어 하면서도 팀의 공격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최용환.
“씁···. 좀 아쉽긴 한데···.”
“뭐? 이 자슥이?”
짧게 최용환과 농담을 주고받은 하준이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간의 담금질이 잘 이루어진 것에 대한 만족이었다.
‘오프더볼 무브먼트가 좋다는 것이 꼭 슈팅 상황에만 써먹으라는 법은 없거든.’
오프더볼 무브먼트.
말 그대로 공이 없을 때의 움직임을 뜻한다. 성현수는 지난 시즌, 부산 로얄즈 소속으로 리그 득점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는데, 그 비결이 바로 치명적인 오프더볼 무브먼트였다.
다른 감독들은 성현수를 호날두마냥, 골게터로 사용하는 데서 그쳤겠지만, 하준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호날두가 아니라 토마스 뮐러라면?
두 선수 모두 공이 없을 때의 움직임으로 공간을 만들어 내, 득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두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 중 하준의 팀에 더 맞는 것은 공간을 창출할 뿐 아니라 주위의 동료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뮐러의 움직임이었고, 이러한 움직임을 탑재하기 위해 석 달간의 담금질을 해 왔던 것이다.
‘호날두 정도의 선수가 아니라면 뮐러 스타일로 뛰게 하는 게 오히려 좋거든.’
[구정운의 깔끔한 마무리도 일품이었지만, 이번 골에서는 성현수의 움직임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맞습니다. 자, 이 장면이죠. 성현수의 움직임에 오른쪽 풀백이 끌려 나오면서 사이드 공간이 열렸거든요? 또, 이 타이밍에 맞춰서 신영준이 기가 막히게 침투를 합니다. 성현수가 그것을 눈치채고 구정운의 패스를 원터치로 신영준에게 보내면서 김천의 포백라인을 어그러트렸죠.] [그런 다음에, 컷백을 받았을 때도 기가 막힌 판단이었죠?] [맞습니다. 충분히 슈팅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지난 시즌이었다면 바로 슈팅을 했을 위치와 상황이죠. 그런데, 자신에게 수비가 끌려오는 것을 인지하고는 원터치로 구정운에게 공을 내줬거든요. 이렇게 되면서 구정운의 앞이 텅텅 비게 되는 결과가 나타난 거죠.] [서울의 매끄러운 패스 플레이에 이어, 성현수의 공간 창출이 빛을 발하는 골이었습니다.]서울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이 골 셀레브레이션을 하며 기뻐하는 한편.
“와···. 미친. 이렇게 쉽게 먹힌다고?”
반대편에서 허탈하게 이 장면을 지켜보던 정상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기야. 어차피, 실점은 예상했었잖아. 우리가 더 많이 넣는 수밖에.”
정상기의 옆으로 다가온 이태준이 정상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독였지만, 정상기는 연이어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렇기는 한데···. 이게 영, 감이 안 좋아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감이 안 좋다니? 오늘 컨디션 좋다고 그랬잖아? 나도 나쁜 컨디션은 아니고.”
“그랬죠. 컨디션은 지금도 좋아요. 체력도 만땅이고, 오늘 감각도 예민한데, 그런데 말이죠···.”
잠시 말을 멈춘 정상기는 고개를 돌려 서울의 벤치를 바라봤고, 정상기의 두 눈에는 득점에 기뻐하며 주위의 코치들과 기쁨을 나누는 하준의 모습이 들어왔다.
서울의 벤치에서 시선을 뗀 정상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왠지, 오늘 경기에서 이건 시작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