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21)
아르센 일행을 향해 다가온 무리는 총 열네 명이었다.
그들의 차림새는 사막 주민답게 독특했다.
발굽 있는 기승수는 낙타처럼 혹이 있었는데, 그것이 등 부분이 아니라 좌우 옆구리에 달려 있었으며 머리는 사막여우를 연상시켰다.
이에 탄 사람들은 아르센이나 다른 사람들처럼 하얀 천옷을 둘둘 둘렀는데, 그들과 달리 안쪽에 금속 갑옷은 입지 않고 있었다.
방어력을 포기하고 열기를 이겨내겠다는 계산이 느껴졌다.
그들 중에는 기사가 한 명 있었지만, 놀랍게도 그 무리의 대장은 기사가 아니었다.
무리를 대표로 나선 것은 하얀 천옷을 걸친 작은 사람으로, 후드를 걷자 아직 어린 소년의 얼굴이 드러났다.
“반갑습니다, 이방인들. 이 땅의 지배자인 위대한 우르타의 아들, 블라셋이라고 합니다.”
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소년은 짐짓 근엄한 말투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냥 어린아이의 장난이라기에는 뒤에 있는 기사나 병사들의 얼굴이 진지했기에, 아르센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저 동쪽, 벨루안 영지에서 온 아르센이라고 합니다. 제가 앞에 계신 분을 어떻게 칭하면 되겠습니까?”
“그냥 블라셋이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며 소년은 쾌활하게 웃었다.
그들에게 다가온 무리의 수장, 이 어린 소년은 스스로 밝혔듯 영주의 아들로 그중에서도 열두 번째 자식이라고 했다.
소년은 아르센에게 굉장한 관심을 보였는데, 정확히는 그들이 잡은 마수, 전갈사자를 보고 나서 그것을 잡은 이가 아르센임을, 그리고 그것을 혼자서 일격에 잡았음을 알게 된 뒤부터였다.
“정말 굉장한 용력을 갖추셨나 봅니다! 우리 영지의 기사들도 혼자서는 쉬이 나서지 못하는 것이 이 마수이거늘.”
“운이 좋았습니다.”
블라셋이 흥분한 듯이 소리치자 아르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답했다.
그 모습에 블라셋은 더 깊은 인상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에 비해, 갈라이오의 다른 병사들은 바즈칼이 끌어안고 있는 유물, 통칭 에어컨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이 죽을 듯이 뜨거운 사막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있어, 한낮에 이러한 냉기를 접하는 것은 그리 일상적인 일이 아니었던 탓이다.
“뭐 이리 시원하담.”
“혹시 이거 팔 생각 없으십니까? 기사님?”
“형님이 정하시겠지만, 아마 안 팔 거 같은데.”
바즈칼과 병사들이 잡담을 나누는 가운데, 누군가가 아르센을 불렀다.
“다 잘랐습니다, 대장님!”
리노가 전갈사자의 머리와 꼬리를 들고 다가왔다.
블라셋이 알려준 바에 의하면, 그 갈기와 꼬리 끝의 독이 가치 있게 쓰인다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갈기를 따로 깎아버린 머리는 그 위엄이 많이 죽었지만, 어쨌든 증명의 수단으로는 충분했다.
머리를 넘겨받은 아르센이 다시 블라셋에게 그 머리를 내밀었다.
머리가 쓸모가 있다는 얘기를 할 때부터 소년이 너무나도 그것을 탐내는 기색이라, 뇌물 삼아 줄 생각이었다.
그런 아르센을 보며 소년이 감동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이걸 선물로 주시는 겁니까?”
“네, 뭐.”
블라셋은 전갈사자의 머리를 선물로 준다고 하자 꽤 감동한 기색이었는데, 이곳 갈라이오에서는 나름 큰 의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아르센은 잠시 과거를 되짚어봤지만, 벨루안에서 마수 칼꼬리의 머리를 잘라다 장식하고 싶어하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냥 문화 차이일까.
‘이해하기 힘드네.’
