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29)
승강기가 끝까지 올라가자, 천장이 열리며 모래가 우수수 쏟아졌다.
그 바닥이 사막 한가운데에 묻혀 있으니 당연한 일일 터.
마침내 지상으로 도달한 이들을 맞이하는 것은 어둠이었다. 저 지평선 너머로 붉은 노을이 은근히 보이는, 이른 초저녁.
새삼 시간이 꽤 지났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일단 합류하게 신호부터 보내죠.”
아무리 용맹한 약탈자라도 이런 곳에 머무르지는 않을 터, 저녁이라 마수들도 잠들었을 테니 위험이 될 요소는 없었다.
불꽃을 쏘아 하늘을 수놓기를 몇 번, 마침내 저 멀리서 다가오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왔다······.”
여유롭게 접근하던 그들은, 기사 중 누군가가 일행의 모습이 이상함을 전했는지 급히 속도를 올렸다.
아르센은 제일 선두에서 진을 몰고 있는 엘로이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심하지, 위험한데.’
그런 생각과 동시에, 귀걸이를 통해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
그들은 출구 바로 옆에 야영지를 꾸린 뒤, 부상자들의 치료에 들어갔다.
아르센은 엘로이즈에게 직접 치료를 받았으며, 마룬이나 마법사 둘은 치유 주문을 쓸 수 있는 다른 마법사들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다.
“크으.”
팔을 고치는 것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거의 지그재그 형태로 박살 난 팔은 복합골절이라는 표현이 귀여울 정도여서, 지구의 의학으로도 팔을 제대로 쓸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을 정도였으니.
치유 주문도 만능은 아닌지라, 뼈가 잘못 붙는 것을 막고자 회복된 부분을 몇 번씩 다시 부러트렸다가 붙여야 했다.
그 과정은 고문이라 부르기 부족함이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엘로이즈의 물음에, 아르센은 안에서 본 것을 설명했다.
예상과 달리 붉은색을 띤 유적, 그 안에서 만난 기괴한 생명체들, 마지막으로 전투 인형들의 습격까지.
이야기가 끝난 뒤, 엘로이즈는 그저 짧게 한숨을 푹 쉬었을 뿐이었다.
안도, 그리고 안타까움이 섞인 한숨을.
“······운이 좋았네.”
“그러게 말이야.”
같은 말이었지만, 그 의미는 달랐다.
엘로이즈는 아르센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살아 나왔음에 운이 좋다고 말한 것이었고, 아르센은 엘로이즈가 함께 들어오지 않아 운이 좋다고 말한 것이었다.
만약 함께 있었다면, 그래서 엘로이즈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아르센은 냉정하게 싸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자신이 우습게 느껴져, 아르센은 쓰게 웃었다.
갑자기 웃는 모습이 이상했는지 엘로이즈가 물었다.
“왜?”
“아니, 아무것도 아냐.”
잠시 후, 아르센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탁탁 발을 구르는 것으로 발목 부상이 치료되었음을 확인했다.
“회복 완료. 이제 좀 살 것 같네, 고마워.”
“제발 몸조심해, 어디 잘리면 챙기는 거 잊지 말고.”
잔소리하는 엘로이즈에게 머쓱히 웃으며, 아르센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리 중인 그의 갑옷을 확인했다.
엘로이즈가 고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 뛰어난 대장장이지만 유물에 손을 댈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으니.
아니, 현대의 마법사 대장장이 중 누구도 그런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다.
갑옷에는 자동 수복 기능이 내장되어 있었다. 당연히 그냥 고쳐지는 것은 아니고 마력을 흡수하여 작동하는 기능이었다.
싸우느라 마력을 많이 소비한 아르센이 이를 감당하기는 힘들어, 여유가 있던 다른 기사나 마법사의 마력을 빌렸다.
지금은 리노가 열심히 마력을 주입하는 중이었다.
“힘들지는 않나? 위쪽도 그리 편하진 않았을 텐데.”
“괜찮습니다! 대장님이 위험하실 때 함께 싸우지 못했는데 이런 거라도 해야지요.”
리노는 마력을 소모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리 말하며 웃었다.
