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occer genius becomes a great coach RAW novel - Chapter (74)
74. 김하준 사단(2)
‘조르지뉴가 팀을 나왔다니···.’
집을 나서기 전, 현지와 세실리아의 대화를 통해서 듣게 된 사실을 곱씹으며 나는 마인츠 중앙역으로 차를 몰았다.
조르지뉴에게 제안을 해보는 것도 일이지만 우선적으로 선약을 먼저 처리해야 했으니까.
“흐음. 루카, 루카 뮐러라···.”
차에 타기 전 인터넷 포털에 루카의 이름을 검색해봐도 딱히 나오는 게 없었던 것을 보면, 재야에 묻힌 코치이거나, 정말 미친 전술 덕후이거나 둘 중 하나일 터.
“코치였으면 좋으련만.”
루카가 UEFA 라이센스를 취득한 상태라면 코치로 그를 기용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겠지만, 라이센스가 없는 일반인이라면 코치 기용에 애로사항이 생긴다.
물론, 그럴 때에는 코치가 아닌 다른 직책을 통해 편법으로 그를 데려올 수 있긴 하지만···.
“위험 부담이 있으니···.”
뭐가 됐든, 그를 만나 얘기를 나눠보면 향후 내가 어떤 방식을 취해야 할지 가닥이 잡힐 것이었다.
그렇게 차로 몇 분을 더 달려 마인츠 중앙역에 도착한 나는 차를 주차한 후에 역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인상착의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잖아?”
너무 들뜬 나머지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 정보도 듣지 못한 나의 실책이었다.
“뭐···. 그가 내 얼굴을 아니 굳이 상관없나?”
한쪽이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이지.
그렇게 약속 시각이 다 되었을 즈음.
“킴!”
더벅머리를 한 거구의 사내가 내 앞에 나타났다.
“뮐러 씨?”
“네. 맞습니다! 제가 루카 뮐러입니다. 킴, 만나게 되어서 너무나 기쁩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는 루카를 보며 나는 옅게 웃었다.
‘클롭 감독을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이 닮았다기보다 체형과 머리 스타일에서 오는 느낌이 딱, 머리를 짧게 자르기 전의 클롭을 보는 것만 같았다.
“킴? 어! 킴이다! 킴이 여기에 왔어!”
“뭐? 어디? 그냥 닮은 사람 아니고?”
“야 씨, 마인츠에 있는 동양인이면 다 킴이냐?”
“자세히 보라고, 저 얼굴이 킴이 아니면 대체 누구야.”
루카와 만나 인사를 하는 짧은 시간 안에 벌써 나를 알아본 서포터즈 무리가 생겼다.
‘여기서 붙잡히면 최소 삼십 분이다.’
선수나 감독이나 팬 서비스를 게을리하거나 싫어해서는 안 되지만 일의 경중이 있듯, 지금은 오래 붙잡히면 안 될 상황이었다.
“아.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장소를 옮기죠.”
“하하···. 인기가 대단하시네요.”
“감사할 따름이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루카와 차에 탄 뒤, 곧장 클럽 하우스로 향했다.
“원래는 식사를 같이하며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네요. 미안합니다.”
“아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죠. 역에서 조금만 더 시간을 지체했으면 저희가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었을 텐데요.”
“이해해주시니 감사하군요.”
인사치레를 끝낸 뒤, 우리는 전술과 팀이 강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각자의 생각들을 가감 없이 주고받으며 세 시간가량을 보냈고,
대화의 말미에 나는 본론을 꺼냈다.
“전술과 팀 운영에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듯 한데···. 혹시, 코치로 일하고 있는 클럽이 있습니까?”
“아···. 아뇨.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지원서를 넣어 봤지만, 저를 뽑아 주지 않더라고요.”
듣던 중 반가운 얘기였다.
코치 라이센스가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과 라이센스가 있더라도 소속된 구단이 있으면 어떡하는가 하는 걱정이 동시에 날아간 답변에 나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믿기지 않는 얘기네요. 지원서를 받은 구단이 저희 팀이었다면, 제가 바로 낚아챘을 텐데 말이죠.”
“아하하···.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해서 하는 말인데···. 저와 같이 일해보지 않겠습니까?”
“······네?”
나에게 제안을 받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모양인지.
내 말에 루카의 몸이 굳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저와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뜻입니다. 코치로서요.”
“그러니까···. 저를, 마인츠에 코치로 기용하시겠다는···?”
버퍼링이라도 걸린 듯이 말을 힘겹게 꺼내는 루카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우리 팀에 코치로 합류해 주셨으면 합니다.”
