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45)
“장로님.”
누군가의 부름에, 라티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이름은 아밀이며, 이번에 우만과 그 부하들의 쿠데타 계획을 엿들어 보고한 그의 직속 부하였다.
젊은 마법사 중에서는 리더격인 인물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지?”
“이런 말씀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동포 중 일부가 좀······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아밀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보고했다. 젊은 마법사 중 몇몇이 이번 처벌은 지나치게 가혹했다고, 아르센에게 비굴할 정도로 숙이는 행위가 아니냐고 비난하고 있다고.
이러한 주제를 말하기란 참으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별부르미는 기본적으로 철저한 상명하복의 계급제를 고수했으며, 하물며 최근에는 장로 한 명이 주도한 대규모 쿠데타 사태가 일어난 마당 아닌가.
하지만 다들 한솥밥을 먹던 식구인 마당이라, 일단 장로들의 지시라는 명목하에 처벌 자체는 기계적으로 이행할지언정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가 말했듯 어디까지나 몇 명의 의견일 뿐으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쿠데타 주동자들은 반란 과정에서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 ‘하인’들 중 상당수를 대항한다는 이유로 도살하듯 잔인하게 죽였으며, 그런 하인들과 여러 가지로 감정적 교류를 나누던 마법사들도 꽤 있었던 탓이다.
그들은 이번 죄인들의 행태에 큰 분노를 느꼈으며, 그들이 그런 비참한 꼴이 된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다.
이를 두고 의견 다툼이 벌어져 주먹다짐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나마 마법으로 서로를 상하게 하는 것은 심각한 중범죄라 주먹으로만 싸운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그렇단 말이지.”
라티스의 얼굴이 차갑게 굳고 눈이 가늘어지는 것을 보며, 아밀이 허둥지둥 말했다.
“물론 저는 이번 처벌을 적극 지지합니다. 이번에 죽은 하인 카로이는 제가 가장 아끼는 친구이기도 했고, 지금은 숙원이 이루어질 가장 중요한 순간이니까요. 다만, 이런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변명할 것 없다. 불만은 이해하니까.”
평소와 다른 자상한 말투에, 아밀은 당황한 나머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그를 향해, 라티스가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만약 그 계획이 성공했다고 쳐도, 우리는 전력의 절반 이상을 잃었을 거다. 강력한 기사인 계승자 아르센은 물론, 그를 보고 따라오던 다른 기사나 병사들의 지지를 잃었을 테니까. 언제 적이 될지 알 수 없는 자들과 불편한 동거를 하던가, 그들을 쫓아내야 했겠지.”
“그야······그렇긴 합니다만.”
“그런 형편없는 꼴로, 남은 계획을 모두 완수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나? 그들은 피해망상과 불신으로 우리 공동체의 비원을 해치려 들었어. 당장 큰 피해가 없어서 착각하는 모양인데, 죄인들이 한 짓은 우리 모두의 식사에 독을 탄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끔찍하지.”
“네······.”
라티스는 이것만으로 불평분자들을 설득할 수는 없을 것을 익히 짐작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노인과 젊은이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깔보는 것은, 먼 옛날부터 쭉 내려온 세상의 이치 아니던가.
예로부터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 젊은이가 나이를 먹어 노인이 되는 것뿐이었다.
그때쯤이면 다시 젊은이들이 생겨나니, 절대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만.
“일단 그렇게 전하고, 다른 기사나 병사들과 접촉하는 데 있어 실례하지 않도록 주의시켜라. 특히 상대를 하인 취급한다던가 하면 내가 직접 벌할 것이라고 알리도록. 명심해라. 이제 대업의 성취까지 그리 멀지 않았으니, 중요한 순간인 만큼 훼방 놓는 놈은 무사하지 못하리라 알리도록.”
“······알겠습니다!”
그렇게 부하를 보낸 뒤, 라티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이번 처벌은 그와 다른 장로들로서도 무척 부담스러운 결정이었다.
고작 오륙십 명인 소규모 집단에서 열다섯 명이나 되는 숫자의 인원을 축출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외의 온건한 처벌로는 아르센을 만족시킬 수 있으리라 장담하기 어려웠다.
무려 협력하려던 두 세력 중 하나가 상대 세력의 수장을 급습해 납치하려고 한 것이다.
상대가 만족할 만한 처벌을 내리지 못해 관계가 깨지는 것만은 무조건 막아야 했다. 이보다 더한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도서관을, 하늘의 도서관을 이 땅으로 부를 수 있다면.’
먼 옛날, 별부르미의 초대 수장에게 구원받고 그의 양자가 된 이래, 라티스가 꿈꿔왔던 유일한 가치.
양아버지의 뜻을 따라, 마법사가 핍박받는 이 현실을 바꿀 힘이 담겨있다고 알려진 그것.
라티스는 오로지 그것을 추구했다. 더 많은 동포의 목숨을 바치더라도, 절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주먹을 꽉 쥐는 라티스의 눈앞에, 그림자가 내렸다.
