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occer genius becomes a great coach RAW novel - Chapter (49)
49. 인정과 관심(1)
정규 시간이 끝나기 전, 기어코 동점을 만들어 맨체스터 시티를 연장전까지 끌고 갈 수 있었지만, 상대가 상대인 탓이었을까?
철렁—!
[아아···. 또 실점을 허용하고 마는군요. 연장 후반에만 두 골을 허용하는 서울 유나이티드!]연장 후반 10분에 터진 페란의 골과 13분에 터진 매카티의 골로 스코어는 5-3이 되었다.
‘이 정도만 해도 잘 싸웠지···.’
유럽 챔피언을 그것도 과르디올라의 베스트 일레븐을 상대로 아시아 클럽이 이 정도나 버텨 냈다는 것은 잘 싸웠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삑! 삐익! 삐이이익—!
[연장전까지 간 혈투 끝에 5-3으로 서울 유나이티드를 꺾고 맨체스터 시티가 클럽 월드컵 우승을 거머쥡니다!]와아아아아!
‘조금만 더 버틸 수 있었으면···.’
조금만 더 악착같이 버텨 내어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에 의미 없는 가정을 해 보던 하준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모든 체력을 쏟아 내고 그라운드에 누워 있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터억—.
“아쉽제?”
하준의 어깨에 손을 얹은 최용환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렇지만 우리는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였으니 되었습니다.”
“감독을 하다 보면 말이다.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지. 우승컵이 걸린 대회에서 우승을 따내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이가? 너무 담아 두지 말고 털어 내라.”
“네. 그래야죠.”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하준이 몸담은 3년간 우승컵을 따내지 못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하준은 서울 유나이티드와 작별하기로 약속했으니까.
“뭐···. 일단은 잘 싸워 준 선수들 위로나 하러 가시죠.”
“그래. 그래야지.”
하준을 비롯한 코칭 스탭 전원이 그라운드 위로 올라가 쓰러져 있는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을 몰아 내쉬는 자신의 친구를 내려다보던 하준이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잘 싸웠다. 명호야.”
“역시 쉽지 않네. 맨체스터 시티는.”
권명호의 말에 하준은 그저 미소 지었다.
120분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친구에게 어쭙잖은 위로는 모욕일 테니.
“그래서, 어디로 갈지는 정했냐?”
“아직. 에이전트가 협상 중인 구단은 몇 군데 있긴 해.”
“오늘 경기 이후로 몇몇 팀이 더 늘어나겠네.”
덤덤하게 내뱉는 권명호의 말에 하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모르지. 한국 들어가자마자 에이전트랑 만나기로 하긴 했어.”
“나가게 되면 이번에는 오래오래 해 먹어라.”
나지막이 내뱉은 말.
감정이 실리지 않은 듯한 어조였지만, 친구를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 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중에 네가 아들 낳아서 그 아들이 선수가 될 때까지도 감독 하고 있을게.”
“X랄. 난 딸 낳을 거야.”
“오. 죽을 때까지 감독하라는 말인가. 이렇게 친구를 생각해 주는 녀석인 줄은 처음 알았는데?”
“염병.”
하하하하!
굉장히 오랜만에 편안한 상태에서 농담을 주고받던 두 친구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선수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위로의 말을 건넨 하준은 그라운드에서 내려가려다 과르디올라에 의해 붙잡히게 되었다.
“킴.”
“아. 좋은 승부였어요, 호셉. 역시나 힘드네요.”
“힘든 승부였던 건 우리도 마찬가지였어. 그런 수를 들고 나올 줄은 솔직히 상상하지 못했거든.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인가?”
“글쎄요. 어디로 갈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사람 일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닌걸요.”
하준의 말에 과르디올라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 일이 어디 마음대로 되느냐는 그 말. 으레 모든 사람들이 쓰곤 하는 말이었지만, 하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그 무게가 일반인들과는 달라졌으니.
“어디로 가든지, 언제나 응원하지. 그리고, 다음번에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봤으면 좋겠군.”
“네. 곧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날, 둘이 나눈 대화가 현실이 되는 것은 몇 년 후의 일이었다.