물론 아르센이 공짜로 이것을 내준 것은 아니었다.
그 대가로 아르센이 요구한 것은, 이들이 아르센 일행의 길잡이가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영지로 갈 수 있는.
“안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이곳 사막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입니다!”
소년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 말대로, 선물을 받은 갈라이오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아르센 일행의 여정은 훨씬 편해졌다.
첫 번째로, 길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보통 아르센 일행은 별자리를 이용하여 방향을 잡았다.
낮에는 바위나 산의 위치로 밤에 보아둔 방위를 계속해서 확인하는 식으로 행군했고.
하지만 주변에 표식이 될만한 것이 없는, 이 모래의 바다에서는 그런 식으로 길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게 그것으로 보이는 구릉이나 바람으로 방향을 잡는 이곳 주민들과 동행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두 번째로, 그들은 충분한 양의 물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물을 대체할 소재 역시 잘 파악하고 있었다.
가끔 보이는 선인장처럼 말라비틀어진 식물의 뿌리에 많은 양의 물이 담겨 있었을 때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이곳 영주님께서는 자식이 많으신가 봅니다.”
아르센은 영지 내부의, 일견 예민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에둘러 물었다. 그 말에 블라셋이 흐릿하게 웃었다.
“모두 열다섯 명이 있죠. 저는 그중 거의 막내고요.”
“그렇습니까.”
“네. 형님이나 누님 중 한 분이 영주가 되실 겁니다. 물론 저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만······이번에 나온 이유도 그겁니다.”
“오호.”
블라셋이 말하기를, 그는 기사가 되고자 수행을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가 으스대듯이 자랑했다.
“가끔 영지 바깥까지 나가기도 합니다만, 보통은 이 사막을 돌면서 수행하죠.”
놀랍게도, 이곳에서는 영주를 그 자식 중 기사로 각성한 이에게 물려준다고 했다.
영주 혈통을 가진 이가 많아서 가능한 방법이리라.
손이 귀하여 영주 혈통의 소유자는 함부로 나가지도 않는 벨루안과는 전혀 다른 생활양식이었다.
아니, 그간 들른 다른 영지들과 비교해도 독특했다.
“위쪽 형님이나 누님 중 기사가 되지 못하고 죽은 분도 많습니다. 다섯 명이나요.”
“신기하군요.”
단순히 환경이 만든 차이인지, 아니면 무언가 다른 것이 있는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블라셋이 갑자기 시선을 휙 돌렸다.
“오, 사막의 왕이 나오려나 봅니다!”
그 말에 돌아보았지만, 아르센의 감각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감각이라는 것이 전갈사자가 땅속에서 튀어나오려는 것을 바로 감지했을 정도로 예민함에도.
“사막의 왕 말입니까?”
“네. 언제 봐도 무시무시하답니다, 한번 보시죠!”
그 말에 따라, 그들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오른쪽, 유난히 구릉 없이 평탄한 사막이 쭉 펼쳐진 곳을 보았다.
일 분쯤 지났을까, 바즈칼이 투덜대듯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때, 마치 그 목소리에 호응하듯 땅이 울기 시작했다.
우르릉, 하고 일어나는 굉음.
낮고 굵게 울리는 그 소리에, 훈련받은 기승수들조차 불안한 듯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대지가 일어났다.
“아.”
누군가의 탄성, 아르센은 잠시 후 그것이 자신의 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일행들 역시 제각기 다른 탄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대지가 일어난다는 표현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수백 미터, 어쩌면 그마저도 한참 넘을 거대한 생물이 땅을 헤치며 솟구쳐 올랐다.
구름처럼 피어오른 모래 먼지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세상에······.”
잠시 후, 모래 먼지가 가라앉자 그 모습이 제대로 나타났다.
좌우로 쟁반처럼 넓적한 생김새, 흑갈색 비늘로 뒤덮인 육체는 가오리를 연상시켰다. 바다가 아니라 사막에 있다는 점만 빼면 다른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다만, 움직이는 방식만은 가오리와 달랐다.
