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41)
당연하게도, 이 전이문을 작동시키는 과정은 절대 간단하지 않았다.
거리, 위치에 맞춰 마법사 몇 명이 책을 들여다보며 여러 가지를 만지고 조작했다.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구경하는 한편, 아르센은 이전 라티스와 나눴던 대화를 회상했다.
‘문이 열린 뒤, 우선 대표로 한 명이 먼저 들어와서 아르센 경이 있는지를 확인할 겁니다.’
‘그다음에는요?’
‘혹시 위험한 요소가 없는지 확인하고자 먼저 와 봤다거나, 그런 식으로 대충 변명한 뒤 후발대를 보낼 겁니다. 당연히 후발대는 기사들과 그들을 제어하는 마법사들일 거고요.’
그들은 전이문을 넘기 직전 소규모 쿠데타를 일으켜 모든 기사의 제어권을 탈취할 계획이며, 이를 막고자 약간의 뒷공작을 해두겠다고 했다.
이를 미리 막으려고 들다가는 내전이 일어나 계획 전체가 망가질 것이기에 그럴 수 없다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생각하던 중, 그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아르센 경! 연결됐습니다!”
마룬이 수정구를 든 채 손짓했다.
다가가니, 이미 수정구는 활성화되어 있었다.
아르센이 짤막하게 왔다고 말하자, 수정구 안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쇠가 가르랑거리는 듯한, 듣기 거북한 목소리는 명백히 노인의 그것이었다.
[반갑습니다, 아르센 경. 우만 장로라고 합니다. 라티스 장로가 급한 일이 있어, 대신 연락을 맡게 되었습니다.]라티스가 말하기를, 강경파의 대표인사라던가.
과연, 호의를 가장하려는 말임에도 그 어조에서 미미한 적개심이 묻어 나왔다. 이로 미루어 짐작건대, 그리 연기에 능한 인사는 아닌 모양이었다.
아르센은 정중한 목소리로 답했다.
“반갑습니다, 우만 장로님. 라티스 장로는 무슨 일로?”
[조금······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열이 심하더군요.]“그렇습니까. 부디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잠시 후면 만날 테니 제가 병문안이라도 해야겠군요.”
[그래주신다면 라티스 장로도 기뻐할 겁니다.]사정을 아는 사람으로서는 웃을 수 없는 만담이 지나갔다.
워낙 어설퍼서 라티스가 아르센에게 따로 조언을 주지 않았더라도 뭔가 수상하다 느꼈을 정도로, 그들의 태도는 엉망진창이었다.
내심 한마디 해주고 싶은 마음을 감춰야 할 정도로.
‘도대체 왜 갑자기, 이 순간에 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앓아 눕는데?’
하기야, 세상에 철저하게 계획하여 실행되는 일이 얼마나 있던가. 모름지기 세상의 모든 작전은 엉터리 같은 계획 속에 엉터리 같은 방식으로 실행되기 마련이다.
지구의 역사를 보면, 쿠데타 도중 적 세력의 수장을 확인 사살하지 않아 두 번이나 죽여야 했던 머저리들도 성공하지 않던가.
[그러면 전이문 연결을 위해서 기술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니, 수정구를 부하에게 전달해주시죠.]“알겠습니다.”
아르센은 순순히 공간 마법을 담당하는 마법사에게 수정구를 넘기는 한편, 아눈에게 눈짓했다.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만약 그가 계획이 유출됐다는 등 뭔가 수상한 말을 전달하려고 하면 즉시 목을 잡아 비틀어 버리라고 미리 지시해 두었다.
아눈을 바로 옆에 둔 채, 공간 전문 마법사 드류에는 꽤 침착한 태도로 별부르미 쪽 담당자와 공간 조율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연기가 썩 제법이었다.
이를 확인한 뒤, 아르센은 모여 있는 다른 기사들과 병사들의 앞에 섰다.
그런 뒤, 목청을 돋워 물었다.
“모두 준비됐나?”
“네, 준비됐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부하들의 목소리는 살기에 차 있었으며, 얼굴은 일그러져 노골적인 적의가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보며, 아르센은 고개를 저었다.
“표정을 좀 더 온화하게 해 봐라, 온화하게.”
그러자 기사들과 병사들이 제각기 웃어 보였는데, 억지로 웃으니 그 꼴이 심히 추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아르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무표정이라도 잘 해보도록.”
“죄송합니다······.”
“어쨌든, 저쪽에서 공격 의사를 보이기 전까지는 절대로 공격하지 마라. 설령 내가 위기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알겠나?”
“알겠습니다!”
* * *
이제 전이문은 거울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굳이 비유하자면 소용돌이에 가까웠다.
고체이던 거울이 액체와 기체 사이의 무언가로 변해, 쉼 없이 휘돌며 시선을 어지럽혔다.
“된 건가?”
