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66)
올무, 올무, 더 많은 올무.
그야말로 까마득하다고 말할 정도로 많은 수의 올무들이 돌아다니며 지하 통로 전역을 훑었다.
그 수는 명확히 세지 않았으나 적어도 오천 명은 넘어, 이들이 동시에 한 곳에 모일 큰 통로가 없을 지경이었다.
무장한 올무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광경에 한 늙은 올무가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이렇게 많은 수가 모이다니, 정말 멋진 광경이야. 그렇지 않나? 친구들?”
올무 영웅, 로크가 유쾌한 어조로 중얼거리며 두 손을 벌렸다. 경박한 태도와 언행에 다른 동료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그를 타박했다.
“그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니다, 로크.”
“이미 꽤 시간이 지났는 데도 인간 토벌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지 않나.”
로크는 사령관이었고, 그중에서도 이번 임무에서는 총사령관을 맡았다.
그에게 불평하는 두 동료, 타엠과 밧타 역시 사령관이었으나 지금은 로크의 부하일 뿐이었다.
로크는 그 사실이 참을 수 없이 좋았으며, 자신이 거의 5천에 달하는 올무들을 통솔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즐거웠다.
권력이란 어찌 이리도 달콤한 것인지.
“여유를 가져라. 놈들은 발악하고 있을 뿐이니. 오히려 멸망하지 않을 정도로 잘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나 기억해두고 있도록. 이는 왕이 직접 명령한 것이다.”
로크는 토벌 대상인 인간들이 하나같이 거주지를 버리고 통로 안쪽으로 깊숙이 숨었으며, 이를 추적하고자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 봐야 궁지에 몰린 쥐새끼들의 발악이지 않은가.
이 지하 세계는 넓고 방대하나 결국 그 끝은 존재했고, 이렇게 많은 수의 올무들이 포위망을 짜고 조여들고 있으니 결국에는 잡힐 터였다.
어차피 승리는 확정되어 있는 만큼, 무리한 추격으로 병력을 잃는 것보다는 여유롭게 가자는 것이 로크의 의견이었다.
“음.”
“불길한데.”
그가 보기에 저들의 경고는 그저 총사령관이 되지 못한 젊은이들의 추한 질투에 불과했다.
로크는 껄껄 웃으며 다시 한번 지시했다. 느리게 가도 좋으니 샅샅이 뒤지라는 지시를.
* * *
“숫자, 적다. 일, 힘들다.”
올무 바쟈는 불평과 함께 순찰용 망토를 내려놓았다.
그가 있는 방어 진지의 풍경은 황량했다.
본래 세 대의 화살 발사기를 사용할 수 있는 아홉 명에 예비 병력 아홉 더, 이를 통솔할 영웅까지 한 명 있는 것이 이 진지의 본래 편제였으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고작 여섯 명이었다.
최근 인간들의 준동으로 인해 대대적인 동원령이 내려져, 각 구역의 올무 중 상당수가 전투 병력으로 차출되어 전방으로 나간 탓이었다.
당연하지만 그 말은, 경비 구역에 남은 올무들이 평소보다 훨씬 더 큰 부담을 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인원이 적어졌는데 해야 할 일은 같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바쟈만 해도 본래는 선임 순찰자 정도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이 구역의 진지를 통솔하는 임시 대장 역할까지 해야 했다.
실로 한탄이 나오는 일이나, 평생 군인으로 살아야 하는 올무로서는 본래 군대라는 곳이 이런 것이려니 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쟈, 왔다.”
“이상은?”
“없다.”
구역 순찰자의 일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여유롭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보조 통로 이곳저곳을 순찰해야 하고, 전투를 대비해 무기를 정비해야 하고, 그러는 와중에도 자신이 맡은 구역의 경비를 해이하게 해서는 안 됐다.
그나마 적이 나타났을 때 물어보지 않고 쏴도 된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우파.”
“음?”
“연속, 닦아라.”
바쟈는 자신의 부사수 격인 부하, 우파에게 화살 발사기를 닦을 것을 지시한 뒤 피로한 몸을 의자에 파묻었다.
이곳이 그의 본래 거처가 있는 수도였다면 인간 노예를 시켜 따끈한 버섯 차라도 내오게 하련만.
불평하던 도중, 조금 전 지시를 내린 부하가 그를 불렀다.
“바쟈. 문제다.”
“무슨?”
“앞쪽, 동포, 죽었다.”
“얼마나?”
“전부. 조금 전.”
바쟈의 뇌는 순간 제 부하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잠시 공황 상태에 빠졌다.
그들이 있는 곳은 온갖 지하 생물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최전방 순찰 지대가 아니었다. 중앙 통로, 거기다 수도와도 그리 떨어지지 않은 지역이었다.
무언가가 그들에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앞에 설치된 관문을 몇 개씩 더 통과해야 하는 내지(內地)인데, 이런 곳에서 동포가 몰살당했다니. 도대체 어떻게? 아니, 그보다 누구에게?
