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SS-class weapon starting from the tutorial!? RAW novel - Chapter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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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05
느닷없이 등장한 로키. 솔직히 기억 속에 남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도 그럴 게 강호에서 본 것을 마지막으로 별다른 활약이 없었던 탓이다.
‘이 새끼가 최후 흑막이었나?’
그러고 보니 의문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최초 녀석의 제안을 통해 파멸의 신기 12개가 모였고, 종말의 날이 시작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강호에선 꽤 높은 신격들을 대동한 채 그를 습격하지 않았던가.
어딜 봐도 수상쩍은 녀석이었다. 다만 너무도 명백한 최종 보스, 니드호그가 정해져 있었기에 녀석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한번 해보게?”
하지만 마음속 동요를 내비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최종 보스가 생각보다 싱거워 허무했던 터다. 지금 상황도 간단히 정리하자면 쓰러뜨려야 할 적이 하나 늘었을 뿐이 아닌가.
“오만하군. 오만해. 물론 네 녀석이라면 그럴 자격이 있지.”
온갖 시련을 넘어 종말의 마룡마저 쓰러뜨린 하윤이다. 오직 그만이 로키 앞에서 오만할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 앞에서 그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하윤과 같은 종류의 음흉한 미소를 그린다.
“펜리르, 요르문간드. 아비의 부름에 응하거라!”
촤악, 촤아악!
물보라를 일으키며 샘 위로 떠오르는 존재. 그것은 푸른 갈기가 돋보이는 늑대와 샘 전체를 휘감은 거대한 뱀이었다.
[세상을 집어 삼키는 늑대 펜리르(Lv ???)] [세상을 휘감는 뱀 요르문간드(Lv ???)]하나는 낯이 익고, 하나는 초면이다.
생김새도, 종족도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녀석의 공통점이라 한다면 하윤을 향한 살의일 것이다.
「크르르. 오늘 이곳에서 네 녀석의 육신을 씹어 삼킬 것이다.」
특히 펜리르의 적의는 대단했다. 이것이 현실이었다면 피부가 따가워지는 살의라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
로키라는 최종 보스의 무력도 모르는 가운데 강력한 네임드급 적이 둘이나 늘었다.
“조빱들은 주인공 싸움에 끼는 게 아니다.”
그러나 하윤은 태연했다.
소환수에 관해서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 바로 그였다.
흑마법사의 최종 클래스 중 하나인 소환의 지배자로 전직하면서 얻은 스킬.
꽈득!
하윤 휘하의 군단 중 해골 종류로 분류되는 소환수 모두가 자석처럼 서로에게 이끌려 거대한 뼈의 공을 만들었다.
드득, 드드득!
엄청난 압력이 뭉쳐진 뼈의 공을 깎아 내기 시작했다.
짧은 변화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그곳에 모습을 드러낸 건 거인을 연상케 하는 해골 소환수.
[해골 거신병(Lv 680)]뼈로 만들어진 거대한 양손검을 쥔 해골 거신병의 위용은 일반 언데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물론 달라진 건 외형만이 아니다.
능력치, 사용 스킬 등 모든 부분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
.
.
하윤에게는 무수히 많은 종류의 소환수가 있었다.
언데드에서 분화되는 골렘, 리치, 죽음의 기사 등은 물론이거니와 악마, 카멜롯의 인형, 그리고 신병과 드래곤까지.
비록 1만에 달하는 숫자가 고작해야 12기로 줄어들었지만, 전력은 오히려 크게 상승한 상태였다.
“밟아!”
합체를 이룬 최후의 소환수 12기가 하윤을 지나쳐 펜리르와 요르문간드를 향해 쇄도했다.
「크앙!」
「쉬이이!」
마치 그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처럼 펜리르와 요르문간드, 그리고 12기로 뭉쳐진 하윤의 군단이 맞부딪쳤다.
콰콰쾅!
몸과 몸이 부딪칠 때마다 강렬한 폭음이 울려 퍼진다.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현재 그들이 보이는 능력만 해도 정점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꽤 여유롭네?”
펜리르와 요르문간드라는 카드를 허비한 로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태연한 얼굴이었다.
“아, 물론 꽤 놀라긴 했어. 설마 내가 오랜 세월 동안 공들여서 만든 자식과 대등한 힘을 지닌 존재라니. 놀랐어. 이건 정말이야.”
거짓말이다.