“네. 잠시 후면······이제 완전히 연결됐습니다.”
마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그들은 차분히 진형을 형성했다. 전이문을 반원형으로 둘러싸는 형태.
얼핏 보기에는 비무장 상태로 질서정연하게 서 있어서, 마치 예를 다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무기와 방패는 즉시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놓여 있었으며, 그 정신은 그야말로 당장이라도 전투에 임해도 좋을 만큼 완벽하게 무장해 있었다.
‘저렇게까지 긴장할 필요는 없는데.’
아르센의 계획대로라면, 이 싸움은 생각보다 쉽게 끝날 터였다.
상대가 상황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믿고 있으면 엄청나게 간단할 것이고, 만약 한 수를 더 뒤집어서 놓았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조금 덜 간단해지는 정도이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전이문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빛이 솟더니, 빛나는 액체 비슷한 무언가가 흘러나오더니 솟구치며 형상을 갖추었다.
빛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는 마법사 한 명이 있었다.
“오······.”
그 신비한 광경 탓에, 아주 잠시간 모두가 적의마저 잊고 감탄했다.
저 멀리, 어쩌면 기승수를 타고 몇 달 이상을 달려도 닿지 못할 곳에서 사람이 나타나는 신비는 온갖 기현상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도 굉장히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다루 님.”
마룬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모습에 처음으로 나타난 마법사, 다루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았다.
그러고는 아르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오, 마룬. 그리고 이쪽이······?”
“반갑습니다. 아르센입니다.”
“오오······.”
다루는 짐짓 감동했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이며 악수를 받아 주었지만, 아르센은 그 눈에 담긴 긴장감을 읽었다.
상대는 슬그머니 눈을 굴리며 주변을 관찰하고 있었다. 기사들과 병사들의 배치, 그리고 아르센의 위치까지.
현재 병사들과 기사들은 반원형으로 둥글게 거울을 둘러싼 채 절도 있게 서 있었으며, 아르센 한 명만 그 앞에 서서 다루를 맞이하고 있었다.
납치범들로서는 환영할 만한 모양새라, 과연 다루의 얼굴에 은근히 웃음이 어렸다.
기사들이나 병사들은 꾹 참으려고 해도 그 얼굴에 적개심이 묻어 나왔건만, 이는 전혀 읽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 힘들 터였다.
모름지기 마법사라면 일반인들의 이유 없는 적의와 멸시는 숨 쉬듯 익숙한 것이 아니던가.
태어나서부터 늘 적의에 노출되어 온 자에게 있어, 이러한 감정은 새삼스럽지도 않은 것이리라.
“그런데 다른 분들은?”
“곧 올 겁니다. 혹시 유물의 전송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여 제가 먼저 확인하고자······.”
“그러시군요.”
아르센은 부드럽게 웃음 짓으며 신뢰에 찬 얼간이의 태도를 능숙하게 연기했다.
그 연기가 먹혀들어 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얼핏 상대의 표정이 흡족한 것으로 보아 꽤 잘 먹혀든 듯했다.
물론 정말 그런지는, 잠시 후 결과가 알려줄 터였다.
“그럼, 다른 이들에 와도 좋다고 알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마법사 다루가 전이문에 손을 얹었다.
그 몸이 다시 하얗게 빛나더니 스르륵 녹아 문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아르센은 나지막하게, 하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선언했다.
“모두, 단단히 준비하고 있어라. 이제 진짜 올 거다.”
* * *
“어떻던가?”
“완전히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계승자 혼자서 가장 앞에 서 있더군요. 무장도 전혀 하지 않았고요. 진도 안 타고 있었으니, 아마 전투 인형들이 들이닥쳐 몇 대 후려갈기면 정신 못 차리고 잡힐 겁니다.”
다루의 말에 우만 장로가 씩 웃었다. 일이 쉽게 풀리리라는 확신에 기뻐하는 미소였다.
그런 그의 옆에 있는 마법사들의 수는 뜻밖에도 적었다.
고작 열다섯 명.
이는, 별부르미의 마법사 중 그들의 뜻을 따르는 이가 생각보다 적었던 탓이었다.
만약 몇 가지 협잡과 강짜를 통해 제어기 권한을 탈취하여 기사 전력에서 우위에 서지 않았다면, 쿠데타 자체가 실패로 돌아갈 뻔했다.
‘길들여진 개 같은 놈들.’
기사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기사를 믿다니,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물러빠진 사고방식이었다.
라티스와 다른 두 장로, 그들에게 찬동하지 않는 마법사들은 현재 감금된 상태였다.
베르크 장로가 전투 인형 한 기를 조종하여 그들이 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감독하고 있었다.
죽이거나 심하게 다치게 하지는 않았다. 의견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같은 마법사, 위대한 동포 아닌가. 상대가 죽이려 들지 않는 이상 그런 행위는 있을 수 없었다.
