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occer genius becomes a great coach RAW novel - Chapter (73)
73. 김하준 사단(1)
선수단이 휴가를 가 있는 지금.
나는 감독실에 나와 컴퓨터를 이리저리 두들기고 있었다.
“흐음…. 괜찮은 사람들은 대부분 빅클럽에 있구나.”
다가오는 시즌 개막을 앞두고, 나만의 팀을 꾸리기 위해 괜찮은 코치들을 수소문하고 있었는데 건너건너 알게 된 코치들은 대부분 빅클럽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만….”
현재 우리 구단에 있는 코치들도 나쁘지 않은 인재들이어서 서서히 체제를 바꿔 갈까 생각 중이었는데, 자선 경기를 마치고 마인츠로 돌아오면서 그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볼커 커스팅, 보훔 1848 감독으로 부임.] [보훔 1848과 2년 계약에 합의한 볼커 커스팅.] [뿔뿔이 흩어지는 마인츠의 코치진.] [마인츠, “감독과 코치진 사이의 불화는 억측.”] [마인츠, “킴이 원하는 인사들로 코치진이 꾸려질 것.”] [자신만의 팀을 꾸리기 위해 움직이는 김하준?]수석 코치를 역임하고 있던 커스팅이 3부로 강등된 보훔의 감독으로 가게 되었고, 1군의 다른 코치 몇 명도 감독직을 원해 하부리그와 오스트리아나 벨기에 등지로 떠났다.
졸지에, 급하게 사람을 찾아봐야 했던 나는 골머리만 썩이고 있는 중이었다.
“어째, 항상 휴가 때마다 일이 끊이질 않네.”
데자뷰인가.
“으으….”
계속해서 모니터만 뚫어져라 본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닌지라, 담배를 챙겨 바깥으로 향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다 보면 번뜩이는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겠지.
클럽 하우스 인근에 있는 허허벌판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최근 심심풀이로 보고 있는 축구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축구 때문에 골 아파서 나와 놓고 또 축구 관련 글이나 보고 있다니. 나도 참 중증이네.”
세간에서 말하는 성공한 덕후는 혹시 나를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닐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스크롤을 내리던 중에 내 눈을 사로잡는 제목 하나가 있었다.
“마인츠의 성공과 킴의 전술에 대한 고찰…?”
유럽 각지의 축구 팬들이나 축구계 종사자들이 글을 쓰는 커뮤니티다 보니 유럽의 여러 클럽에 관한 게시물들이 올라오곤 했지만, 내 얘기가 올라오는 것은 처음 보는 터라 이끌리듯 게시물을 터치했다.
“지난 후반기에 마인츠가 거둔 성공에는 킴의 뛰어난 전술 운용과 변칙적인 대응 전술에 있다….”
나는 홀리듯이 글을 읽어 가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뭐야…. 이 사람 스토커야? 아니면 내 머릿속에 칩이라도 박아놨나?’
게시물에 적혀 있는 주된 내용은 지난 시즌 후반기 동안 내가 보여 준 전술과 그 전술의 의의. 그리고 내가 경기에서 어떤 이점을 가져가기 위해 그런 수를 썼는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전술의 도식화였다. 대규모 축구 커뮤니티의 경우 이런 게시물들이 자주 올라오곤 했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 게시물을 쓴 사람은 보통의 경우와 전혀 달랐다.
“어떻게 내 생각이랑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지?”
마치, 내가 저 게시물을 쓴 것처럼.
게시물을 업로드한 사람은 내 전술과 생각을 꿰뚫고 있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음…. 전혀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닌데?”
바이에른과의 결승전에서 내가 취했으면 조금 더 좋았을 방법에 대한 것까지 기재 되어 있었다.
‘이 정도의 지식수준은 단순한 축구 팬의 그것이 아니야.’
단순히 축구광이 적었다기엔 전문적인 배경지식이 엿보이는 글이었다. 내가 UEFA 라이센스 취득 과정에서 들었던 수업에서 배운 적이 있는 내용까지 보였으니 말이다.
“만나 봐야겠는데?”
간혹 그럴 때가 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러한 감이 머리를 치고 지나갈 때가.
그리고 그런 때가 바로 지금인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나는 게시물을 업로드한 회원의 아이디를 눌러 아이디에 기재된 메일 주소를 확인했다.
“당장 보자고 해야겠다. 메일로 보내면 빨리 보긴 할까…?”
밑져야 본전인 상황.
나는 스마트폰의 메일 앱을 켜 타이핑을 시작했다.
성의가 느껴질 정도로 장문의 메일을 적은 뒤에….
“음. 나라는 걸 믿게 해야 하는데….”
