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89)
쇠뇌를 들어 겨누는 아르센의 기사들, 그리고 천천히 회전하며 굉음을 토해내기 시작하는 창.
그 모습이 전투를 준비하는 모습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기에, 맞은편에 있던 벨루안의 군대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진짜 싸울 생각인가?”
“라뮌 경!”
막상 무기를 들기는 했으나, 벨루안의 군대는 상대와 싸울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라뮌과 같은 통찰력이 없는 그들이 보기에 자기들과 맞먹는, 그 이상의 수를 자랑하는 기사들과 셀 수 없이 많은 마법사는 충분히 위협적인 적이었다.
우습게도, 때로는 더 많이 알고 보이는 자보다 무지한 자의 생각이 맞을 때가 있는 법이다.
아르센으로서는 이들이 덤벼 주는 쪽이 반가웠다.
여기서 ‘아, 영주님을 구할 수 있다니 다행이다!’ 하고 어물쩍 물러선다면 오히려 처리하기 까다로웠을 테니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일어난 영주가 사리 분별이 흐려져 이들을 용서하기라도 하면 곤란할 터다.
“이길 수 있다! 나를 믿어라!”
당당하게 외친 라뮌이 그대로 진을 몰아 아르센을 향해 돌진했다. 바로 옆, 아문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둘의 당당한 기세에, 결국 그들의 패거리 역시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물러서!”
“싸움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기웃거리던 주민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만한 수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영지 한복판에서 격돌한다니, 평화로운 삶을 구가하던 이들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 비명 속에서, 아문드가 크게 외쳤다.
“엘로이즈 아가씨의 안전에 주의하라!”
아르센에게 그 말은, 기회만 되면 엘로이즈를 찔러 죽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아마 실제로도 다른 뜻은 아닐 것이다.
선두에 나선 아르센을 맞이한 것은 라뮌과 아문드, 두 명이었다.
그들은 아르센의 좌우를 점한 채,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일대일로 아르센을 꺾을 자신은 있었으나, 상대가 경솔하게 나선 만큼 협공으로 빠르게 해치우는 편이 나았다.
“라뮌 경!”
“알았다!”
라뮌의 장검, 아문드의 도끼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위치에서 절묘한 각을 이루며 날아들었다.
지금이야 서로 대립하는 세력의 수장이라 한들, 그들은 십수 년도 넘게 한 영지에서 싸워온 동료였다.
당연히 서로 호흡을 맞춰본 경험이 있었다.
‘능숙하군!’
확실히, 벨루안의 기사는 대륙 전체를 놓고 봐도 그 수준이 높았다. 고립된 위치에도 불구하고 마수와 약탈자의 습격이 잦아 많은 실전을 겪을 수 있으며, 내부에서는 무예를 갈고 닦기 좋게 시스템이 잘 발전된 덕분이리라.
아마 벨루안을 떠나기 전의 아르센이라면 이 일격을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느릿하게 날아오는 것이 보일지언정 그 정밀한 궤도를, 담겨있는 힘과 속도를 이겨낼 수 없기에.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흡!”
채챙, 하고 장검과 도끼에서 불꽃이 튀었다.
벨루안이 자랑하는 금속, 흑성철로 만들어진 무기는 이쉬트의 창에 부딪히고도 한 방에 부러지지 않았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저 부러지지 않은 것이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흉하게 휘어버린 꼴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아니, 무슨 창이······.”
“제길!”
라뮌은 영지 최강의 기사답게, 우그러진 도끼를 들고 당황하는 아문드와 달리 재빨리 예비 장검을 뽑아 맞섰다.
다시 몇 차례 무기를 나누자, 이번에는 한방에 무기가 휘는 일 없이 꽤 순탄하게 막아낼 수 있었다.
창의 드릴 부분이 아닌, 자루를 후려쳐가며 공격을 막아낸 덕분이었다.
이를 보며 아르센은 내심 감탄했다.
‘역시, 대단한 특기군.’
라뮌의 특기가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선행예지, 정확히는 예지에 가까울 정도로 발달한 직감.
이 능력 덕에 라뮌은 많은 수의 기사와도 겨룰 수 있으며, 약한 기사를 이변의 없이 확실하게 짓밟을 수 있었다.
그가 다른 기사들에게 단 한 번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으며 영지 최강으로 군림한 것 역시 이 특기 덕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강력한 특기는 라뮌을 승리로 이끌어줄 수 없었다. 그저 예정된 패배를 조금 늦출 뿐.
