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3)
2화 – 각성
잘 부탁드립니다
“뭐 좀 있나?”
“보아하니 지푸라기밖에 없구먼. 먼저 갈 테니까 여기 숨은 놈 있나 좀 찔러보고 와.”
“아, 같이 갑시다! 혼자 치사하게!”
서로 떠들던 약탈자들의 발소리가 멀어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갔을까? 멀리 간 척하고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짚더미 속에 오래 있었더니 덥고 땀도 났지만 땀을 닦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아르센은 정말 갔나 슬쩍 내다보고 싶은 충동과 싸우던 중, 다시 돌아오는 발소리에 재빨리 몸을 웅크렸다.
“에이, 염병할. 이런 건 나만 시키고 지랄이야…”
뭔가를 달그락거리는 소리, 그 뒤에는 푹, 푹, 하고 찌르는 소리가 났다.
그것이 뭔지 잠시 생각했던 아르센은 약탈자가 헛간 구석에 있는 쇠스랑으로 헛간의 짚더미를 여기저기 찌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심지어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오너라 나오너라 나오너라, 지금 나오면 곱게 토막 내주마-”
약탈자는 음정 박자란 개념을 박살 내는 노래를 부르며 여기저기에 쇠스랑을 찔러넣고 있었다.
아르센은 자기도 모르게 이빨을 딱딱거리고 있음을 깨닫고, 얼른 머리와 턱을 위아래로 눌러 입을 꾹 다물었다.
‘제발, 제발 그냥 지나가라.’
그렇게 속으로만 소리치며 이를 악물고 있던 순간, 눈 앞으로 무언가가 지나갔다.
3cm에서 5cm정도, 그야말로 코앞에 쇠스랑이 박혔다 빠졌다는 사실에 아르센은 순간 패닉에 빠졌다.
우습게도 그 덕분에 되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게 내가 없다 그랬는데, 썅!”
문을 쾅 차고 나가는 소리에 깜짝 놀라고서야 아르센은 의식을 되찾았다.
자기도 모르게 호흡을 참고 있었는지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젠장, 지렸네.’
거기다 바지에서 축축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르하 님, 감사드립니다. 진짜로요. 제가 가진 건 없습니다만 언젠가 부자 되면 기부 많이 하겠습니다.’
성물 대신 돌멩이를 쥔 채 신에게 감사를 표한 아르센은 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돌맹이에 기도를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바지가 차가워질 무렵 새로운 위협이 찾아왔다.
아까 전부터 역겨운 피비린내와 함께 타는 냄새가 나긴 했지만, 숨쉬기 힘들 정도로 타는 냄새가 심해졌다.
약탈자들이 헛간에 불을 질렀거나 다른 곳에 지른 불이 헛간까지 옮겨붙은 게 분명했다.
“아, 제발…”
조심스럽게 짚더미를 헤치고 나와 뒤를 돌아보니 이미 짚더미 몇 개가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었다.
이 헛간에서 안전해질 때까지 버티는 건 불가능해졌다.
조심스레 헛간에서 나오자마자 날카로운 고함이 귀를 찔렀다.
“저 꼬맹이는 뭐야!?”
그제야 아르센은 처음으로 성채를 침입한 약탈자와 마주할 수 있었다.
십 년은 감지 않은 듯 추잡하게 엉킨 머리에 검댕과 때에 찌들어 원래 피부색을 알 수 없는 얼굴, 누더기를 기워 입은 듯한 차림새.
사실 옷으로 따지자면 아르센도 만만찮게 누더기를 입고 있긴 하지만 그들은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아르센이 가난한 빈민이나 거지라면 그들은 그야말로 ‘야생 인간’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잡아!”
아르센은 그들에게 지목당하자마자 죽을힘을 다해 반대편으로 달렸다.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라 크고 건장한 체격이라곤 말할 수 없지만, 타고나기를 날렵하게 타고났는지 발은 빠른 편이었다.
거기다 약탈자들 역시 위협이 될 수 있는 성인 병사도, 탐낼만한 예쁜 여자도 아닌 작달막한 꼬맹이를 잡고자 진을 빼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그 덕분에 금방 약탈자들을 떼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이대로는 답도 없겠는데.’
