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33)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바다로 착각할 정도로 거대한, 그 건너편이 수평선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강.
엘다린 강을 표현하기 가장 적합한 문장이었다.
그리고 그렇게나 거대한 강 위에 올라타 있는 육지는, 거대함을 넘어서 장엄하기까지 했다.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있어 강이란 삶의 터전이요,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영지를 지나가는 강이란 많은 인구수를 유지할 수 있게 돕는 중요한 수원(水源)이기에 생명줄이나 다름없지만, 정화 영역 밖의 강은 막강한 수생 마수의 터전이었다.
물로 인해 중력의 부담을 덜 받는 탓인지는 몰라도, 수생 마수는 육지 마수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했다.
어린 시절 아르센이 보았던 다리 네 개 달린 범고래만 해도, 나중에 알고 보니 기사조차 함부로 싸우기 곤란하다 할 강력한 마수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육지 마수와 달리 수생 마수는 정화 영역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 영지 내에서 강에 다가갔다가 수생 마수에게 물려가는 일은 없었다.
어쨌든, 엘다린 강 역시 수생 마수들이 지배하고 있어 배 따위는 띄울 수 없으며, 따라서 엘다린 강을 건널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이곳 발타레스를 지나지 않고서는.
“끝내준다······.”
“진짜 떠 있잖아!”
바즈칼과 마룬이 뒤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체통 좀 지키라고 그들을 타박할 필요는 없었다. 그 정도만 다를 뿐, 다들 경악하여 입을 벌린 채 쳐다보고 있었으니.
엘다린 강 위쪽, 고작 몇 미터 위로 그 길이가 수 킬로미터가 넘는 거대한 섬이 부유하고 있었다.
완전히 육지와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영지 전체는 강 위에 둥실둥실 떠 있지만, 육지와 연결되는 너비 수십 미터쯤 되는 다리가 있었기에.
일전 들은 설명대로라면, 저 땅은 엘다린 강 너머까지 이어져 있을 것이다.
[부유섬 알마논······직접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네. 여기 한번 관광 오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옛날에도 이런 게 존재했을까?”
아르센은 마치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렸다.
이를 알아들었는지, 바크란이 으스대듯 대답했다.
[당연하지. 알마논 자체가 정화 마법진의 큰 축을 설치하려고 선조들이 띄운 거거든. 섬 안쪽에 어마어마한 양의 부유석을 넣었다던데.]부유석이 뭔지 물어보리라 생각했는지, 바크란은 부유석이 중력에 반발해 허공으로 솟구치는 돌이며, 선조들이 고향에서 가져온 광물이라 이 행성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런 장엄하기까지 한 광경이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아르센은 엘로이즈에게도 귀걸이로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녀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거대한 부유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놀라기도 잠시, 그들은 이제 저 거대한 섬 위로 올라가야 했다.
행군, 그리고 또 행군.
영지를 향해 얼마나 전진했을까, 바즈칼이 하늘을 보며 외쳤다.
“형님, 저 위에서 뭐가 옵니다!”
그 말을 듣고 올려다보니, 거대한 새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얼핏 마수인가 싶었지만, 가만히 보니 그 형태가 다소 기괴했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새,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탄 누군가.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는 그 모습을 보고서야, 상대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하늘을 나는 진······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진짜 있었군!”
아눈이 감탄하듯 외치며 아르센이 본 것을 확인해 주었다.
그 말대로, 하늘을 날며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새 형상을 한 진이요, 그 위에 탄 것은 기사였다.
말하자면 시대를 초월한 공군 전력인 셈이다.
‘오싹한걸······.’
만약 저런 진을 탄 이가 다수라면, 그들이 저 위에서 투사 무기로 일방적인 공격을 가한다면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해보지 못하고 패하게 될 터였다.
저쪽은 중력의 도움을 받아 강력한 힘으로 공격해 오는데, 이쪽은 억지로 중력을 거슬러 공격해야 하니.
진 역시 기사와 연결된 동안에는 그 항마력을 어느 정도 공유하니 마법으로도 떨어트릴 수 없을 것이고.
그때, 아르센의 귀에 웃음을 참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솔직히 말해도 돼? 저런 고물 보고 감탄할 때마다 되게 웃겨 보여.]바크란은 아음속으로 날아다니는 자기 시대의 탈것을 보면 오줌이라도 싸겠다며 낄낄거렸다.
이쪽은 저 고물이 없어서 공격해도 반격할 수 없는 상황임은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전투 경험도 없을 학생이 알면 얼마나 알까.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는 했다.
입장 바꿔서, 아르센 역시 초기형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보고 경악하고 감탄하는 중세 기사들을 보았다면 웃음이 나왔을 테니까.
