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60)
그렇게 하루가 지나, 티막의 정착지로 돌아온 아르센을 반기는 것은 지친 기색이 가득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거주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긴장과 공포가 묻어나 있었으며, 다친 것인지 붕대를 감고 다니는 이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그들은 아르센을 만날 때마다 환호하며 찬양했다. 마치 구원자라도 되는 것처럼.
며칠 전, 이곳을 떠나기 전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르센은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아눈에게 곧장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래저래.”
지친 목소리로 푸념한 아눈은,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요즘 인간들이 모이는 걸 간파했는지, 올무들이 이 근처로 병력을 집중시키기 시작하더군요. 당연히 다른 거주지에서 보내는 지원 병력이 공격당하게 둘 수는 없으니 힘을 합쳐서 올무들을 해치우고 다녔고, 놈들이 추가 병력을 보내고······.”
그러다가 얼렁뚱땅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일단, 초반에는 퍽 순조로운 싸움이 계속됐다.
라티스를 비롯한 별부르미의 마법사들이 가진 화력은 올무들에게 있어 악몽과도 같은 것이라, 그냥 다른 기사나 병사들이 앞에서 시간만 끌어주고 마법사들이 마법을 쏟아내는 것만으로도 쉽게 이길 수 있었다.
문제는 올무들 역시 이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성 없는 마수처럼 무작정 물량을 들이밀지 않고 자기네 정예를 불렀다. 영웅이라 불리는 상위 개체들을.
“놈들은 항마력이 꽤 뛰어나더군요. 기사 수준은 아니었지만, 어둠 속에서 갑자기 덮치는데 진영 안쪽으로 파고들어 오니 마법을 마구잡이로 날릴 수도 없고······이래저래 상대하기 영 깔끄러운 놈들이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올무 영웅, 상위 개체들은 방심하고 있던 인간들을 무참히 도륙했다.
그리고 그 빈틈을 노려 물러나 있던 일반 올무들까지 포위섬멸을 하려 들었고.
근처에 있던 기사들이 이를 저지하고자 덤벼들어 겨우 죽이거나 쫓아내기는 했으나, 격전 와중 그들 역시 상당한 피해를 보아야 했다.
“그 싸움 때문에 리노 경이랑 바즈칼 경도 다쳤었죠. 지금은 치유 주문으로 다 회복하기는 했지만.”
“아눈 경은 아직도 다친 것 같습니다만.”
“이 정도는 상처도 아닙니다.”
이런 것까지 치유 주문으로 회복하는 것은 마력 낭비라고 말한 아눈은, 이마에 감긴 붕대를 쓰다듬으며 웃어 보인 뒤 설명을 이어나갔다.
“놈들이 얼마나 강한지 미리 듣긴 했는데, 직접 부딪치니 상상 이상이더군요. 어지간한 기사들은 일대일로 상대가 안 되고, 피해 없이 잡으려면 서너 명은 붙어야 할 겁니다.”
아르센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 정도라······알겠습니다, 아눈 경. 일단 좀 쉬시죠. 나머지 일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반가운 말씀이네요, 마침 지금 수장들이랑 회의 중이었는데 아르센 경이 온다는 말에 나온 겁니다.”
“제가 가보죠. 그러고 보니 또 궁금한 게 있는데.”
도대체 여기 사람들이 왜 자신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아눈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낄낄 웃으며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아르센이 자리를 비운 지난 며칠간, 그와 함께 싸웠던 지저인들은 아르센의 무용을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그들에게 있어 혼자 올무 수십 마리를 압도하는 기사의 용맹함은 감탄할 만한 것이었기에.
그리고 자기네 대장이 높여지는 것을 기분 좋게 여긴 아르센의 부하들이 양념을 더한 덕분에 소문은 부풀려졌다.
마침내, 아르센이 돌아왔을 때쯤 그는 이미 홀로 올무 수백 마리를 도륙할 수 있는 신화적인 기사가 되어 있었다.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퍼진 것은 올무들의 공세에 지치고 겁먹은 지저인들이 구세주를 바란 탓이기도 했다.
인간은 본래 절박할 때 믿고 싶은 무언가를 찾는 법이니.
물론 몇몇 냉소적인 이들은 이런 헛소문에 말이 되느냐고 비웃음을 보냈으나, 그 믿음이 마냥 허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설명을 들은 뒤, 아르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이런······.”
사실 생각해보면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일단 발언권을 확보하는 데 있어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고, 사람들의 사기도 끌어 올릴 수 있을 테니.