“확실한가?”
“확실하다.”
막상 물어보는 바쟈 자신도 상대가 거짓을 말했거나 착각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파는 동족, 올무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는 개체였기에.
눈으로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도 그 존재를 감지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역으로 감지되던 것이 감지되지 않는 것으로 상대가 죽었다는 사실 역시 눈치챌 수 있었다.
바쟈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언했다.
“보고한다, 기다려라. 전원, 발사기, 준비.”
바쟈가 경계를 지시하자 다른 다섯 명 모두 알았노라고 답했다.
당연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위기감보다는 귀찮아하는 감정이 실려 있었고 행동도 굼떴다.
사실 빠르게 대비했다고 해도 방법이 있지는 않았겠으나, 이 느릿한 대처가 그들의 수명을 단축했다.
“알았······.”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대답하려던 부하의 목이 순식간에 하늘을 날았다.
너무 속도가 빨라서인지, 바쟈는 목을 자른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식별할 수 없었다. 알 수 있는 것은 하늘을 자유자재로 나는 정체불명의 무언가라는 것뿐.
갑작스레 닥친 생명의 위기에서, 바쟈는 재빨리 몸을 웅크리며 소리쳤다.
“모두, 엎드려라!”
바쟈는 그렇게 지시한 뒤, 재빨리 귀를 땅에 대었다.
공격자의 정체를 알아내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소리.’
두두두, 하는 기묘한 소음.
마수가 달리는 것과도 비슷했으나 들려오는 밀도 자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묵직했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다가온다기보단,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가 다가온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소리의 정체가 공격자일 것 같지는 않았다.
‘너무, 멀다.’
순식간에 우파의 목을 날려버린 공격의 범인이 이 발소리라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였다. 적어도 오백 미터 이상, 아무리 뛰어난 투사 무기라도 닿지 않을 거리였다.
그렇다면 공격자의 정체는 도대체?
고민에 빠질 새도 없이 바쟈는 목이 서늘해지는 기분에 자기도 모르게 제 목을 감쌌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액체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피······.’
순식간에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자, 바쟈는 그제야 자신의 목이 잘려 나갔음을 깨달았다.
올무 특유의 뛰어난 생명력 덕에 그는 머리를 잃은 몸통이 피를 분수처럼 뿜는 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허공을 부유하는 으스스한 원반 하나.
‘나래칼!’
바쟈는 저 무기가 위대한 올무 영웅 뮈슈의 보물임을 알고 있었다. 예전, 뮈슈의 부하로 복무한 적이 있었던 덕이었다.
이를 생각하는 도중에도, 바쟈의 목은 관성으로 인해 데굴데굴 구르며 주변 광경을 끊임없이 비추었다.
그와 비슷하게 목이 잘려 나간 부하들, 그리고 저 위에서 부드럽게 내려오는 날개 달린 금속 덩어리, 금속 덩어리에 탄 흑청색 갑주의 인간까지.
‘인간······.’
거기까지가 바쟈가 할 수 있는 생각의 끝이었다.
몸통을 잃어 피가 공급되지 않는 머리는 마침내 활동을 멈추었다.
* * *
모든 올무가 죽은 것을 확인한 뒤, 아르센은 엘로이즈에게 귀걸이로 신호를 보냈다.
아르센이 앞장서서 적을 제압하고, 엘로이즈는 본대에서 아르센이 제압했음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둘 사이의 소통이 사실상 전화 통화 수준임을 생각했을 때 놀랍도록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아르센은 착지한 비익조의 위에 누워, 호흡을 가다듬으며 최대한 몸을 편하게 하려 노력했다.
조금이라도 몸에 쌓인 피로를 풀어, 마력을 더 빨리 회복하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순조롭군.’
보통은 경계하지 않는 하늘이라는 공간을 점유한 뒤, 소리 없이 움직이는 나래칼을 이용해 적을 기습하는 전법은 썩 유용했다.
지금까지 여섯 개의 경계 구역을 피해 없이 돌파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했다.
아마 평상시라면 이렇게 간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르센이 몇 명을 죽이는 사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친다면, 그래서 몇 마리를 놓쳐 그들의 습격이 알려진다면 계획 자체가 그 의미를 잃을 터.
일이 잘 풀린 것은, 어디까지나 올무들이 인간과 싸우기 위해 병력을 모으느라 경비 병력을 평상시의 절반 이하로 줄인 덕이었다.
“아르센 경! 제가 왔습니다!”
마룬, 그리고 그가 이끄는 별부르미의 별동대원들이 가장 먼저 아르센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필요하다면 마법으로 화력 지원을 하기 위함이었다.
“왔습니까.”
“네! 바람처럼 빠르게 달려왔습니다!”
신나게 대답한 마룬은 요란하게 진에서 뛰어내리더니, 갑자기 주위를 휙휙 둘러보더니 물었다.
“다······죽은 거 맞죠?”
