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34)
남쪽으로 떠나기 전, 아르센은 간부진을 모아 계획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저 위쪽으로 가다 보면, 아마 비슷하게 병에 걸린 이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을 이용해서 해약을 만들 겁니다.”
이전 아르센의 발상에 착안하여, 루덴은 특정 생물에게 독으로 작용하는 물질을 생성하는 주문을 창안했다.
정확히는 주문을 아예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주문 두 개를 섞은 것이라고 하지만 그야 아무러면 어떨까.
그리 강한 독은 아니라서 토끼 정도만 되어도 통하지 않지만, 기생충 정도는 죽일 수 있을 터였다.
엘로이즈 역시 루덴에게 배운 덕분에 이 주문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주문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죽이려는 생물의 원본을 확실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
즉, 기생충의 표본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직 살아있는, 싱싱한 녀석으로.
“거, 저 위에 있는 사람 중 하나 데려다 달라고 해서 하면 안 됩니까?”
“듣도 보도 못한 이방인의 말을 믿고 영지민을 내주는 영주는 흔치 않지.”
심지어 마법사를 잔뜩 데리고 있는 무리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물론 낙관적으로 생각하자면 사람 하나 주십쇼, 하고 받아다 이리저리 뚝딱뚝딱해서 잘 고쳐지고 끝났다. 하면 참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사람 하나 잡아다가 배 갈랐는데 실패하면, 곤란해지는 정도로 안 끝날걸. 그 사람이 살건 죽건 사기꾼 취급이겠지. 일이 잘못됐다가는 하늘을 나는 놈들이랑 싸워야 할 수도 있어. 그걸 원하진 않겠지.”
“그야······당연히 아니죠.”
바크란이 알고 있는, ‘넓고 얕은’ 지식에 의하면, 냉염충은 인간의 몸에서 오래 살 수 없는 생물이었다.
본래 인간이 아니라 다른 생물에 기생하도록 진화한 생물이라서 그렇다고 하던가.
생각해 보면 애초에 기생충이란 놈들이 기생하는 이유가 계속 번식하기 위해서인데, 숙주인 인간을 다짜고짜 죽여버리는 것부터가 정상이 아니기는 했다.
본래 인간의 몸에 붙을 것이 아니어서 그런 것이리라.
어쨌든, 이놈들은 인간의 몸에 들어가면 천천히 죽어가며, 그 과정에서 온갖 성분을 내뿜어 몸을 망쳤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될 정도면 안의 기생충도 죽은 상태인지라, 죽은 사람에게서 멀쩡히 살아 있는 기생충을 얻어낼 수는 없었다.
즉, 산 사람의 배를 갈라야 한다는 뜻이었다. 물론 치유 주문이 있긴 하지만, 기생충으로 인해 병약해진 사람까지 확실하게 살려낸다는 보장은 없었다.
거기다, 결국 이 기생충을 직접 접하는 것은 처음이니 정말 루덴의 주문으로 기생충이 죽을지도, 즉 일이 잘 풀릴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산 사람 배를 갈랐다가 기생충을 못 찾거나, 찾았는데 해결책이 신통치 않다면 그들은 사기꾼으로 몰려 영영 발타레스를 지날 수 없게 될 것이다.
“근데 그건 다른 영지에 가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눈이 그렇게 묻자, 아르센은 고개를 저었다.
“영지라면 그렇겠죠.”
아르센은 가만히 강 상류를 보았다.
그의 목표는 저 남쪽 어딘가에 있을, 엘다린 강을 수원지로 삼고 있는 성채였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산 사람 하나 내놓으라고 겁박할 수 있는, 그리고 만약에 일이 잘못 풀려도 후환이 크지 않을 약한 대상을 찾아 떠나는 것이었다.
* * *
행군 도중, 아르센은 마룬이 오른쪽에 펼쳐진 강을 보며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진짜 모르고 보면 바다인 줄 알겠네.”
“바다가 뭡니까?”
옆에서 듣던 바즈칼이 그렇게 묻자, 마룬이 신난다는 듯이 자신이 있던 곳의 바다를 설명했다.
차가운 북방, 얼음이 둥둥 뜨다 못해 겨울에는 아예 얼어붙기까지 한다는 차가운 바다의 이야기를.
미리 유물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마룬이 풍기는 존재감은 평소보다 옅었으며, 그 덕분에 바즈칼은 물론 아눈과 리노, 다른 병사들까지 다가와 흥미에 찬 태도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고 보면 다들 나름대로 적응을 하는 건가?’
벨루안에서 루덴과 엘로이즈는 항상 다른 이들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마법사 특유의 혐오감으로 인해, 다른 이들이 감히 접근하지도 못했기에.
여정 초기에는 병사들 역시 마법사를 꺼렸으며 마법사들도 병사들과 거리를 두었으나, 긴 여정을 통해 그들 일행 안에서 그러한 거리감은 많이 좁혀져 있었다.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우며 생긴 유대감 때문인가 짐작할 따름이지만, 일단 긍정적인 현상이기는 했다.