바크란의 말을 흘려넘기며, 아르센은 저 하늘을 나는 진 위에 탄 기사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그럴 리는 없지만, 만약 상대가 공격할 때 대비하고 있지 않다가는 큰 타격을 입게 될 터이니.
진을 탄 기사는 아르센 일행의 주위를 빙빙 돌며, 서서히 고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충분히 가까워진 거리 덕에, 위에 탄 기사가 두 팔을 높이 들어 손에 무기가 없음을 증명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르센 역시 가만히 한쪽 손을 들어 부대 전체에 지시했다.
“모두 몇 걸음 뒤로. 무기 내리고.”
그때, 마룬이 이상하다는 듯 책을 펼친 채 신음했다.
“으음.”
“왜 그러십니까?”
“아뇨, 좀 이상해서요. 분명 여기서는 발타레스가 외부 교류가 많은 영지라서 이방인에게 친절하다고 했는데, 너무 경계하니까······우리가 좀 수가 많아서 그런가?”
그 말에는 미미하게 섭섭해하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아르센 역시 일전 마룬에게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발타레스는 엘다린 강을 사이에 둔 영지들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이곳 외에 강을 건너려면 저 먼 동쪽, 나르비크가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쭉 내려가야 다른 길이 있으니.
따라서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아, 그들이 머물 시설도 잘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그 설명에서 아르센은 유적 도시 사티엔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저 기사의 행동은, 외부와 자주 교류하는 영지치고는 지나치게 경색되어 있었다.
“뭐······이 정도 전력이면 조심할만하긴 하니까요.”
일행이 완전히 전투태세를 거두고 물러서자, 마침내 하늘을 날던 기사 역시 완전히 땅에 착지했다.
그 동작이 굉장히 우아하고 사뿐한 덕에, 내려앉는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수백 킬로그램의 금속 덩어리가 내려앉는다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사는 진에서 내리지 않았으며, 거리 역시 조금 벌려둔 상태였다. 만약 아르센 일행이 강도질하려 덤빈다면, 즉시 날아갈 수 있을 정도로.
그가 묘하게 쉰 목소리로 외쳤다.
“발타레스의 이등 기사, 비드온이라 합니다! 어디서 오신 손님이신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우리 영지는 손님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돌아가 주시기를 권합니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이길래?”
마룬이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때, 아르센이 나서서 목청을 돋워 소리쳐 물었다.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 질문이 들렸는지, 기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해줄 수 없다는 제스처인가 생각했을 때, 기사가 갑자기 거칠게 기침 소리를 내었다.
수십 번, 숨이 찰 정도로 기침한 뒤에야 기사가 조금 전보다 더더욱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아르센은 조심스럽게 접근하던 기사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전염병입니다!”
* * *
아르센 일행은 그대로 거리를 둔 채, 이등 기사 비드온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재 발타레스는 일반 평민들부터 병사, 기사, 심지어 영주까지, 그야말로 영지 전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역병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따라서 전염을 막고자 외부인의 출입을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투구를 벗자 드러난, 얼굴이 샛노랗게 물들어 병색이 완연한 청년의 모습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병든 기사가 다시 진을 타고 날아간 뒤, 그들은 그대로 영지 앞에 주저앉아야 했다.
전염병이 도는 영지라는, 그야말로 악마의 소굴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으니까.
억지로 들어간다 해도 저들이 열어주지도 않을 것이고.
그냥 아무것도 접촉하지 않고 살짝 지나가기만 하겠다고 말해봐야 통할 리 없었다.
병들어 취약해진 만큼, 외부의 적에 대한 경계가 극도로 높아진 상태일 테니까.
“뭐 이런 개 같은.”
바즈칼이 쭈그려 앉아 어이없다는 듯이 침을 뱉었다. 그 모습이 그야말로 깡패가 따로 없어, 아르센은 체통 좀 지키라며 그 발을 가볍게 밟았다.
예전 발가락이 부러진 기억 탓인지, 바즈칼이 기겁하며 발을 뺐다.
“어우, 하지 마십쇼. 형님이 발 밟으면 진짜 무서워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눈의 질문에 아르센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일단 생각 좀 해 봐야겠습니다.”
최근, 아르센은 동시에 몇 가지 고민을 해결해야 했다.
그들을 적대하는 영지를 몰래 지나며 싸우고, 그러는 와중에도 조만간 별부르미와 한 판 붙을 것을 대비하며 라티스 장로와 밀담을 나누고,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정체불명의 고대인이 든 구슬을 얻기까지.
그나마 첫 번째 문제가 해결되는가 싶더니 이런 식으로 또 다른 문제가 생긴 마당이라, 아르센은 내심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염병이면 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지 않나? 마법으로 전염병을 고칠 수 있다면 몰라도.”