물론, 마법사 아닌 하찮은 일반 하인들은 예외였다.
마법사의 수발을 드는 부하, 일반인 하인 계층 중 몇 명이 죽었지만 우만의 머릿속에서 그것은 희생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모두 준비됐나?”
“네, 완벽합니다!”
우만 본인을 포함하여, 열두 명의 마법사들이 각각 전투 인형 한 기를 조종하고 있었다.
굳이 하자면 한 명이 여러 기를 조작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것은 일 인당 한 기였다.
“작전을 다시 설명하도록.”
“진입하고 나서 금발에 보라색 눈을 한 기사를 목표로, 바로 전투 인형들로 에워싼 뒤 구속합니다. 그런 뒤 두 명이 힘을 합쳐 놈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나머지 아홉이 별동대원들과 함께 놈들을 제압하여 주도권을 쥡니다.”
“좋아, 완벽해.”
아르센을 제외하면 놈들의 전력은 기사 세 명과 병사 열 명, 마법사 한 명에 불과했다.
아르센을 제압하느라 기사 두 명, 혹시 힘이 생각보다 강해서 세 명이 소모된다고 계산해도 아홉 명이 남으니, 그들의 압도적인 우위였다.
“좋아, 이것만 성공하면 이번 계획의 주도권은 완전히 우리가 쥐는 거다. 진입!”
* * *
다시 한번 전이문이 일렁이고, 빛나는 액체 수십 덩어리가 흘러나와 형상을 갖추었다.
그중 절반은 그 크기가 꽤 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진에 탄 기사쯤은 되어야 그 정도 크기는 되겠다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그들이 제 형상을 갖추자, 아르센은 처음으로 ‘제어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기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기사로 보였다. 전신 갑옷으로 머리까지 감추고 있었기에.
하지만 아마 그 투구 안에, 과거 아르센이 썼던 것과 같은 서클릿을 두르고 있을 것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대열의 한가운데, 가장 완벽히 보호받는 자리에는 수염이 성성한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눈매가 부리부리하여 누가 봐도 성격 좀 있어 보이겠다 싶은 노인이었는데, 그 형상이 그리 온전하지 않았다.
한쪽 눈은 푹 패여 짓물러 있었으며, 그렇게 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난 탓인지 얼굴형마저 조금 무너졌다.
오른팔이 있어야 할 자리는 휑하니 비어있는 데다 얼굴에는 마치 고문이라도 당한 듯 깊은 흉터와 화상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누가 봐도 평탄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이의 모습이었다.
나타나자마자 기사들이 슬금슬금 앞으로 나서는 것이, 은근히 아르센을 포위하려는 모양새였다.
이에 동요하지 않고, 아르센은 차분히 우만 장로로 짐작되는 인물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우만 장로님 맞으십니까?”
별동대원들에게 말했듯, 마지막까지 우호적인 모습을 증명하고자, 아르센은 마지막까지 예의를 잃지 않았다.
우만 장로는 차가운 고함으로 이에 답했다.
“붙들어!”
동시에, 열두 명의 기사들이 일제히 아르센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을 탄 채 고대 유물로 된 갑주와 무기를 갖춘 기사 열두 명이라니, 아무리 아르센이라도 진에 타지 않은, 거기다 무기도 들지 않은 맨몸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적이었다.
싸운다면 말이다.
[엘리!]귀걸이를 통해 신호한 순간, 아르센의 다리 밑에서 덩굴이 폭발하듯 일어나 아르센의 몸을 띄웠다.
달려들던 기사들은 순간 아르센의 몸이 사라지자 멍하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그 모습을 통해 아르센은 상대의 전투 지능이 그렇게까지 높지 않음을 간파했다.
‘단순한 전투 정도는 자동이지만, 특정 상황에 대처하려면 마법사가 별도로 조작해야 한다······고 했지.’
과연, 바크란에게 들은 정보를 실험해 본 보람이 있었다.
마법사의 반사신경이 기사보다 훨씬 떨어짐을 고려하면 퍽 유리한 조건이었다.
생각도 잠시, 기사들이 덩굴의 밑동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덩굴이 무너지기 전, 아르센은 힘차게 덩굴을 박차 아군 진형을 향해 뛰었다.
육 미터 가까이 솟은 덩굴에서 도약한 덕에, 그는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날아 아군 진영에 착지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흑사자를 비롯한 그의 모든 무장이 준비되어 있었다.
재빨리 진에 올라타 신경을 연결한 뒤, 아르센은 힘차게 소리쳤다.
“터트려라!”
병사들 몇 명이 준비해 두었던 물통의 뚜껑을 깨트렸다.
그 안에서, 어둠이 솟구쳤다.
이곳에 내려오기 직전, 저 위에서 잡았던 어둑원숭이들이 사로잡힌 채 끊임없이 뿜어낸 어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