* * *
그로부터 몇 주, 별부르미의 본대가 동행하며 그들의 행군에 있어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우선 행군 속도가 상당히 느려졌다.
여행을 위해 공간 확장 가방까지 사용하여 간소하게 짐을 꾸린 그들과 달리, 별부르미는 이번 여정을 위해 거의 본진을 통째로 뜯어오다시피 했던 탓이다.
거기다 노약자들이 많은 만큼, 그 속도가 비슷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이 꼴이 보기 답답했는지, 엘로이즈가 남몰래 불만을 말하기도 했다.
[전보다 너무 느려졌는데, 이렇게 가도 되는 거야?] [어쩔 수 없어. 그렇다고 노약자들을 버리고 오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고.]아르센의 말대로, 별부르미의 합류에는 장점 역시 존재했다.
별부르미는 그 행동 양식 자체가 유목민과도 같아, 야외 생활에 있어 아르센 일행보다도 훨씬 능숙했다.
전투 훈련만을 받은 별동대와 달리, 바깥에서 움직이고 휴식할 때 그 환경을 쾌적하게 하는 여러 비법을 알고 있었다.
이와 별개로, 커다란 선물도 하나 있었고.
[그 녀석을 조종하는 건 어때? 익숙해졌어?] [응. 사실 익숙해질 것도 별로 없더라. 그냥 생각하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니까······.]그렇게 말하는 엘로이즈의 옆에는 커다란 방패를 든 기사, 소위 ‘방패꾼’이라 불리는 기사가 그녀를 호위하듯이 서 있었다.
처음에는 조종당한다는 사실에 다소 동정심이 들기도 했으나, 이 방패꾼이 본래 마법사들을 박해하는 영지의 기사였으며, 마법사 몇 명을 산 채로 솥에 삶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그를 풀어줄 마음이 싹 사라졌다.
다른 조종당하는 기사들도 비슷한 배경이 있었는데, 내심 거짓말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으나 일단 착한 기사는 기억만 지우고 풀어주었다는 마룬의 증언이 있었기에 사실이라고 믿기로 했다.
물론, 별부르미의 마법사들이 조종하는 기사를 엘로이즈의 호위라는 위험한 위치에 두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당연히 이 기사의 조종 권한은 엘로이즈에게 있었다.
[잘 써먹어. 그 인형 백 개보다 네 목숨이 중요하니까.] [······알았어.]리노를 죽일 뻔했으며 그 기량으로 따지면 아눈보다도 위인, 별부르미가 가진 가장 강력한 전투 인형.
이것이 처형과 별개로, 별부르미 측에서 이번 사태를 일으킨 것을 사죄하고자 바친 선물이었다.
[혹시 제어권을 저쪽이 뺏어갈 염려는 없겠지?] [응. 바크란이 알려준 방식으로 제어기 구조를 뜯어봤는데, 그런 식으로 우회할 수는 없게 되어 있더라.]본래 유물의 구조를 뜯어보고 분석하는 것 따위 평범한 마법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바크란의 지식을 얻은 덕분에 엘로이즈의 마법 지식은 시대를 앞서가는 수준으로 도약한 상태였다.
심지어, 시간을 두고 연구하면 비슷한 물건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 다 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 그녀가 확언했다면 불상사는 없다고 봐도 좋을 터.
[어쨌든, 그 방패꾼을 빼고도 저들이 합류해서 나아진 점이 많으니까. 저것만 봐도 그렇고.]아르센이 가리키는 곳에서는, 병사 여러 명이 금속으로 된 그릇을 들고 서 있었다.
그 앞에는 별부르미의 마법사가 한 명.
그가 손을 뻗으며 주문을 시전하자, 기묘한 색의 불꽃이 일어나 바닥에 내려앉았다.
“자, 됐습니다. 모두 받아가시죠.”
마법사 한 명이 피운 불은 그 색이 참으로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자주색, 혹은 보라색으로 보이는 기묘한 불꽃.
막대기를 가져가 불을 받아내며, 병사가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아뇨, 뭐 이 정도를 가지고.”
더운 여름, 거기다 폭우가 계속되어 습한 이쪽 지방의 특성 탓에 불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금방 꺼지기도 했고.
그런 상황에서 나무를 태우면서 열을 내지만 물에는 꺼지지 않는, 방수 불꽃이라고 이름 붙여도 될 법한 이 기이한 불꽃은 큰 도움이 되었다.
혹시 잘못 옮겨붙었다가 끔찍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그냥 주변의 모래를 끼얹으면 어렵지 않게 끌 수 있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라 더운 날씨에 횃불 때문에 더 더워지는 것을 막고자 덥지 않고 빛만 내는 불꽃을 만들기도 하는 등, 불꽃을 만드는 주문만 해도 그 종류가 다양했다.
“거 신기하네, 이렇게 좋은 걸 진작 쓸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제론 씨는 저런 거 못 합니까?”
