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08)
위곤 유적은 도시의 북서쪽, 아르센 일행이 나온 동문과는 거의 정 반대 방향에 있었다.
그런데도 동문으로 나온 것은 무장한 채 번잡한 시내를 가로지르는 것보다, 차라리 밖에서 빙 돌아 달리는 것이 더 빠를 거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실제로, 공간 확장 가방으로 짐이 간소화된 덕분에 일행의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가장 느린 이에게 속도를 맞추게 되는 단체 행군의 특성상, 엄청난 양의 짐을 짊어지고 느릿느릿하게 걷는 기승수가 없어진 것만으로도 그랬다.
지나가는 길에서 꽤 많은 발굴대와 마주칠 수 있었다.
그간 아르센 일행이 들렀던 동부, 남부는 이미 많은 유물이 발굴되어 한산한 편이었지만, 북부는 아직 공략되지 않은 유적이 많았던 탓이다.
심지어 땅을 파헤치다 보면 새로운 유적이 나타나기도 하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만나는 사람 중 일부는 아르센을 알아보고 경외, 혹은 경계심을 드러냈지만, 많은 발굴꾼들은 아르센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다.
발굴꾼 상당수가 길게는 몇 달 이상 유적 공략에 매진하는 만큼, 도시 내부에 퍼진 명성을 전해 듣지 못한 탓이었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을 보내며 사흘을 달려, 마침내 일행은 위곤 유적에 도착했다.
과거 천 명의 기사들을 잡아먹은 것으로 악명을 떨친, 강철 거인의 땅에.
유적이 있는 곳을 보며 바즈칼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여기가 위곤 유적 맞습니까? 생각보다 좀······.”
위곤 유적의 외부는 다른 유적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나무와 돌을 사용해 어설프게 엉기성기 만든 건물들은 오두막, 초가집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으며 그마저도 반쯤은 무너져 있었던 탓이다.
누가 봐도 고대의 힘으로 만들어진 신비한 무언가보다는, 그냥 지나가던 유랑민이 어설프게 만들어놓은 작은 마을에 가까웠다.
“저건 여기서 공략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거고, 진짜는 아래에 있을 거다.”
“아래요?”
“여기.”
아르센은 진을 조종해 발을 탁탁 굴렀다.
바즈칼이 그 말의 의미를 묻기 전, 아눈이 불쑥 끼어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비가 오려나 봅니다.”
그 말에 따라서 위쪽을 올려다보니, 과연 먹구름이 짙게 낀 것이 보였다. 그 모양새를 보아하니 적어도 몇 시간 내, 빠르면 지금 당장이라도 비가 오지 않을까 싶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니 습한 공기가 비강 안쪽을 적시는 것이 느껴졌다.
“일단 빨리 들어가죠.”
위곤 유적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고, 그저 인간의 냄새를 맡고 다가온 마수 네다섯 마리가 있을 뿐이었다.
이를 미리 처리하고자, 아르센은 병사들을 풀었다.
“처리 끝!”
“이쪽도 끝났습니다!”
기승수를 탄 병사들은 새로 얻은 창이나 투창 등을 이용해, 힘을 합쳐 몰이 사냥을 하는 것으로 어렵지 않게 마수들을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큼지막한 크기에 비늘 달린 너구리 하나가 나자빠지는 것으로 주변 정리가 끝났다.
그것을 확인한 뒤, 아르센은 덤덤히 집합을 명했다.
“우선 문부터 열지. 모두 준비!”
유적의 입구는 간소하기 짝이 없었다.
갈색 금속으로 된 문은 그 크기가 제법 큰 편이었지만, 트랩도어 형식으로 되어 있어 주변에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만약 주변의 땅이 평범한 흙색이었다면 구분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다행히, 이 유적을 먼저 찾아왔던 선구자들은 누군가 이 문을 찾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여러 장치와 표식을 해 두었다.
문을 열 수 있는 도르래는 그중 하나였다.
금속 문 한편에 달린 도르래는 반질거리는 것이 만들어진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자, 힘 주고! 하나! 둘!”
병사 몇 명이 힘을 합쳐 쇠사슬을 당기자 얼마 지나지 않아 구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열렸다.
이 문은 기존의 마법 문과 달리 특별한 조치가 가해지지 않은 것인지, 아르센의 명령으로도 열리지 않았다.
오직 물리적인 방법으로만 열 수 있었다.
완전히 문을 열어젖힌 후, 그들은 옆에 이름을 새긴 비석을 놓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난번에는 이것을 무시하는 강도 패거리를 만나 피를 보았지만, 보통은 잘 지켜지는 규칙이었으니 준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야······.”
