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83)
“어디, 받아 봐라!”
사선으로 파고드는, 걸리는 순간 그대로 몸의 절반이 날아갈 듯한 나르도크의 도끼.
이를 마주한 아르센의 머릿속에서는 수십 가지 해결책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이 방법은 이렇기에 불가, 저 방법은 저렇기에 불가, 또 다른 방법은······.
수십 가지 공략법이 떠오르고 사라지던 도중, 한 가지 생각이 벼락처럼 머리를 스쳤다.
아르센은 즉시 그 방법을 시행했다.
“음?!”
갑작스러운 빛과 굉음이 나르도크를 덮쳤다.
눈을 흐리는 빛, 그리고 정신을 흐트러트리는 굉음에 나르도크의 도끼가 기세를 잃고 흔들렸다.
아르센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창날의 끝부분으로 정확하게 도끼를 비껴냈다.
원뿔 형태인 창날을 따라 비스듬하게 미끄러진 도끼는 아슬아슬하게 아르센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
놈, 이라고 뒷말을 이을 여유는 없었다.
나르도크의 도끼를 비껴낸 아르센의 창이 곧장 그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온 탓이다.
“큭!”
나르도크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힘겹게 몸을 비틀어 창을 비껴냈다.
이쉬트의 창이 흉갑을 긁으며 불꽃을 튀겼다.
‘단단하다!’
나르도크의 갑옷은 보통 물건이 아닌 듯, 아르센의 일격에 쩍 갈라지기는 했으나 그 안의 피와 살을 보호하는 데는 성공했다. 이쉬트의 창이 가진 막강한 관통력을 생각했을 때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내구성이었다.
이에 가볍게 혀를 차며, 아르센은 다시 거리를 벌렸다. 조금 전과 같은 자력을 발휘하기 힘들 정도로 먼 거리까지.
나르도크가 크게 패인 갑옷을 쓱 훑으며 말했다.
“똑똑하군, 그런 방법을 쓴 건가.”
그의 말과 동시에, 아르센이 등에 매어두었던 폭발 투창이 우수수 떨어졌다.
“후우······.”
아르센은 등에서 느껴지는 얼얼함에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끌려가던 와중 공중에서 추진력을 얻기 위해, 그리고 순간적인 빛과 폭음으로 상대를 교란하기 위해 아르센은 준비해 두었던 폭발 투창을 한꺼번에 터트렸다. 이를 몸에 매단 채로.
한 자루를 터트렸다면 아르센 본인의 항마력에 가로막혀 그 위력이 턱없이 부족할 것이기에, 가진 모든 투창을 터뜨려야 했다.
하지만 덕분에 위기를 벗어났으며, 반격까지 가할 수 있었다. 비록 그 반격의 성과 자체는 변변찮았을지라도.
숨을 가다듬는 한편, 아르센은 나르도크의 한쪽 도끼를 보았다.
자력이 발휘되던 순간 빛나던 도끼에서는 처음부터 생겨나 있던 은은한 마법의 빛이 사라진 상태였다.
‘자석 주문은 일회용, 그게 아니면 재사용에 시간이 걸리는 건가?’
장담할 수는 없으나 상황상 그러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천천히 거리를 유지한 채, 아르센은 나래칼을 날려 나르도크를 견제했다.
날아들던 나래칼이 기묘한 역장에 가로막히며 쇠 갈리는 소리를 냈다.
“시끄럽기만 하군.”
원거리 무기는 먹히지 않는 것으로 보임, 아르센은 속으로 되뇌며 나래칼을 회수했다.
안 먹힌다는 것을 확인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마력 소모를 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다시 공격한다!’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기에, 아르센은 숨을 훅 들이쉰 뒤 다시 흑사자를 몰아 돌진했다.
“오라!”
느릿하게 들려오는 상대의 목소리, 아르센은 그대로 창을 찔러 그 부름에 응했다.
창과 도끼가 부딪치며 불꽃이 피어나, 잠시 주변이 소강상태가 될 정도의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격돌.
아르센과 나르도크는 그 호흡조차 멈춘 채,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공방전을 이어나갔다.
깡, 깡, 깡!
마치 수십 명이 거인이 동시에 쇠를 두들기듯, 일 초에 몇 번씩 무기가 충돌하며 굉음이 울렸다.
