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SS-class weapon starting from the tutorial!? RAW novel - Chapter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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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06. 에필로그
고기 굽는 연기로 가득한 고깃집 안. 허름한 외관과는 다르게 가게 안은 수많은 사람으로 테이블이 만석이었다.
쓰디쓴 소주를 넘기며 괴로운 인생사를 토로하는 중년.
보기만 해도 에너지가 느껴지는 젊은 청춘남녀의 모임.
어딜 봐도 단란한 가족으로 보이는 부모와 아이들까지.
매캐한 연기와 제대로 환기가 되지 않는 환경. 에어컨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데다가 좁기까지 한 공간. 그곳에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 당연히 불쾌할 만도 하건만 누구 하나 인상 한번 찡그리지 않은 채 즐겁게 담소를 나눈다.
그냥 스치고 지나갈 가게가 아니었다.
테이블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기억 속 한 페이지를 장식한 추억의 장소였다.
딸랑딸랑!
문 위를 장식하고 있던 종이 흔들리며 요란한 소릴 낸다.
꽤 오랫동안 기다려 마침내 가게로 입성한 이들. 젊다고는 할 수 없는,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사내 무리였다.
“어이쿠, 어서들 와.”
서빙에 바쁘던 노부부가 사내들을 반겼다.
“오랜만이에요, 이모.”
“그간 건강하셨죠?”
비록 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단번에 누군지 기억해 낸다.
사내들 또한 이곳을 찾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추억의 장소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럼. 우리는 보시다시피 건강하지. 어디 보자. 철윤이, 강인이, 수호, 그리고 하윤이. 모두 건강해 보이는구나.”
벌써 10년도 더 지난 세월. 사내들에게 있어서 이 고깃집은 삶의 애환을 함께한 고마운 곳이었다.
그렇기에 더없이 반갑다.
마치 이산가족이 상봉하듯 서롤 끌어안으며 온기를 나누던 중.
“그나저나 하윤이는 오늘따라 더 신수가 훤하구나.”
마지막으로 끌어안은 하윤이란 사내를 뚫어지게 응시한다.
노부부의 기억 속 하윤은 어딘가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던 사내였다.
학점 걱정, 군대 걱정, 취업 걱정. 걱정이 너무 많아서 탈인 부류라고 할까.
한 번씩 볼 때마다 안쓰러웠는데 10년이 지나 다시금 보게 되니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밝은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런가요? 뭐, 그때는 되는 일도 없고 해서 걱정이 많긴 했죠.”
“오, 그럼 요즘은 일이 잘 풀리고 있는 거니?”
잠시 멋쩍은 듯 머릴 긁적이던 하윤.
“네. 뭐, 그럭저럭 살 만해요.”
“그거참 다행이구나. 그렇지 않아도 항상 어두워 보여서 내심 걱정이었는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생판 남이지만, 노부부는 10년도 넘게 가게를 찾지 않았던 하윤을 걱정하고 있었다.
“와, 이 새끼만 이뻐하고.”
“이모, 너무한 거 아니에요?”
“하여간 이모는 좀 안쓰럽다 싶은 애들만 챙긴다니까. 우리도 좀 걱정해 줘요.”
누가 봐도 편애의 도가니탕이다.
이에 불만을 느낀 친구들이 하윤에게 헤드락을 걸며 질투심을 폭발시켰다.
“너희도 얼굴이 좋아 보이는 게 다들 일이 잘 풀리고 있는 것 같구나.”
어딜 봐도 형식적인 안부.
“이모! 여기 삼겹살 이 인분 추가요!”
“어이쿠. 내 정신 좀 보게. 그럼 앉아들 있어 봐.”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사내들을 뒤로한 노부부가 재빨리 본업으로 들어가 이곳저곳을 바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휘유. 이 가게는 목도 안 좋은데 장사가 정말 잘된단 말이야.”
“뭐, 40년 동안 한자릴 지키셨으니.”
“N대학 졸업생이면 빠짐없이 찾는다고 봐야지.”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가게를 둘러보며 비어 있는 테이블에 착석한다.
