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99)
“으.”
바크란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신음을 흘렸다.
지금 그는 하늘에 있었다. 정확한 높이는 모르겠으나, 아마 떨어지면 즉사하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높은 하늘에.
물론 몸에 비상용 반중력 장치를 달고 있으니 행여나 떨어진다고 해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나 어디 사람이 이성으로 공포를 통제할 수 있던가.
바크란의 그런 모습을 보며 예리코 교수가 씩 웃었다.
“비행차를 직접 타는 건 처음인가?”
“네, 교수님.”
바크란은 예리코 교수와 함께 비행차를 타고 하늘을 나는 중이었다.
최신 마법 공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이 물건은 더럽게 비싼 것은 물론, 관련 면허도 까다로워 일반인이 이렇게 마음대로 타고 다닐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물론 이 교수에게 그런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꽉 안 잡아도 되네. 안 떨어져.”
“네······.”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속으로만 되뇌며 바크란은 좌석 손잡이를 쥔 손이 하얗게 되도록 힘을 주었다.
어두운 밤, 가로등의 불빛이 휙휙 지나가는 광경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이었다.
바람을 막는 장벽이 펼쳐져 있어 느껴지지는 않지만, 얼핏 봐도 지상을 달리는 마차의 몇 배쯤 되는 속도로 달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가도 되는 겁니까?”
“뭐가 말인가?”
“항공법이나 그런 거 말입니다. 맘대로 하늘을 날 수 없다고 정해진 거로 아는데······.”
개나 소나 이렇게 도시 상공을 날아다닐 수 있다면 뮤니크의 하늘은 진작 혼돈 그 자체가 되었을 것이다. 지상의 시민들은 쉼 없이 교통사고의 잔해를 뒤집어써야 했을 것이고.
비록 가난해서 타본 적은 없어도, 이렇게 마음대로 비행차를 타고 다니면 안 된다는 지식 정도는 있었다.
“괜찮네. 내가 시청에 내는 세금이 얼마인데! 걸려봐야 그냥 과태료 좀 물고 말지.”
바크란은 껄껄 웃는 교수의 얼굴을 잠시 광인처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하기야, 과태료를 그에게 내라고 우기지만 않으면 알 바 아니지 않겠는가.
특권 계층의 법을 무시하는 행사 역시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그렇게 가만히 매달려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가 보였다.
다소 인적이 드문 황야 한가운데, 휑하니 뚫린 구멍이 보였다.
교수는 비행차를 능숙하게 조종하여 그 안으로 쑥 들어가 착륙했다.
“다 왔네.”
교수가 바크란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박물관이었다. 채 정화 마법진이 완성되지 않고 분열하여 싸우던 시기, 그중에서도 아히탈 양식의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
이곳 박물관의 입구는 독특하게도 수직으로 내려가는 구멍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먼 옛날에는 이곳이 사막이었다더군. 사막 안쪽에 비밀스럽게 시설을 감춰놓았다는 거야. 적대적인 집단에 습격당할까 두려워서 말이지. 지금 생각하면 참 희한한 이야기 아닌가?”
“그야 뭐, 지금과 달리 당시 뮤니크 주에 있던 고대 도시국가는 인근의 다른 세력들과 적대적 관계였으니까요.”
“생각해보니 자네 역사학도였지? 이거 내가 괜히 아는 척을 했군. 이 박물관이 뭐인지도 알고 있나?”
“인형의 발상지 중 한 곳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 인류의 손발이라 할 수 있는 인형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마법 생물이었다.
인간과 유사한 생김새에 뛰어난 신체 능력, 항마력을 가진 전투 인형을 비롯하여 온갖 유사 형태가 존재하는 족속.
먼 옛날, 마법사들은 이 인형을 조종하여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전을 벌였다.
“잘 아는군.”
“몇 번 와본 적 있습니다.”
잠시 후, 마력차가 착륙하자 바크란은 다소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내렸다.
그 앞에 붉은 궁전과 같은 형상의 박물관이 보였다.