분명, 대화를 나누던 초반에는 들떠있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던 루카는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보다는 스스로를 자조하는 분위기로 변해 있었다.
‘지원했던 구단들도 얘기만 하고 돌려 보낸 건가?’
괴짜가 어쩌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했던 만큼, 지원서를 냈던 구단의 책임자 혹은 감독과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분명히.
‘하긴, 이런 번뜩이는 생각들을 쏟아내는 사람을 어떻게 그냥 지나치겠어.’
다만.
대화 자체에 보이는 울렁증이라던가, 다소 다혈질 처럼 보이는 성미가 루카라는 사람은 감독이 컨트롤 하기 어려운 인물이라고 오해하게 만든 것인게 분명했다.
내 마지막 말 이후,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루카를 나는 계속해서 기다려주었다.
자신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더 흐르고.
“······하겠습니다. 꼭 하고 싶어요!”
“좋습니다. 곧 연락을 드릴 테니 짐을 챙겨 두고 계세요.”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한 명.
하루빨리 다음 시즌을 구상해야 하는 시기였기에 조바심이 날 법도 했으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찾는 데 오래 걸린 대신에 대어를 낚았으니까.
“다음은···.”
* * *
“하. 쉽지 않네, 정말.”
스페인 라스팔마스의 해변에서,
조르지뉴는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남들은 잘만 하는 일인데. 왜 나는···.”
현역 은퇴 후, 지도자로 커리어를 이어가기 위해 조르지뉴는 열의 넘치게 라이센스를 취득하고 자신이 몸담았었던 베로나의 코치로 재직했었다.
여러 전술가 밑에서 뛰며 전술적인 안목을 길렀던 탓인지, 베로나에서 그는 나름대로 순탄한 코치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데이비드 모예스가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20년대 초반 웨스트햄에서 부활 이후, 계속해서 팀을 옮겨 다니던 모예스는 베로나에 부임하고 나서 팀의 전술 코치였던 조르지뉴와 정면에서 부딪히고 말았다.
“패스 플레이를 정착시킨 팀에 역습만을 고집하다니···. 하아.”
조르지뉴는 감독을 보좌하며 현역 시절 명장들 밑에서 배웠던 지식을 토대로 베로나 선수들의 패스 플레이와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워, 전임 감독을 비롯해 구단 수뇌부들에게 인정받으며 수석 코치직에 오르기 직전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은 모예스가 베로나에 부임하면서 백팔십도 바뀌었고, 선수들의 불만을 대변한 조르지뉴는 모예스와 사사건건 부딪치게 되었는데.
어쨌거나, 조르지뉴는 감독이 아닌 코치.
선수단의 신임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 다음에야, 감독의 편을 더 들어주는 것이 당연한 상황에서 조르지뉴는 팀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에라이. 전술 유동성도 없이 얼마나 잘 되나 보자.”
머리를 비우고자 스페인으로 넘어와 휴가 아닌 휴가를 즐기고 있었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고 심란해지기만 한 조르지뉴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띠리리링—.
“이 번호는···. 쭌?”
몇 해 전.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부터 마인츠의 감독이 되어 비상 중인 지금까지, 연락이 통 없었던 하준에게서 온 전화에 조르지뉴는 고개를 갸웃하다 곧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여보세요. 쭌?”
-아. 번호 안 바뀐 거 맞구나. 오랜만이야 조르지뉴.
“어쩐 일이야? 전화를 다 하고.”
-하하···. 그동안 연락이 뜸해서 미안해. 여러모로 바빴거든.
“뭐···. 네 활약은 나도 잘 지켜보고 있어, 최근에는 자선 경기도 잘 봤고. 어쨌든 잘 되어서 다행이야.”
-고마워. 그보다···. 조르지뉴, 베로나에서 나왔다고 하던데.
“아아. 뭐, 그렇게 됐어. 코치 주제에 감독과 마찰을 빚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지.”
그래도 친하게 지냈던 사이라고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전화를 한 것인가 싶어, 부러 담담하게 말을 한 조르지뉴는 쓴웃음을 지었다.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하준과 자신이 너무나 대조되었기에.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랑 같이 일할 생각은 없어?
“······뭐?”
자신과 같이 일을 하자는 하준의 말에 조르지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원래 젊은 나이에 감독이 되면 코치를 이렇게 막 뽑는 걸까?
-뭐야, 벌써 잘 안 들리는 거야? 우리 팀으로 올 생각 없냐고.