잠시 후, 아르센은 기사들을 모았다.
아눈과 바즈칼, 리노가 모두 모이자 아르센은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간략히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나자, 아눈이 어이없다는 듯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의도치 않게 유적을 찾아버리다니, 이건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그 말대로, 유적이라는 것은 보통 유적 도시처럼 비정상적으로 유적이 몰려 있는 곳이 아니라면 극히 드물었다.
한 영지에 많아야 두어 개나 발견될까.
그런 것을 어쩌다가 우연히 발굴했다는 것은 행운이라 할 수 있겠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말려들어 부족한 전력으로 싸운 끝에 희생자를 낸 것은 전혀 행운이라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유물은 몇 점 얻었지만, 일단 지금 그걸 확인할 분위기는 아닌 거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르센과 기사들은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별부르미의 마법사들이 따로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마법사들은 주위에서 선인장 따위를 모아, 차곡차곡 쌓으며 작은 제단을 만들고 있었다.
본래는 나무를 사용해야 했으나, 사막이라 나무를 구하기 힘드니 선인장으로 대신하려는 모양이었다.
“거 되게 거창하게 하네요. 우린 저런 거 안 하는데.”
이를 쳐다보던 바즈칼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르비크에서는 그냥 땅 파고 묻으면 끝인데 뭐 저렇게까지 하느냐고, 그 말에 비아냥거리는 기색은 없었다. 그냥 의아해하는 것일 뿐.
그것은 많이 태어나고 많이 죽는, 인간의 생명이 싸구려인 곳에서 나고 자란 이의 사고방식이었다.
“마법사는 소수니까, 동료 의식이 철저한 거겠지.”
“확실히 번거롭긴 하지만, 멋지네요. 죽는다면 저런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요.”
아눈이 부럽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엘타에서는 어떻게 합니까?”
“저희도 그냥 묻는 걸로 끝입니다. 뭐, 죽은 자의 영혼은 이미 전신의 곁으로 떠났고 남은 건 껍데기니까요.”
“그렇습니까.”
생각해보면 아르센이 살던 벨루안, 크라타의 장례 문화라고 엄청나게 선진적이지는 않았다.
그저 죽은 이를 관에 담아 묻으며, 친척과 지인들이 모여 작은 잔치를 열며 위로하는 것 정도가 차이일까.
그런 뒤 시신은 공간 절약을 위해 방벽 외부에 묻으며, 내부에 묻힐 수 있는 것은 일부 귀족 계층뿐이었다.
‘딱히 자랑할 것도 없군.’
잠시 후, 마법사들의 장례가 시작됐다.
죽은 두 명의 마법사는 이제 녹색 담요에 감싸여 있지 않았다. 하얀 천을 수의 삼아 온몸에 덮은 채, 선인장으로 만든 제단 위에 그 몸을 뉘였다.
마법사 하나가 말하기를, 별동대는 처음 본거지를 떠날 때부터 열한 장의 천을 준비해 두었다고 했다. 자기들의 죽음을 예비하는 의미에서.
이제 그중 두 장이 소모되었다.
그렇게 놓인 두 구의 시신, 죽은 이들의 유해를 두고 아홉 명이 된 마법사들은 그 주위를 천천히 돌았다.
마룬 역시 평상시에 입던 갑옷은 벗어둔 채, 그들 사이에 합류해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한 명씩 하늘을 향해 손을 뻗더니 화염의 새를 만들어 날려 보내기 시작했다.
아르센으로서도 꽤 익숙한 광경이었다. 어린 시절, 엘로이즈가 마법을 연습할 때 자주 보았던 모습이었으니.
한 마리, 두 마리, 마침내 아홉 마리가 된 화염의 새는 두 시체 위를 빙빙 돌며 날았다.
새카만 하늘을 도화지 삼아 불타는 새들이 그려지는 그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날았을까, 새들은 지쳤는지 선인장 위로 내려앉았다. 이번에도 순서대로, 한 마리씩.
그런 뒤, 형체 없는 불꽃으로 화했다.