정말 놀랐다면 동요라도 있어야 할 터. 그러나 로키는 이 모든 것을 예상한 듯 여전히 관망하는 자세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도 말했잖아. 내 앞에서 이 모든 건 무의미하다고 말이야.”
여유롭다 못해 오만하다. 그리고 하윤은 그 꼴사나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랄!”
한차례 욕설과 함께 마법을 준비한다.
선빵필승! 일단 마법사에게 공격의 여지를 준다는 건 나를 죽여 달라고 하는 말과 마찬가지. 이러한 적의 양보를 그냥 넘길 하윤이 아니었다.
혼돈의 기운으로 뭉쳐진 거대한 화살이 대기를 갈랐다.
비록 언노운 등급의 절대 마법은 아니지만, 신살의 최상위 마법 중 하나. 단일 대상 파괴력만큼은 최상위로 분류되는 파괴 마법이었다.
키잉, 키잉!
발현한 것은 하나지만, 중첩이 이어지면서 수십의 화살이 로키를 노렸다.
“하하핫!”
낭랑하게 울려퍼진 웃음은 파동이 되어 넓게 퍼져 나갔고.
스슥-
혼돈의 기운이 담긴 화살 수십 개가 허무하게 소멸하고 말았다.
“이건 뭐야?”
기합만으로 신살급 마법을 소멸시켰다고?
그것 하나만으로도 로키가 지닌 힘을 짐작할 수 있다.
꽈악!
양손에 쥔 미스틸테인에 힘을 준다.
로키는 자신이 최후의 흑막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했고, 이것이 최후의 전투라는 것을 실감한 탓이다.
“이 자리를 빌려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겠구나. 네 덕분에 나는 절대의 권능을 손에 넣게 되었으니!”
휘오오오!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은 로키의 주변으로 블랙홀과 같은 공간의 구멍이 생성되었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다.
“어딜!”
뭔가 일을 벌이기 전에 사전 차단한다.
하윤은 상대의 변신과 합체가 이루어지기까지 기다려 주는 착한 악당이 아니었다.
[로키가 절대 계약을 이행하는 중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당신을 옭아매고 있습니다. 계약이 이행되는 동안 어떠한 행동도 불가능합니다.]‘이벤트!’
이벤트였다.
일전에도 몇 번 겪어 봤던 시간 정지 이벤트. 시스템에 의해 구현된 이벤트는 아무리 날고 기는 하윤이라 해도 어떻게 손쓸 방도가 없었다.
“보아라. 나와 계약을 맺은 모든 존재가 나의 일부가 될 것이다!”
점차 광기가 느껴지는 외침이 장내를 떨어 울린다.
[절대 계약을 이행합니다. 크툴루의 힘이 로키에게 흡수됩니다.] [절대 계약을 이행합니다. 엔드-테그의 힘이 로키에게 흡수됩니다.] [절대 계약을 이행합니다. 요그 소토스의 힘이 로키에게 흡수됩니다.] [절대 계약을 이행합니다. 니드호그의 힘이 로키에게 흡수됩니다.]큰소리칠 만했다.
로키와 계약을 맺은 존재란 다름 아닌 판테온에 소속된 수많은 신격, 그들을 다스렸던 수장, 심지어 종말의 마룡 니드호그 또한 계약자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 내용이란 다름이 아니라 존재가 소멸할 시 언제든 로키의 의지에 따라 힘을 양도한다는 것.
웅웅웅-
샘 위를 장식한 수많은 홀에서 색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그와 계약을 맺은 존재가 지닌 힘의 근원.
슈욱, 슈슈슉!
로키는 그 모든 기운을 진공청소기 빨아들이듯 흡수하기 시작했다.
근육질의 괴물이 되어 가는 로키를 바라봐야 하는 하윤의 심정은 말이 아니었다. 그냥 근육질의 괴물이 되는 게 아니다. 저 근육 하나하나에 깃든 권능이 어마어마했다.
생각해 보라. 지금까지 그가 쓰러뜨렸던 네임드의 힘을 모조리 흡수한 괴물이라니.
게다가 방해라도 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 모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 버린 것이다. 이건 뭐 여기서 죽으라는 소리와 진배없다.
‘내 손에 무너지느니 자신들의 손으로 파괴하고 말겠다는 의지인가?’
순간 개발진의 악의를 느낄 수 있었다.