이는 압도적인 기초 능력의 차이 때문이었다.
“크윽!”
무시무시한 압박감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는 한편, 라뮌은 내심 경악했다.
상대는 일 년 전까지만 해도 무난하게 제압할 수 있던 그 애송이가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몰라도 힘과 속도, 기술까지 모든 능력이 상식을 벗어난 수준으로 성장한 상태였다.
엄밀히 말해 아직도 기술 자체는 자신이 조금 위였지만, 힘과 속도가 말도 안 되게 차이가 났다.
‘괴물인가!’
직감이 속삭이는 대로 미리 무기를 가져다 막고 있음에도, 상대의 공격을 그저 따라가기조차 벅찼다.
머리, 가슴, 팔, 복부.
창이 어디를 찌르는지 예측할 수 있음에도, 그래서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방어를 준비했음에도 여유는 없었다.
아르센이 초월적인 반사신경으로 라뮌의 방어 동작을 읽은 뒤, 이에 맞춰 공격 궤도를 바꾼 탓이었다.
충돌할 때마다 마수에게 정면으로 치인 것 같은 충격이 몰려와, 라뮌은 다섯 번째 격돌 후 재빨리 뒤로 도약했다. 잠시라도 숨을 돌린 뒤 맞서기 위함이었다.
“커헉!”
갑작스럽게 들려온 비명, 이에 시선을 돌려 보니 배에 구멍이 난 채 무력하게 쓰러지는 아문드가 보였다.
그나마 어느 정도 방어전이 가능했던 라뮌과 달리, 아문드는 라뮌이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자 물러서는 시간조차 버티지 못하고 당한 것이다.
아문드 역시 실력 없는 기사는 아니었지만, 냉정히 말해 라뮌과는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
남쪽 영지와의 전쟁 당시만 해도 결투에서 패해 팔이 부러지는 수모를 겪지 않았던가.
벨루안에 있던 시절의 아르센보다도 약한 기사가 지금의 아르센을 몇 초 이상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도대체, 무슨······.”
경악도 잠시, 라뮌은 잠시 여유가 생긴 틈에 주위의 상황을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전장은 벨루안 쪽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전투의 시작을 알린 것은 마법사들이었다.
그들이 힘을 합쳐 빛나는 손을 뻗자 무시무시한 한파(寒波)가 몰아쳐 벨루안의 군대를 뒤덮었다.
한참 추워지는 시기라 따뜻하게 차려입었음에도, 마치 알몸으로 한겨울에 내던져진 것 같은 추위가 엄습했다.
이 공격은 기사들에게는 별 타격을 주지 못했으나 백수십 명이 넘는 병사들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사십 명이 넘는 마법사들의 합작품다운 결과였다.
굳이 냉기 주문을 사용한 것은 그나마 사망자를 덜 내기 위함이었다. 아마 화염 주문을 사용했다면 그들은 추위에 떨며 주저앉는 대신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며 불타 죽었을 것이다. 남부 왕국의 군대가 그랬듯이.
그런 한파를 어떻게든 한파를 견뎌낸다 해도 희망은 없었다. 빙결 주문에 합류하지 않은 엘로이즈가 덩굴 주문을 시전, 둥근 울타리를 만들어 그들을 포위한 탓이다.
이 덩굴의 가시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한번 붙들리면 얼마나 강한 힘으로 죄어오는지 알고 있는 이들은 자기들을 둘러싼 덩굴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몇몇 무지한 자들만이 울타리를 탈출하려다가 붙들려 비명을 질렀다.
한파는 견뎌냈다 한들, 기사 역시 무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전투 시작과 함께 날아든 쇠뇌 세례를 뒤집어쓰며 비명을 질러야 했으며, 뒤이어 날아든 빙결 주문에 얻어맞아 온몸에 얼음을 주렁주렁 달게 되었다.
별부르미의 마법사들은 잘 알고 있었다. 항마력 탓에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기사의 행동 자체를 방해하는 데는 빙결 주문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렇게 기세가 꺾인 상황에서, 그들은 바즈칼과 리노라는 두 고위 기사의 습격을 받아야 했다.
“이런 썅, 막아!”
“이 새끼들 무슨 힘이······!”