“언제 와도 여긴 흙먼지가 너무 심하단 말이지. 에잉, 나와라. 엘리야!”
교수의 외침에 호응하듯, 뒤쪽의 짐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바크란과 달리, 교수는 태연한 얼굴로 지시를 내렸다.
“지시한다, 엘리야. 이곳을 지켜라. 접근하는 이는 제압해라. 신변에 위협이 있을 시 인형 한정 살상을 허용한다.”
고개를 꾸벅 끄덕이는 이의 정체는 바로 교수가 다루는 호신용 전투 인형이었다. 이름은 엘리야.
부슬거리며 목까지 내려오는 은발에 정교한 이목구비, 전투 인형에게 어울리지 않는 가녀린 체구까지.
양 손에 든 마법 총기, 흰자위 없이 새파란 눈만 아니었다면 누구나 돌아볼 미인의 형상이었다.
개인이 구매하여 이용하는 이러한 호신용 전투 인형은 군용보다 그 성능은 낮으나, 일반인 정도는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이 역시 부유층의 전유물 중 하나였다.
“좋아. 엘리야가 막고 있으면 당분간은 절대 안 뚫릴 걸세. 설령 경찰이 오더라도 말이지.”
“호신용 인형이 그 정도가 됩니까?”
“내가 좀 개조했거든. 어지간한 군용 전투 인형 한두 기는 상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저 총도 어지간한 항마 장벽은 뚫을 수 있는 물건이고.”
뻐기듯 말한 예리코 교수는 이내 장난감을 자랑하는 아이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에서 숨 쉬듯이 불법을 넘나드는 범법자의 모습을 연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진입로를 차단한 뒤, 그들은 박물관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에도 교수는 입구의 암호 체계 역시 미리 뚫을 준비를 마쳐둔 뒤였다.
품에서 꺼낸 열쇠를 입구에 대자 문이 거침없이 열렸다.
“정문은 또 어떻게?”
“돈이면 안 되는 게 없지.”
당당하게 선언한 교수는 바크란을 보며 히죽 웃더니 덧붙였다.
“자네도 결국 돈 때문에 실험하러 온 거 아닌가.”
실로 맞는 말이라, 바크란은 그냥 고개를 돌리며 박물관 내부를 관찰했다.
이곳은 이미 몇 번 온 적 있는 곳이었다. 적어도 이 부근에 사는 역사학도라면 반드시 현장학습을 오는 곳이기에.
“흐음······.”
아름답게 조성된 정원, 그 안쪽에는 수없이 많은 유리관이 전시되어 있었다.
유리관 안에는 생물이 있었다.
굳이 생물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말 이외에 이 존재를 지칭할 이름이 마땅치 않은 탓이었다.
평범한 동물과 곤충, 심지어 식물의 특징까지 뒤섞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심될 정도로 혼란스러운 생김새를 한 족속들에게 붙일 이름을 떠올리기는 실로 난감한 일이었다.
이것들은 먼 옛날, 생명공학의 여명기에 만들어진 실험체였다. 불사 시술을 통해 아직도 생명을 이어나가는 이 불쌍한 생명체들은, 후학을 위한 견본이 되어 담겨 있었다.
“나 역시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교수로서 이런 선현들의 결과물을 보면 가슴이 떨린단 말이지.”
시시덕대던 교수가 바로 옆에 있는, 머리 높이만 보통 사람 신장의 두 배 높이는 될 생물을 가리켰다.
정말 이유는 짐작할 수 없지만, 놈은 다리가 있어야 할 곳에 머리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저런 놈이 진짜 살아서 움직인다니, 상상하기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이를 지나자, 초기형 전투 인형이 전시된 광장이 나왔다.
거대한 광장을 포위하듯, 수십 기의 전투 인형이 유리관 안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고전 양식에 맞게 온갖 옷을 입고 있었다.
이를 보던 바크란을 향해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저 인형들을 이용해서 미리 비상 방어 체계를 준비해 놓았네.”
