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35)
작고 아담한 성채 안쪽에, 죽음이 내려앉아 있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까마귀 떼였다.
어찌나 포식했는지, 배가 빵빵해 보일 지경인 까마귀 떼.
그 밑에는 뜯기다 남은 시체들이 쌓여 있었는데, 개중 일부는 잿더미가 되어 있었으며 타다 남은 장작 쪼가리 같은 것도 보였다.
아마 시체를 모아 태우려다가 장작이 모자랐던 모양이었다.
주위에 있는 목조 건물 몇 채가 허물어진 것이, 마침내 장작이 모자라 집까지 뜯어내 태웠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무더기 말고도, 성채 곳곳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마침 여름이라 금세 부패한 시체에서는 진물이 흐르고, 그 안에서는 큼지막한 구더기들이 꾸물꾸물 헤엄을 치며 마치 시체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벽 너머에서도 은근히 풍겨오던, 역겨운 시체의 악취가 방벽 위로 올라오며 코를 찔렀다.
한 달 묵힌 음식물 쓰레기를 코에 가져다 대면 이런 기분일까.
[우욱, 웨에엑······.]아르센은 구역질을 하다못해 발광하고 있는 바크란을 그대로 배낭 안에 넣었다.
피와 죽음과 접할 일이 거의 없었을, 아마 현대인과 비슷한 감성을 지녔을 그로서는 견뎌내기 어려운 광경일 것이다.
실제로, 이런 광경에 비교적 익숙한 바즈칼과 마룬 역시 역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히려 맨 마지막으로 올라온 엘로이즈는 꽤 태연한 얼굴로 버티고 있었다.
[괜찮아?] [응. 그럭저럭. 마법 배울 때 썩은 것도 많이 만졌으니까······.]덤덤한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뒤, 아르센은 흑사자를 몰아 방벽에서 뛰어내렸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흑사자가 건물 사이에 착지했다.
시취(屍臭)의 한가운데에 들어온 탓에, 이제 후각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착각이겠지만, 공기 탓에 눈까지 따끔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썅, 밟았네······.”
실수로 착지하다 시체를 밟은 탓에, 바즈칼이 진의 앞발을 들며 인상을 썼다.
반쯤 녹은 듯한 시체의 하반신이 흘러내리는 그 모습에, 아르센은 치밀어오르는 구역질을 간신히 참아냈다.
“병에 걸릴 수도 있으니 건드리지 마라. 나중에 마법사에게 부탁해서 불로 소독하고.”
아르센의 지시에 바즈칼은 알겠다고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옆에서 거하게 토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룬이었다.
마침내 참지 못했는지, 그는 어느새 마스크까지 벗어 던진 채 시원하게 속을 비우고 있었다.
오늘 먹은 식사를 확인하는 그 광경에, 보다 못한 바즈칼이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
“으, 마룬 경. 괜찮으슈?”
마룬은 토하느라 그 물음에 답하지도 못했다.
아무래도 이 광경 때문에 토하기보다는, 그냥 비위가 약해서 냄새를 못 견뎌 하는 것 같았다.
모름지기 이 세계의 전사라면 외부의 독기에서 풍겨나오는 악취에 익숙해져 있지만, 이 공간의 악취는 그보다도 몇 차원 쯤 더 높은 수준이었다.
아르센만 해도 당장이라도 코를 잘라버리고 싶었으니.
그나마 안에 들어온 뒤에는 의식적으로 입을 사용해서 숨쉬고 있어 조금 낫기는 했지만, 농담으로도 다시 들어오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좀 진정되면 따라오시죠. 바즈칼, 마룬 경을 돌봐 드려.”
“알겠슴다.”
바즈칼이 마룬의 등을 두들기자 갑옷이 텅텅 울렸다.
과연 저게 효과가 있을지 의심하며, 아르센은 엘로이즈를 보며 말했다.
“엘리, 우리 먼저 가자.”
“알았어.”
바즈칼에게 마룬을 수습하도록 지시한 뒤, 아르센은 엘로이즈와 나란히 진을 몰아 성채 중앙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보는 광경은 정말로, 정말로 조금도 유쾌하지 않았다.
주위를 돌아보던 엘로이즈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끔찍하네.”
“확실히.”
그냥 끔찍하다는 말로 표현하자니 참으로 어휘가 빈곤하게 느껴졌지만, 이 비극을 여러 풍부한 미사여구로 장식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침 아이로 보이는, 작은 시체를 끌어안은 여자의 시체가 보였다.
저 여자는 어머니일까, 죽은 아이를 끌어안고 죽은 것일까, 아니면 아이가 죽은 어미에게 안겨 죽은 것일까.
이곳의 죽음은 더럽고 추했으며, 또한 애처로웠다.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까?”
“확인해 봐야지. 어쩌면 한 명 정도는 살아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 성채는 인구가 꽤 많은 듯, 지금까지 본 시체만 백여 구에 가까웠다.
다른 방향에도 이 정도 인구가 있다면, 성채 내의 인구수는 거의 사백 명에 달하리라.
그 정도라면, 한 명 정도는 아직 숨이 붙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천천히 성채 주변을 돌며, 아르센은 최대한 청각에 주의를 기울였다.