이미 한 번 약탈자들이 휩쓸고 지나간 구역인지 죽은 사람들의 시체와 부서진 문짝이 을씨년스럽다.
여기 있는 집 중 아무 곳에나 숨으면 괜찮으려니 싶었지만, 여기저기서 건물에 붙은 불이 옮겨가고 있어 어떤 건물에 숨어있든 안심할 수 없었다.
절대 불타지 않는 곳에 숨어야 했다.
‘우물!’
마침 가까운 곳에 우물이 하나 있었음을 떠올린 아르센은 몸을 최대한 숙인 채 살금살금 우물로 향했다.
다행히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고 우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물 안을 들여다보니 시체 한 구가 둥둥 떠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잘 됐다 싶어 두레박 밧줄을 타고 우물 안으로 들어가 시체 밑에 숨어들었다.
다행히 최근 날이 가물었던 탓인지 우물의 수위가 낮아 충분히 발을 딛고 설 수 있었다.
사람 시체를 이불처럼 쓰는 것은 역겹고 찜찜한 일이었지만, 작은 동물같은 걸 도축하느라 비위가 강해졌는지 버틸만했다.
하기야, 목숨이 걸린 상황에 그게 중요할까.
몇 시간 이상 여기에서 버텼다간 저체온증으로 고통받겠지만 저 위에서는 당장 창칼에 맞아 죽거나 불타 죽게 생겼으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목이 말랐지만 시체에서 나온 핏물과 똥오줌이 섞여 있을 우물물을 마실 마음은 들지 않았다.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아르센은 마음속으로나마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우물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도중에 이쪽을 향하는 발걸음이 몇 번 있었지만 아르센이 머리 위에 얹어놓은 시체를 보고 물러갔는지 별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공포가 아니라 추위 때문에 이가 덜덜 떨리는 느낌에 더 참기 힘들어 올라가기로 했다.
마침 위쪽도 고요해진 것이 슬슬 약탈자들이 빠지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스러운 관측을 불러일으켰다.
다시 올라가고자 두레박 줄을 잡고 올라가려던 순간-
“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낡은 두레박 줄이 아르센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끊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얼마 올라가지 않은 상태라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 상황 자체가 아르센의 마음을 다치게 하기 충분했다.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높이가 3~4m는 될 우물에 갇혔다는 상황 말이다.
“아니, 잠깐만! 이런 씹…”
어떻게든 밖에 나가보려고 벽을 타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이 쓸데없이 잘 만들어진 우물은 손가락으로 짚을 틈이 거의 없어 도저히 기어올라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한 번, 두 번, 몇 번을 연이어 기어 올라가려 시도해 봤지만, 1m쯤 올라가고 나면 그 위는 매끄러워 손으로 짚을 곳이 없었다.
전문 클라이머라면 모를까 아르센같은 평범한 어린아이가 기어오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전능하신 르하여, 또 빕니다. 제발 이번에도 좀 살려주세요.”
결국 돌고 돌아 또 기도메타가 됐다고 한탄하며 아르센은 우물에 우두커니 선 채 빌었다.
당연히 망연자실하여 빌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떨어진 밧줄에 옆에 있던 시체의 신발을 묶어 밖에 걸어보려는 시도도 해 보고 바닥에 깔린 자갈을 이용해 우물 벽을 미친 듯이 찍어가며 손발을 디딜 수 있는 홈을 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모든 방법이 좌절되고 나니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뿐이었다.
그도 잠시, 이미 오랫동안 물속에 있었던 탓인지 점점 잠이 오기 시작했다.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법이라고 하지만 일단 살아야 성장을 하는 법이다.
‘아, 젠장. 자면 진짜 뒤지는데.’
마지막까지 뺨을 때려가며 잠을 깨려 노력했지만 계속해서 의식이 흐려졌다.
흐려지는 의식, 이제는 차갑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지는 물, 힘이 빠진 탓에 천천히 물속으로 잠겨 드는 몸.
의식을 잃은 아르센의 몸이 물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렇게 가물가물한 끝에 죽음을 향해 한 발 디뎠을 무렵 기적이 일어났다.