* * *
[연장전까지 간 혈투. 5-3으로 끝내 패배한 서울 유나이티드.] [졌지만 잘 싸웠다! 맨체스터 시티에게 크게 한 방 먹인 서울 유나이티드.] [K1 리그 소속 팀으로 클럽 월드컵에서 첫 준우승을 달성한 서울 유나이티드.] [재계약은 정말로 없었다. FA가 된 김하준.] [공석이 된 U-23 대표팀. 김하준이 지휘봉을 잡나?] [서울 유나이티드, “지난 3년간 팀을 위해 헌신해준 김하준 감독에게 매우 감사. 그의 앞날을 항상 응원하겠다.”] [김하준의 후임으로 서울 유나이티드의 지휘봉을 잡게 된 최용환.] [최용환, “서울의 컬러를 잃지 않고 더 발전시킬 것.”] [2032 K1 리그 올해의 감독에 선정된 김하준.] [김하준의 다음 행선지는?] [독일과 스페인에서 포착된 김하준의 에이전트. 그의 행선지는 유럽?]-진짜 내가 알던 K1 팀이 맞음? 맨시티를 상대로 5-3, 그것도 연장전까지 갔다고?
-심지어 맨시티 베스트 일레븐이었음. ㄷㄷ. 서울 서포터즈는 진짜 걱정이겠네. 이거 완전 퍼거슨 떠난 맨유 아니냐?
-ㄴㄴ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음. 최용환도 국내에서 알아주는 감독이고, 서울 스쿼드는 그대로니까.
-독일이랑 스페인에서 에이전트가 포착됐다는데? ㄹㅇ 유럽 진출 가나요?
-와 아시아인으로 유럽 감독이 되는 거 처음 아님? 가슴이 웅장해진다. ㄷㄷ.
-솔직히 클럽 월드컵 전에 이 기사 떴으면 반신반의했겠는데, 지금은 1부 강등권 팀이나 2부 팀은 닥치고 모셔갈 수준인 건 분명함.
-ㅇㅈ. 아시아 트레블이라 콧대 높은 유럽 애들이 내려치기 ㅈㄴ 할 텐데, 클럽 월드컵에서 맨시티 상대로 저런 경기력을 보였으니 이제는 할 만하다.
“흐음. 내가 여전히 가십거리구나.”
클럽 월드컵 일정을 마친 후, 나는 한국으로 들어와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살고 있던 오피스텔 계약에 관한 건부터, 비행기 티켓을 끊는 것까지 해서.
바쁜 일주일을 보내고, 12월 중순이 되어 나는 서류 더미를 가져온 정주호와 미팅을 가졌다.
“클럽 월드컵 이후, 저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이 닿은 구단도 다섯 손가락을 넘습니다. 감독님.”
“으음···. 그 서류들이 전부 그것에 관련된 건가요?”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다 볼 필요는 없죠. 쳐낼 건 쳐내고 간추려서 말씀드리자면, 세 군데의 클럽 정도로 보시면 될 듯합니다.”
정주호가 추려놓은 세 군데의 클럽.
독일의 마인츠 05와 함부르크 SV, 스페인의 RCD 마요르카.
이 중 마인츠를 제외하면 강등권이기는 해도 1부리그에 안착해 있는 팀이었다.
“마인츠라···.”
“마인츠에서는 이전에 있었던 코치 해임 건을 의식한 모양인지, 선수 영입에 대한 권한을 포함한 전권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전권을 부여한다고요?”
“그렇습니다.”
내가 서울로 오기 전. 그러니까 마인츠에서 코치직을 수행하고 있을 적에, 나는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감독이 경질당할 때 같이 목이 날아간 코치 중 하나였다.
그때 그 사건을 의식한 모양인지, 마인츠에서는 선수 영입을 포함한 전권을 약속했다고 한다.
‘급하긴 급했나 보네.’
겨울 휴식기를 앞둔 현재 마인츠의 성적은 16위.
2부에서도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었다.
‘그래서 헤드코치가 아닌 매니저의 지위를 준다는 건가···?’
축구 감독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바로, 헤드코치와 매니저.
전자는 전술과 선수단을 움직이는 것에만 국한된 제한적인 감독이고 후자는 선수 영입과 구단 운영에도 입김을 넣을 수 있는, 사람들이 흔히들 떠올리는 감독이다.
나에게 바로 이러한 자리를 약속한다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는 뜻이기도 했고.
“음···. 다른 두 구단은 어떻던가요?”
“함부르크의 경우 헤드 코치직을 제안했습니다. 보셨다시피, 강등권에 허덕이고 있는 터라 감독을 경질한 상태입니다. 또한 마요르카 역시 비슷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으음···.”
선택해야 했다.
2부 리그이지만 내 입맛대로 선수단을 뜯어고칠 수 있는 마인츠냐 아니면 1부리그에 있는 나머지 두 구단이냐.
“개인적으로는 함부르크를 추천 드립니다만, 마인츠나 마요르카 또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독님이 선택하시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할 생각입니다.”
