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61)
“공격하라!”
“올무 놈들 다 죽여버려!”
올무의 거주지, 그중에서도 수백 마리가 넘는 올무가 거주하는 대형 거주지는 모든 지하 생물이 두려워하는 장소였다.
이 지하 세계의 어떤 존재도 올무 수백 마리와 맞설 힘을 가지고 있지는 못한 탓이다.
올무들이 인간과 싸우고자 이 거주지로 더 모인 탓에, 그 수가 평상시의 배 이상이 된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이 지하의 지배자나 다름없는 올무에게도 지하 통로는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모를 위험한 공간이나, 적어도 거주지 내부는 절대적인 안전지대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누구도 이곳을 침공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하지만 지금, 이곳의 올무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본래 인간이란 으슥한 골목에서나 그들을 습격하는 야생동물 같은 존재이지, 이런 대규모 전쟁을 치를 대상이 아니었다.
사람으로 치면 늑대 무리에게 공성전을 당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성을 침략할 수 없는 늑대와 달리, 인간의 송곳니는 올무들에게 충분히 닿았다.
선두에 선, 막강한 인간 한 명이 압도적인 힘과 기세로 올무들을 압도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막강한 인간, 아르센이 고함을 질렀다.
“덤-벼라-!”
그 소리를 들은 이는 거의 없었다.
오른손에 꼬나쥔 창, 그 앞에 달린 드릴에서 나오는 굉음이 모든 소리를 먹어 치우고 있었기에.
인간이 듣기에도 지나치게 시끄러운 이 소음은 귀가 예민한 올무에게는 실로 압도적인 소리의 폭력 그 자체였다.
소리 폭탄이라는 표현이 절대 과하지 않으리라.
“연속으로, 쏴라!”
“전부 망가졌다!”
“왜!”
“터졌다!”
몇몇 이성적인 올무들은 어떻게든 반격할 수단을 찾으려 했으나, 이미 그들의 강력한 무기는 무력화된 뒤였다.
이 거주지에 몇 개 설치된 화살 발사기는 이미 그 기능을 잃은 상태였기에.
아눈이 아르센에게서 빌린 폭발 투창을 이용해 비익조를 타고 화살 발사기를 폭격한 덕이었다.
정밀한 부품으로 이루어진 화살 발사기는 투창의 폭발력을 견뎌내지 못했고, 따라서 휴식 중 기습당한 올무들은 중화기의 지원을 포기한 채 개인 무장으로 인간들과 맞서야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보듯,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도망친다!”
“괴물, 못 이긴다!”
아르센은 그야말로 양 떼 사이에 들이닥친 늑대처럼 적을 도륙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굉음 앞에 올무들은 무기조차 떨어트리고 제 귀를 막으려 애썼으며, 당연히 그 상태로 아르센의 공격을 받아낼 수는 없었다.
사실상 제대로 된 적이 아닌, 그저 세워 놓은 허수아비를 썰어넘기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
올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공포스러운 무기에 대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후우.”
흑사자의 위에 탄 아르센의 온몸은 이미 올무들의 끈적끈적한 피에 뒤덮여, 본래 색상을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올무에게 동화라는 문화가 있다면, 아마 앞으로 천 년은 아르센의 존재가 동화로 남을 것이다. 굉음을 토하며 어둠 속에서 튀어 나와 나쁜 짓을 한 어린 올무를 잡아가는 괴물로.
“우오아악!”
아르센을 피하고자 등을 돌려 도망치는 것 역시 그다지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 그런 놈들은 대부분 마법사들의 마법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화염 주문은 물론, 벼락 주문 역시 지하에서는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마법사들은 부작용 없는 공격 주문을 여럿 고안하고 서로 전수했다.
불이나 벼락은 가장 효율적인 공격 수단이었을 뿐, 물리적 타격을 주는 주문이나 냉기 주문, 식물 소환 등 적을 공격할 방법은 넘쳐났다.
지금도 정체 모를 검은 안개 같은 것을 뒤집어쓴 채 죽어가는 올무들의 존재가 이를 증명했다.