제단이 화려하게 타오르는 것과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더는 함께할 수 없게 된 동포의 죽음을 기리는, 낮고 구슬픈 노래가, 적막한 사막 위에서 흘러나왔다.
화장(火葬)을 위해 피운 불이 비쳐 그림자 일어나고, 아른아른 춤추며 노래와 어우러졌다
* * *
다음 날, 그들은 유적에서 얻은 유물을 확인했다.
꽤 굉장한 물건들이 많았다. 단순히 강력한 병장기도 있었으며,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는 마도구(魔道具)라 할 만한 물건도 있었다. 일전에 보았던 물을 만드는 유물도 있었는데, 훨씬 그 크기가 작아 사용하기 편리해 보였다.
그중, 아르센이 고른 것은 막대기였다. 팔뚝 정도 길이에, 그 끝에는 주걱 비슷한 것이 달린 막대기.
얼핏 보기에는 전혀 무기로 사용할 만한 것이 아니었지만 아르센은 이것의 생김새를 본 뒤, 그리고 그 기능에 대한 설명을 읽은 뒤 바로 이 물건을 골랐다.
이것은 투창기라 불렸다.
“그게 그렇게 도움이 됩니까?”
투창기를 애지중지 쓰다듬고 있는 아르센을 보며, 마룬이 의아하다는 듯 던진 질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대답해주려던 순간, 마침 저 멀리 마수 하나가 보였다.
여섯 개의 발로 걸어 다니는, 거대한 도마뱀 형태의 마수.
아르센은 그것을 지목하며 말했다.
“직접 한번 보시죠.”
아르센은 투창기 끝에 투창을 얹은 뒤, 팔을 뒤로 젖혔다.
전신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느낄 정도로 몸을 비틀고 비튼 뒤, 흐르듯 풀어낸다는 느낌으로 팔을 휘둘렀다.
“합!”
후욱, 하는 소리와 함께 투창이 사막을 가로질러 날았다. 감히 기사조차 눈에 담기 힘든 속도로.
그야말로 벼락과도 같은 속도로 날아간 창은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미터를 가로질러, 낮은 언덕에 꽂혔다.
마침 일행을 보고 다가오던 그 마수가 있는 곳에.
동시에, 쾅 하고 무언가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어마어마한 양의 모래가 날린 탓에, 그 투척의 결과를 바로 알기는 어려웠다.
투창에 걸려 있는 폭발 주문을 발동시키지 않았으니, 순수한 파괴력만으로 생겨난 결과였다.
잠시 후, 흩날리던 모래가 가라앉자 마치 대포라도 맞은 듯한 꼴이 된 마수의 사체가 보였다.
당연하게도 즉사였다.
“오오······.”
마룬 역시 함께 모험하며 아르센의 투창을 몇 번 목격했던 만큼, 지금의 투창이 평상시 맨손으로 던지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르센은 감탄하는 마룬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보통 투창기라면 그리 도움이 되지 않지만, 이건 평범한 투창기가 아니니까요.”
과거 벨루안에서, 아르센은 팔라토에게 투창을 배웠다. 영지에서 투창 하나만큼은 가장 뛰어난 명수에게.
그에게 처음 투창을 배우며 의문이 들었던 것이, 왜 투창기를 사용하지 않는가였다.
애초에 투창기라는 개념이 없는 것인가 싶어, 아르센은 손수 원시적인 투창기를 만들어 보여주기까지 했다.
‘이걸 쓰면 훨씬 던지기 수월하지 않을까요?’
‘아, 예전에 이런 게 쓰인 적은 있었지. 단순히 던지는 거라면 훨씬 나을 걸세, 하지만······말보다 직접 해보는 것이 낫겠군, 한번 던져보게.’
놀랍게도, 투창기를 사용해 투창을 날리자, 그냥 손으로 던졌을 때보다 훨씬 못한 위력이 나왔다.
처음에는 훨씬 빠르게 날아갔지만 공기 저항 탓인지 금방 속력이 떨어졌으며, 파괴력 역시 형편없었다.
팔라토는 마력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마력.
마법사와 기사가 함께 공유하는 이 신비한 힘을, 기사들은 주로 병장기의 강화에 사용했다.