“네?”
“우리가 들어가고 나서, 누군가 침입한다면 저 인형들이 튀어나와 막을 걸세. 저 전투 인형들은 하나하나가 부숴서는 안 될 문화재 아닌가? 아마 경찰들은 고생 좀 할 거야. 뭐, 인간 살상 금지 조항은 들어 있으니까 죽는 사람은 없을 걸세.”
무시무시한 말을 남긴 뒤, 교수는 잰걸음으로 전시관을 지나쳐 버렸다.
헐레벌떡 이를 따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최종 목적지인 도서관이 나타났다.
본래 책이 가득 꽂혀 있었을 이 도서관은 그 서가가 대체로 텅 비어 휑했는데, 대부분 서적이 검열을 위해 회수된 탓이었다. 남아있는 책은 요리책이나 개인적인 일기 등,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것에 불과했다.
그 도서관의 한편에 서서, 교수는 조심스럽게 빈 서가를 뒤적이더니 비밀 문을 열었다.
“들어가세.”
안쪽에는 비밀 실험실이 차려져 있었다. 묘한 빛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정체불명의 금속 기계들. 아마 생명 조형에 사용되는 특수한 마법적 기기일 것이다. 미리 듣기는 했으나 막상 실험실이 차려진 모습을 보고 나니 그 모양새가 기이했다.
아무리 비밀 유지를 위해서라지만 문화재나 다름없는 박물관의 벽을 훼손시켜가며 이런 실험실을 차리다니, 바크란은 역사학도로서 죄악감을 느꼈다.
“옷 벗고 거기 침대에 눕게. 마력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물건들은 따로 두고.”
바크란은 교수의 지시에 순순히 따랐다.
필기용으로 사용하는 마력 원반과 단말기, 회중시계, 지팡이를 탁자에 둔 뒤 옷을 벗어 접어 얹었다.
잠시 후, 교수가 묘한 금속관 몇 개를 바크란의 몸에 연결하기 시작했다.
“자, 기억해두게. 저 구슬로 잠시 의식을 옮길 걸세. 그러고 나서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다시 몸으로 돌아오는 거야. 이해했나?”
“네, 교수님.”
“좋아. 절대 잊어버리지 말게.
바크란은 금속관의 끝에 있는 불그스레한 구슬을 보았다. 저 작은 구슬에 자신의 의식이 들어간다니, 초조한 마음에 저절로 입안의 침이 바짝 말랐다.
이미 결정을 내렸지만 망설임이 솟아났다. 정말 괜찮을까? 여기서라도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 바크란의 혼란을 간파한 듯, 교수가 선언했다.
“그러면 이제 눈 감게.”
바크란은 눈을 감으며 조용히 숫자를 헤아렸다.
아주 잠시, 짧은 잠만 자고 일어날 수 있기를.
부디 이 실험 때문에 죽는 일 따위는 없이, 멀쩡히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보수로 받은 돈을 사용해 무사히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언 사학자가 될 수 있기를······.
“시작하겠네.”
교수의 말과 함께, 바크란의 의식이 어둠 속으로 잠겼다.
* * *
“······아.”
바크란 케도우는 눈을 떴다.
이번 아침은 조금 전의 꿈에서처럼 누군가의 발소리로 시작되지 않았다.
고요하기 짝이 없는 적막 속에서, 스스로 일어났을 뿐이다.
“끄응.”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바크란은 쭉 기지개를 켰다.
새로 몸을 얻고 나서 처음으로 꾸는 꿈이 몸을 잃기 직전의 기억이라니, 실로 찜찜한 일이었다.
이제는 먼 옛날, 과거에 불과한 일이지만.
“어디 보자······.”
바크란은 방 바로 옆에 붙은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었다. 세면대 위에 배치된 거울에는 다소 낯선 얼굴이 있었다. 본래의 바크란과 꽤 닮은, 하지만 미묘하게 더 잘생겨진 얼굴이.
개인적으로는 꽤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역시 잘생겼다니까.”