진이 땅을 딛는 소리, 바로 옆에 있는 엘로이즈의 숨소리, 까마귀들이 무언가를 뜯어먹는 소리, 심지어 구더기들이 꿈틀거리는 소리까지 그 귀에 들어왔지만, 살아있는 인간의 기척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옆에서 무언가 펑 터지는 소리가 났다.
“윽······.”
엘로이즈가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 짧게 신음을 흘렸다.
조금 전의 폭발은, 한 시체의 내장 속에서 부패한 가스가 터져 생긴 소리였다.
배가 터지는 순간의 폭발력으로 내장이 이리저리 흩어진 시체의 모습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진짜 오늘 식사는 걸러야겠다.”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한 바퀴, 성채 전체를 돌아본 뒤 그들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성주관이었다.
성주관 외벽에도 쭈그려 앉은 채 죽은 자들의 시체가 모여 있었는데, 이것들은 그나마 상태가 나았다. 비록 부패 중이기는 하지만, 아직 죽은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듯했다.
“살아남았던 사람들이 이쪽으로 모였나 봐······.”
“쉿, 잠깐만.”
아르센은 손을 들어, 엘로이즈의 말을 끊었다.
그의 귀에 들려온 것은 무언가 긁히는 듯한, 리듬감 있게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였다.
집중하기를 잠시, 아르센은 그것이 숨소리임을, 그것도 성대결절이 생겼을 정도로 격하게 기침을 한 사람의 소리임을 깨달았다.
“들어가자. 살아있는 사람이 있어.”
“진짜?”
내심 살아있는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인지, 엘로이즈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진을 입구에 세운 뒤, 그들은 성주관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안쪽에는 임시 병동 비슷한 것이 세워져 있었다.
허름한 침낭, 혹은 침대, 그 위에 누운 시체들의 모습.
그 공간을 지나치자, 드디어 그들은 살아있는 인간을 만날 수 있었다.
“배고파······.”
“이 성채의 성주입니까?”
살아있는 사람이 성주관에 있을 때부터 그렇지 않을까 싶었지만, 생존자는 기사였다. 아마도 이 성의 성주일.
2m가 넘는 거구는 기생충의 부작용 때문인지 바싹 말라비틀어졌으며, 탄탄한 근육질이어야 할 팔과 다리는 가느다란 장작개비처럼 보였다.
셔츠와 짧은 바지만 걸친 채, 죽어가고 있던 기사가 쉰 목소리로 대꾸했다.
“마침내 오셨군?”
성주가 맥이 풀린 목소리로,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이미 삶을 체념한 듯, 그 얼굴은 절망이 담긴, 담담한 무표정으로 우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르센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혹시 병에 걸린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러자, 무표정하던 얼굴에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몇 초 후, 그가 대답을 시작했다.
“언제나 그러길 바랬는데, 왜 이리 되었지? 안된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이 잘못인가?”
알 수 없는 말을 되뇌던 성주는, 이어서 미친 사람처럼 마구 지껄이기 시작했다. 문법마저 와해되어 버린, 이해할 수 없는 중얼거림.
아르센은 그 지리멸렬한 문장에서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죽여야 했는데, 역병의 근원, 실패했다, 나 빼고는 모두 죽었다······.
“이 병이 왜 생겼는지 아는 겁니까?”
“왜냐고? 알지, 알아. 분명히 알아. 강의 상류, 큰 강의 끝, 마수, 알을 낳는 자, 부패의 근원, 죽여야 했어, 죽이지 못했지. 너무 부족했어······.”
그렇게 중얼거리던 성주는 힘이 빠진 듯 축 늘어졌다.
그런 그를 보며, 아르센은 엘로이즈에게 고개를 돌렸다.
“일단, 상태를 좀 봐줄 수 있을까?”
“응. 해볼게.”
엘로이즈는 지팡이를 내밀어, 그 끝을 성주의 앙상한 팔에 가져다 대었다.
먼저 파란 빛이 일어나고, 그 다음에는 자주색 빛이 일어났다. 두 번째 마법은 꽤 길었다. 거의 30초 정도.
잠시 후, 성주의 몸을 진찰한 엘로이즈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내장 대부분이 기능을 잃었어. 기사라서 살아있는 거지, 보통 사람이었으면 벌써 죽었을 거야.”
“전혀 방법이 없을까?”
“응. 전혀. 거기다 안에 있는 그, 작은 벌레 같은 것도 다 죽은 거 같아. 아무것도 안 느껴져.”
냉염충은 이미 발작을 끝내고 죽었지만, 그 부작용으로 인해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게 된 상황. 이래서는 어떤 식으로든 활용할 수 없었다.
아쉬움에 고개를 저은 것도 잠시, 아르센은 도낏자루 끝부분으로 성주를 톡톡 두드렸다.
어떻게든 그를 깨워 이야기를 듣고자.
잠시 후, 기절한 듯했던 성주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뜻밖에도, 그 눈에는 초점이 또렷이 잡혀 있었다. 조금 전과는 달리.
“······누구시오?”
