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25)
그날 저녁, 아르센은 헤티아와 고위 기사에 대해, 그 성취를 이루는 방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정확한 성장 방법까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다음날, 갈라이오를 떠나고자 일행은 짐을 꾸려 성문 앞으로 나왔다.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블라셋이 그들을 배웅했다.
“이렇게 그냥 보내게 되어서 섭섭합니다.”
영지를 나가는 것에 있어 가장 고역이었던 일은, 나가는 길에 사람을 붙여 주겠다는 블라셋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이었다.
물론 블라셋으로서는 사막에서 길도 잘 못 잡는 이 초보자들이 무슨 수로 나가겠냐 싶어 제안한 것이었으며, 실제로도 길잡이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유적을 발굴할 계획인 아르센 일행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아르센은 그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는 것으로 답했다.
“그럼, 부디 또 뵐 수 있기를.”
“정말 길잡이가 없어도 되겠습니까?”
“네. 저희가 영지 밖으로 나갈 때, 길잡이 혼자 돌려보낼 수는 없잖습니까. 그렇다고 길잡이 여러 명을 빌려서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고요.”
이것이 아르센이 댄 핑계였다.
호의를 베푸느니 거절하느니 하는 논쟁은 이미 충분히 거친 뒤였기에, 블라셋은 고집 참 세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아무튼······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절대 북서쪽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그곳은 모래 포식자들의 구역이니까요.”
“네,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르센은 화제를 돌릴 겸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오늘은 형님께서 안 보이시는군요.”
그 질문에 블라셋이 난처하다는 듯 웃었다.
“한참 수련에 빠져서요. 자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나······.”
아무래도 아르센에게 얻어맞은 것이 꽤 충격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아무리 상대가 고위 기사라지만, 자기보다 대여섯 살은 더 어린 애송이에게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얻어맞았으니.
심지어 그 모습을 여러 기사와 영주인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보였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앙심을 품지 않는 것이 용했다.
“그 정도면 훌륭한 실력이니 몸 해치지 않게 단련하라고 전해 주십시오.”
정작 디에브를 농락하듯 이긴 아르센이 남기기에는 미묘한 말이었지만, 블라셋은 그리 전하겠노라 답하며 웃었다.
격려를 남긴 뒤, 아르센 일행은 붉은 토성을 뒤로 하고 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 햇빛 엄청나게 밝네요. 하늘도 벌건 게 기분이 영.”
“시원하잖습니까.”
밖으로 나오며, 그들은 다시 ‘에어컨’을 작동시킨 상태였다.
이 사막의 넓이 자체는 다른 영지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큰 정도였다.
잠시 후, 마룬이 물었다.
“슬슬 성이 안 보이는 거 같은데, 방향 꺾을까요?”
“그러죠.”
영지의 방벽이 보이지 않게 될 때쯤, 그들은 방향을 틀었다. 원래 진행방향에서 45도 정도 오른쪽으로.
그 방향에는 블라셋이 가지 말라고 했던, 모래 포식자의 구역이 있었다.
* * *
“음?”
밝은 낮, 병사 한 명이 슬쩍 눈을 찌푸렸다.
그는 이글거리는 날씨 탓에 갑옷조차 입지 않고, 이곳 사람들처럼 하얀 천 옷만을 두르고 있었다.
정찰을 위해, 시원한 공기가 가득한 본대에서 벗어나야 했던 탓이다.
“찾았다!”
스물스물 움직이는 모래의 흔적.
병사의 외침이 멀리 있던 마법사에게 닿자, 마법사는 하늘로 불꽃을 쏘아 올려 본대를 소집했다.
잠시 후, 본대가 도착하며 병사는 다시 시원한 냉기를 쬘 수 있게 되었다.
“어디지?”
“저쪽입니다!”
병사의 말에, 아르센은 진을 몰아 구릉 위로 달렸다.
구릉 너머, 모래가 기이하게 흐르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대지 위로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듯한 흐름.
정확히는, 바닥에 뻥 뚫린 구멍 하나가 쉼 없이 모래를 빨아들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걸로 열네 번째인가?”
“벌써 며칠째인지.”
“그래도 이번에는 확실한 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봤던 거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랗네요.”
이 사막에는 모래 포식자라는 마수가 있다.
간단히 말해 개미귀신, 즉 명주잠자리의 유충이 어마어마하게 거대화된 마수라 할 수 있었는데 그 습성 역시 비슷했다.
거대한 깔때기 모양으로 모래를 파놓고, 거기에 빠져드는 생물체를 잡아먹는 것.
마룬의 설명에 따르면, 이 유적의 입구 역시 얼핏 보면 그런 모래 포식자의 소용돌이로 보이는 형태였다.
정확히는 하루에 몇 시간, 땅 위로 함정 형태의 입구가 드러나는 형식이라고 하던가.