“이모, 우리도 소주랑 맥주 주세요.”
양복을 쫙 빼입은 수호가 불렀지만.
“바쁜 거 안 보여? 너희들이 가져다 먹어!”
재회의 정은 순간에 불과했다.
그제야 고깃집의 룰을 기억해 낸다. 물과 술, 음료수는 자신의 손으로.
“네에!”
밝게 대답한 건 철윤이었다.
의식적으로 손에 찬 고급 시계를 내비치며 냉장고에 있던 시원한 소주와 맥주 두 병을 꺼내서 돌아왔다.
“오랜만이다 자식들아.”
“우리들의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온도 차이로 인해 물기가 묻은 잔을 부딪치며 시원하게 들이켠다.
“캬! 이 맛이지!”
“같은 술인데 유독 여기서 먹으면 더 달달하다니까.”
“그게 바로 추억의 맛 아니겠냐. 그나저나 요즘 다들 어떻게 지내냐.”
친구들이라곤 하지만 최근 3년간 연락이 뜸했던 그들이다.
바쁜 게 당연하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스펙이다 뭐다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하게도 취업난에 시달리는 전반적인 상황에 비하면 그들의 인생은 꽤 성공적인 것이었다.
그건 겉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수호. 명품 정장과 주머니 사이에 끼워진 고급 만년필. 누가 봐도 허세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허세로라도 그것을 구비할 수 있다면 허세라고 할 수가 없다.
철윤의 경우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캐주얼하지만 그 모든 게 명품이었고, 특히 손에 찬 시계는 3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라인이었다.
강인이라고 다른가. 비록 온갖 명품으로 도배한 친구들과는 다르게 중요한 몇몇 소품만을 명품으로 착용했지만, 주차되어 있는 그의 차는 아파트 전셋값과 맞먹는 가격의 스포츠카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 모임이라 조금 허세를 부렸다 해도 나름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그중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하윤이었다.
수수하다 못해 허름하다. 동네 아울렛이라면 구매할 수 있는 저렴한 브랜드, 심지어 신상품도 아니고 이월 상품이다.
밝아진 건 얼굴뿐. 12년 전과 별다를 바 없는 차림새였다.
“수호 이 새끼. 재무설계사로 잘나간다며? 내 돈도 좀 불려 주면 안 되냐?”
“야야, 말만 하지 말고 맡겨 달라고. 융통할 수 있는 자금도 꽤 있는 걸로 아는데?”
“그게 내 돈이냐. 부모님 돈이지.”
“요즘에는 부모 능력이 곧 내 능력이라더라.”
“그렇긴 한데. 오히려 나보다 철윤이, 저 새끼가 더 낫지. 무려 건물주시잖아.”
“야야. 건물주는 무슨. 나도 부모님 건물에 세내고 장사한다고.”
“그거나 그거나. 어차피 너 독자잖아. 그럼 부모님 게 다 네 거지.”
기승전자뻑. 은근히 서로를 띠워 주는 척하면서 결론은 자기 자랑이다.
하지만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보유 자산이나 직업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할 경우 누가 더 낫다고 손을 들어 주기가 애매했다.
“아, 근데 하윤이 넌 어때? 들어보니까 직장 때려쳤다던데.”
결국, 목표를 바꿔 하윤을 노린다.
항상 똑같은 패턴이었다. 자기들끼리 경쟁하다가 보잘것없는 하윤을 짓밟으며 희희낙락.
‘이 새끼들은 어째 변한 게 하나도 없냐.’
학창 시절부터 줄곧 있었던 일이기에 무던하다.
솔직히 말해 하윤에게 있어서 눈앞의 세 녀석은 친구라고도 볼 수 없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녀석들과 마주하게 된 건 ‘진정한 친구’의 연락 때문이었다.
“그런데 동민이는 왜 연락이 없냐?”
“지가 모이자고 하더니. 어째 주최자가 제일 늦네.”
“한번 연락이나 해 봐야겠다.”
이동민.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행의 리더였던 이.
하윤이 이 보기 싫은 모임에 나오게 된 원인은 오직 그 하나였다.