다시 올무들이 뭉치는 것을 보고 흩어 놓고자 돌격하려던 그때, 누군가가 아르센을 가로막았다.
“덤벼라, 괴물 놈아!”
“내가 왔다! 날 봐라!”
고함을 지르며, 용맹한 올무 두 마리가 아르센의 앞을 가로막았다. 더 체격이 크고 무장 역시 훨씬 충실한 이들은 바로 올무의 상위 개체, 올무 영웅들이었다.
본래 마법사를 기습하는 것을 즐기는 이 족속들이 아르센을 표적으로 삼은 것은, 아르센 한 명이 마법사 수십 명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반 전사들이 아르센을 막지 못한 탓에 아예 대열을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질 상황이었으니.
“놈의 주의를 끌어라!”
“오래는 못 버틴다!”
이 말은 아르센이 한 것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의 눈앞에 있는 저 덩치 큰 올무가 한 말이었다.
놈들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할뿐더러, 일반 병사 계급과 달리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말할 수도 있었다.
“오오오!”
고함을 지르며, 두 자루 칼을 들고 덤벼드는 올무 영웅.
유인원처럼 생긴 얼굴은 분노로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날아드는 공격을 본 아르센은 내심 감탄했다.
‘대단한데.’
놈의 쌍검은 매서웠다.
자세나 타이밍 모두 명백히 일류로, 특유의 뛰어난 신체 능력까지 더해진 만큼 아마 어지간한 기사들은 몇 합 버티지 못하고 목이 달아날 터였다.
아눈이 말한 대로, 올무 영웅이라는 족속들의 실력은 평범한 인간 기사를 한참 능가했다.
하지만 아르센은 어지간한 기사 따위가 아니었다. 평범한 기사 몇 명 정도는 우습게 상대할 수 있는 고위 기사이며, 동시에 온갖 막강한 유물의 주인이었으니.
“우오오옷!”
상대가 기세를 돋우려는 듯, 젖 먹던 힘까지 짜내는 듯한 거친 포효를 내질렀다.
그와 함께 날아드는 칼날.
창을 뻗어 이를 정확히 받아치자, 금속이 무시무시한 비명을 토해냈다.
‘버텨?’
놀랍게도, 상대의 칼은 아르센의 드릴을 버텨냈다.
검붉은 색의 날을 가진 상대의 칼은 고통스럽다는 듯 징징 울며 비명을 토했으나 부러지지는 않았다.
평범한 무기나 방어구는 드릴에 닿는 순간 감촉도 없이 부서졌음을 생각하면 엄청난 내구성이었다.
간만에 느끼는, 무기끼리 충돌할 때 일어나는 저릿거리는 감각에 아르센은 사납게 웃었다.
무기를 마주할 수 있다고 해서 상대에게 승산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일방적인 학살에서 싸움이 될 뿐이지.
그리고 이어지는 공방전.
힘과 속도는 아르센 쪽이 우위였으나 상대에게는 조력자가 있었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뒤에 있는 다른 올무 영웅 하나가 쇠뇌를 쏘아 아르센을 견제했다.
유감스럽게도 치열한 싸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아르센은 특기 덕에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사고 속도를 가졌으며, 그런 그에게 투사체 공격이란 실로 무용한바, 원거리 견제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즉, 쌍검을 든 올무 영웅은 사실상 일 대 일이나 다름없는 싸움을 해야 했던 셈이다.
마침내 무기를 여섯 번 정도 부딪친 순간, 쨍 소리와 함께 부러진 칼날 두 개가 허공을 날았다.
날의 중간이 사라진 모습을 보며 아르센과 마주 상대하던 올무는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인간과 달라 표정을 읽기 힘든 얼굴이건만, 아르센은 상대의 얼굴에 담긴 당혹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설마 자신의 칼이 부러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표정이었다.
느릿해진 시야 속에서 이를 확인하며, 아르센은 창을 찔렀다.
“크아앗!”