넓적한 몸통 밑에 수십 개의 짧은 다리가 있어 그것으로 땅을 기듯 움직였는데, 그 모습이 지네를 연상시켰다.
물론 짧다는 것은 저 생물을 기준으로 했을 때이고, 각각 그 길이가 몇 미터가 넘는 다리였지만 말이다.
‘저런 생물이 지상에 존재할 수 있다고?’
아무리 판타지 세상이라지만, 물리 법칙상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모습에 아르센은 전율했다.
놀라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옆에서 블라셋이 다소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것을 신으로 숭배하는 이도 있습니다. 저는 그게 웃기는 헛소리고, 저건 엄청 거대한 마수일 뿐이라고 봅니다만.”
사막의 왕은 움직일 때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모래 먼지를 피워 올렸다.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찌나 그 양이 많은지, 모래폭풍이 부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때, 마룬이 옆에 있던 아눈을 향해 물었다.
“저거 잡을 수 있을까요?”
“일단 전 엄두가 안 나는데요. 전신께서도 저런 거랑 싸우라고 하시진 않을 겁니다. 싸움은 산이나 달이랑 하는 게 아니니까요.”
아눈이 그렇게 말하며 내뺐다. 아르센 역시 동감했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산맥의 군주와도 싸웠던 그들이지만, 저 사막의 왕은 그 군주와도 차원이 달랐다.
크기 자체가 생물이라기보다는 자연현상으로 보일 정도로 압도적이라서, 호승심보다는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잠시 후, 햇빛을 받으며 걷던 사막의 왕은 다시 모래 속으로 잠수하듯이 스르륵 사라졌다.
오싹할 정도의 고요함 속, 블라셋이 무언가 기대하는 듯한 표정으로 아르센을 보며 물었다.
“어떠셨습니까? 사막의 왕을 보신 소감이?”
“······대단하군요. 정말로.”
아르센의 표정에 만족했는지, 블라셋이 씩 웃었다.
“이번에는 잠시 걸어 나왔을 뿐이지만, 때로는 하늘을 날기도 합니다! 앞서서는 저걸 신으로 섬기는 게 웃기는 소리라고 했지만, 그 모습을 보면 경외감이 절로 들긴 하죠.”
그 말을 듣자니 예전, 벨루안에서 상단주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분명 하늘을 나는 거대 마수에 대해서였는데, 어쩌면 그것이 이 사막의 왕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마룬이 알려준 자료에도 사막의 왕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상단주가 별도로 주워들은 이야기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실제로, 상단주는 그 마수가 사막에서 산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기에.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지요?”
“네. 만약 저런 게 영지를 공격했다면······위대한 기적이 있더라도 물리칠 수 없었겠죠. 가는 길이 겹치면 좀 위험하긴 한데, 그리 빠른 편이 아니라서 옆으로 잘 피해 가면 됩니다! 영지나 성채 안쪽을 덮친 적은 없고요.”
그렇게 사막의 왕에게 감탄하기도 잠시, 다시 지루한 행군이 시작됐다.
아직 그들은 가야 할 길이 멀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걷고.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밤이 되었다.
사막이 다 그렇듯, 잔인할 정도로 덥던 낮과 달리 밤은 잔혹하게 추웠다.
밤에는 오히려 길잡이들이 아르센 일행의 덕을 보았다.
더위와 달리, 추위는 온기를 부여하는 주문이 따로 있어 그것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마법사 몇 명이 돕자 그 범위는 수십 명이 머무르는 천막을 덮을 정도가 되어, 사막의 밤을 따뜻하게 날 수 있다는 사실에 사막 사람들은 감탄했다.
그렇게 밤과 낮을 몇 번 거쳐, 마침내 사막이 끝났다.
정확히는 정화 영역을 경계로 사막이 없어지고 평범한 땅이 나타났다.
그 안, 사람이 사는 영역을 둘러싼 붉은 방벽.
방벽을 보며, 블라셋이 두 손을 높이 들어 환영했다.