그들이 탄 사자와 곰은 매섭게 일진일퇴를 반복하며 거리를 가늠했고, 때로는 앞발을 휘두르고 이를 드러냈다.
주변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던 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기를 내려놓고 탄식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기사들조차도.
이는 그들이 보기에도 너무나 초월적인 광경이었던 탓이다.
“세상에······.”
“저들이 진정 사람인가?”
본래 기사란 한낱 인간이 대적하기에 너무나 초월적이라, 잘 단련된 기사는 평범한 전사 수십 명을 잡초처럼 썰어버릴 수 있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일반 전사들은 기사를 사람이 아닌 초인으로, 절대적인 강자로 여겼다.
그리고 지금 그 초인, 기사들은 아르센과 나르도크라는 두 기사를 보며 일반인들이 기사를 볼 때와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는, 그저 무수한 희생을 내며 숫자로 찍어눌러야만 상대할 수 있는 포식자를 보는 기분을.
물론 그런 그들의 감상과 달리, 직접 싸우고 있는 아르센으로서는 그저 죽을 노릇이었을 뿐이다.
‘숨이 막히는군.’
그간의 모험을 통해 아르센은 어마어마하게 강해졌다.
힘도, 속도도, 심지어 기술도.
슬슬 크렌에게 배운 고위 기사 특유의 움직임을 거의 다 습득했고, 두 번째 정수를 흡수한 뒤로 이것 역시 적응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이라면 크렌과 싸워 이길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르센은 상대를 압도할 수 없었다.
압도적인 체격 차로 인한 거리와 완력의 차이가,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전투 경험의 차이가 여전히 둘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나마 갓 유적 도시를 방문할 무렵의 실력이었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참패했을 테니, 그간의 성장 덕분에 이 정도로 버틸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리라.
‘내지른다, 쳐낸다, 튕겨낸다, 피한다, 흘린다······.’
아르센은 의식을 최고로 가속한 채 상대의 움직임을, 그 전조를 읽어내는 것에 집중했다.
동시에 상대가 움직이는 방식을 직접 머리로 학습하려 노력했다. 과거 팔라토의 가르침을 되뇌며.
-자네의 특기는 특별하다네.
-어떤 점이 말입니까?
-싸우면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말이지.
-생각······.
-보통,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 싸울 때는 생각을 할 여유 따위는 없다네. 머리를 비우고, 모든 것을 본능에 맡기고 한 수 한 수를 따라가고 앞지르는 것에만 정신을 집중해야 하지.
-그렇죠.
아르센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사고를 가속하지 않을 때는 그저 유난히 반사신경이 뛰어난 편인 기사에 불과했기에.
그런 그에게, 팔라토가 무엇이라고 조언을 남겼던가?
-그러니까, 싸울 때는 그 무기를 잘 활용하게.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야말로 진짜 무기인 법이니.
‘생각해라.’
상대의 움직임을 본능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분석하고 앞의 한 수를 계획하는 것.
보통 사람은 물론 달인조차 이를 의식하기는 힘들다. 모름지기 무기를 주고받는 공방전이란 너무나도 빠른 법이기에, 그들은 수십 가지 형(形)을 수련하여 특정 순간, 미리 몸에 입력된 움직임이 자동으로 실행되도록 훈련한다.
하지만 아르센은 달랐다. 그는 특별했다.
‘다음 공격은 내려찍기, 조금 전에는 창으로 흘렸고, 이번에는 피할까? 세로 다음은 가로 공격이군. 이건 허리를 꺾어서 피하고 거리를 조금 벌리며 찌르기로 견제, 다음에는······.’
사고 가속을 사용한 지 시간이 꽤 지난 탓인지 두통이 밀려왔으나, 아르센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판단한 뒤 움직였다.
이 치열한 공방전은 그렇기에 성립할 수 있었다.
‘신체 능력은 밀리고 기술 역시 저쪽이 우위······아니, 특기 덕분에 반반쯤인가?’
전투에 있어 신체 능력과 기술로 앞설 수 있다면, 마지막 수단은 신체 외적인 것을 이용하는 방법뿐.