무기를 더 날카롭게 하고, 갑옷이나 방패를 더 단단하게 하는 용도로.
같은 강철 검이라도 마력이 담긴 검은 그렇지 않은 검을 가르며, 마력이 담긴 방패는 본래 뚫렸어야 할 공격조차 막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투창과 같은 투사 무기는, 던지는 순간까지 손에 닿아 있어야만 마력을 제대로 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아예 손과 떨어진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 투창이 투창기를 떠나는 시점에서 바로 마력 전달이 끊어져 버린다네. 투창에 마력이 잘 실리지 않지.’
그가 가끔 수련하는, 진의 꼬리를 이용해 투창을 던지는 기교 역시 이 때문에 변칙 기술로밖에 활용할 수 없다던가.
덕분에 아르센이 계획했던 ‘현대인의 이세계 발명 프로젝트’중 하나가 무산되었다.
그러나, 이 투창기는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투창기 위에 투창이 얹혔을 때, 마치 맨손으로 잡은 것처럼 긴밀하게 마력이 연결되도록 돕는 기능이 있었기에.
거기에 한술 더 떠서, 투창이 날아가는 순간 끝의 받침 부분이 반발하며 추진력을 더하는 기능도 있었다.
덕분에, 이를 사용한 아르센의 투창은 뛰어난 기사들조차 함부로 받아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심지어 아르센 본인이라도 방심하다가 이런 공격을 받는다면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 있었다.
단순히 속도와 파괴력만이라면 팔라토를 아득히 능가하는 수준이 된 것이다. 비록 그 정밀도까지는 따르지 못하겠지만.
‘수련 좀 더 해야겠는데.’
투창기를 이용해 던진 것은 처음이기에, 날아간 투창은 목표로 했던 지점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조금 전에도 머리를 노렸는데 실제 맞은 곳은 복부 언저리였다. 워낙 파괴력이 강해 한 방에 죽이기는 했지만, 상대가 인간 사이즈였다면 아예 맞지 않았으리라.
“일단 투창부터······.”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리노가 그렇게 외친 뒤, 곧바로 진을 몰아 달렸다.
* * *
몇 가지 유물을 테스트한 뒤, 그들은 다시 유적 탐사에 나섰다.
석판을 찾기 위해서라도 본래 탐사하고자 했던 유적은 꼭 찾아야 했기에.
그 ‘붉은 궁전’이 있던 유적 옆에는 깃발을 세워 따로 표시했고, 이후 모래 포식자 몇 마리를 더 잡아가며 주위를 순찰한 끝에 진짜 목적지였던 유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다른 유적이 나타나면 곤란한 일이었기에, 미리 해결책을 마련해 두었다.
사실 해결책이라 할 것도 없는 간단한 방법으로, 처음 들어가는 사람의 몸에 밧줄을 묶어 확인하고 다시 올라오게 하는 것이었다.
“찾았다! 파란색이야!”
밧줄을 타고 간신히 기어 올라온 바즈칼의 말에, 모두가 환호했다.
만약을 대비하여, 이번에는 아르센을 필두로 네 명의 기사가 모두 합류해 공략에 나섰다. 위쪽에 남는 인원들의 위험을 감수한 인원 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대비가 무색하게도, 목적지였던 유적은 이미 별부르미가 다녀갔던 곳답게 위험하지 않았다.
그들이 남겨놓은 몇 가지 유물을 얻은 뒤, 마침내 세 번째 석판 역시 얻을 수 있었다.
석판을 부수며, 아르센은 거기에 쓰여 있던 말을 되뇌었다.
“첫 번째 단서, 우리는.”
이제 남은 단서는 한 개, 별부르미와 합류하기로 한 유적에 마지막 단서가 있을 터였다.
과거 별부르미가 들러 단서를 남겼다는 유적 중 남은 곳이 그곳 하나뿐이니.
아르센은 주어진 단서를 되뇌며 고민했다.
첫 번째 단서, 우리는, 세 번째 단서, 항해하여, 네 번째 단서, 여기에 왔노라.
어차피 곧 알게 되겠지만, 과연.
‘우리는 어디를 항해하여 여기에 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