“전투 주문만 배우다 보니 저런 거 배울 시간이 없어서요······.”
병사의 물음에, 옆에서 보고 있던 별동대 대원 제론이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것 외에도 빛이나 열을 내지 않고 순식간에 음식을 데우는 주문부터 시작해 과거 루덴이 꿈꾸던 무구를 손질하는 주문도 있어, 엘로이즈의 부담이 크게 줄었다.
물론 긍정적인 교류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힘을 가진 이들이 다른 문화를 가지고 살다가 갑작스레 동행하는 만큼, 서로의 가치관 차이로 인한 충돌이 몇 차례나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두 집단 모두와 접점이 있는 별동대원들이 이를 중재하려 애썼다.
그들은 별부르미의 마법사로 자랐으나 계승자와 함께해야 할 별동대원으로서 특별한 가치관을 교육받았으며, 그간 아르센의 병사들과 동행하며 친해진 만큼 양쪽 모두의 의견을 듣고 중재하기 적합했다.
가끔 몇몇 마법사들이 아르센의 병사들을 하인 취급하다가 싸움이 나기도 했는데, 여기서도 별동대원들이 제지하는 역할을 맡고는 했다.
따로 주의하라고 하였음에도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은, 별부르미의 마법사 중 상당수가 일반인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하인으로 여기고 살아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일반인을 대하는 방법을 모르는 탓이었다.
일단, 이는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였다.
행군 중, 아르센은 라티스 장로와 기승수의 머리를 나란히 하고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 손에는 별부르미의 마법사들이 만들어 보관하고 있던, 저 북쪽의 강에서 잡을 수 있는, 수생 마수로 분류되는 특별한 물고기를 말린 어포가 들려 있었다.
불에 그을리듯이 굽자 쥐포 비슷한 감칠맛이 나서, 심심한 비상식량에 질린 이들에게는 별식이 되었다.
“대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잡기 쉽지 않을 텐데.”
“꽤 힘들기는 합니다. 미끼가 되는 사람이 날렵하지 않으면 위험해서, 이번에 내려가기 전까지는 마룬이 이 녀석을 잡는 데 도움을 많이 주었죠.”
아르센은 잠시 강 위에서 춤을 추다가 수생 마수가 나타나자 꽁지 빠져라 도망가는 마룬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를 미끼 삼아 동시에 수십 개의 마법을 시전해 마수가 물속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고 사냥하는 모습을.
꽤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까지 잡을 가치가 있습니까?”
“이 녀석 한 마리만 잡으면 얻을 수 있는 살점이 워낙 많아서요. 북방에는 안 와보셔서 모르시겠지만, 그곳은 춥다 보니 마수도 많이 살지 않습니다. 농사를 짓기도 어렵고요. 식량을 구하기가 참으로 힘든 환경이죠.”
고개를 끄덕이며, 아르센은 말없이 구운 어포를 먹었다.
짭짤한 맛에 조금 목이 말라져서 포도주 섞은 물을 한 잔, 그리고 다시 먹다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면, 규모가 커지니까 비교적 움직이기가 편하기는 하더군요. 시비도 덜 걸리게 되고.”
아르센은 얼마 전, 영지 두 개를 지나며 내내 영주들에게 시달렸던 끔찍한 상황을 떠올렸다.
그때 기사들도 꽤 큰 상처를 입었던데다, 병사 하나는 말 그대로 죽음의 강에 몸을 담갔다가 나와야 했다. 잠시지만 죽은 줄 알고 묻으려고 했을 정도였으니.
라티스가 웃으며 이를 긍정했다.
“아무래도 그렇지요. 몰래 지나갈 정도로 수가 적지 않다면, 차라리 큰 쪽이 나으니까 말입니다.”
스무 명이 좀 넘던 숫자가 순식간에 칠십 명 이상으로 늘어난 만큼, 당연히 주변의 시선 역시 몇 배로 끌게 되었다.
마수들의 습격이 잦아진 것은 물론, 자기 영지에 침입한 대규모 병력을 경계한 영주가 군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마수들 따위는 힘을 합친 기사와 마법사들의 적수가 아니었으며, 영주들은 이십 명에 달하는 기사들을 보고 지레 겁먹어 물러섰기에 위험한 싸움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구릉 지형 한가운데에 있었다.
작은 산처럼 느껴지는 커다란 언덕이 끊임없이 이어져, 주변 시야는 물론이고 방향을 잡기도 불편한 곳이었다.
“여기가 말씀하신 곳 맞습니까?”
“네. 이 마실레 영지 서남쪽 어디라고 들었으니······.”
그들이 있는 이곳 마실레 영지에는 특별히 유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특별한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곳의 영주가 마법사들에게 우호적이라 내부에서 쉬면서 거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영지에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곳의 남서쪽, 구릉 지대 어딘가에 지하 통로의 입구가 있었다.
그들을 거인왕의 감시를 피해 남부 한가운데로 파고들게 해줄, 이 계획의 핵심이나 다름없는 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