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occer genius becomes a great coach RAW novel - Chapter (39)
39. 악몽을 선사하는 팀(1)
상하이 원정을 성공적으로 끝낸 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서울 유나이티드, 수원 블루스를 상대로 5-0 대승.] [홈에서 시드니 위너스를 제압한 서울 유나이티드.] [전북 그린스와 1-1 무승부를 기록한 서울 유나이티드.]······
[부리람 유니온을 6-0으로 박살 낸 서울 유나이티드.] [서울 유나이티드, 인천 FC를 상대로 2-0 승리.]리그 경기는 물론,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까지 좋은 모습을 보이며 서울 유나이티드는 K1 여포가 아닌 아시아의 강팀으로 급부상 중이었다.
그러나.
[김하준 부임 후 첫 패배.] [93경기 만에 패배. 서울 유나이티드를 잡은 부산 로얄즈.] [2년 반 만에 첫 번째 패배. 김하준도 사람이었나?]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면서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커지다 보니 리그 16라운드에서 부산 로얄즈에게 덜미를 잡히며 2-1로 패배하였고, 하준의 부임 이후 서울 유나이티드는 93경기 만에 첫 패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아···.”
부임하고 오랜 시간 동안 이어오던 무패 기록이 깨졌으나, 그것이 하준의 골머리를 썩이는 부분은 아니었다.
하준의 골머리를 썩이는 부분은 바로.
[2032 브리즈번 올림픽 대표팀 최종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서울 유나이티드 선수들.] [김하준의 아이들, 임우정과 황상수. 올림픽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까?] [올림픽 대표가 된 상암의 미친개와 지우개. 올림픽에서 그들의 역할은?] [서울 유나이티드, “한국 축구를 위해 기꺼이 선수를 보낼 수 있다.”]“하필이면 둘 다 데려갈 게 뭐야.”
후우우우—.
하준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인터넷 기사를 뒤적거렸다.
본디 올림픽 축구란 FIFA에서 주관하는 대회도 아니기에 A매치로 규정되지도 않는 터라 차출 거부를 할 수도 있었지만.
“후우우···. 그놈의 대승적 차원.”
선수들의 병역 문제도 걸려 있고, 구단 수뇌부에서도 대승적 차원을 운운하며 차출 거부에 대해 싹을 잘라 버린 것이었다.
“기왕 나갔으니 메달을 따 오면 좋으련만···. 그래야 군 문제도 해결하지.”
하준과 권명호가 참가했던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사상 두 번째 동메달을 획득했던 대한민국 올림픽 축구는 그 이후로 치러진 올림픽 대회에서 조별리그 광탈이란 결과를 만들었다.
이는 비단 올림픽 축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올림픽 대표팀 세대가 A 대표팀으로 올라왔으니, A 대표팀 또한 성적이 좋을 리 만무했고, 자국 리그가 활성화되며 기염을 토하는 것과는 반대로 대표팀은 암흑기를 걷고 있었다.
그나마 와일드카드라는 명목으로 김채우나 권명호를 빼앗기지 않은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푸흐···. 그 대신 혁호를 데려갔네. 자식 뺑이 좀 치겠네.”
리버풀의 슈퍼스타.
김하준-이혁호-권명호 동갑내기 황금세대의 주인공.
현시점, 대한민국의 최고 스타를 올림픽 대표팀이 와일드카드로 소환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차출에 성공한 거지? 리버풀이 안 보내려고 했을 텐데.”
이혁호의 경우, 하준과 권명호가 출전했던 파리 올림픽에 같이 출전하면서 동메달을 획득하여 이미 병역 문제를 해결했다. 병역 관련 문제가 걸려 있지도 않은데 리버풀이 그의 차출을 받아들였다는 것에 국내외의 모든 스포츠 언론에서 의아함을 내비쳤었다.
“스트라이커가 필요하긴 했을 테지.”
현재 올림픽 대표팀의 감독이 미는 스타일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구정운은 차출 대상이 아니었고, 정상기에게 눈을 돌리는 듯했으나 이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무팀에서 군 복무 중인 정상기의 차출이 불발된 상황에서 올림픽 대표팀이 눈을 돌릴 만한 매물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정상기의 경우, 김천에서 차출을 거부한 것도 있겠으나 본인 또한 여름 이적시장이 끝날 즈음 군 복무가 끝나다 보니, 별다른 메리트를 느끼지 못한 탓이었다.
벌컥—.