마룬이 안쪽을 보며 제일 먼저 탄성을 흘렸다.
아래쪽으로 쭉 뻗은 대리석 계단은 그 좌우 길이가 어찌나 넓은지, 어깨를 딱 붙이면 사십 명 정도가 동시에 내려갈 수 있을 정도였다.
좌우의 벽은 암석 재질로 되어 있었는데, 흠조차 보이지 않게 미끈해서 얼굴을 가까이 대면 거울처럼 비쳐 보였다.
천장에서는 강렬한 백색광이 내리쬐어 내려가는 길을 비췄기에, 아래로 내려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숭고한 어딘가로 떠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저깁니다.”
대리석 계단을 백 개 정도 내려가자 넓은 광장이 나왔다.
광장 가운데에는 머리 하나 크기만큼 돌출된 석판이 있었는데, 그 크기가 백 명이 올라가고도 남을 정도로 컸다.
이것이 바로 다른 유적과 차별화되는, 위곤 유적의 특징 중 하나인 하강기였다.
아르센은 이것에 엘리베이터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부르기에는 너무 비과학적인 물건이긴 했지만.
아르센이 암호를 입력하는 철판으로 다가가자, 그 모습을 보며 마룬이 물었다.
“암호 아십니까?”
“네. 라수르 경에게 들었습니다.”
마룬의 말에 대답한 뒤, 아르센은 모두 빠지지 않고 석판 위에 올라섰는지 확인했다.
이 시설은 지구의 엘리베이터에 비해 극히 불친절한 설계여서, 탑승자를 보호하는 요소가 전무했다.
행여나 내려가려는 순간 석판과 바깥 사이에 발을 걸치고 있으면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디 볼까······.’
석판에는 아홉 개의 숫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지구의 도어록을 연상시키는 이 장치에 암호를 입력하는 것으로 하강기를 작동시킬 수 있었다.
이 암호는 유적 도시 전체에 널리 알려져,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번호를 누를 때마다 눌린 부분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왔다.
‘1, 4, 7, 2, 5, 8, 3, 6, 9.’
아마 이곳이 군용 시설이었으리라 짐작될 정도로 성의 없는 암호 설정은, 이곳의 관리자가 얼마나 비밀번호 외우기를 귀찮게 여겼는지 보여주었다.
처음 이 비밀번호를 알아낸 자가 누구인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어린아이라도 맞출 수 있었을 테니.
번호를 모두 누른 뒤, 아르센은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내려간다!”
숫자 옆에 있는 확인 버튼을 누르자, 하강기가 그 몸을 뚝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작은 비명이 몇 번 울렸다.
“으헉!”
“꺅!”
아르센은, 그대로 자리에 서서 몰아치는 바람을 즐겼다.
이 정도면,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엘리베이터를 탈 때의 기분을 연상시킬 정도는 되었다.
하강을 마치고 나니 태연한 기색인 아르센에 비해, 다른 이들은 반쯤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이런 것인 줄을 미리 알고 있던 마룬조차도.
“세상에.”
“지금, 저게 도대체······.”
“설마 올라갈 때는 다시 저걸 타고 가야 합니까?”
마지막으로 물은 것은 바즈칼이었는데, 아르센이 그렇다고 긍정하자 거의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무시무시한 하강기에 대한 좌절감도 잠시, 다시 정비를 마친 일행은 눈앞에 있는 큼지막한 정문을 열었다.
이번에도 열기 편하게 도르래가 설치되어 있었다.
철문이 끼익 소리를 내자, 안쪽에 무시무시한 광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엘로이즈가 작게 탄성이 터트렸다.
“강철 거인······.”
그 말대로, 금속으로 이루어진 거인 여섯 구가 방안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좌우로 세 대씩 늘어선 그것들은 아무런 무장도 갖추고 있지 않았지만, 큼지막한 주먹이 글러브처럼 둥글게 뭉쳐 있어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저거랑 싸우면······.”
“그리 재밌지는 않을 겁니다.”
라수르가 말하길, 평범한 기사 한 명이 거인 하나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던가.
거기다 기사나 병사들이 숫자로 거인들을 압살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유적은 이를 감지하고 거인을 추가로 투입한다고도 했다.
심지어 강한 기사에게는 그에 맞춰 강화 거인을 투입하기도 하기에, 이 유적이 난공불락으로 남은 것이었다.
한 걸음 들어가자, 곧장 익숙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영합니다, 방문자님. 1층 견학 구역의 전투 시험 기체를 작동시키시겠습니까?-
아르센은 저 말에 대답할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작동시키지 말라고 대답할까, 생각했지만 전대 계승자는 아무 대답 없이 통과했을 테니 그대로 하는 편이 나을 거 같았다. 기왕이면 이미 검증된 방법을 택하는 쪽이 나을 테니까.