메일을 보낸 사람이 나를 사칭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나라는 것을 간단하면서도 확실하게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은.
“뭐긴 뭐야. 셀피지.”
선수 은퇴 후 SNS를 전부 닫아 버린 나는 셀피를 찍은 적이 없었고, 인터넷에 나의 셀피가 돌아다닐 일 따위는 없었다.
그러니, 셀피를 찍어 보내면 의심은 덜 받지 않을까.
찰칵!
“오. 김하준 아직 안 죽었네. 막 찍었는데도 이렇게 잘 나오다니.”
새삼, 잘 낳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사진을 첨부해 메일 전송 버튼을 누른 나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큰 화면으로 다시 봐야겠다.”
* * *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공원.
띠링!
더벅머리의 한 남자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다 스마트폰 알림 소리에 몸을 움찔거렸다.
“아우 놀래라. 뭐지…?”
폰의 잠금을 열고 알림 소리의 원인을 확인한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버튼을 눌렀다.
“마인츠의 킴입니다.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에라이, 네가 킴이면 나는 클롭이다. 무슨 장난질을….”
누군가의 장난질이라 치부한 메일이었지만, 남자는 저도 모르게 메일을 읽기 시작했다. 메일을 읽는 데 돈이 드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으음…. 꽤나 정갈한 문체네. 장난을 친 사람이 영 돌대가리는 아닌가 보군.”
유려하게 쓰인 문장을 읽으며 남자의 입꼬리는 귀에 걸릴 듯이 올라갔다.
“흠흠. 내 분석을 보고 꽤 감명받았나 본데. 영 맹탕은 아닌가 보다. 킴을 사칭할 정도로 나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건가?”
실실 웃는 남자가 그저 누군가의 장난 정도로 여겼던 글의 마지막에는 연락처와 함께 한 장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갑자기 웬 사진…?”
뜬금없이 첨부된 사진을 누르고 난 뒤,
남자의 반응은 백팔십도 달라지게 되었는데.
“미친! 진짜 킴이라고? 맙소사! 진짜 킴이야? 마인츠의 킴? 오, 정말 나한테?”
“뭐야?”
“공공장소에서 대체 왜 저러는 거야?”
백팔십도 달라진 남자의 괴성 섞인 반응에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가 동반되었지만, 남자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아하핫…. 죄송합니다.”
주변에 짤막한 사과를 건넨 뒤, 남자는 심호흡을 하며 연락처를 눌렀다.
“킴이 내 글을 본 건가…? 왜? 아니, 아니지. 왜 본 건지는 상관이 없어. 중요한 건 킴이 내 글을 보고 나와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한 거니까.”
속사포로 빠른 랩을 뱉어대는 래퍼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린 그는 초조하게 상대방이 전화를 받기만을 기다렸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많이 바쁜가…?”
뛸 듯이 기뻤던 조금 전과는 달리 남자의 어깨가 축 처지려는 찰나.
-네. 김하준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하준의 음성이 들려왔다.
“킴? 킴 맞습니까? 마인츠의 킴 맞나요?”
-네, 맞습니다. 전화 거신 쪽은 누구시죠?
꿀꺽.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 남자는 상기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에게 메일을 보내 주셔서 전화를 걸게 되었습니다. 아, 저는 루카 뮐러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아! 다행히 메일을 빨리 확인해 주셨네요. 네, 뮐러 씨. 혹시 만나서 대화 가능할까요?
분데스리가의 떠오르는 신예 감독인 하준의 제안에 루카는 흥분되는 목소리를 애써 가라앉히며 말했다.
“네…! 언제 가면 될까요?”
-저는 언제라도 좋습니다만…. 뮐러 씨도 일을 보셔야 하니, 편하신 시각을 말씀해 주시면 그때 시간을 빼놓도록 하겠습니다. 당장 오셔도 좋구요. 하하.
“지금! 지금 가겠습니다! 1시간 내로 마인츠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 실례지만 어디에서 오시는지…?
“제가 지금 프랑크푸르트에 있어서 마인츠까지 얼마 안 걸립니다. 당장 가서 얘기를 나눠 보고 싶습니다!”
말을 내뱉으면서 루카는 혹, 자신이 결례를 저지르지는 않았나 불안해했으나, 수화기 너머로는 하준의 밝은 목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기차를 타고 오시겠네요. 그러면, 마인츠 중앙역으로 제가 마중을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잠시 후에 뵙는 거로 하고, 기차 출발 시각만 메세지로 보내 주세요.
“네…!”
통화를 마친 루카는 기쁨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생겼어…!”