“김 감독아, 뭐 하고 있노?”
치이이익—.
“아 오셨어요?”
최용환의 등장에 하준은 태우던 담배를 재빨리 지져 끄고는 창문을 열었다.
“우리 김 감독이 16강 경기에 관해서 상의할 게 있다고 그래서 한달음에 찾아왔지. 우정이랑 상수 그놈아들은 잘 도착했다드나?”
“글쎄요. 별다른 연락은 없네요. 대표팀에서 어련히 잘 하지 않았을까요?”
“하기사. 그것도 그렇네.”
서울 유나이티드의 챔피언스리그 16강 상대는 우라와 스퀘어즈.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최용환 코치에게 하준이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오늘도 커피 드실 거죠?”
“하모.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참 좋드라.”
하준은 추출한 커피에 얼음을 집어넣고는 최용환의 앞에 내려놓았다.
“크. 이 맛이지. 역시 커피 중 커피는 김 감독이 내려준 아메리카노다. 그래, 내 한테 어떤 걸 물어보고 싶어가 먼저 불렀노?”
“다른 건 아닙니다. 일본 축구가 어떤지 좀 들어 보고 싶어서요. 제가 듣기로는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그러더군요.”
“음···. 틀린 말은 아이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은 스페인식 축구를 숭상하니까. 패스나 빌드업 부분은 해가 갈수록 정교해지지.”
최용환은 자신이 서울과 중국에서 챔피언스리그를 치를 때 경험을 떠올리며 상대했던 일본 팀들의 성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기자기한 패스를 잘해. 패스 정확도도 뛰어나고. 패스 전개로만 따지면 중국 팀들보다 낫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근데 그놈아들은 한 방이 없어. 마무리를 못 해.”
“그렇군요. 특별한 사항 같은 건 없나요?”
“아. 그건 있지. 우리나라 팀들이 그런 것처럼, 저놈아들도 한일전 타이틀이 걸리면 기를 쓰고 뛰거든. 좀 귀찮아질 수 있대이. 그리고 최근에는 고바야시? 그놈아가 지휘봉을 잡았는데 생각보다 잘한다 하긴 하드라.”
최용환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보다 보면, 일본 팀들이 K1 팀들을 잡는 장면이 생각보다 많이 나와. 그런데, 그놈아들이 즐겨하는 축구의 상위호환이 김 감독 축구 아이가? 걱정할 필요 없다.”
일본의 축구 컬러나 다름없는 패스와 촘촘한 빌드업.
이것을 K1 리그에 이식하고 유기적인 공격과 수비를 만들어 낸 것이 바로 하준이었다.
* * *
와아아아!
[우라와 스퀘어즈가 또 한 번 승리를 따냅니다! 리그 7연승 기염을 토하는 우라와 스퀘어즈!]“감독님. 고생하셨습니다.”
“감독님도 고생하셨습니다.”
고바야시! 고바야시!
[우라와의 서포터즈가 고바야시 감독을 연호하는군요.] [하하. 고바야시 감독이 우라와 스퀘어즈를 리그 1위로 올려놓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고바야시 감독이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 줄 것 같군요.] [팬들도 아마 그리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우라와 스퀘어즈의 서포터즈는 목이 다 쉴 때까지 그들의 감독을 연호했다. 강호였던 우라와 스퀘어즈의 암흑기를 벗어나게 해 준 것이 바로 지금의 감독이었으니.
우라와 스퀘어즈의 감독 고바야시 미나토는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최근 선수들의 경기력이 눈에 띄게 발전하여 리그에서 7연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하고 있었으니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에서도 전승을 거두며 16강에 안착하는 데 성공한 그에게 최근 한 가지 고민거리가 생겼다.
바로, 서울 유나이티드와 하준의 존재.
“흐음···. 김하준. 김하준이라···.”
경기가 끝나고 집으로 가지 않고 구단 내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미나토는 서울 유나이티드의 경기 영상을 돌려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투욱—!
[김채우의 스루패스!]타다다닷!
뻐엉—!
철렁—!
[구정운이 침착하게 마무리합니다!]“군더더기가 없군.”
영상을 노려보던 미나토의 미간에 내 천자 주름이 생겼다.
올해로 10년째 지도자 생활을 이어 가고 있는 미나토에게 있어서 현재 서울 유나이티드의 경기력은 골머리를 썩이기에 충분 아니, 차고 넘쳤다.
“한국 팀들은 대부분···.”
터프하고 굵직한 축구일 텐데.