그대로 조심스럽게 일행을 인솔해 앞으로 걸었지만, 거인들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서 고요한 정적을 수호할 뿐이었다.
긴장 속에서 걸음을 옮기기를 한참, 마침내 1층을 통과할 수 있었다.
“후우, 다행입니다.”
마룬이 땀을 닦는 시늉을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얼굴이 굳은 것은 1층의 끝에 있는 하강기를 본 뒤였다.
“이거 또 타야 하는 겁니까?”
들어오기 전, 마룬은 별부르미의 기록을 토대로 유적이 4층까지 있음을 알려 주었다.
정확히는 3층까지가 거인들의 방어 시설이고, 4층만이 거주 구역 비슷한 무언가라고 하던가.
하지만, 그 안에 하강기가 몇 개 있는지까지는 적혀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4층이라고 하셨으니까, 아마 앞으로도 세 번은 더 타야 할 것 같은데요. 돌아가는 것까지 합치면 일곱 번 더 타야겠군요.”
마룬의 얼굴이 썩 유쾌하지 않게 변했다.
이후, 2층 역시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좀 더 많은 여덟 기의 거인이 있었으며, 한가운데에는 조금 더 커다란 크기의 검붉은 거인이 있었다.
“저게 강화 거인인 모양이네.”
엘로이즈가 그렇게 말했지만, 다행히 2층의 거인들도 덤벼드는 일은 없었다.
다만, 2층의 승강기를 작동시키는 순간 의미심장한 말이 들려왔다.
-외국인 견학 자격은 2층까지입니다, 3층부터는 공화국 시민권자가 아니면 출입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3층에 내려갔을 때 알 수 있었다.
* * *
-경고, 이 구역은 통행증 소유자나 공화국 시민 자격을 보유한 시민만이 들어올 수 있는 구역입니다. 시험장의 방어 장치가 가동될 수 있으니, 방문자님께서는 즉시 위층으로 올라가 관리자와 상의 후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방문자님은······.-
3층에 도착하여, 곧장 나아가려던 아르센에게 들려온 경고였다.
이해할 수 없는 그 발언에 굳은 것도 잠시, 아르센은 재빨리 손을 들어 일행을 멈추게 했다.
그런 뒤, 마룬에게 물었다.
“마룬 경.”
“네?”
“예전에는 3층을 어떻게 통과했다고 했죠?”
“잠시만요, 그냥······걸어서 통과하면 됐는데요. 혹시 그 목소리란 게?”
“일단 하강기 쪽으로 돌아갑시다. 계속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으니까요.”
하강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 뒤, 아르센은 간부들을 모아 회의에 들어갔다.
우선,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공유했다.
유적이 말하기를 그에게는 통행 자격이 없다며, 돌아가지 않으면 공격할 것이라는 경고를 남겼노라고.
“세상에, 말도 안 됩니다.”
마룬은 어찌나 놀랐는지, 그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별부르미의 기사로서 계승자의 무결성을 교육받은 만큼, 그게 깨졌다는 사실에 크게 동요하는 듯했다.
그에 비해,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충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너무 순조롭게 왔노라고 생각하는 듯, 의욕을 불태우기까지 했다.
“도전해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모름지기 유적 발굴이라면 화끈한 전투가 있어야죠.”
“맞습니다! 형님도 계시는데, 한 층 정도야.”
아눈과 바즈칼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의욕을 불태웠지만, 아르센은 그리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일단 그의 머리를 가장 복잡하게 만든 것은 유적이 남긴 말이었다.
‘공화국 시민의 동행 없이······라.’
아르센은 유적이 남긴 말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아르센과 전대 계승자, 둘 다 유적에게 ‘인간’으로 인정받기는 했다. 하지만, 아르센은 ‘공화국’의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들어갈 수 없다는 경고를 들어야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둘 사이의 차이는?
어쩌면 전대 계승자는 특별한 계기로 ‘통행증’을 얻은 것일 가능성도 있고, 아르센과 달리 공화국 시민의 혈통을 이어받아 통행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정확히 둘 중 어느 쪽인지는, 아직 짐작할 수 없었다.
그보다 전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우선 확인해야 할 것이 하나 있었다.
“바즈칼, 이쪽으로. 아눈 경도 잠시 도와주시죠.”
“어쩌시게요?”
바즈칼의 질문에 아르센이 단호히 말했다.
“일단 확인해 봐야지. 정말 못 들어가게 막는지, 아니면 그냥 공갈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