놀랍게도, 무기를 잃었음에도 상대는 두 팔을 교차해 공격을 막아내며 덤벼들었다. 실로 감탄할 만한 투혼이었다. 비록 아무 의미가 없는 행위일지라도.
드릴은 회전하며 두 팔을, 두꺼운 가슴 근육을, 갈비뼈를 부수었다. 살과 뼈로 저항하는 것은 눈사태 앞에 나뭇가지로 울타리를 세우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했다.
마침내, 안쪽까지 파고든 송곳니가 무참하게 심장을 찢어발겼다.
“어억······.”
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놈의 가슴에서 창을 뽑자, 빠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피가 사방으로 쏟아졌다. 커다란 물풍선을 터트리기라도 한 것처럼.
놀랍게도, 이 치열한 공방에는 채 이십 초가 걸리지 않았다.
본인이 말한 대로 정말 오래 버티지 못한 셈이다.
“카투-!”
뒤에 있던 놈이 비명을 지르듯 외친 뒤 커다란 쇠뇌를 겨누었다. 그 안에 장전된 화살의 크기가 어지간한 투창에 비견해도 좋을 법한 대형 쇠뇌를.
아르센을 정확히 겨냥한 올무가 고함을 질렀다.
“죽어라, 괴물 자식아!”
하지만 앞에 전위를 두고 쏠 때도 통하지 않던 화살이 지금이라고 통할 리 없었다.
아르센이 창을 위로 휘둘러 이를 쳐내자 화살은 마치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마침내 원거리 무기가 통하지 않음을 인정한 올무 영웅은 허리에 찬 칼을 뽑았으나, 그에게 승산이 있을 리 없었다.
근접전에 능숙한 데다 유물까지 가진 동료가 몇 합 버티지 못했는데, 그보다 못한 자신이 이길 수 있을 리 없으니.
과연, 아르센의 창은 단번에 칼을 부순 뒤 그의 가죽을 뜯어내고 목뼈를 부수었다.
허공으로 붕 날아오른 올무 영웅의 얼굴에는 경악이 담겨 있었다.
“후우······.”
아르센은 잠시 호흡을 정돈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현재 남은 올무는 고작 사십여 마리.
얼추 삼백 마리가 넘는 올무들이 몰려 있던 거주지는 이제 폐허가 되어 있었다.
살아남은 올무들 역시 마법과 드릴의 굉음 탓에 혼란에 빠져 전력이라 칠 수 없는 상태.
“이겼다-! 우리의 승리다-!”
누군가의 목쉰 포효가 올무들의 거주지를 울렸다.
* * *
“으음.”
올무 영웅, 뮈슈는 심란한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이를 들은 부하가 뮈슈를 쳐다보았다.
“사령관?”
“신경 쓰지 마라.”
“알았다.”
부하는 그의 명령에 따라 의문을 접고 고개를 돌렸다. 참으로 충실하게도.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고 지침대로 행동하는 데 익숙한 일반 전사 계급의 특징이었다.
이를 확인한 뒤, 뮈슈는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하군.’
뮈슈는 올무 영웅 사이에서도 존경받는 이로, 위대한 왕으로부터 직접 이쪽 구역을 책임지는 사령관으로 임명받은 데다 가장 나이가 많은 영웅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노화라는 개념이 거의 없고 수명이 다 되면 순식간에 늙어 죽는 올무의 특성상, 늙은 올무들은 존중받았다.
오래 살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전투 기술과 생존 능력을 갖췄으며, 동시에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이 강건한 육체를 지녔으니 어찌 존경받지 않을까.
현재 그런 위대한 영웅 뮈슈가 한숨을 쉬게 만든 상대는 바로 머리털 달린 족속, 즉 인간이었다.
‘빌어먹을 인간 놈들.’
그들의 왕국을 위협하는 큰 적 중 하나인 인간들은 뮈슈가 관리하는 구역에 숨어 살고 있었으며, 따라서 뮈슈에게는 인간의 숫자를 관리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마음먹고 독하게 잡자면 아예 멸망시킬 수도 있을 것이나, 명맥을 유지하게 두는 것은 왕의 명령 탓이었다.