일행 중 가장 잘난 부모님을 만난 다이아 수저. 하지만 누구와는 달리 집안 자랑은 일절 하는 일이 없었다.
이 시대가 낳은 올바른 청년 중 한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 이 허세 가득한 친구들 사이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동민 하나만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동민과 하윤은 누구보다 절친했고, 특히 하윤에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신 일처럼 도와줬던 고마운 사람.
이 자리가 성사된 것도 그의 연락이 닿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가 아니었다면 각자의 삶으로 바쁜 이들이 한자리에 모일 일은 죽어도 없었을 것이다.
핸드폰을 든 하윤이 동민에게 연락하려던 찰나.
딸랑!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 동민아. 여기!”
일행이 그토록 기다리던 동민이었다.
‘음?’
반가운 사람이 등장. 하지만 하윤은 마냥 그를 반길 수 없었다.
초췌하다. 마치 그의 학창 시절처럼 어딘가 어두운 그늘이 얼굴에 깔려 있다. 어두운 그늘을 걸어온 사람이기에 그것을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미안. 내가 좀 늦었다.”
항상 밝은 에너지로 가득했던 음성도 어딘가 풀이 죽어 있다.
“짜식아. 반갑다!”
“이야, 진짜 오랜만이네.”
“그동안 연락 한번 없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랐다, 야.”
어딘지 모르게 격하게 반긴다.
언제나 그랬다. 동민은 얻어먹을 게 많은 이였으니까.
그들이 아무리 잘나 봐야 근본부터 다이아 수저에 본인 능력도 부족하지 않은 동민은 질투심의 대상이자 친해져서 나쁠 게 없는 위의 존재였다.
“미안하다. 그간 여러 사정이 있어서…….”
격하게 달려오는 녀석들과 인사 중에 하윤과 눈이 마주친다.
‘뭔가 있네.’
진정한 친구기에 알 수 있다.
녀석이 어떤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그리고 그건 이번 모임과도 연관이 있을 터였다.
“자자, 너도 한 잔 받아.”
서둘러 착석한 그들이 술을 권유했다.
“미안. 내가 지금 급한 사정이 있어서 술은 못 할 것 같다.”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어딘가 조급해 보이는 그.
“이 새끼, 심각하네. 뭔 일 있어?”
그제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은 그들이 사정을 묻는다.
“모처럼 모인 자리에 이런 이야길 해서 미안한데… 나 급하게 써야 할 데가 있어서 그런데 돈 좀 빌려주라.”
모처럼 모인 자리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지 동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돈? 아니, 네가 무슨 돈이 필요하다고. 너 사업 잘나가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리고 부모님도 있잖아.”
철윤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대학 졸업 후 스타트업을 시작해 신문에도 실렸던 적이 있을 정도로 잘나갔다.
게다가 굳이 그 사업이 아니어도 부모님이 꽤 큰 기업을 운영하지 않던가. 설마 그의 입에서 돈을 빌려 달라는 이야기가 나올 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그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뭔가 들은 바가 있는지 수호가 말문을 열었다.
“어. 사정이 조금 어렵게 됐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동민. 하지만 절망은 한순간에 찾아왔다.
동민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좋았던 부모님은 감당할 수 없는 사길 당했고, 그것을 막기 위해 잘나가는 사업을 정리해야만 했다.
하지만 워낙 거액을 막아야 하다 보니 일부 변제만 할 수 있었을 뿐이다.
어떻게든 빚을 막기 위해 부모님을 비롯해 동민과 그의 아내까지 동원되어 힘겨운 빚갚기를 이어 나갔다.
하지만 불행은 연이어 그들을 찾아왔다.
동민의 슬하에는 5살 된 아들이 있었다. 건강하기만 했던 이 어린 아들에게 난데없이 희귀병이 찾아온 것이다.
눈과 코, 입 등에서 피를 흘리는 이름 모를 병.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빚을 갚기는커녕 값비싼 신약을 구매해야만 했다.