마침 유적이 있는 이곳은 모래 포식자들이 활동하는 구역이었고, 그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영지 북서쪽을 금역(禁域)으로 여겼다.
덕분에, 이 유적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르센의 옆에 다가온 바즈칼과 아눈이 탄성을 터트렸다.
“우와, 무슨 함정 크기가······지금까지 본 거랑은 비교도 안 되네요 그냥.”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해보죠. 만약 모래 포식자의 아가리로 뛰어드는 거라면 자살 행위니까요.”
아눈의 말에 동의했기에, 아르센 역시 고개를 끄덕인 뒤 엘로이즈를 보았다.
“부탁할게.”
“응.”
곧바로 엘로이즈가 소용돌이를 향해 지팡이를 내밀었다.
잠시 후, 지팡이 끝이 빛나고 붉은 불꽃이 일어나더니 거기게 주황색이 더해졌다.
준비를 마친 뒤, 엘로이즈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바로 터트려?”
“응. 최대한 크고 요란하게.”
아르센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엘로이즈는 그렇게 만들어진 주황색 화염구를 구멍에다가 쏘았다.
화염구는 마치 자유투를 던진 듯 구멍 안으로 부드럽게 빨려 들어가고, 이내 폭발했다.
잠시 귀를 막아야 할 정도의 굉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화염이 구멍 안쪽에서 솟구쳤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이었다.
“오······.”
두 가지 마법을 섞어 사용하는 이 마법은, 유적 도시에서 얻은 마법서를 이용해 그녀가 직접 만든 주문 중 하나였다.
그 위력은 강력하기 짝이 없어, 기사라고 해도 정면으로 맞으면 꽤 타격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기사는 저런 주문을 쓰고 쏘게 놔두지도 않을 것이고 맞아주지도 않겠지만.
폭발이 끝나고, 시커먼 연기가 뭉게뭉게 솟아났다.
하지만 구멍은 큰 변화 없이, 모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반응은?”
아르센의 질문에 아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혀 없습니다.”
“확실하네요.”
모래 포식자가 강력한 마수라고 해도, 이 정도 마법 공격에 반응하지 않을 정도의 생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런 주문에 얻어맞는다면 모래 빨아들이기를 멈춘 뒤, 아르센 일행을 공격하려 들거나 도망치곤 했다.
지금까지 몇 번 마주친 소용돌이를 상대로 실험한 결과로는 그랬다.
하지만 아무 반응도 없이 모래만 빨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이것이 모래 포식자가 아닌, 유적의 입구라는 증거였다.
“그럼 들어가죠.”
그렇게 말하는 한편, 아르센은 마룬을 슬쩍 보았다.
마룬은 인상을 쓴 채 무언가를 질겅질겅 씹어먹고 있었다.
“마룬 경?”
“네?”
“지난번처럼 가는 건 좀 체면 상하잖습니까. 이번에는 편하게 가시죠.”
이덴에서 병기창 유적에 들어갈 때, 마룬은 고소공포증을 호소하며 버티다가 결국 아르센에게 걷어차여 떨어져야 했다.
아픈 과거를 되새기게 만드는 발언이었지만 마룬의 표정은 뜻밖에도 굳건했다. 아니, 조금 의기양양하기까지 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오?”
아르센이 감탄하듯 보자, 마룬이 자신 있게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는 확신과 용기가 담겨 있었다.
“전혀, 조금도 무섭지 않습니다! 지금 기분이라면······.”
마룬은 마치 가볍게 취한 사람처럼 말이 많아져 있었다. 원래도 말이 많아서 구분은 잘 안 되었지만.
그러더니, 뒤를 보며 소리쳤다.
“고맙습니다, 지샤란 양! 효과 최고입니다!”
아르센은 고개를 돌려 지샤란을 흘깃 보았다.
그리고, 마룬을 향해 지시했다.
“멋지군요, 그럼 바로 가시죠.”
“물론이죠! 먼저 갑니다-!”
그 말과 함께, 마룬이 자신 있게 모래 함정으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균형을 잃고 모래 위를 데굴데굴 구르더니,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가 사라졌다.
구멍 안쪽에서 아련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것을 확인한 뒤, 아르센은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지샤란을 보며 물었다.
“정말 아무 효과 없는 약초를 준 거 맞습니까?”
“맞습니다. 일종의 지혈제일 뿐인데.”
그녀 역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룬이 저렇게 자신감 있게 뛰어든 것은 지샤란이 두려움을 없애주는 약초를 주어, 그것을 복용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아르센이 미리 지시를 내려, 마룬에게 특별히 부작용이 없는 아무 약초나 주며 그런 약초라고 거짓말하게 지시한 것이었지만.
혹시 진짜 그런 게 있다면 주고 싶어 미리 물어봤지만, 유감스럽게도 용기를 주는 약초 따위는 없었다.
“저 정도를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를 기대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극적인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조금 전의 마룬은, 평상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용감무쌍했다.