아르센은 무슨 고대 무사도의 신봉자처럼 외물(外物)에 의지하는 것을 꺼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일회용 유물 같은 물건 역시 사용자 본인의 기량인바,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뭐든 사용해서라도 이겨야 하는 법이다.
그게 아니면 동료라도.
이를 위해, 전투 중에도 끊임없이 눈을 돌리며 주변 지형을 확인하던 아르센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슬쩍 몸을 뺐다.
당연히 나르도크는 쉴 틈을 주지 않고자 기세를 몰아 전진했다.
‘지쳤군, 이제 끝이다!’
사고 가속 특기를 계속 사용하느라 두통을 느끼고 있는 아르센과 달리, 나르도크는 아직 쌩쌩했다.
비약, 용의 심장이 그의 안에서 맥동하며 막대한 활력을 선사하고 있는 탓이었다.
그는 아직도 반나절은 지치지 않고 싸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르센을 우습게 보지는 않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애송이로군, 십 년, 아니 오 년 정도 뒤에 싸웠다면 내가 졌다.’
나르도크가 태어나 무예를 수련한 것이 갓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부터이니, 아마 사십 년은 족히 넘었으리라.
그에 비해, 투구가 깨지고 드러난 적수의 얼굴은 너무나도 어렸다. 아마 그가 수련한 시간의 절반도 살지 않았을, 그의 아들보다도 어린 애송이.
그러나 그 애송이의 능력과 기량은 이미 나르도크의 턱밑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끝낸다!’
사실 나르도크 역시 아무 페널티 없이 싸움에 임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르센을 상대하는 데 있어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는 요소가 하나 존재했다.
-가능하면 적을 죽이지 말고 생포할 것.
전투 전, 그가 휘하의 모든 병력에 지시한 내용이었다.
목숨을 건 싸움에 있어 이런 명령이라니, 당연히 어이없는 망언이지만 이런 지시를 내려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계승자를, 도서관을 불러올 열쇠를 죽이는 실수는 한 번이면 족했던 탓이다.
이는 나르도크 본인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라, 지금도 그는 아르센을 몰아붙일지언정 죽음에 이를 만한 일격을 가할 수는 없었다.
낮은 확률일지언정, 혹시나 상대가 계승자라면 과거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기에.
‘하지만 지금이라면 제압할 수 있다!’
상대는 지쳤는지 조금씩 반응도 둔해지고 있었으며, 계속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것이 전의를 잃은 기색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가며 나르도크는 맹렬하게 두 자루 도끼를 휘둘렀다.
마침내, 깡 소리와 함께 아르센이 창을 놓쳤다.
나르도크는 타고 있는 뿔곰을 조작, 바닥을 구르는 아르센의 창을 앞발로 쳐내 저 멀리 튕겨내어 상대의 무장을 해제시켰다.
“큭!”
“잡았다!”
외치는 것과 함께, 나르도크는 순간 마음을 놓았다.
상대의 가장 강력한 무기조차 그의 갑옷을 뚫을 정도는 아님을 알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아르센이 일부러 그를 이곳으로 끌고 온 것임을, 악력이 다해 창을 놓친 것이 아니라 일부러 놓은 것임을 짐작조차 하지 않았다.
갑자기 땅이 푹 꺼지며 그가 탄 뿔곰의 발이 빠져드는 순간까지도.
“흡······!”
푹 소리를 내며 갑자기 꺼져 드는 바닥.
가뜩이나 방심하고 있던 순간이라, 나르도크는 잠시 경악에 빠져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판단하지 못했다.
이 간단한 함정을 만든 것은 엘로이즈였다.
‘됐다!’
엘로이즈는 치열한 싸움 와중에도, 귀걸이를 통해 아르센이 요청한 대로 가시덩굴을 땅속으로 뻗어 땅 일부를 파내고 그 안쪽을 채웠다.
그리고 아르센의 인도에 따라 나르도크가 그 위에 올라선 순간, 신호를 받고 덩굴 주문을 해제해 버렸다.
당연히 지지기반을 잃은 땅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푹 꺼질 수밖에 없었다.
본래 키는 물론, 타고 있는 진의 크기 차이로 인해 아르센과 나르도크의 눈높이 차이는 거의 1미터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 나르도크의 발밑이 푹 꺼짐으로써 두 사람의 눈높이는 동등해졌다.