“이번에 그 희귀병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법이 개발됐다고 하더라. 그런데 지금 우리 형편에서 그 금액을 마련한 방법이 없어. 제발 부탁이다. 금액이 금액이니 만큼 너희도 힘들겠지만, 한 번만 도와주라. 형편이 나아지는 즉시, 아니 일부 금액이라도 갚아 나갈 테니까 제발!”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마는 동민. 그 행동에서 아들을 살리고자 하는 절실함이 느껴졌다.
“야야,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너무 갑작스럽긴 하네.”
“그래서. 금액이 얼만데?”
조금 난처한 모습. 그나마 철윤의 경우에는 도와주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오억. 수술을 비롯해 후 처치에 필요한 신약까지 포함한 비용을 일시불로 지급해야 한다더라고.”
독일의 유명 병원에서 진행되는 최초의 수술이었기에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어마어마했다.
“오, 오억?”
“미친!”
“야,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그런 돈을 어떻게 마련하냐….”
5억이란 금액에 난색부터 표한다.
지금까지 자기가 몇억을 관리하고, 룸에서 몇천을 썼다는 둥, 차는 억 이하는 타지 않는다는 둥 지껄이던 모습과는 전혀 상반되는 모습이다.
물론 5억은 그들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돈이긴 하다. 그렇다고 구하고자 하면 못 구할 돈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단호하게 거절의 뜻을 보이는 건 그 돈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완전히 망했다.
5억이 동네 강아지 이름도 아니고, 회수하지 못할 경우 그들에게도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 만나서 돈 이야기라니. 게다가 한두 푼도 아니고. 오억은 좀…….”
“오억이 무슨 동네 개 이름도 아니고. 갑자기 이렇게 부탁하는 경우가 어디 있냐?”
“그러게 너희 부모님 사람이 너무 좋더라니. 언젠가 사기 한번 당할 것 같더라.”
걱정을 가장한 핀잔과 비난이 시작되었다.
원래 그런 녀석들이다. 자신들보다 위에 있는 동민을 질투했던,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이용해 먹으려고 붙어 있었던 얍삽한 놈들.
“지랄하고 자빠졌네, 정말.”
가만히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하윤이 나섰다.
“조금 전까지는 억이 어쩌고, 천이 어쩌고 지랄하던 새끼들이 뭐? 오억이 너무 커? 씨발. 룸에 몇천을 뿌리다던 새끼들이 친구 아들이 아프다는데 그것도 못 도와준다고?”
솔직히 말해 도와주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
한 사람에게 5억이 부담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여기에 자리한 이들만 네 명이다. 그들이 십시일반 모으고, 심지어 인맥을 좀 이용한다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
그런데도 도와준다는 말은커녕 오히려 비난하기 바쁘다.
차라리 가만히 있었다면 모를까, 이것들이 정녕 사람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다.
“씨발. 거지 새끼는 빠져.”
“그래서 넌? 도와줄 수 있고? 오억이 무슨 동네 개 이름도 아니고.”
“너 새끼는 빠져. 동민이 때문에 겨우 데리고 있어 줬던 찐따 새끼 주제에.”
결국, 본색이 나왔다.
“오냐. 너희가 날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는 건 진즉 알고 있었다. 근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거든. 동민이 아니었으면 너네 같은 병신들이랑 놀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동민 아니었으면 볼 생각도 없었던 병신들이다.
이참에 인연을 끊는 건 당연한 일. 매섭게 그들을 노려봐 준 하윤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갤 숙인 동민을 응시했다.
“야, 계좌 불러.”
“으, 으응?”
“계좌 부르라고. 오억 쏴 줄 테니까.”
“어?”
의외의 상황에 눈을 크게 뜬다.
사실 하윤에게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부터 형편이 어려웠던 그가 아닌가. 설사 복권에 당첨됐다 해도 5억이란 금액은 쉽게 내줄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윤이다. 단 한 번도 그에게 거짓을 말한 적 없던 친우 아닌가.
“KC은행. 139-371831701-119.”
혹시나 싶어 계좌 번호를 불렀고, 몇 번 핸드폰을 툭툭 만지던 하윤이 입을 열었다.
“쐈다. 안 갚아도 되니까 괜히 몸 함부로 굴리지 말고. 아들 수술 잘되길 바란다.”