동포들, 정확히는 그중에서도 상급자의 지시에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영웅 개체들은 왜 굳이 인간을 살려두어야 하는지를 궁금하게 여겼으나 뮈슈는 그러한 의문조차 품지 않고 충실하게 명령을 이행했다.
위대한 왕, 그들의 지도자에게는 무지한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계획이 있을 것이기에.
실제로 그들이 이룩한 문명 상당수가 인간 노예에게서 나왔음을 생각하면 왕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었다.
올무들이 인간이 쇠뇌나 시계 등, 여러 편리한 물건을 발명할 때마다 이를 빼앗았고, 그 덕분에 지하 세계의 최강자가 될 수 있었으니.
그러나 최근, 인간들은 숨겨 놓았던 병력을 드러내며 올무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올무가 가장 꺼리는 최악의 적, 마법사가 수십 명이 넘는 데다 수호자라는 인간의 상위 개체도 다수 출몰했다는 사실에 뮈슈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인간들이 이 정도 세력을 일구고 있음을 미리 파악하고 조절해야 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기에.
심지어 최근에는 대형 거주지 하나가 습격당해 전멸했는데, 정황상 인간들의 기습 공격일 가능성이 컸다.
그를 믿고 사령관 자리를 준 왕의 체면을 훼손했다 생각하면, 뮈슈는 당장이라도 제 목을 자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부하 하나가 막사를 열고 그를 불렀다.
“사령관, 방문자, 왔다.”
“들여보내.”
이내 들어온 것은 젊은 영웅이었다. 아마 뮈슈의 절반, 어쩌면 그 절반의 반도 살지 않았을, 어린아이를 갓 벗어난 듯한 앳된 생김새의 올무.
하지만 뮈슈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 올무는 왕의 전언을 가져왔음을 증명하는 띠를 두르고 있었기에.
오만하게 고개를 주억인 젊은 영웅이 선언했다.
“왕의 전언이다.”
“말해라.”
“큰 소리를 내는 창, 그것을 쓰는 특이 개체를 산 채로 잡아 오라는 명령이다.”
어떤 존재를 말하는지 곧장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에 출몰한, 엄청난 굉음을 토하는 창을 쓰는 특이 개체는 이미 올무 사회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를 죽이는 것도 아니고 잡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그렇기에, 뮈슈는 왕이 분명 한 가지 명령을 더 내렸을 거라고 예상하고 묵묵히 기다렸다.
잠시 후, 예상하던 말이 들려오자 그는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사납기 짝이 없는, 늑대 같은 웃음을.
“직접 싸우는 것을 허용한다.”
사령관 계급은 왕의 명령 없이 함부로 싸워서는 안 된다는 계율이 존재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뮈슈는 진작에 인간들을 때려잡고자 뛰쳐나갔을 터였다.
쇠뇌와 칼을 들고 싸운 것은 꽤 예전 일이나, 본래 뮈슈는 같은 올무 영웅 중에서도 적수가 거의 없는 강자였기에.
왕의 허락을 받았으니 행동을 망설일 이유는 없는바, 뮈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신호를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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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길게 뺀 뮈슈의 입에서 기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간이나 다른 지하 생물에게는 들리지 않는, 올무 특유의 고음.
정해진 신호에 따라 소리를 내자 이는 그들이 주둔하고 있는 본거지 전체로 퍼져나갔으며, 곧 그들에 의해 지하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사령관 참전, 전원 집합!-
신호가 가고 몇 초 뒤, 주둔지 곳곳에서 같은 방식으로 환호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린 동포들은 전설적인 사령관이 자신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에, 그들을 위협하는 괴물에 맞설 강자가 등장한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어찌나 환호해대는지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뮈슈! 뮈슈!-
-사령관!-
동포들의 환호 속에서, 뮈슈는 무기를 들었다.
왕이 그에게 직접 내린 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