그런 상대를 향해, 아르센은 보석 하나를 들고 돌진했다.
“도대체 무슨!”
보석을 손으로 감아쥔 상태였기에, 이는 나르도크가 보기에는 그냥 자살 돌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당황하는 한편 그는 도끼의 옆날로 아르센의 얼굴을 후려갈기려 했다.
죽이지 않고 제압하기 위한 수법이었다.
‘버틴다!’
아르센은 날아오는 도끼날을 보고도 눈을 감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 믿음에 부응하여, 아르센의 얼굴 옆에서 생겨난 역장이 거인왕의 도끼를 막아냈다.
“이건?”
아르센이 입고 있는 유물 갑주, 본래 포효하는 자나크가 소유하고 있던 이 갑주에는 독특한 기능이 있었다.
바로 투구를 쓰지 않았을 때 머리 부분으로 향하는 공격을 보호해주는 기능이었다.
아눈은 이 기능을 몰라 자나크에게 패했으며, 이를 미리 아르센에게 일러 주었던 덕에 아르센은 머리를 공격하지 않고 상대의 목을 조르는 식으로 우회하여 승리할 수 있었다.
상대가 공격이 막혀 당혹한 틈을 놓치지 않고, 아르센은 원거리 공격을 튕겨내는 역장 안쪽까지 손을 쑥 집어넣어 보석을 놓은 뒤 다시 몸을 뒤로 날렸다.
보석은 과거 올무 영웅, 뮈슈가 상황을 역전할 마지막 한 발로 간직하고 있던 물건이었다. 그 안에 담긴 마법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위험했노라고 한숨을 내쉴 정도로 막강한 힘이 담긴.
“크, 아아아아악-!”
아르센이 물러나자마자, 보석에서 솟구친 검붉은 액체가 순식간에 나르도크의 온몸을 뒤덮고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타는 물.
고대인들이 병기로 사용했던, 기사의 항마력으로도 이겨낼 수 없는 강력한 생화학 병기가 그 액체의 정체였다.
“으오오오오-!”
불타는 갑옷 안에서 처절하기까지 한 절규가 들려왔다.
불타는 물은 순식간에 나르도크의 갑주 전체를 뒤덮은 채, 끊임없이 갑옷 안쪽을 달구었다.
나르도크는 그대로 진에서 뛰어내린 뒤 미친 듯이 땅을 구르기 시작했다. 온몸을 화려하게 불사르는 그 모습은, 어떤 의미에서는 불의 화신과도 같았다.
‘먹혔다······.’
나르도크의 방어 역장이 보석의 공격을 막아낼 가능성, 갑옷이 불타는 물조차 저항할 가능성, 나르도크가 침착하게 보석을 쳐내거나 피할 가능성까지.
실패할 모든 가능성을 고려한 뒤 시도한 도박이었다.
안도감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억지로 누르며, 아르센은 나르도크를 끝장내고자 어딘가로 날아간 드릴 창 대신 새로운 무기를 꺼냈다.
조심스럽게 사용해야만 하는 비밀병기, 철퇴를.
이를 내려찍어 나르도크를 끝장내려던 순간, 아르센의 앞을 막는 존재가 있었다.
“폐하를 보호해라!”
“저 괴물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
“마법사들! 빨리 불을 꺼!”
아르센의 동료들을 몰아붙이고 천천히 제압하려 들던 왕국의 군대가 일제히 돌아서서 아르센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구석에 몰린 채 천천히 짓눌리고 있던 아르센의 군대가 고개를 돌린 상대에게 맹렬히 반격을 가했기에.
“크헉!”
“빨리 죽여! 이 새끼들이 형님에게 못 가게 막아!”
“아르센 경을 도와라!”
바즈칼이 악을 쓰며 바람 도끼를 휘두르며 기사 두 명의 목을 순식간에 땄다.
그러나 창이, 칼이, 화살이 몸을 찢는 와중에도 왕국의 기사들은 자기들의 왕을 보호하고자 아르센에게 덤벼들었다.
그를 둥글게 포위한 채 무기를 들이대는 십여 명의 기사.
그들을 보며, 아르센은 타고 있는 사자와 같은 기세로 포효했다.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