누가 보면 마약이라도 했나 생각할 정도로.
‘마법사라고 약초 효과를 다르게 받지는 않던데, 그게 아니면 도대체······?’
정말로, 언제나 의문을 안겨 주는 인간이었다.
아르센은 고개를 저은 뒤, 작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일단, 그 약초가 아무 효과도 없단 건 비밀입니다.”
“알겠습니다.”
둘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들었을 다른 기사들에게도 눈짓하자, 그들 역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약초의 진실은 어둠 속으로 묻혔다.
잠시 후, 아르센 역시 진에서 내린 뒤 미끄러지는 모래 함정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이나 들어갔을까, 곧장 모래가 스르륵 다리 사이로 파고드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균형을 무너트리며 넘어지게 만들어 그 몸을 안쪽으로 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르센은 여기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몸을 맡겼다.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진 않군······.’
갑옷 덕에 모래에 쓸려 뜨겁거나 하지는 않아, 마치 모래로 된 슬라이드를 타는 기분이었다.
그 길이가 십 수 미터에 불과했기에 미끄럼은 금방 끝났다.
검은 구멍이 그를 반기자, 아르센은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뛰어내렸다.
* * *
“아르센 경? 생각보다 좀 늦으셨네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충격을 약하게 하고자 쭈그려 앉아있던 아르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싯누런 뼈가 우두둑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서 위를 올려다보니, 거의 십 미터 높이에서 모래가 부스스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조금 전 그가 떨어진 구멍이었다.
앞을 보니, 마룬이 특유의 맹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마룬 경도 무사히 잘 내려오셨군요.”
“네! 지샤란 양이 준 약초, 이름은 모르겠지만 굉장합니다. 막 가슴 속에서 용기가 솟구치는 게 아주 그냥.”
아르센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룬의 호들갑을 들어 주었다.
그 약초는 그냥 지혈제라고, 당신이 생각하는 효과는 전혀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금 전, 떨어질 때 완충재가 되어준 뼈 무덤.
대부분 사람이 아닌 마수의 것이었지만, 가끔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도 보였다.
아마 먼 옛날 이곳에 떨어진 이의 유골이리라.
그것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이 들려왔다.
“끄아아아아-!”
“꺄아아아아-!”
구멍을 통해 떨어지는 마법사 두 명.
그 아래에서 준비하고 있던 아르센과 마룬은, 도약하여 떨어지던 마법사들을 각각 한 명씩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한 번 더, 두 명의 마법사가 뛰어내리고 이를 받아내어 총 네 명의 마법사가 내려왔다.
“다 내려왔군요.”
“네!”
이번 유적 공략에는 아르센과 마룬, 마법사 네 명까지 고작 여섯 명이 동원되었다.
이번에도 기승수를 데리고 내려올 수 없는 환경이니 누군가는 위를 지켜야 하는데, 이 사막은 이덴의 절벽 꼭대기와 비교할 수 없이 위험했던 탓이다.
강력한 마수가 나타날 것을 대비해, 엘로이즈 수준의 마법사는 위쪽에 대기 시켜 두어야 했다.
“좋습니다. 들어갈 준비 하죠.”
길은 한쪽으로만 나 있어서 헤맬 염려는 없었다.
고대 유적 특유의, 새하얀 마력광이 길을 밝혀 어두컴컴하지는 않았다.
그 길의 끝에, 유적이 있었다.
“도착했네요.”
영지의 붉은 토성이 생각나는, 하지만 묘하게 검붉어 조금 더 피처럼 보이는 불길한 색상의 외벽.
핏빛 궁전이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감탄하기를 잠시.
“말도 안 돼.”
크게 당황한 목소리는 마룬의 것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그가 정신없이 공략책을 펼쳐보고 있었다.
“분명히, 분명 파란색이었는데······.”
“파란색이라뇨?”
아르센의 질문에, 당황한 표정이던 마룬이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는 당황한 기색이 가득하여, 조금 전까지의 용기는 찾을 수 없었다.
“잘못 기억한 줄 알았는데······이번에 저희가 공략할 유적은 외벽이 파란색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물어보면서도, 아르센의 머리는 이미 해답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 유적에 대한 단서는 하나. 북서쪽에 있는, 모래 포식자가 만든 함정 같으면서도 그것보다 훨씬 큰 구멍 안쪽이라는 것 하나뿐.
그 외에 외관상으로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은 없었다.
“설마······.”
다른 유적을 착각해서 들어왔다는 의미인가.
아르센은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기에.
그들은 이제부터 추가 지원 없이, 기사 두 명과 마법사 네 명이서 안쪽에 무엇이 있을지 모를 유적을 발굴해야 했다.
지난 번 위곤 유적처럼, 계승자의 권한으로도 막을 수 없는 위험이 있을 수 있는 미지의 유적을.
‘그래도 미개척 유적이니까, 이미 공략된 유적과는 달리 좀 특별한 물건이 있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