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03)
비명, 그리고 함정이 발동하는 소리가 온 유적을 가득 채우며 울려 퍼지자 라슈카는 당황했다.
호언장담했던 것과 달리 유적의 함정이 발동한 지금, 그는 더 이상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도망간다! 쫓아!”
아르센은 도끼의 능력을 사용해 가로막고 있던 기사와 병사들을 물러서게 하는 것으로 길을 열었고, 뒤따르던 바즈칼과 마룬이 무기를 휘둘러 이를 넓혔다.
당황한 틈을 타 포위망을 찢고 도망친 적들을 쫓아 다시 추격을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뒤쪽에서부터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본 그들은, 맨 뒤에 있던 병사 두어 명이 함정에 걸려 죽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달려! 저놈 옆에 있지 않으면 함정이 발동한다!”
누군가의 말에 추격자들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이 타고 있는 진과 기승수의 속도를 높였다.
그것은 추격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발악이었다.
진을 탄 기사들은 억지로 마력을 더 불어넣고, 기승수를 탄 이들은 발뒤꿈치로 기승수의 옆구리를 미친 듯이 채어 더 빨리 달리라고 재촉했다.
그들의 목표는 이제 강탈도, 살인도 아니었다.
생존이었다.
* * *
“왔다!”
앞쪽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와, 아르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목적지를 주시했다.
좁은 통로 앞, 엘로이즈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그를 내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리노와 다른 병사들, 지샤란, 마법사들, 그리고 앞서 도착한 바즈칼과 마룬의 모습도 얼핏 보였다.
‘좋아, 다들 무사하군.’
굳이 시체가 있던 방으로 오라고 했던 이유는, 이 방이 유적 내의 안전지대 중 하나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유적 내부 전체가 함정이 깔린 것은 아니고, 함정과 함정 사이에 쉬어가는 공간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그리고 시체를 가지런히 놓고 누워서 수기를 쓸 수 있는 공간은, 당연히 안전지대일 것이고.
“다들 물러서!”
엘로이즈의 지시에 따라, 그들은 아르센이 지나갈 수 있도록 가운데에 공간을 만들었다.
동료들을 지나쳐 통로 밖으로 나온 아르센은 즉시 달리는 것을 멈추고 몸을 돌려, 진의 발톱을 땅에 박아넣었다.
가속도 탓에 바닥에서 불꽃이 튀며 거의 십여 미터를 미끄러진 뒤에야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후우, 하아······.”
당연하게도, 그 뒤를 바짝 따르던 비열한 강도들 역시, 아르센이 지나온 통로를 지나고 있었다.
이들까지 통과할 수 있게 비켜줄 이유는 없었다.
“공격해!”
“다 죽여버려!”
달려오는 이들을 향해, 일방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우선 엘로이즈와 다른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퍼부었다.
벼락, 폭발, 화염까지.
기사에게 치명적일 정도의 공격은 없었지만, 병사들에게는 이 정도면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마법이다!”
“막아!”
감전되어 쓰러지고, 폭발의 충격으로 내장이 터지고, 불에 몸이 익어 비명을 지르며 기승수에서 떨어지는 병사들.
그런 부하들의 비명을 외면한 채, 기사들은 이를 악물고 통로를 돌파했다. 날아오는 마법 몇 개를 쳐내면서.
그렇게 기사 두 명이 가장 먼저 통로를 나오려는 순간, 기다리고 있던 바즈칼이 대검을 휘둘렀다.
무방비하게 달리던 기사 한 명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진 채 하늘을 날았다.
이로서, 바즈칼이 새로 얻은 대검의 절삭력이 썩 나쁘지 않음이 증명되었다.
“좋았어!”
환호하는 가운데, 다른 병사들 역시 살아서 통로를 넘어오는 기사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평상시, 일대일로는 상대가 될 리 없을 일반 병사들.
하지만 아르센의 병사들은 기사에게도 충분히 해를 입힐 수 있는 검, 그리고 기사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로 무장하고 있었다.
거기에 약사, 지샤란이 도움을 주었다.
체력을 끌어다 써서 일시적으로 신체 능력을 강화해 주는, 일종의 각성제와 같은 약초를 병사들에게 제공한 것이다.
기사 수준에는 어림도 없지만, 이 약초를 복용한 병사들은 일반 병사를 초월한 힘과 속도를 보였다.