동민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고는.
“저 더러운 새끼들이랑은 더는 같이 못 있을 것 같으니까, 언제 한번 자리 마련할게.”
“어, 어어. 그, 그래.”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동민과 병신들을 뒤로한 채 가겔 나았다.
“야, 야!”
하지만 병신들은 그냥 보내 줄 생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너, 너 진짜 오억 쏴 준 거냐?”
“그 큰 금액을 그렇게 간단히?”
“…….”
그들의 말에 일언반구 대꾸도 하지 않았다.
원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통하는 게 대화라는 수단이다. 어디 짐승 따위가 사람과 대화를 시도하겠는가.
“너 성공했나 보다?”
“마침 잘됐네. 안 그래도 내가 좋은 펀드를 물어서 소개해 주려고 했는데.”
“너 나랑 사업 하나 하지 않을래? 내가 기가 막힌 구상이 있는데…….”
과연 하이에나들이다.
돈 냄새를 맡은 녀석들이 입맛을 다시며 다가온다.
부르릉!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갑작스레 등장한 슈퍼카로 인해 성공할 수 없었다.
“레, 레볼루션?”
검은 광택을 뽐내는 슈퍼카의 정체는 전 세계적으로 300대 한정으로 생산된 슈퍼카였다.
그 시세만 해도 무려 20억.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다는 슈퍼카가 대한민국의 도심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덜컥!
슈퍼카의 문이 열린 그 순간 병신들의 동공이 더욱 확장되었다.
TV에서 볼 법한, 아니 TV에서도 볼 수 없는 늘씬한 금발의 미녀가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꿀꺽.
주변에 있던 모든 사내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를 보는 순간 사내들의 마음은 결혼까지 생각했을 정도로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오빠!”
한국어가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입에서 오빠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어, 어어?”
그리고 그녀의 눈이 향한 곳은 하윤과 병신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설마 나? 전혀 일면식도 없는 그들이었지만, 막연한 환상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척.
눈부신 미녀가 팔짱을 낀다. 놀랍게도 그 주인공은 하윤이었다.
“오빠, 이 사람들은 누구야? 친구?”
하윤의 옆에 착 달라붙은 그녀가 물었고.
“아니. 그냥 병신들이야. 출출하지? 저녁이나 먹자.”
“아, 병신들이었구나. 하긴. 요즘 세상에 좀 병신들이 많아야지.”
생긴 것답지 않게 욕설이 찰지다.
감히 쳐다볼 수 없을 정도의 눈이 부신 미녀와 팔짱을 낀 하윤이 강남의 아파트값을 자랑하는 슈퍼카 안으로 사라진다.
부르릉!
사내의 심금을 울리는 엔진 소리를 남긴 차가 멀어졌고.
“이거 실화냐?”
그곳에 남겨진 사내, 아니 병신들은 자신의 볼을 꼬집으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홍해의 기적을 보여 주며 질주하는 슈퍼카 내부.
“근데 친구들 만나서 밥 먹는다고 하더니. 갑자기 왜 불렀어?”
눈이 부신 외모와는 달리 숙자라는 구수한 이름의 소유자인 그녀가 물었다.
“친구들이 아니고 친굴 만난다고 했지.”
“아, 아까 그 병신들은 친구가 아닌가 봐?”
“어.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 좀 만나려고 했는데, 병신들이 끼어들어서 말이야.”
“으흠. 그렇구나. 마침 잘됐지, 뭐. 안 그래도 국밥이 고팠는데. 오늘 국밥에 소주 한 잔 오케이?”
“오케이.”
우아하게 스테이크나 썰 것 같은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더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1년 전 그녀에게 용기를 고백했고, 지금처럼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벌써 3년이나 지났나.’
지난 일을 회상해 본다.
종말의 왕인 로키마저 쓰러뜨린 하윤은 운명의 카드라는 난관과 마주했다.
길흉화복 네 가지 선택지 중 그가 고른 것은 화였다.