1부리그와 2부리그라는 무대를 떠난다면, 마인츠가 가장 좋은 선택지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두 구단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데다 전권을 부여 받는 조건이기 때문에.
“하루만 더 고민해 보고 결정하는 것으로 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이 자리에서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하루만 더 고민해보겠다며 정주호와의 미팅을 종료한 나는 생각에 잠겼다. 과연 어느 구단으로 합류하는 것이 더 옳은 선택인지 파악하기 위해.
‘선수단 장악 면에서도 마인츠가 더 수월하겠지.’
비록 플레잉 코치로 합류해 얼마 뛰지 않고 은퇴했다고는 해도 일단 마인츠 출신인 나는 나머지 두 구단보다 마인츠에 더 인지도가 있었고, 짧게나마 정식 코치로 일하던 동안 눈여겨보던 선수들도 있었기에 선수 구상 또한 수월할 것이 분명했다.
‘그에 반해 함부르크는···.’
강등권에서 허덕이고 있기는 해도 언제고 반등을 일으킬 수 있는 저력이 있는 팀이었다. 10여 년 전에 강등을 당하고 세 시즌 안에 1부리그 복귀에 성공한 뒤, 유로파에서도 종종 보이는 팀이기도 했고.
‘마요르카는 음···. 패스.’
마요르카가 딱히 나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현재는 독일로 복귀하는 것에 무게를 더 두고 싶었다.
“흐음···.”
그렇게 고민을 이어 가던 무렵.
띠리리링—!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오랜만이야, 크레이지 보이.
옛 스승, 투헬의 전화였다.
“오랜만이네요.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하시고?”
-호셉과의 경기를 봤지 뭐야. 팀을 떠난다지?
“그렇게 됐습니다. 다른 무대에서 제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기도 했고 겸사겸사요.”
-독일로 오겠구나.
내가 독일행에 무게를 두는 것을 어떻게 안 것일까?
“뭐야. 스토킹이라도 하시는 건가요?”
-큭큭큭. 스토킹은 무슨. 독일에도 네 기사가 조금씩 오르내리고 있다.
“에···?”
-마인츠와 함부르크. 두 구단이랑 링크되고 있다 보니 너에 관한 기사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더구나. 아시아인 감독이 독일에 들어오는 건 처음이니까.
하긴.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시아인 감독이 자국의 구단과 링크가 뜨는데, 그 감독이 유럽에서 인지도가 높은 편이라면 많은 양의 기사가 올라오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
-그래서 어디로 갈 셈이냐?
“잘 모르겠어요. 고민 중이라 답이 잘 안 나오네요.”
-호오? 그거 참 의외구나. 내가 아는 너라면 당연히 마인츠를 택할 줄 알았는데.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는 거니까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해야죠.”
-뭐, 그 말도 맞긴 하지만, 가끔은 끌리는 대로 선택하는 게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
그리 영양가 있는 조언이 아니었지만 투헬의 말을 듣고 나니 뭔가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 언제부터 조건 따져 가며 살았다고.’
어차피 1, 2년 감독할 것도 아니고 조건들을 두고 저울질을 길게 가져갈 필요는 없다.
“크흠. 조언은 고맙습니다. 근데 거, 양반 참. 이번엔 또 왜 싸워 가지고 팀을 옮기고 난리예요?”
-뭐 10년 정도 있었으면 팀을 옮길 때도 된 거지. 독일에 오면 언제 한번 뮌헨에 들러. 밥이나 한 끼 먹게.
뚝—.
뚜뚜뚜뚜—.
“허. 거, 말도 안 끝났는데 전화를 끊어 버리네. 하여간, 성질 급해 가지고는···. 그래도 나를 아끼긴 했구나.”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투헬의 밑에서 뛴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리만큼 그는 나를 아꼈다. 두 번의 부상 이후 스페인으로 떠날 때에도, 마지막까지 나의 이적을 만류했던 건 투헬 본인이었으니까.
아마 이번의 전화도 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조언을 해 주기 위해 걸었던 것이겠지.
“뭐. 덕분에 고민은 줄었네.”
고민은 끝났다.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울고 있었던 방향을 향해 발을 내딛기로 마음먹었으니 더 이상 종이 쪼가리를 들여다보며 눈싸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고민을 끝낸 나는 망설임 없이 정주호의 번호를 눌렀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몇 번의 수화음이 울린 뒤에 들려오는 목소리.
“네. 감독님.”
“행선지를 정했습니다.”
유럽에 내 이름 석 자를 다시 한번 새길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