그런 이들 일곱 명이 좁은 입구에서 진형을 짜고 있으니, 아무리 그들이 기사라고 해도 위협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감히 범인(凡人) 따위가 자신을 막느냐며 발끈하는 것도 잠시, 기사 두 명은 예기치 못한 병사들의 공격에 당해 피를 흘리며 물러나야 했다.
“크윽······.”
“아니, 잡졸들이 무슨?”
안타깝게도, 푸념을 내뱉으며 통로에서 재정비 시간을 가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벽이 엄청난 속도로 좌우에서 좁혀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미 아르센과 통로 사이의 거리가 멀어진 상황에서, 통로에 설치된 함정은 안쪽에 충분히 먹잇감이 채워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뭐야?!”
“벽이 좁아진다! 빨리 앞으로 나가!”
비명과 함께, 기사들은 악에 받쳐 방패로 이루어진 장벽을 뚫기 시작했다.
뒤에서 튀어나온 라슈카가 방패를 든 채 마력을 집중하자 그 자리에서 충격파가 뿜어져 나와, 바즈칼과 병사 몇 명을 뒤로 밀어냈다.
그 공간을 통해 라슈카와 다른 기사 한 명이 뛰어나왔다.
“무리하지 말고 물러서라!”
아르센의 지시에, 튕겨 나갔던 바즈칼과 다른 병사들은 억지로 진형을 유지하려 애쓰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이미 벽은 거의 다 좁혀져 있었다.
기껏해야 2m 정도일까, 워낙 좁아지는 속도가 빨라 아직 안에 남아있는 기사 세 명, 그리고 마법에 맞고도 살아남은 병사들은 그대로 납작해져 벽의 얼룩이 되어 버릴 상황.
그때, 통로 안쪽에서 우렁찬 고함이 들려왔다.
“우오오오오오오옷—!”
그와 동시에, 벽이 멈췄다.
“뭐지······?”
마룬의 중얼거림과 함께, 안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기사 두 명이 나왔다.
그리고 나오지 못한 기사, 단 한 명이 남았다.
거대한 체격의 기사, 망치꾼 모루.
“모루 형님!”
“빨리, 나가!”
놀랍게도, 망치꾼 모루는 그가 가진 특기인 어마어마한 괴력을 발휘해 좁혀오는 벽을 막아서고 있었다.
본래 괴력이란, 그 힘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내구성 역시 같이 따라온다는 의미라.
기사 중에서도 차원이 다르게 강인한 그의 육체는 뼈와 살이 어긋나 삐걱거리는 소리를 낼지언정, 함정의 압력에 굴하지 않은 채 공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마법을 맞아 다친 병사들이 하나둘씩 걷거나 기어서 나왔다.
“끄으으읍······!”
동료들이 모두 나간 것을 확인한 모루는, 힘겨움에 신음을 흘렸다.
그에 맞춰, 벽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앗—!”
포효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외침. 그것이 모루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잠시 후, 벽은 손바닥 들어갈 틈도 없이 맞물렸다.
안쪽에서 무언가가 으스러지는 소리를 내며.
“모루 형님······.”
기사 한 명의 구슬픈 목소리로 불렀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꽉 다물린 벽을 보며, 바즈칼이 질렸다는 듯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진짜 괴물 같은 놈이었네요.”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괴물 같은 힘이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허망한 최후였다.
“자, 이제 우리끼리 얘기할 시간이군.”
아르센은 진을 몰아, 라슈카 일행을 향해 접근했다.
통로를 지나 아르센 일행이 있는 이곳, 안전 구역에 들어온 것은 기사 네 명, 그리고 다친 병사 세 명뿐.
전력 차는 명확했다.
“아까 한 말 그대로 돌려주지, 항복하는 게 어때?”
“······잠시, 대화를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땀에 젖은 이마를 훔치며, 라슈카는 비굴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간청하는 듯한 어조로.
정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존경스러울 정도의 뻔뻔함이었다.
“대화? 좋지. 무기부터 버리고, 얌전히 두 손을 내민다면.”
“그건 아무래도 힘들겠는데요······.”
라슈카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항복한다면, 아르센이 그를 살려줄 리 없다는 사실을.
“살려준다는 입에 발린 소리는 안 하겠어. 항복하면 고문하지 않고 곱게 죽여주마.”