뒷말을 삼킨 미나토는 뻐근해지는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마치 유럽의 축구를 보는 것만 같군.”
축구로 밥을 먹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경해 마지않는 유럽 축구. 그 유럽 축구판에서도 세밀한 전술이 오고 가는 스페인과 잉글랜드의 빅 클럽이 할 만한 축구를 선보이고 있는 서울 유나이티드를 보며 미나토는 고개를 갸웃했다.
“김하준···. 커리어를 시작한 지 이제 3년인데 팀을 이렇게 만들 수가 있다고?”
그도 하준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 주목한 불세출의 재능. 그것이 바로 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선수였을 때의 얘기. 지도자는 선수와는 또 다른 영역에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스타플레이어였어도 감독으로는 실패하는 일이 부지기수였으며, 명장으로 올라서는 스타플레이어조차도 3년 만에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아르헨티나 초반의 시메오네 정도뿐인가.”
은퇴 후 고국으로 돌아가 지도자를 시작했던 시메오네. 그를 제외하면 선수를 그만두고 바로 지도자로 이름을 각인시킨 사례는 드물었다. 그런 시메오네마저도, 그 이후로 몇 번의 부침을 겪다 스페인으로 돌아와 재기했지 않은가.
“16강에 만나기엔 너무 까다로운 팀이 올라와 버렸군.”
짧게 혀를 찬 미나토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하준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가 즐겨 쓰는 전술 성향은 어떠한지, 또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딸각.
딸각.
이런저런 글들을 눌러보던 미나토의 눈에 들어온 제목이 하나 있었다.
김하준의 놀라운 정보들.
“놀라운 정보?”
왠지 모르게 구미가 당기는 제목에 마우스로 바로 클릭하는 미나토.
[김하준의 놀라운 정보들.]1. 김하준이 축구를 시작한 것은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간 16세일 때이고 3년 뒤인 2022년 여름 19세의 나이로 첼시에서 데뷔했다.
2. 데뷔 시즌인 22/23 시즌에 김하준의 스탯은 17골 18도움이다.
3. 두 번의 치명적인 부상으로 그가 첼시를 떠났을 때의 나이는 22세.
4. 첫 번째 부상으로 스피드와 화려한 드리블을 잃었음에도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상대 진영을 박살 내고 대한민국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
5. 이후 발렌시아, 마요르카, 마인츠를 전전하다 마인츠에서 28/29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하였으나 발렌시아 시절부터는 사실상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6.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이른 나이에 UEFA P 취득에 성공했고, UEFA A 취득 시절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UEFA A 이론 시험을 만점으로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7. UEFA A 이론 시험 만점자는 토마스 투헬, 토비아스 슈바인슈타이거 두 사람뿐이었으며, 김하준은 세 번째로 만점자 대열에 합류했다.
···(중략)···
26. 김하준은 크루이프즘에 기반한 전술을 즐겨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승리를 위해서는 다른 전술을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27. 서울 유나이티드에 부임 후 93경기 무패 기록을 세웠다.
“미친···. 이게 사람이 맞아?”
글을 다 읽은 미나토는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첼시에서 데뷔했던 당시의 성적이나 퍼포먼스는 그 또한 잘 기억하고 있었다. 아시아에서 또 하나의 괴물이 탄생했다며 동북아 3개국의 모든 언론에서 대서특필했었으니까.
미나토가 주목한 것은 하준의 지도자 연수 과정에 있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라이센스인 UEFA 라이센스. 게다가, 영국과 스페인 독일을 거치면서 각 리그의 특성을 두루 섭렵했을 것이 분명한 하준은 K1 리그에서 그것을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감독은 전술적 다양성을 가지고 있고, 보유한 선수들은 감독의 입맛대로 움직여 준다니.”
미나토는 서울 유나이티드가 자신이 여태껏 상대해 왔던 K1 리그의 다른 팀과는 전혀 다른 상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식으로 준비를 해야 하는 거지?”
그의 팀에는 중국 팀들처럼 유럽에서 놀던 용병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K1 리그의 팀들처럼 피지컬이 준수한 것도 아니다. 강점으로 꼽히는 티키타카와 빌드업이 있긴 하지만, 이 전술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하준이라면 파훼법 또한 간단하게 알고 있을 터.
그나마 다행이라면 1차전 경기는 자신들의 홈인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것이라는 것뿐.
“승리의 여신이 우리에게 미소 짓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이날, 미나토의 사무실 불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