바즈칼과 리노, 둘의 전투 기술은 냉정히 말해 벨루안의 기사 중에서는 평균 이하, 조금 과장해 밑바닥이었다.
둘 다 기사로서 제대로 수련한 것은 고작 일 년 내외거나 그 정도도 되지 않으며, 벨루안의 기사들은 적어도 몇 년에서 몇십 년을 대인 전투 기술에 투자한 달인들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상대와 무기를 교환하는 전통적인 전투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압도적인 힘과 반사신경, 단단한 유물 갑주를 믿고 적 사이로 침투해 난전을 유도했다.
“으하하하!”
바즈칼은 도끼를 쥐지 않은 손을 뻗어, 다소 방심하고 있던 적 기사 한 명을 붙잡았다.
상대를 붕 띄운 뒤 다리를 잡아 수건처럼 휘두르자, 그를 노리고 덤벼들던 다른 기사 두 명이 기겁하며 물러섰다.
그 와중, 한 기사는 실수로 자기 동료를 찌르기까지 했다.
“미, 미안!”
사과와 동시에, 옆에서 쾅 소리가 나더니 동료 기사 한 명이 하늘을 날았다.
이에 놀랄 새도 없이 누군가의 창이 그의 배를 꿰뚫었다.
“컥!”
리노가 기사 한 명을 몸통박치기로 날려버리며 덤벼든다는, 상식을 초월한 공격방식으로 상대를 공략한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리노는 바즈칼을 따라 기사를 꿴 창을 마구 휘두르며 근처의 적들을 위협했다.
창에 꿰인 기사가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그렇게 두 고위 기사가 혼란을 부추기는 사이, 재장전을 마친 아르센의 기사들이 다시 한번 쇠뇌 사격을 가했다.
그나마 이를 간신히 뚫고 아르센의 기사들에게 접근한 이가 한두 명 있었으나, 마룬이 이들을 쫓아냈다.
과거 나르비크에서 얻은 충격 지팡이가 오랜만에 빛을 발했다.
“커헉!”
꽝, 하는 굉음과 함께 충격파를 얻어맞은 기사 두어 명이 그대로 진에서 굴러 떨어졌다.
마법사들이 놓치지 않고 그 기사들을 향해 계속해서 빙결 주문을 날려 움직임을 방해하자, 마룬은 재빨리 활을 빼든 뒤 마법 화살을 날렸다.
불타는 화살은 버둥대던 기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하핫, 어떠냐!”
마룬이 간사하게 웃으며 진을 조작해 탭댄스를 추었다. 세상에서 제일 얄미운 모습으로.
그야말로 일방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전투 상황.
마침내,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한 벨루안 쪽의 기사와 병사 중 일부가 무기를 던지며 외쳤다.
“하, 항복!”
“그만! 그마안!”
이미 벨루안의 군대는 겁에 질려 있었다.
미처 상상하지도 못한 두 고위 기사의 충격적인 파괴력에 병사들을 일제히 무력화시키는 마법 전력, 기사의 갑옷을 우습게 꿰뚫는 쇠뇌 공격까지.
결정적으로 가장 먼저 나섰던 라뮌과 아문드가 형편없이 밀리는 꼴을 보았기에, 그들의 사기는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하다못해 이것이 명예로운 싸움이라면, 마수나 적 영지에 맞선 싸움이라면 목숨을 걸고 싸웠겠으나 한낱 권력 싸움에 그 정도 사명감을 부여하고 있는 이는 없었다.
“하······.”
누가 봐도 승부가 갈린 상황, 라뮌은 자기도 모르게 검을 쥔 손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어이가 없군.”
“라뮌 경.”
그의 앞에, 검은 사자를 탄 괴물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라뮌은 이제 이 젊은 기사를 어떤 눈으로 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고작 일 년, 누군가는 무료하게 소일하며 날려버릴 수 있는 짧은 시간 동안 말도 안 되는 성장을 이뤄낸 괴물을.
“뭐지?”
“왜 영주님을 독살하려고 한 겁니까?”
사실 대답을 기대하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아직 주변에 듣는 귀가 적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그냥 한 번쯤 물어보고 싶었을 뿐이기도 하고, 이 싸움이 일어나야 했던 이유를 주변에 슬쩍 흘리기 위함이기도 했다.
과연, 라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부정했다.
“왜 내가 영주님을 독살했다고 생각하지? 터무니없는 모함이다. 오히려 수상한 건 자네지. 도망치듯 영지를 나서서, 고작 일 년 만에 이런 군대를 끌고 오다니······.”