어차피 하윤에 의해 게임이 엔딩, 종말을 맞이할 거라면 한번 엿 되어 보라는 심정으로 자신들이 만든 보스로 세상을 파괴한다.
어차피 끝나는 거 하윤에게 엿을 먹이려는 사악한 의도가 절절하게 느껴졌다.
“보아라. 종말의 왕이 도래했도다!”
여러 가지 상념으로 복잡한 그때.
콰앙!
초신성과 같은 광범위 폭발과 함께 빛의 가루가 둥근 띠의 형태로 퍼져 나갔다.
“어우, 정말 가지가지한다…….”
그리고 하윤은 볼 수 있었다.
황금빛 면류관과 열 쌍의 날개, 그리고 일렁이는 혼돈의 갑옷을 착용한 절대자를 말이다.
[종말의 왕 로키(Lv Max)]설정은 되어 있었지만, 지금껏 그 누구도 보여 주지 못했던 맥스 레벨. 유일한 존재만이 누릴 수 있었던 정점에 로키가 도달한 것이다.
“씨부럴…….”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굳이 손을 섞지 않아도 로키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미친 개발자 새끼들. 도대체 무슨 괴물을 만들어 놓은 거냐…….’
시간과 공간이 움직임을 허락했지만, 선뜻 어떤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움직이는 순간 죽는다. 그 한 가지 생각만이 온통 뇌리에 박혀 사라질 줄 몰랐다.
“하찮은 것들. 사라져라!”
마치 황금을 녹여 놓은 것처럼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검을 아래로 내리는 시늉을 해 보인다.
콰아아아-
그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하늘에서부터 수직으로 내리꽂힌 신벌의 검이 휘하 소환수들이 벌이고 있는 격전지에 내리꽂혔다.
콰콰쾅!
세계수의 내부, 그 거대한 영역이 반으로 갈라졌다.
고작해야 일격에 벌어진 상황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와, 진짜 너무하네 정말!”
공간을 갈라 버린 그 위력도 위력이지만, 무엇보다 소환수의 소멸이 충격이었다.
해골 거신병, 에이션트 리치, 죽음의 대공, 신룡 등 강력하기 그지없는 그의 정예 소환수가 단숨에 소멸에 이르고 말았다.
하윤 본인이라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사 디스인티그레이트를 사용한다 해도 지금과 같은 광경은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여기가 끝인가…….”
지금껏 단 한 번도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던 하윤. 그조차도 지금 상황에선 절망에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다.
*
“위히!”
“축배를 듭시다!”
“축제로구나!”
그들의 기분을 나타내는 듯 밝게 등이 켜져 있는 상황실. 신명나는 음악 소리와 함께 장내는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비록 사내라서 술을 마시진 못하지만, 에너지 드링크를 알콜로 삼아 벌컥벌컥 들이켠다.
침울하기 그지없었던 조금 전을 떠올릴 수 있는 정반대의 광경.
“와!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통쾌한 적은 처음이네.”
“그 얼굴 봤어? 내가 이걸 보려고 태어난 게 아닌가 느꼈을 정도라니까.”
축제의 현장으로 변한 이유는 모니터 속에 비치는 광경과 무관하지 않다.
상황실에 설치된 거대 모니터. 그것은 절망에 빠진 한 사람, 하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있었다.
“10년 묵은 야근의 체증이 내려가는구나!”
그의 죽을상을 보게 되다니. 이게 정말 꿈이 아닌가 싶다.
“제시카. 오늘부로 연봉 20% 인상이다! 그리고 너희 프로젝트 팀 모두 인센티브 500% 결정!”
“와우! 보스. 고마워요.”
이 모든 게 제시카의 공이었다.
비밀리에 준비한 프로젝트의 정체는 바로 로키였다.
절대의 계약이라는 인과율을 통해 수치상 설정된 최고의 힘을 손에 넣도록 프로그램을 짰다.
결과는 성공적, 이제 로키를 감당할 수 있는 건 게임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결과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너무 김칫국 마시는 거 아닌가요?」
그 축제의 현장을 방문한 불청객. 그건 바로 한동안 두문불출했던 프레이였다.
뭔가 뚱한 표정의 그녀는 한바탕 축제가 벌어진 장내를 아니꼽게 응시했다.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니. 이제 부정하려고 해도 소용없어.”
능글맞은 미소의 이한과
“어때, 내 작품이?”