모든 남자가 거울을 보며 자기 자신을 미남이라고 느낀다지만, 얼굴이 바뀌어 본 이의 소감으로 말하건대 지금의 자신은 진짜 꽤 괜찮은 미남이었다.
이미 이 얼굴을 가진 지 몇 달이 되었지만. 아직도 늘 새롭고 즐겁기만 했다.
그렇게 한껏 자아도취를 즐긴 바크란은 이내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이제 일해야 할 시간이었다.
“오, 바크란 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
바크란은 이웃에게 즐겁게 인사한 뒤 걸음을 옮겼다.
그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왕도의 내부 구역, 과거에는 벨루안 영지라 불렸던 곳이었다. 그의 집은 그중에서도 왕궁 바로 옆에 있었다.
덕분에 집 앞은 물론, 주변의 모든 길은 잘 닦여 있고 건물은 새것처럼 말끔했다.
그리고 그렇게 잘 닦인 도로 위를 걸으며 바크란은 헤실헤실 웃었다. 누군가 그의 모습을 보았다면 좀 모자란 사람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그야말로 해맑게.
몸을 얻게 된 이래 그는 세상 모든 것이 즐거웠다. 내리쬐는 햇볕의 따스함, 디디는 땅의 단단함, 산들산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의 감촉까지도.
십오 년 가까이 금속으로 된 고양이로 살아본 사람만이 바크란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흥겨운 걸음을 얼마나 옮겼을까, 은회색 벽돌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외관의 학교가 그를 반겼다.
왕립 벨루안 고등학교. 세상이 한 번 파국을 맞이한 후 최초로 생겨난 고등 교육 기관으로, 왕국 내에 남아있는 영주 가문 등 여러 유력가의 자제들이 수학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가장 고귀한 이들 중 하나가 손을 흔들며 바크란을 반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고양이 교수님.”
“좋은 아침입니다, 공주님.”
그에게 인사하는 이는 놀랍게도 여왕 엘로이즈와 국서 아르센의 딸, 왕국의 후계자인 공주 프리실라였다.
엘로이즈와 마찬가지로 흑단 같은 검은 머리를 곱게 길러 묶었고, 그를 또렷이 보는 두 눈은 보랏빛으로 빛났다.
이는 바크란에게 있어 굉장히 익숙한 눈 색이었다.
“그나저나 고양이 교수님이라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어요.”
그녀는 고양이 시절의 바크란을 아는 이 중 한 명이었다.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 아직 강철 고양이에 묶여 있던 바크란은 그녀를 두고 먼 고대의 역사를 설명하고는 했다. 어린아이가 흥미를 느낄 수 있게, 동화처럼 풀어주면서.
그 덕분에 공주의 역사 성적은 늘 훌륭했다.
“알았어요. 그런데 다시 봐도 좀 어색하네요. 제가 기억하는 교수님은 제 무릎에도 못 오게 작았는데.”
“하하······.”
바크란이 강철 고양이로 살던 시절, 이 어린 공주는 바크란을 진짜 고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끌어안고 뒹굴곤 했다.
그러다가 불쑥 성인 남성이 되었으니 어색할 수밖에.
그때, 뒤에 있던 기사가 불쑥 말을 걸었다.
“공주님, 수업 시간입니다.”
“알았어. 그럼 좀 이따 봐요!”
“알겠습니다!”
공주를 보낸 뒤, 바크란은 교무실에서 수업 준비를 마치고 교실로 갔다.
교실에는 첫 수업을 들을 수강생들이 모여 있었다. 북부 쪽 영지의 후계자, 서쪽에서 온 젊은 기사, 전도유망한 어린 마법사까지.
다양한 계층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벨루안 왕실이 보증하는 세계 최고의 역사학자, 그가 진행하는 수업을 듣고자 모인 것이었다.
그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며, 바크란은 교탁 앞에 섰다.
“모두 좋은 아침입니다. 수업 시작하죠!”
역사 교수, 바크란 케도우의 아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