“네. 다 죽었습니다.”
하나같이 목이 잘려 죽은 올무의 시체를 보며 마룬은 살짝 겁먹은 얼굴로 이를 툭툭 찼다.
머리가 잘린 놈들이 벌떡 일어날까 봐 걱정하듯이.
“영웅 놈들은 없네요.”
“어차피 마수는 화살 발사기 정도로도 퇴치할 수 있으니, 일반 병사만 몇 명 남겨놓고 모조리 징집해간 모양입니다. 저희 쪽의 마법 전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졌을 테니까요.”
“으음.”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 모를 태도로 고개를 주억이던 마룬이 되물었다.
“그런데 아르센 경, 몸은 괜찮으십니까? 저 비익조란 놈이 마력 소모가 워낙 심한 물건이라.”
“괜찮습니다. 이번에 얻은 물건 중에 쓸모 있는 게 있어서요.”
뮈슈가 가진 물건 중에는 유물의 마력을 대신 소모하도록 하는. 일종의 보조 배터리 같은 물건도 있었다.
비익조를 띄우는 데 드는 마력은 이 보조 배터리에 의지하였기에 그나마 이런 공격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마 아르센 본인이 가진 마력만으로 이런 전진을 반복했다면 진작 드러누웠을 것이다.
“그나저나, 빨리 수도에 도착해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런 말 하긴 우습지만 따라가는 사람 중에도 지친 이들이 꽤 있어서요.”
“이제 멀지 않았습니다.”
아르센은 품에서 지도를 펼쳤다.
가주 에버릭에게 받은, 과거 인간들이 지하 세계에 제대로 된 세력을 갖추고 있던 시절의 지도.
그 지도를 통해 목적지까지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가를 유추할 수 있었다.
“이제 한 개, 혹은 두 개 정도만 부수면 수도일 겁니다.”
* * *
올무의 수도에는 이름이 없다. 애초에 올무란 땅에 이름을 붙이는 데 익숙하지 않은 족속들이어서 그렇다.
하지만 호칭 자체는 필요한바, 그들은 자기네 수도를 ‘검은 궁전’이라 불렀다.
수도 한가운데, 왕이 거주하는 건물의 명칭이기도 했다.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새카만 금속으로만 이루어져, 끊임없이 움직이는 기묘한 건물의 이름이었다.
준타는 강력한 올무 영웅으로 수도를, 검은 궁전을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은 사령관이었다.
수도에 주둔하고 있는 삼천 명의 병사와 쉰일곱 명의 영웅이 그의 부하였다.
물론 지금은 대대적인 차출로 그 수가 절반 가까이 줄기는 했지만 말이다.
‘오늘도 좋은 날이군.’
준타는 인간 노예가 만든 시계를 허리에 찬 뒤, 마찬가지로 노예가 끓인 차를 마시며 일과를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그의 옷 역시 인간들이 만든 것이었는데 지하에서는 비교적 드문, 마수의 털을 짜서 만든 옷이었다.
‘역시 인간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야.’
준타는 올무 영웅 중에서는 꽤 드문 인간 애호가였다. 인간을 동등한 지성체나 친구로 여긴다는 의미는 아니나, 소중한 애완동물이자 유용한 노예로서 아꼈다.
사실 이마저도 감지덕지로 여겨야 할 것이, 보통 올무들은 인간을 일 잘하는 벌레 정도로 여겼으며 부유한 이들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인간을 때려죽이기까지 했다.
그에 비해 준타는 지극히 훌륭한 주인이었다.
노예로 부리는 인간이 다치거나 아프면 약을 주기도 했고, 남녀를 접붙일 때도 그들이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지를 섬세히 관찰해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배려할 정도였다.
그래서 준타를 섬기는 인간 노예들은 그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다른 올무들에 비하면 더없이 상냥한 주인이었기에.
의자에 앉은 채, 준타는 바로 옆에 선 인간 노예를 보며 물었다.
“아침은 뭐지?”
“구운 땅돼지 갈비에 볶은 그을음버섯입니다.”
“좋군.”
준타는 아침 식사가 무엇인지를 전해 들은 뒤 유쾌하다는 듯 웃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기에.
그러나 잠시 후, 사저(私邸)로 달려온 부하 하나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왔다. 아침 식사 따위는 생각나지도 않을 소식을.
“뭐라고? 잠깐······다시, 다시 말해봐라.”
“큰길, 동포, 죽었다. 적, 온다.”
“그러니까 적이 오고 있다 이거냐? 이 수도로?”
“그렇다.”
“얼마나 가깝지?”
준타의 질문에 부하가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다 왔다. 마지막 방어선, 죽었다.”
준타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일 초가 시급한 순간이었기에.
“오늘 식사는 다녀와서 하지!”
노예에게 그렇게 외친 준타는 목을 길게 빼며 고음을 내질렀다.
수도에 있는 모든 올무가 들을 수 있도록.
-전투 준비! 모두 무장하고 집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