눈을 초롱초롱 빛낸 제시카가 물었다.
「뭐, 나쁘지는 않네요. 세계관에 부여된 최고 레벨이라. 아마 제 본체가 직접 현신하지 않는 이상은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겠네요.」
“히!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는 거.”
프레이는 자신의 세계를 구현하면서 인과율의 법칙을 만들었다. 그것은 창조주인 그녀에게도 적용되는 절대의 법칙이었고, 그녀가 본체로 현신할 수 있는 원인을 만들어 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끝난 게임이다. 장내의 모두가 그리 확신하고 있었다.
「글쎄요. 운명이란 가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는 법이라서 말이죠.」
하지만 프레이는 여전히 희망을 거두지 않았다.
그녀의 눈이 하윤을 향한다. 마치 사랑하는 자식을 보는 듯한 따뜻한 눈빛.
「그라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을 거라고 믿어요.」
하지만 그녀의 마지막 말은 너무도 조용해서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그래도 명색이 제 자식을 그렇게 무참하게 죽이냐?”
하윤이 빈정거렸다.
로키의 일격으로 소멸한 건 그의 소환수만이 아니었다. 혈투를 벌이던 펜리르와 요르문간드 모두 그 권능에 의해 소멸하고 말았다.
부활조차도 불가능한 불생(不生)의 힘. 종말과 함께 탄생한 두 존재는 그렇게 어이없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상관없다. 이 세계에서 삶을 허락받을 수 있는 건 지고한 존재인 나뿐이니. 너희, 하찮은 것들은 모두 파멸을 맞이하고 말리라.”
“그러셔? 어디 이거나 한번 받아 보고 지껄이시지.”
라타토스크때와는 달리 에너지를 집중시켜 거대한 창을 만들었다.
“옜다, 이거나 먹어라!”
위력이 집중된다는 건 그만큼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뜻이었다.
쐐액!
공간을 가른 소멸의 창이 로키를 향해 쇄도했다.
“어리석은!”
그러나 최강의 힘을 얻은 로키가 이를 허용할 턱이 없었다.
딱!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슥-
모든 것을 소멸할 것 같았던 소멸의 창이 자취를 감추었다.
“쩝…….”
성배를 통해 다시금 부활한 하윤은 그 광경을 너무도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완전 미치광이 보스구만.’
공략할 수 있는 틈 따위가 보이지 않는다.
완전무결. 녀석은 그야말로 모든 힘이 집결된 최악의 보스였다.
“너의 죽음을 내가 기억하겠노라.”
별 시답지도 않은 말을 내뱉은 로키가 손에 든 검을 이용해 전방을 찌른다.
쿠쿠쿵!
수평으로 찔러 들어오는 거대한 검이 보인다.
미증유의 힘을 담은 그 검은 현재의 하윤은 받아 낼 수 없는 권능이었다.
‘씨발. 이대로 죽을쏘냐.’
분명 절망을 맛봤다. 그러나 하윤의 마음속에 깃든 깽판의 의지가 순수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떻게든 꼬장 부리고 만다. 그런 하윤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보관함을 열어 ‘그것’을 꺼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매한가지다!”
어머니에게 특별히 받은 선물인 판도라의 상자. 도대체 용도를 알 수 없던 상자가 떠오른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딸칵!
그냥 열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 파도라의 상자가 개방되었다.
“…….”
그 순간 하윤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짓누르던 검의 기세가 사라졌다는 것을.
여유만만하던 로키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는 것을.
그리고 익숙한 꽃향기가 사방에 진동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들!」
고막을 강타하는 건 뾰족한 누군가의 음성.
“어머니!”
판도라의 상자를 통해 등장한 깜짝 선물의 정체는 어머니였다.
마치 5월의 신부와 같이 장미로 만든 화관과 빛으로 된 드레스를 입은 청초한 그녀.
결코, 어머니로 불리지 않을 것만 같은 그녀의 등장에 로키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째서 당신이?”
최종 흑막인 로키는 어머니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지금 그녀가 온전한 본체로 현신했다는 사실도 절절히 깨닫고 있었다.
「판도라의 상자잖아. 0.0000000001%의 확률이라면 내가 직접 등장할 만한 충분한 원인이 되지.」
판도라의 상자. 그것은 이 게임에 구현된 모든 것을 소환하는 무작위 소비 용품이었다.
도구나 아이템, 그리고 세계관계 설정된 모든 존재 중 하나를 소환한다.