“빌어먹을 애새끼.”
이쪽의 의도를 확인해서인지, 이제 존칭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르센은 도끼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대화는 제압한 뒤에 들어도 충분할 테니까.
“부상이 심한 놈은 죽이지 말고 생포해라!”
* * *
싸움은 꽤 시시하게 끝났다.
애초에 기사 두 명은 병사들의 공격에 꽤 큰 상처를 입고 있었으며, 병사들은 마법에 만신창이가 되어 전력 외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라슈카와 다른 기사 한 명이 주축이 되어 싸워야 했는데, 그 둘이 아르센 한 명과 싸워도 적수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기량에서 차이가 났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도끼를 익힐 겸, 아르센은 여유롭게 기사 두 명과 맞서 싸웠다.
그동안, 바즈칼과 병사들은 상처 입은 기사 두 명을 거의 린치하다시피 했고.
승부가 끝난 후, 라슈카와 동료 기사 두 명은 살아남은 채 바닥에 몸을 눕히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다들 팔다리가 한두 개씩 없어진 상태였기에, 그 모습이 썩 유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를 내려다보며 바즈칼이 투덜댔다.
“서로 피곤하게 굴지 말고 항복하지 그랬수, 상대가 안 될 거란 걸 알면서.”
“그러게 말이야. 내가 좀 잘못 생각하긴 했어. 이렇게 아픈 줄 알았다면 안 그랬지.”
퍽 유쾌한 어조로 맞장구치는 라슈카 역시, 두 다리가 날아간 채 피를 철철 흘리며 널브러져 있는 상태였다.
바람 도끼에 내장된, 보이지 않는 칼날 공격에 무릎을 베인 결과였다.
아르센이 도끼를 진의 옆구리에 올리며 물었다.
“그래서, 왜 우릴 기습했지? 아니, 이유는 알 것 같지만······우리가 여기 온다는 건 어떻게 알았고?”
이미 다 끝나 자포자기한 것인지, 라슈카는 꽤 순순히 자백하기 시작했다.
그는 포효하는 자나크의 유물, 바람 도끼를 노리고 있었다.
이 강력한 무기는 본래 자나크가 발굴한 것이 아닌, 라슈카의 아버지가 발굴한 물건이었다. 그것을 자나크가 죽이고 강탈한 것이고.
이후 라슈카는 언제든 자나크의 도끼를 빼앗고자 그를 노리고 있었는데, 정작 자나크 본인이 아르센과 결투를 하다 죽어서 도끼를 빼앗겨 버린 것이다.
“그래서, 도끼 때문에 이 짓을 했다?”
“달라고 줬을 건 아니잖나. 사 올 수도 없고.”
그 말대로, 이런 도끼는 어지간해선 돈 주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거금이라면 모를까, 누가 이런 귀물(貴物)을 함부로 팔까.
혹시 팔 마음이 있었더라도, 라슈카는 돈이나 물건으로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하지 않았다.
그리고 교환할 것이 없는 자가 물건을 얻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은, 모름지기 도둑질이나 강탈인 법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네 원수를 갚아준 은인 아닌가?”
아르센이 어이가 없어 묻자, 라슈카가 유쾌하게 웃었다.
“아버지의 도끼를 갖고 싶었던 거지, 아버지의 죽음에는 별로 유감이 없었어! 그다지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거든.”
아무래도 복잡한 가정사가 있는 모양이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았기에, 아르센은 질문을 돌렸다.
“어쨌든, 내가 여기 올 거란 건 어떻게 알았지?”
“결투가 끝난 뒤부터 바로 사람을 붙이고 정보를 모았지. 새벽 발굴단과 친한 데다 거울 납골당을 공략하려 했고, 이레 유적을 방문했던 호랑이 발톱 발굴대랑 교류하고 있다는 것까지 확인했으면 추리할 자료는 충분했어.”
꽤 놀라운 정보력이었다.
이것이 범죄자 사회의 연줄이라는 것일까, 아르센은 잠시 감탄하며 라슈카의 말을 경청했다.
라슈카는 목이 말랐는지 잠시 마른기침을 토했다.
“오래된 미개척 유적에 관심이 많다면 다음 후보는 여기랑 위곤 유적 중 한 곳일 텐데······너희가 언제 출발할지 미리 사람을 심고 기다렸다가, 가는 방향을 확인하고 친구들을 부른 뒤 출발했지.”