“여행자입니다. 조금 전에 역병의 근원을 죽이려다 실패했다고 하셨는데, 혹시 놈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아르센의 질문에, 성주는 갑자기 얼굴을 찌푸렸다. 마치 심한 두통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맞소, 놈들은······엘다린 강 상류, 반나절 거리에 있소. 길쭉한 주둥이로 물을 빨아 먹더니 하얀 알을 토해냈지. 놈들을 모조리 도륙 내려 했는데, 실패했소. 너무 강해서.”
‘놈들이라, 여러 마리인가.’
“어떻게 그게 원인이라는 걸 알게 된 겁니까?”
“예전에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소, 물에 알을 풀어, 사람의 뱃속에 집어넣는 마수가 있다고. 죽은 이의 배를 갈라보니 실제로 그러했지, 강 상류로 올라가 몇 놈을 죽였는데, 너무 수가 많아서 다 죽이지는 못했소······.”
아무래도 이 성채에는 냉염충을 푸는 모체의 존재가 전해져 내려와, 전염병이 아니라 기생충 감염임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누가 발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크란은 냉염충이라는 것이 그냥 말라리아와 비슷한, 작은 곤충으로 인해 생기는 기생충이라고 말해 주었지만, 아마 이것 역시 마수화(魔獸化)로 인해 무언가 바뀐 듯했다.
덕분에 어떻게 해야 할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강 상류, 남쪽으로 더 내려가며 냉염충을 물에 흘리는 모체를 잡아 그 치료제를 개발해야 했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 모체 역시 박멸하도록 하고.
그리고 치료제를 얻어낸 뒤에, 인근 다른 성채를 돌며 비슷한 증상이 있는 이를 찾아 실험해본 뒤, 발타레스로 돌아가 그것을 거래하거나 베풀어 길을 여는 것으로 끝.
‘부디 치료제가 효과가 있으면 좋겠는데.’
다소 애매한 것이, 냉염충은 인간의 몸에서 죽어가며 뿜는 독소로 인간을 죽인다는 점이었다.
만약 이 원시적인 구충제를 먹고 죽으며 한꺼번에 독소를 방출하여 사람이 죽게 된다면?
부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며, 아르센은 모체의 생김새, 생태 등 몇 가지를 더 물어본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기 전, 아르센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당신을 살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편히 가실 수 있도록 도와드릴까요?”
이미 늦은 목숨이라지만, 기사의 모진 생명력 덕에 지금까지 살아있지 않았던가.
몇 시간, 혹은 며칠 이상 이 고통스러운 삶을 지속하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빨리 끝내주는 것이 나으리라 여겼다.
아르센의 질문에, 성주는 잠시 고민하듯 눈을 감았다.
수 초, 수십 초, 아르센은 차분히 그 자리에 서서 성주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성주가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센은 엘로이즈를 돌아보며 물었다.
“먼저 나가 있을래?”
“응? 아······알았어. 밖에서 기다릴게.”
엘로이즈가 나가는 것을 확인한 뒤, 아르센은 도끼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성주관이 그리 넓지 않아 도끼를 넉넉히 쓸 공간은 나오지 않았지만, 비무장 상태인 기사의 숨통을 끊고자 도끼를 풀스윙으로 휘두를 필요는 없었다.
“조언 감사했습니다, 이미 이곳은 끝났지만, 저희가 다른 성채나 영지 역시 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성주는 쉰 목소리로 대답하며, 부드럽게 웃음을 지었다.
그 눈에서는 가늘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리아, 티엘······아빠가 가마, 지금······.”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아르센은 그대로 도끼를 내려찍었다.
성주관을 나오자, 먼저 기다리고 있던 엘로이즈가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갔어?”
“응. 이것 좀 부탁할게.”
아르센이 도끼를 내밀자, 엘로이즈가 손을 뻗어 불을 쉭 뿜었다.
어마어마한 고열이 지나가며 순식간에 도끼에 묻은 피를 태워, 도끼날은 잘 닦은 새것처럼 되었다.
“다 끝났으니 나가자, 이제.”
아르센과 엘로이즈는 그대로 진을 몰아, 간신히 뒤집어진 속을 수습해 돌아다니고 있던 마룬과 그런 그를 돌보던 바즈칼을 찾아 합류했다.
그런 뒤, 다시 방벽 너머로 돌아왔다.
혹시 몰라 마법의 불을 이용해 세균을 싹 태우는 것으로 멸균 조치까지 끝낸 뒤, 아눈이 다가오며 물었다.
“어떻게, 해결책은 나왔습니까?”
“네. 강 상류로 더 올라간 뒤에, 원뿔 모양 바위가 보일 때 동쪽으로 가면 이 질병을 뿌리는 놈들의 서식지가 있다더군요. 그놈들을 죽이고, 병의 근원을 찾으면 될 겁니다.”
목표를 찾았다는 말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 모두가 의지를 불태우며 고함을 질렀다.
그 상황에서, 아르센은 안쪽에 들어갔던 사람들만은 그 고양된 감정에 동참하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안에서 보았던, 불유쾌한 광경에 아직도 마음을 지배당하고 있는 탓에.
아르센 역시 비슷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