당연히 길이나 복이 나올 줄 알았던 그로썬 예상외의 결과. 하지만 그는 순순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느닷없이 찾아온 행운으로 밑바닥에 불과하던 인생을 새롭게 살 수 있었다. 여기서 더 바라면 욕심일 수밖에 없다.
화의 카드를 통해 발생한 효과는 YD에 존재하는 이하윤이라는 캐릭터의 삭제였다.
자기희생. 그 숭고한 행위로 세계가 대격변을 맞이했다. 본연의 세계는 사라지고, 두 번째 시즌이 시작된 것.
더욱 정교하고, 더욱 발전한 세계관과 시스템으로 무장한 게임이 출범했다. 물론 구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던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그리고 신규 유저들도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다양한 보상이 주어졌다.
망할 것이라는 기존의 평가와는 달리 YD의 두 번째 시즌은 이전 시즌보다 더욱 성공을 이루었다.
왜? 재밌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던 대로 더욱 발전한 두 번째 시즌은 마치 현실과도 같은 세계를 구현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근데 오빠. 진짜 YD로 복귀 안 하는 거야?”
심심할 때마다 이어졌던 숙자의 단골 질문.
“어. 안 돌아가. 이제는 현실도 게임만큼 충분히 재미있거든.”
예전과는 달리 현실도 충분히 즐길 만했다. 그렇기에 굳이 가상의 현실에 매달리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으래? 그 영향에 나도 포함되어 있는 걸까나?”
“물론. 너가 빠지면 섭섭하지.”
예전과 달리 느끼한 멘트도 할 줄 알았다.
“웩. 느끼해. 라디오나 틀어 줘.”
“또 게임 채널?”
“응. 오빠는 놀고 먹어도 난 일해야지. 업계의 중요 변동 사항은 체크해 둬야 하거든.”
여전히 동영상 편집 일에 열중인 숙자다.
특히 그녀의 주 수입은 YD의 두 번째 시즌. 그렇기에 차에서 종종 게임 채널 라디오를 듣곤 했다.
치칙, 치치직!
주파수를 맞춰 게임 채널을 돌린다.
「자, 여러분 드디어 여러분들이 기다리시던 전세계 랭킹 1위. 기가스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오, 기가스! 저 사람 이번에 또 전 세계 최초로 네임드 잡았다던데.”
기가스.
첫 번째 시즌의 하윤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는 유저였다.
전 세계 랭킹 1위. 거의 모든 네임드 퍼스트 킬은 그의 손으로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기가스 님은 줄곧 첫 번째 시즌의 전설, 이하윤 님과 비교당하곤 하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왁! 오빠 이야기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솔깃하던 참이다.
현 넘버원이 생각하는 자신은 어떨까.
「별로 대단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냉소적인 반응이다.
「아시다시피 시즌 1은 밸런스가 개판이었죠. 불완전한 세계에서 운 좋게 아이템을 먹은, 순수한 템빨이었다고 봅니다. 더 완벽해진 시즌 2에서 그 사람이 게임했다면 아마 무명으로 그치고 말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오오! 자신감 보소?”
「그 말씀은 첫 번째 시즌의 이하윤 님과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가뿐하게 이기리라 확신합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참다 못해 입밖으로 튀어 나온 말.
끼이익!
더우 속력을 높인 슈퍼카가 도로를 질주한다.
“악! 오빠, 국밥 먹으러 간다며!”
“국밥은 개뿔. 저따위 말을 듣고 그냥 넘어가게 생겼냐?”
“설마, 그 말 뜻은?”
“오늘부로 복귀다. 저 그지 깽깽이 새낄 밟아 줄 테니까 두고 보라고.”
“오오! 전설의 복귀야? 이거 오랜만에 편집에 불타오를 수 있겠네?”
숙자의 눈동자가 희열로 물들었다.
“오빠, 오빠. 나 그거 한번 듣고 싶은데.”
난데없이 꺼낸 말. 그리고 하윤은 숙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충격과 공포다!”
창문을 내린 하윤이 다리 위를 질주하며 선창했고.
“이 그지 깽깽이들아!”
창밖으로 반쯤 몸을 빼낸 숙자가 만세를 외치며 후창했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