유일한 자인 그녀가 소환될 확률은 0.0000000001%. 물론 판도라의 상자는 그 어떤 능력치나 효과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 희박한 확률이라면 창조주인 그녀가 현신할 수 있는 충분한 원인이 된다.
놀랍게도 하윤은 0.0000000001%의 확률을 뚫고 어머니를 소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그럴 리가! 믿을 수 없어. 내가, 내가 바로 종말의 왕이란 말이다!”
그녀의 등장에 이성을 잃은 것일까.
로키는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힘을 쥐어짜 내며 종말의 검을 발현했다.
쿠쿠쿠쿠!
하늘을 뒤덮은 종말의 검이 수직으로 낙하한다.
그 하나하나에 깃든 위력은 능히 세계를 종말로 이끌고도 남을 정도였다.
「뭐래?」
경멸하는 시선으로 로키를 응시한 어머니.
짝!
그녀가 가볍게 손뼉을 친 순간.
스으으-
머리 위를 장식한 수많은 종말의 검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건 내 아들에게 엿을 먹인 대가!」
이종격투기 선수 못지않은 날랜 동작으로 하이킥 한 방!
“컥!”
강풍에 갈대가 휘듯 몸이 휘청인다.
「그리고 이건 내 아들 업신여긴 대가!」
머리에서 아래로. 유연한 궤적을 그린 로우킥이 그대로 정강이에 직격!
“커헉!”
멋대로 휘어 버린 다리로는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그대로 옆으로 엎어진 로키의 눈동자에 절망이 자리할 무렵.
「이건 내 아들을 괴롭힌 대가다!」
프리킥을 차는 축구선수처럼 와다다 달려가 그대로 복부를 걷어찼다.
“꿰뛜뚫!”
이제는 비명이 아니다.
종말의 왕. 세계관에 설정된 최고 레벨을 달성한 존재는 세 번의 공격을 버티지 못한 채 회색빛으로 물들고 말았다.
[종말의 왕 로키가 쓰러졌습니다.] [영웅이여, 축하합니다. 당신이 이 세계를 구원했습니다.] [‘위업: 종말의 구원자’를 획득했습니다.] [어둠의 마력이 들끓어 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어둠의 마력이 들끓어 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어둠의 마력이 들끓어 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
.
어쩌면 허무하다 싶은 종말에서 세계를 구원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은 아니었다.
「아들, 이제 선택의 시간이 왔어.」
귓가에 파고드는 알림에 신경 쓸 새가 없었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어머니. 그녀가 빛에 물든 네 장의 카드를 내민 채 서 있었다.
“이건?”
「운명의 카드.」
“운명의 카드라뇨?”
「아들은 모르겠지만, 내 본체를 현신시키기 위해서는 판도라의 상자와 함께 또 다른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거든.」
“그게 이 운명의 카드다?”
「그래.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운명이 점지되어 있는 카드. 나를 소환한 이상 반드시 이것을 뽑아야 해.」
그녀가 본체로 현신하고, 게다가 그 능력을 마음껏 사용하기 위해서는 판도라의 상자와 함께 운명의 카드를 뽑아야 하는 조건이 있다.
각기 길흉화복의 효과가 부여된 네 장의 카드. 유일한 자를 소환한 이는 그 카드를 뽑아 세계의 운명을 결정지어야만 했다.
“운명의 카드에는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건 나도 말해 줄 수 없어. 다만 한 가지 말해 줄 수 있는 건 흉. 그 카드를 뽑게 되면 이 세계는 물론 모든 존재가 사라지게 될 거야.」
게임 데이터의 리셋. 흉의 카드를 뽑게 되면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꿈이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만다.
운이 없다면 지금까지 했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말겠지만.
“그래요? 뭐, 지금까지 재밌게 즐겼으니 미련은 없네요.”
중차대한 결정의 순간. 하지만 하윤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게임, YD를 통해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났다.
줄곧 그를 괴롭혔던 기억과 인연을 정리한 건 물론 이제 더는 괴루움에 몸부림치지 않아도 된다.
아예 미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손에 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팟!
그렇기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카드를 뽑을 수 있었다.
“어?”
카드의 내용을 확인한 하윤의 눈동자가 더할 수 없이 커지고.
「Good Luck!」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어머니의 육신에서부터 어마어마한 빛이 뿜어져 나와 세계를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