“참 똑똑하기도 하셔라.”
아르센이 빈정대자, 라슈카는 뿌듯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 모습에 기가 찬 아르센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조금 전에 하던 말을 들으니 나에게 개인적인 감정도 좀 있어 보이던데?”
“마음에 안 들었거든. 누구는 이 나이 먹도록 바닥을 발발 기면서 이런 더러운 짓이나 하는데, 어린놈이 엄청난 재능을 타고나서 자나크를 꺾을 정도라니, 질투 나잖아.”
아르센은 세상 참 더럽다고 투덜대는 라슈카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굳이 해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역시 이 정도 능력을 얻고자 피 흘리는 노력을 했노라고, 몇 번이고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노라고 말해 봐야 의미가 있을까.
모름지기 질투심에 찬 자에게는 성공한 자의 어떤 말도 자랑과 기만으로 들리는 법이다.
아르센은 몇 가지를 더 물었다.
이 습격에 대해 아는 자가 더 남아 있는지, 입구에 살아있는 자가 있는지, 총인원은 몇 명인지.
라슈카는 자포자기한 사람답게 순순히 설명했고, 다른 포로 몇 명에게 따로 물어 숫자를 대조해도 어긋나는 점은 없었다.
모든 정보를 얻은 뒤, 아르센은 도끼를 꾹 쥔 채 물었다.
“남기고 싶은 말은?”
“······살려주면 안 되나?”
“더 없나 보군.”
아르센은 도끼를 들어 올렸다.
무저항인 인간을 죽이는 행위에 대한 저항감은 없었다. 용서해서는 안 될 자들이니.
라슈카가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아르센의 발달한 감각은, 감긴 눈에 눈물이 괴어 있음을 간파했다.
불필요한 사실이었기에, 그는 그 사실을 지워냈다.
“아, 살고 싶······.”
골통 빠개지는 소리와 함께, 아르센의 도끼가 정확히 라슈카의 머리를 반으로 쪼갰다.
그 모습을 본 다른 포로들이 비명을 지르며 목숨을 애걸했지만, 강도들에게 베풀 인정은 없었다.
아르센은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고, 처형이 시작됐다.
잠시 후, 그들이 있던 방을 가득 채우던 비명도 신음이 모두 사라졌다.
피와 뇌수가 묻은 도끼날을 닦던 아르센은 문득 바즈칼을 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만난 것도 이거랑 꽤 비슷한 상황 아니었나?”
“네? 아, 그야 뭐······.”
바즈칼 역시, 처음에는 아르센이 가진 장검을 노리고 그를 찾아오지 않았던가.
“하긴, 적어도 넌 정정당당했지.”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그것이었다.
바즈칼은 싸워 이기는 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걸로 하자며 당당히 싸움을 걸었고, 패배한 뒤 깔끔하게 대가를 치렀다.
야비한 기습을 가하는 게 아니라.
바즈칼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리노에게는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됐어. 일단 돌면서 숫자나 확인하지. 모두 집합!”
혹시나 누군가 도망가서는 곤란하기에, 함정을 끌 수는 없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함정 지대를 돌며 죽은 자들의 숫자를 헤아려, 탈출한 자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
둘째는 죽은 자들의 시체에서, 승리의 대가를 취하는 것.
첫 번째는 지금 당장 할 수 있었다.
“일단 이 녀석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부터 모두 챙기지. 분배는 나가서 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지시한 뒤, 아르센은 조금 전부터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던 마룬의 얼굴을 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귀찮게 됐군······.’
마룬이 평소에 좀 바보 같이 굴긴 했지만, 지금 아르센이 유적을 조종해 침입자들을 격멸했음을 짐작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정말 어린애가 아닌 이상, 어떻게 그걸 모를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진실과 거짓을 잘 버무려 설명하지 않는다면, 마룬은 아르센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룬의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전력의 1/3 정도라고 할 수 있는 별부르미 별동대의 지지를 잃는다는 의미였다.
더 나아가서는 별부르미라는 후원 세력 자체를 잃는 일일 것이고.
“묻고 싶은 게 많아 보이시는군요. 마룬 경.”
“네. 조금······.”
“따로 이야기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