라뮌의 추궁에 아르센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생각한 게 아니라, 확신합니다. 제가 직접 그 장면을 보기도 했으니까요. 마법의 힘으로 말이죠.”
“마법이면 뭐든 다 된다고 우길 참인가? 어쨌든, 대단하기는 하군. 빌어먹게도.”
주변 상황을 둘러본 라뮌이 씹어 뱉듯이 말했다.
벨루안의 군대는 아르센의 부하들과 비교했을 때 그 전력에서 그리 밀리지 않았다.
기사의 수는 조금 부족하나 대신 하나하나 기량이 출중하며, 몇 배는 많은 병사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그중에서도 상당수는 종자라 불리는, 기사가 되기 위해 혹독하게 단련하는 초인 예비군이었기에 그 실력이 평범한 병사와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났다.
아마 그들이 정면으로 겨뤘다면, 승부는 벨루안 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
아직 미숙한 아르센의 기사들은 종자 몇 명이 철저한 대(對)기사 전술로 맞서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으며, 바즈칼과 리노 역시 아직 기술이 모자란 탓에 기사들이 침착하게 합을 맞춰 사냥하듯 싸운다면 버틸 수 없었을 터.
하지만 지금, 그들은 제대로 싸움조차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제압당했다. 항마력이 없는 병사들은 마법 공세에 무너지고, 대규모 마법 방해에 직면해본 적 없는 기사들이 당황한 사이에 쇠뇌와 고위 기사의 공격을 받아 무너진 것이다.
아르센의 부하들은 전투 기술이 미숙할지언정 전쟁 자체는 절대로 초보가 아니었다.
이미 이런 싸움을 몇 차례나 거친 그들은 철저한 분업을 통해 전투가 아닌 전쟁을 했고, 벨루안의 기사들은 뛰어난 기량을 펼칠 여지도 없이 압살당했다.
“말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별수 없죠. 아마 자세한 사정은 리다트 도련님, 아니 리다트도 알고 있을 테니까요.”
찌르듯이 말하는 것과 동시에, 아르센은 상대의 표정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상대의 눈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라뮌이 다소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와라.”
더는 대화할 것이 없다는 듯, 라뮌은 장검을 들어 아르센을 겨누었다.
‘슬슬 끝내야겠군. 어차피 목숨만 붙여 두면 되니까······.’
아르센은 숨을 훅 들이쉬며 온몸의 근육으로 산소를 공급했다. 호흡과 함께 마력이 올올히 깃든 근육이 꿈틀거렸다.
끓어오르듯 솟구치는 에너지. 이를 창 끝에 밀어넣으며, 아르센은 마지막 공세에 들어갔다.
‘간다!’
마력이 최대로 공급된 창은 조금 전보다도 더 큰 굉음을 토해내더니 라뮌을 향해 쏘아졌다.
얼핏 보기에는 머리를 노리고 솟구치는가 싶더니, 막으려고 시도하는 순간 뱀처럼 부드럽게 휘며 순식간에 몸통과 다리를 찔렀다. 그 공격은 조금 전보다도 한층 더 빨라져 있었기에 라뮌은 이를 악물었다.
‘조금 전까지는 봐준 거였나!’
굴욕감을 느낄 새도 없이, 날아드는 공격은 순식간에 라뮌의 방어를 찢어발겼다.
머리를 노리는 일격, 몸통을 노리는 이격, 마지막으로 다리를 노리는 삼격. 완전히 휘어 버린 라뮌의 장검은 세 번째 공격까지는 막아내지 못했다.
그 자신은 느끼지 못했지만, 라뮌은 이미 피로와 패배감으로 몸이 둔해진 상태였다.
아르센의 공격은 그런 상태에서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흡!”
콰드득, 무언가가 찢기는 소리가 들렸다.
끓어오르는 격통 덕분에 그것이 자신의 다리가 잘려나가는 소리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라뮌은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문 채, 그대로 진에서 떨어졌다.
“라뮌 경!”
“라뮌 경이 쓰러졌다!”
영지 최고의 기사가 쓰러지는 모습은 다른 이들의 사기를 떨어트리기에 충분했다.
마침내,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기사 몇 명이 그 모습을 보고는 무기를 내렸다.
지난 일 년, 벨루안에 드리웠던 먹구름이 걷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