“우리 영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손님들!”
* * *
이덴 영지와 달리, 이곳에서 아르센 일행은 꽤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
영주의 아들이 데려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르센이 잡은 전갈사자의 머리를 보여주어서이기도 하고, 오피온 성채의 성주가 준 도장도 도움이 되었다.
아르센은 대표로 기사 두 명을 데리고 영주관을 방문해 영주와 면담한 뒤, 손님으로 인정받았다.
영지 내에서 열 명 이상 모여 영주관으로 다가오지만 않는다면, 자유롭게 행동해도 좋다는 허락까지 받았다.
그들이 머물 숙소는 영지 서쪽 변두에 있는 커다란 저택이었는데, 이 저택의 주인은 바로 오피온 성주의 스승이었다.
저택의 주인이 아르센 일행을 보며 말했다.
“내 집에 온 것을 환영하네, 외부인들. 내 이름은 들었겠지.”
“네, 반갑습니다. 헤티아 님.”
저택의 주인은 새하얀 머리를 목에서부터 짧게 친 노령의 여기사였다. 육십 살, 어쩌면 칠십 살 정도일까.
주름진 얼굴과 달리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곧게 뻗은 허리는 젊은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녀는 전대 영주의 동생으로, 그들이 만난 블라셋과도 가까운 친척이었다.
“좁은 집이지만 부디 편히 쉬고 가면 좋겠군. 제자들이 가끔 와서 머무느라 방은 많으니.”
물론 그 말은 겸손을 가장한 오만이었다.
그녀의 집은 저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으로, 유적 도시에서 그들이 머물던 여관보다도 컸으니.
건물만 삼 층에, 머무는 하인과 식솔이 스무 명이 넘었다.
이 집의 크기만 봐도 그녀가 젊은 시절 기사로서 얼마나 영지에 큰 공헌을 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모름지기 이 세계는 성과 없는 노인에게는 그리 친절하지 않은 법이라, 기량이 쇠한 기사가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으려면, 그만한 업적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일단 들어오게. 내 모시지.”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헤티아의 저택은 영지의 외곽에 있는 데다 손님을 자주 맞이하는 탓에 빈방이 많았다.
즉 아르센 일행이 머물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라는 뜻이었다.
병사들과 마법사들은 조금 큰 홀에서 합숙해야 했지만, 기사들은 별실을 대접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아르센은 이 노기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요리는 입에 맞을지 모르겠군. 이방인의 요리가 무엇이 있는지는 몰라서 말이야.”
“맛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특히 이······.”
“사막딸기.”
“네. 사막딸기가 새콤한 게 입맛을 확 돋우는군요.”
“칭찬 고맙네. 우리 영지의 자랑거리 중 하나지. 나도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그렇게 말하며 헤티아가 가볍게 웃었다.
“그건 그렇고, 카람이 잘 지내고 있다니 기쁘군. 내 제자 중에서도 가장 착한 녀석이었지. 재능은 없었지만.”
헤티아는 자상한 목소리로 독설을 내뱉었다.
이에 동조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던 아르센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사실 카람, 그러니까 오피온 성주가 기사로서 얼마나 실력이 있는지도 본 적 없었으니.
하지만 눈앞의 노기사가 젊은 시절 상당한 강자였을 것임은 짐작할 수 있었다.
강력한 마력에 고령에도 불구하고 신체는 단련의 흔적이 역력하니, 이런 사람이 젊은 시절이라고 약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나?”
“딱히 뭘 찾는다기보단, 서쪽으로 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아르센은 곱게 목표를 밝히지 않았다.
정보에 의하면 이곳 유적의 존재는 현지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기에. 만약 그들이 유적을 발굴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제지하려 들 터였다.
저들이 보기에는 자기 앞마당에 묻힌 보물을 꺼내 가는 도둑놈 아니겠는가. 그 생각은 사실이기도 하고.
아르센의 말을 들은 헤티아가 과실주를 한 잔 들이켜더니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가? 난 또 유적이라도 도굴하러 온 줄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