물론 아르센의 실력이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기대와 숭배는 실망과 미움으로 돌아오겠지만, 이번에 얻은 이쉬트의 창이 보여줄 위용을 생각하면 그 기대를 충족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터였다.
물론 창 한 번 휘둘러 올무 수십 마리를 쓸어내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아르센은 다시 한번 고생했노라고 아눈을 격려한 뒤, 이 거주지의 지도자인 티막의 집으로 찾아갔다.
아눈의 말대로 티막은 다른 수장들과 함께 모여앉은 채 한참 무언가를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의견이 잘 조율되지 않는지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아르센의 존재를 알아챈 티막이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진정으로 오래 기다렸소, 아르센 경!”
간절함이 절절히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다른 수장들 역시 아르센을 보며 기뻐했으나, 한 집단의 리더들답게 크게 내색하지 않으려는 모양새였다.
아르센은 그 인사를 받으며 자리에 앉은 뒤, 우선 중요한 시기에 자리를 비운 것을 사과했다.
물론 전투에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간 것이며 사전에 합의된 내용이긴 했으나, 어쨌든 그가 꼭 필요한 격전 중에 부재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티막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그걸로 비난하는 것은 무도한 이나 할 짓이지, 어디까지나 싸움을 위해 자리를 비운 것인데. 그래서, 괜찮다면 혹시 그들이 준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겠소?”
“당연하죠. 이 무기입니다.”
아르센은 그에게 이쉬트의 창을 내보였다.
그가 보기에는 여전히 기괴한, 앞에 드릴이 달린 이 창의 모습을 본 수장들이 하나같이 탄성을 터트렸다.
여전히 아르센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반응이었다.
“저게 그?”
“보석 눈들이 보물처럼 감추는 물건이라고 하니 효과 하나는 확실하겠지.”
“상상이 안 가는군. 찌르는 데 쓰는 건가?”
“드디어 놈들에게 한 방 먹일 수 있겠어.”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그들의 말을 흘려넘기며, 아르센은 티막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전황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남아있던 저희 쪽 사람에게 대충 듣긴 했습니다만.”
“교착 상태라오. 최근 정찰한 바에 의하면 놈들이 영웅 개체를 꽤 많이 보충한 모양이라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소.”
“이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제 거의 다 모였소. 인근 삼십여 개의 정착지에서 수호자 스물아홉 명, 마법사 일곱 명, 전사 사백삼십 명이 모였지.”
“거기다 지상인 병력까지 합치면······.”
“수호자 스물두 명, 마법사 마흔여덟 명이 추가되는군.”
이 정도면 일전 산맥에서 함께 싸웠던, 엑세키아의 약탈자 군주 토벌대를 아득히 능가하는 대병력이었다. 아마 어지간한 영지 몇 개를 순식간에 밀어버릴 수 있으리라.
물론 이 병력으로도 올무들과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었다.
놈들의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그 누구도 모르니.
그때, 누군가가 운을 띄웠다.
“그러면, 이제 그 아르센 경도 왔으니······.”
티막이 이에 맞장구를 쳤다.
“맞소. 이제 본격적으로 싸워야 할 때요. 놈들과, 제대로!”
환호한 뒤, 수장들은 열띤 토론을 나누기 시작했다.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어떻게 공격해야 하는지를.
거주지의 수장 중 한 명은 단기 결전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보조 구역 여기저기를 몇 번 찔러 적의 병력을 분산시킨 뒤, 정예를 따로 편성해 중앙 통로를 타고 침공, 적의 수도를 파괴하자는 것이었다.
놈들은 보통 중앙 통로에 화살 발사기를 설치해두는 탓에 인간들은 중앙 통로로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물론 이를 습격하려던 티막 같은 사람도 드물게는 있지만.
하지만 화살 발사기의 위력이 너무 강한 탓에 올무들은 상대적으로 중앙 통로의 경계에 허술하며, 따라서 이를 돌파할 수만 있다면 많은 수의 병력이 순식간에 적의 수도까지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작전을 설명하며 덧붙였다.
“명심해야 합니다. 싸움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어요. 장기전은 우리 쪽에 불리합니다.”
어둠 속에서 적을 파악하는 능력은 올무 쪽이 더 뛰어난 만큼, 전선을 형성하고 산발적인 전투를 치르는 것은 인간 측이 불리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거기다 인간 쪽이 장기전에 따르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에 더 취약하다는 말에는 다른 수장들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몸으로 느끼는 바였기에.
마침내, 티막이 고개를 끄덕이며 선언했다.
“좋소. 그럼 오늘은 모두 들어가서 쉬고, 본격적인 작전은 내일부터 시작하도록 합시다.”