막상 기사들이나 병사들에게 어떻냐 물으면 그냥 근성으로 참는 것이라는 걸로 보아,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대화를 구경하던 도중, 앞에서 정찰병 한 명이 돌아오며 외쳤다.
“대장님! 전방 우측, 강변에 마수입니다! 물을 마시는 중입니다!”
“크기는?”
“대형입니다!”
“싸울 준비 해야겠군, 모두 무기 준비.”
행군 전, 아르센은 미리 지시를 내렸다.
모든 정찰병은 엘다린 강의 본류에서 늘 수십 미터 이상 떨어져서 움직이도록. 가능하면 백 미터에 가깝게.
행여나 부주의하게 행동하다 생길 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정찰병이 미리 경고한 대형 마수와 싸우는 일 없이 안전한 관람석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그 ‘부주의’의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
“오우.”
“아프겠는데.”
눈이 네 개 달린 황소, 아마 정찰병이 보고한 대상일 그것이 힘차게 포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포효에 담긴 감정은 광폭한 살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애처로운 목숨 구걸이라면 모를까.
그 이유는, 물에서 튀어나와 황소의 하반신을 문 채 강으로 끌고 가는 또 다른 마수 탓이었다.
아르센은 일단 저 생물의 분류를 뱀 종류에 두기로 했다. 가늘고 길게 뻗은 몸이 그와 같은 형상이기에.
아마 외피 전체로 촘촘하게 뻗은, 고슴도치와 같은 가시가 아니었다면 좀 더 뱀 같이 보였으리라.
밑에는 가느다란 다리가 여덟 개 달려 있었으며 이마에도 뿔이 나 있어, 마치 동양의 용 같아 보이기도 했다.
저게 용이라면 아마 세상에서 제일 추악한 용이겠지만.
대충 가시 바다뱀이라 이름 붙일 만한, 저 흉측한 수생 마수는 그 몸길이만 수십 미터가 넘어 보였다.
덕분에 그 입에 물려간 황소, 어깨높이가 3m에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길이가 5m에 달하는 거대한 마수는 마치 무력한 송아지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강의 크기만큼, 그 안에서 사는 놈들의 크기 역시 말도 안 되게 커진 모양이었다.
물론 사막의 왕처럼 육지에서 거대한 놈도 있긴 했지만.
문득, 아르센은 이전에 구상했던 가설을 떠올렸다. 물이 아니라 육지까지 나와서 먹이를 챙기는 놈들은, 경쟁에서 밀린 비교적 작은 개체일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을.
만약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저 안에는 어떤 괴물들이 사는 것일까.
심지어 강일 뿐인 이곳도 그럴진대, 저 먼 곳에 있을 바다에는, 그 깊은 심해저에는 어떤 괴물이 살고 있을 것인가.
육지 역시 온연히 인간의 땅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이 세계에서 물 속은 진정으로 인간의 땅이 아니었다.
우주적인 공포가 느껴질 것 같은 기분에, 아르센은 깊이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여기 물가에서는 저런 게 나온단 말이지? 정말 세상 무섭구만.”
“싸우면 재밌을 거 같은데요.”
“거 농담 마십쇼, 저 정도면 그 군주 놈이랑 비견해도 될 정도인데······.”
아눈과 바즈칼이 감탄하듯 주고받았다.
그리고 아르센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또 한 명이 경악한 어조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와, 아주 그냥 영화 수준이네. 뭐 저런 게 다 있냐?]‘사막의 왕을 직접 봤으면 오줌이라도 쌌겠군. 오줌 쌀 곳은 없겠지만.’
바크란의 경악에 찬 목소리를 들으며, 아르센은 문득 하늘을 나는 진을 보고 놀라는 기사들을 비웃던 바크란의 태도가 떠올랐다.
그때를 생각하면 마찬가지로 촌놈같이 굴지 말라고 비웃어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첫째로는 너무 유치한 짓 같아서였고, 둘째로는 남들 앞에서 혼잣말할 수 없어서였다.
사실, 두 번째 이유가 훨씬 중요했다.
“그래도 우리는 저 녀석과 비견할 만한 거물을 잡았잖나.”
“맞습니다, 대장님이 숨통을 끊으셨죠!”
리노는 열렬한 목소리로 아르센의 재치와 용기를 찬양했다.
그 당시 자기 발목을 자르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군주에게 덤벼든 행위가 얼마나 용맹한 것이었으며, 사악하지만 멍청한 약탈자 군주는 자기 심장이 파헤쳐지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노라며 마치 무훈시를 읊듯이 그를 칭송했다.
아르센이 명성과 칭송에 아주 초탈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런 노골적인 환호는 낯부끄러웠다.
애초에 리노는 당시 기사가 아니어서 그 싸움을 가까이서 보지도 못했건만, 그 묘사가 워낙 세세하여 마치 직접 옆에서 본 사람 같았다.
‘도대체 몇 번을 묻고 들었길래······.’