바즈칼의 혼잣말을 들은 아눈이, 그대로 아르센에게 물었다.
비록 마법사는 아니지만, 아르센이 이런 종류의 지식에는 제법 능통함을 잘 알고 있는 탓이었다.
어려서부터 루덴, 엘로이즈와 함께 붙어 지낸 덕분이었다.
“혹시 마법으로 전염병은 못 고칩니까?”
“불가능합니다. 독이라면 해독 주문으로 고치면 되는데, 전염병은 좀 다른 거라서요. 이게 독도 다 해독이 되는 건 아니고 해독이 안 되는 독도 있고 그렇습니다. 왜 그런지까지는 해명이 안 됐지만요.”
사실, 이전에 이 해독 주문이라는 것에 대해 가설을 하나 세운 적은 있었다.
해독 주문이란 신체에 해를 가하는 화학 작용을 멎게 하는 것이고, 따라서 기생충과 같은 생물이 침입해 일어나는 부작용은 고칠 수 없다는 가설을.
만약 이런 이치라면, 바이러스의 침입이 원인인 전염병 역시 고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이 가설은 나중에 루덴이 따로 분석한 뒤 굉장히 신빙성이 높다고 칭찬해 주기도 했고, 이를 바탕으로 기생충을 치료할 수 있는 주문을 몇 개 만들기도 했다.
그 조건이 다소 까다롭기는 했지만.
그때,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리노가 불쑥 말했다.
“그러고 보니 좀 희한한 점이 있습니다.”
“음?”
“아까 저 기사가 말하기를, 전염병의 증세가 얼굴이 노래지고, 기침이 심해지다 피를 토하며, 마지막에는 몸이 차가워지다가 죽는 거라고 했잖습니까?”
“그랬지.”
“이 전염병에 대해 들은 적 있습니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리노에게 모였다.
쭈그려 앉아 있던 바즈칼마저 벌떡 일어서서 그를 보았다.
아눈이 다그치듯이 물었다.
“언제? 어디서 보았습니까? 해결법은?”
“저희가 산맥을 건넜을 때, 원래는 마나르의 남쪽에 있는 영지로 가려고 했잖습니까. 그런데 그곳에 전염병이 돌아서 결국 어쩔 수 없이 어둔숲을 지나서 갔고요.”
“그랬지······설마?”
“네. 그때 들은, 그 전염병이랑 똑같은 증상입니다.”
아르센은 턱을 쓸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들이 지나려고 했으나 전염병 때문에 지나지 못한 곳, 베른 영지와 이곳 발타레스 영지의 거리는 엄청나게 멀었다.
지도라고 있는 것이래 봐야 모호하게 그려진 것들이 대부분이라 그 거리를 정확히 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수천 킬로미터 이상이라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영지 단위로 떨어져 사는 이 세계의 특성상, 전염병이 그렇게 먼 곳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속도로 퍼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상한데······.”
그때, 아르센의 혼잣말이 자신에게 질문한 것이라 생각했는지 바크란이 말했다.
[저거 전염병 아닌 거 같은데?]“음?”
아르센은 자기도 모르게 반문했다가, 주위의 시선을 깨닫고 뭔가 생각날 것 같다고 변명했다.
그런 뒤, 잠시 혼자서 생각 좀 해보겠다고 말하며 야영지 밖으로 나왔다.
“다시 말해봐, 뭐라고?”
[저거 전염병 아닌 거 같다고. 저게 아마 냉염충이라고, 유명한 기생충 감염 증상인데.]아르센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바크란은 친절하게 기생충이 어떤 것인지 그 개념까지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몸이 차가워지는 증상이 워낙 독특해 유명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주로 시골, 물가에서 많이 걸리는 거라고 듣긴 했는데, 난 한 번도 안 걸려봤어. 구충제 먹으면 나을 텐데.]“그 구충제를 만드는 법은?”
[당연히 모르지!]아르센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하기야, 입장 바꿔 생각해 봐도 그 역시 지구에서 쓰이는 구충제의 제조법 따위는 알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빌어먹을 역사학.”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입니다.]하지만, 지금 알게 된 정보만으로도 꽤 많은 추론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이 기생충이 퍼지게 된 원인이라던가.
그때 전염병이 퍼졌다는 베른 영지와 이곳 발타레스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엘다린 강을 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기생충의 근원만 정확히 파악한다면, 이를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즉시 야영지로 돌아온 아르센은 즉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을 명했다.
그 행선지를 듣고, 바즈칼이 놀라 되물었다.
“엘다린 강을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간다고요?”
“그래. 성채든 영지든 상관없으니, 이 강을 수원지(水源池)로 사용하는 곳에 가서 확인해봐야겠어. 똑같은 증상이 일어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