모두가 동의하며 탁자를 두드렸다.
상대 의견에 동의한다는 이곳 특유의 제스처였다.
* * *
회의가 끝난 뒤, 아르센은 이 지저 세계의 베테랑 기사인 샤티아를 찾았다.
올무들에 관한 것을 배우기 위함이었다. 놈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를 배운다면 싸울 때 큰 도움이 될 것이기에.
“올무가 제 동포들의 위치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들었습니다.”
처음 티막과 만났을 때도 그것 때문에 소란스럽지 않았던가. 올무 수십 마리에게 기습당해야 하기도 했고.
다행히 일행의 전력이 강했기에 아무 피해 없이 물리치기는 했으나, 그들이 이 지하 세계에 무지한 존재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이를 응용하는 방법도 있다. 올무 몇 마리를 포로로 잡고, 놈들을 묶어둔 뒤 함정을 파는 거지. 요즘에는 잘 시도하지 않는 방법이지만 그렇기에 효과가 있을 거다. 놈들도 수명이란 게 있으니 이 방식을 기억하는 개체는 얼마 없을 가능성이 크니까.”
“놈들의 수명이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까?”
“큰 변동이 없다면 육십 년 정도일 거다. 먼 옛날, 전쟁 초기에 포로로 잡은 놈들이 그 정도 살았다고 하니까. 물론 잡힌 놈들이 원래 몇 살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육십 년······.”
“그리고 놈들은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소리로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원체 청력이 좋은 탓에 멀리까지 울려 퍼지지.”
“위험한 능력이군요. 성가시기도 하고.”
“네 창 앞에서는 의미 없을 거다. 그 소음 아래에서 놈들의 신호가 전달되기는 쉽지 않을 테니.”
샤티아는 아르센이 든 창을 가리키며 작게 웃었다.
“하지만 무작정 덤벼들다가는 호된 꼴을 보게 될 것 같던데요. 특히 놈들의 지능 수준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무식하게 굴라는 말은 아니다. 그냥 너무 겁먹지 말라는 거지.”
올무들은 나름 지성을 갖추고 있으며, 그 지성은 무려 인간과 대화할 수 있을 정도였다.
비록 말투는 다소 어눌할지언정 그 정도만 되어도 함정을 파는 데는 충분할 터였다.
문득 의문이 떠올라, 아르센은 창을 가볍게 흔들며 물었다.
“놈들도 이 창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까?”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짐작해봐야 하는 부분이지만 아마 모를 가능성이 크지. 아버지······가주님에게 듣기로는 인도자이자 기사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창이라서, 이미 주인을 찾지 못한 지 백 년은 되었다고 하니까.”
“놈들의 수명을 생각하면······.”
“그래. 잊혔을 가능성이 크지.”
이 창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다면, 아마 상상한 것 이상의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 *
다음 날 아침, 해가 밝았다고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할 터였다. 이 지하는 태양의 은총을 받지 못하는 곳이기에.
사람들은 마수의 움직임을 통해 낮과 밤을 애매하게 가늠하고, 이를 확실히 하고자 시계로 기준을 맞추었다.
어쩌면 이 지하에서 기계학이 발전한 이유는, 어떻게든 시간을 정해 보려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집합하기로 한 곳에 가니, 라티스 장로가 별부르미의 마법사들 중 싸울 수 있는 이들을 인솔하고 있었다.
그가 아르센을 보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일어나셨군요.”
“네. 지난밤은 잘 주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잘 자지는 못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대답하는 라티스의 얼굴에는 각오, 그리고 공포가 묻어나 있었다. 뒤를 따르는 다른 두 장로와 마법사들의 얼굴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바로 직전의 전투에서 올무 영웅들의 난입을 허용할 뻔했던 탓이리라.
아르센이 함께 싸웠던 때는 그저 멀리서 마법을 시전해 일방적으로 적을 학살하기만 하면 되었으나, 그 사건을 통해 그들 역시 공격당해 죽을 수 있음을 새삼 실감했을 터다.
아르센은 그들을 보고 두려우냐고 묻지 않았다. 감정은 때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그 크기를 키우는 탓이다. 그것이 부정적인 것이건, 긍정적인 것이건.
“모두 힘냅시다. 이번 전투에서 이기면 최종 목표가 코앞으로 다가오는 셈이니.”
일부러 가벼운, 그래서 공포와 압박감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격려하자 다소 질려 있던 마법사들의 안색이 풀어졌다.
다른 수장들 역시,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전사들을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격려하고자 노력했다.
마침내, 전쟁의 시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