“아니···. 선수도 아니고, 코치로서 나의 무엇을 보고 제안하는 거야? 쭌.”
분명, 코치로서 자신은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베로나 지역과 그 근방에서 자신의 역량이 퍼져가고 있었을 뿐.
-당연히 네가 베로나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지. 솔직히 말하면, 한국에 있을 때 너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어떤 식으로 지도를 하는지 연구했어.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을 시절.
하준은 유럽의 최신 전술 트렌드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유럽의 경기들과 감독과 코치들의 전술 패턴과 일화들을 공부하곤 했었다.
-다만. 너나 다른 동료들은 다들 구단에서 제자리를 찾아 일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마인츠에 와서도 따로 영입 제안을 하지 않은 것뿐이야.
“허···.”
-타이밍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우연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 팀이 코치진을 개편해야 하는 상황이거든? 그래서 나는 네게 제안하는 거야.
달콤했다.
하준의 제안은 조르지뉴에게 달콤해도 너무 달콤했다. 곧바로 5대 리그 팀의 코치로 가는 것 자체는 차치하고서라도, 그가 보기에 하준이 보여주는 축구 철학은 자신이 그리던 이상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잠깐. 잠깐 생각할 시간을 줘. 쭌.”
너무나 달콤한 제안이기에 조르지뉴는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주체가 절친한 동료이기에 더더욱 심사숙고해야 했다.
감독 경력이 오래된 모예스와도 거리낌 없이 마찰을 빚은 자신인데 하준이라고 다를까?
-음···. 그래. 그런데 너무 오래는 힘들 것 같아. 나도 프리시즌 전에 개편을 완료해야 하는 입장이거든. 생각해보고 결과를 알려줘.
“그래. 일단, 제안해줘서 고맙다. 쭌. 적어도 내일 안으로 연락을 줄게.”
통화를 끝낸 조르지뉴는 멍하니 해변을 바라봤다.
“마인츠···. 마인츠라.”
비록, 이번에 승격했다고는 하나 팀의 조건만 따지자면 베로나보다 훨씬 나았다. 그가 현역으로 뛴 시절, 마인츠의 성적도 그렇고.
“아. 그래. 월드플릭스에 쭌의 팀 영상이 올라와 있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월드플릭스의 다큐멘터리만으로 마인츠와 하준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팀 분위기와 어떻게 팀이 돌아가는지, 하준이 추구하는 바는 어떤 것인지 정도는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조르지뉴는 월드플릭스 앱을 켜 반전의 팀을 재생했다.
[그게 아니지! 저쪽으로! 저쪽 공간이 남잖아, 왜 길을 버리는 거야?]팀 전술훈련을 진행하는 모습부터.
[좋아. 조금만 더 고생해서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트로피를 따오자. 구단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거다. 할 수 있겠지?]드레싱 룸 안에서의 팀 토크까지.
하준과 마인츠의 영상을 보던 조르지뉴는 폰을 내려 놓고 생각에 잠겼다.
‘쭌은 코치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으며 팀을 이끌었어. 그런데 나를 굳이 데려오려는 이유가 뭘까?’
조르지뉴는 이 의문에 두 가지를 떠올렸다.
마인츠 코치진이 하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거나.
‘이제 혼자서 모든 것을 하기가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거나인데···.’
둘 중 어느 것이 정답이든 하준은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기에 연락을 했다는 것이었고, 조르지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고맙게도 내 능력을 인정해서 제의를 했다는 얘기네. 인사치레로 한 말은 아니었구나.”
생각을 마친 조르지뉴는 결단을 내린 표정으로 폰을 들었고,
“기회를 줬으니, 그 기회를 잡는 게 맞지. 그리고···.”
조르지뉴의 폰 액정에 떠 있는 번호는 하준의 번호가 아니었다.
“갈 때 선물도 가져가면 좋아하겠지. 마침, 그 녀석도 쉬고 있는 중이니.”
통화 버튼을 터치한 조르지뉴는 확신했다.
하준이라면 투헬 사단의 베버같은 역할을 할 이를 찾고 있을 것이라고.
띠리리링—.
수화음이 이어지다 곧 조르지뉴의 귓가에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여보세···요.
잠에 취한 목소리를 들은 조르지뉴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다 깬 목소리네. 어제도 경기 영상 분석하다 잤어?”
-일상이지 뭐. 이건 관성이야. 내가 구단에서 일을 하고 있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래. 그 관성을 이어갈 자리를 내가 방금 제안받았는데 말이야. 너를 같이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어때? 들어볼 생각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