사실, 하준은 루카의 게시물을 인상 깊게 봤다는 메일과 만나서 대화를 나눠 보고 싶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지만 루카에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여러 구단의 코치 구인에 응했지만 떨어지기를 수십 번.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벌써 다른 일을 알아봤을 터였지만, 루카는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며 계속해서 코치 구직을 이어 나갔었다.
물론, 지원한 모든 클럽에서 거절 통보를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괴짜? 나를 놓친 걸 후회 할 거다. 역시, 킴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나를 알아봐 주다니…!”
축구가 자신의 길이 아닌가 낙담하고 있던 루카에게 하준과의 통화는 한 줄기 빛이나 다름없었다.
“아.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빨리 역으로 가야지!”
* * *
루카와의 통화를 마친 뒤, 하준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곧장 집으로 향했다.
“엄청 열정적이네?”
루카의 사정을 알 리 없는 하준은 루카가 그저 열정적인 사람인 것으로 인식하며 옅게 웃었다.
“기차로 30분 거리니까…. 음. 천천히 나가면 되겠네. 그건 그렇고….”
고개를 돌린 하준은 미소를 거두며 낮게 혀를 찼다.
“넌 대체 언제 돌아갈 생각이야?”
“아, 다음 주 되면 갈 거야. 되게 빡빡하게 구네 정말. 자꾸 그러면 엄마한테 다 이른다?”
소파에 드러누워 티비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동생을 보며 짜게 식은 눈을 한 하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집이 호텔이냐? 아니, 호텔에 온 관광객도 너처럼 하루 종일 소파에 널브러져 있지는 않겠다.”
“왜 나한테만 그래? 세실도 옆에 있잖아?”
“어, 어? 나?”
천연덕스럽게 제 친구를 걸고 넘어지는 동생과 옆자리에 앉아 당황하는 세실리아를 본 하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속으로 다짐했다.
반드시, 이 사태의 원흉인 정상기와 임우정을 응징하겠노라고.
그것도 철저하게.
“내가 무슨 말을 하겠냐. 아오.”
“근데, 오빠. 어디가? 맨날 추리닝만 입고 왔다 갔다 하더니, 그 옷은 뭐야? 지금 비시즌이잖아? 데이트라도 가?”
“……데이트…? 혹시 여자친구 있으신….”
“데이트? 여자친구가 있는지부터 확인해 줄래? 일 때문에 나간다. 일 때문에.”
하준의 차진 반응에 김현지는 깔깔대며 말을 이었다.
“끅끅끅…. 아, 이거 웃참하기 어렵네. 그래, 그럼 그렇지. 오빠가 무슨 여자친구야. 아침도 축구 점심도 축구, 저녁도 축구인 양반이 무슨.”
“……지는 않은데….”
김현지의 옆에서 세실리아가 무어라 말을 하는 듯했지만, 너무 작은 소리라 듣지 못한 하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아오, 저걸 밖에 내다 버릴 수도 없고. 집이나 잘 보고 있어. 특히, 정상기, 임우정 그 두 놈들 오면 문 열어 주지 말고.”
“왜? 나 사인받고 싶은데. 그 두 선수, 한국에서도 인기 많지 않아?”
“인기는 무슨, 내가 더 많아.”
“뭐래. 근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단정하게 입고 나가는 걸 보면, 어디 에이전트라도 만나러 가?”
하준은 김현지의 질문에 건성건성 답하며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코치로 쓸 만한 사람이 보여서 얘기나 하러 간다.”
“아아. 오빠 등쌀에 못 이겨서 코치들이 다 나갔지?”
김현지의 실없는 소리에 지친 하준이 대답하는 것을 관두자, 김현지는 그만하겠다는 듯 손을 들었다.
“알았어. 알았어. 이제 그만. 근데 오빠는 왜 첼시에서 같이 뛰었던 사람들하고는 일 안 하는 거야?”
“다들 제자리 찾아서 잘 정착했는데 내가 어떻게 데려오냐? 내가 맡은 팀이 바이에른이라도 된다던?”
하준이라고 자신의 팀을 구상할 때 첼시 시절 동료들을 떠올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저니맨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첼시 동료들과 자주 만났을 만큼 절친했던 동료들은 다 제자리를 찾아 여러 구단의 수석 코치와 감독을 역임 중이었기에, 말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을 뿐.
“엥? 그 누구더라? 베로나에서 코치하던 그 사람 얼마 전에 백수 됐는데? 세실이 말해줬는데…. 세실, 그 누구였지?”
“응. 조르지뉴. 조르지뉴가 얼마 전에 코치직을 관두고 나왔어.”
세실리아의 말이 끝난 순간 하준의 동공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