그렇게 내심 감탄하고 있을 때, 바크란이 거의 소리를 지르듯이 외쳤다.
[진짜야?! 니가 저 거대 괴수랑 비슷한 놈을 잡았다고? 딸랑 그 구식 탈것이랑 도끼 들고?]“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서 잡을 수 있었지. 바즈칼도 열심히 주의를 끌었고, 마룬 경의 활이 아니었다면 반격할 틈도 없이 죽었을 거고.”
아르센은 리노의 찬양에 답하듯, 동시에 바크란에게도 설명하듯 말했다.
물론 당시에는 이 도끼도 아니고 그냥 강화된 흑성철 장검을 사용했을 뿐에다 흑사자 역시 타고 있지 않았지만, 그것까지 어색하지 않게 설명하기는 힘들어 그냥 생략했다.
바크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감탄하며 말했다.
[평범한 맹수 비슷한 놈들만 잡아서 잘 몰랐는데, 너네 엄청 강하구나. 우리 시대의 특수부대랑 싸우면 재밌겠는데.]그 말을 듣고, 아르센은 잠시 첨단 마법 장비로 무장한 특수부대를 상상했다.
기사, 다르게 말하자면 전투 인형의 항마력조차 뚫고 그 몸을 부술 수 있는 마법 소총을 들고 음속에 가까운 소형 비행체에 탑승해 날아다니는 괴물들을.
물론 정말 그런 마법 라이플이 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그 정도는 있지 않겠는가.
‘그런 놈들 한 개 분대만 있어도 세계 정복은 일도 아니겠군.’
아마 강대한 약탈자 군주라 해도, 그런 적이 상대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유적 도시에 있는 수백 명의 기사들이라 해도 무력하게 살해당할 것이고.
마침, 황소가 완전히 물속으로 끌려들어 가며 애처로운 비명 역시 잦아들었다.
다시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의 모습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는 것처럼 보였다.
“계속 가지. 잘 보고했다. 앞으로도 계속 우측을 주의해서 보는 것 잊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조금 전 그런 모습을 본 만큼, 정찰병의 대답에는 진정성이 가득 실려 있었다.
수십 미터짜리 거대 마수에게 습격당하고 싶지 않은 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 * *
“오······.”
누가 내뱉은 것일지 모를, 탄성인지 신음인지 모를 한 마디가 일행 모두의 마음을 대변했다.
그들은 엘다린 강에서 뻗어 나온, 작은 지류가 통과하는 성채에 도착한 상태였다.
지금 올려다보고 있는 이 방벽은 나무와 돌을 섞어 세운 것으로 세운 이들의 정성이 느껴지는, 조밀하기 짝이 없는 멋진 방벽이었다.
하지만 그 세심함이 안타깝게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얼추 가늠해 보아, 적어도 몇 달은 유지 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위에서도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누구 없수—!”
바즈칼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답하는 이는 없었다.
죽은 듯한 적막 속에서, 까마귀 몇 마리가 까악 하고 놀리듯이 울며 산 자들을 조롱했다.
고개를 좌우로 꺾던 바즈칼이 아르센을 돌아보며 물었다.
“대답 없는데 어쩔까요, 형님. 들어갑니까?”
“몇 명만 들어가지. 혹시 모르니 다른 이들은 여기서 대기하도록 하고.”
아르센은 여정 도중 미리 만들어 두도록 지시한, 코와 입을 가리는 마스크를 착용했다.
다른 들어가는 이들 역시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지시했다.
물론 냉염충은 물에 섞여 감염되는 것이기에 그것을 막는 것과는 아무 상관 없으나, 모름지기 시체란 역병의 밭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만약 저 안에 냉염충에 당한 희생자들의 시체가 가득하다면, 그 시체를 파먹고 꽃피운 새로운 질병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아르센과 아눈, 엘로이즈, 마룬까지 네 명이 마스크를 착용한 뒤 들어가기로 했다.
다른 기사나 병사들 역시 미리 마스크를 착용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언제든지 돌입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자, 그럼 가지.”
아르센은 제일 앞장서서 진을 몰아 달렸다.
다른 이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적당한 속도로 달리던 흑사자는 방벽과 마주한 순간, 제 주인의 지시를 받아 폭발적인 다릿심을 내어 도약했다.
그 힘이 실로 강력하여, 다른 평범한 진처럼 비루하게 방벽을 발톱으로 긁어 매달려가며 기어오를 필요가 없었다.
한 번의 우아한 도약으로 방벽 위로 올라온 뒤, 아르센은 방벽 아래로 넓게 펼쳐진 성채의 광경에 한숨을 쉬었다.
“하······.”
그런 그의 머릿속에서, 바크란이 마치 토할 것처럼 헛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토할 위장도 입도 없을 텐데도.
잠시 후, 박박 기는 소리와 함께 가장 먼저 올라온 바즈칼 역시 씹어뱉듯이 말했다.
“이런 염병, 꿈자리 사납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