먼 옛날 고대의 마법사들이 성채와 영지를 세웠으며, 이 성채와 영지는 기본적으로 대지를 흐르는 마력의 중심지를 기준으로 하여 세워졌다.
당연히 이 크라타 성채의 지하에도 중심지가 존재했으며 그곳에는 막대한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이 마력은 평소에는 아무 의미 없이 그저 흘러갈 뿐이지만, 반쯤 죽은 상태인 아르센의 몸이 우물 바닥에 닿으며 상황이 변했다.
성채 내에서도 가장 땅 속과 가까운 우물, 그 밑바닥에 가사상태에 빠진 육체가 닿으며 마력의 일부가 아르센의 몸에 스며든 것이다.
보통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 외부의 자극에 극도로 예민해진 육체는 본능적으로 마력을 감지, 집어삼켰다.
그것이 촉매가 되어 아르센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기사 혈통의 힘이 발현했다.
자체적으로 마력을 순환시킬 수 있게 된 육체는 맞닿은 바닥에서 받아들인 마력을 심장에 전송했고, 거기서부터 뿜어지는 피에 마력이 실려 혈관을 타고 온몸에 흘렀다.
피에 담긴 마력은 전신을 순환하며 추위로 둔해진 몸과 뇌에 산소를 공급하고 에너지를 공급해 체온을 상승시켰다.
몸이 뜨끈해지는 느낌과 함께 의식이 확 돌아온 아르센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커헉, 컥! 웨엑…”
한참 구역질을 하며 물을 토해낸 뒤에 정신을 차린 아르센은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우물 안이 잘 보이게 되었음을 느꼈다.
거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것처럼 느껴졌던 추위가 싹 가셨으며 오히려 온 몸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쳤다.
그제야 아르센은 자신이 죽음에 한 발 디뎠다 물러섰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깨달은 힘이 무엇인지도.
‘이게 설마…마력?’
온몸에 뜨거운 피가 활발하게 도는 기분과 함께 활력이 솟구쳤다.
아르센은 당장 발밑에 깔린 자갈 하나를 꺼내 벽을 힘차게 찍었다.
조금 전과 달리, 자갈로 몇 번 때리니 우물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완전히 박살 냈다가 벽이 통째로 무너지기라도 하면 곤란하기에 적당히 손발을 살짝 넣을 수 있는 틈만을 만들고 거기에 발을 디디고 올라가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자갈 몇 개를 부숴 먹어가며 몇 번씩이고 왕복한 끝에, 아르센은 다시 지상을 밟을 수 있었다.
“살았다!”
자기도 모르게 환희에 차 소리쳤지만, 이내 주변 상황을 보자 급격히 기분이 가라앉았다.
불타고 골격만 남은 건물의 잔해가 시야에 비쳤고, 바닥에는 불타 죽었는지 죽은 다음 불에 탔는지 알 수 없는 시체들이 가득했다.
고대의 마법으로 보호되는 성주관은 멀쩡했지만 아마 그 안에 살아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며 귀를 기울였지만, 누군가 살아 움직이는 기척은 없었다.
약탈자들이 모두 없어진 것을 확인한 아르센은 성주관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역시 시체만이 뒹굴고 있을 뿐 값나갈만한 물건들은 모조리 약탈자들에게 털린 상태였다.
얼마나 철저한 놈들인지 뿔로 된 술잔까지 모조리 털어가 남은 것은 가져가기엔 너무 무거운 가구들 정도에 불과했다.
“리크, 리아, 오든, 에르타…”
성주관 안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레녹 경의 직계자식들이 모두 여기에 죽어 있었다.
장성한 자식들은 성주와 함께 사냥을 떠났기에 전부 아르센 또래의 어린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의 어머니들도, 하인들도 모조리 죽었다.
그리고 아르센은 자기 형제자매의 시쳇더미 사이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주워 먹을 것이 있나 찾고 있는 스케빈저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와 가장 친했던 라프람의 시체는 없었다.
저 바깥 어디쯤엔 있을지도 모르지만.
“염병.”
약탈자에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하는지 자신도 모를 욕을 되뇌며 성주관 여기저기를 뒤졌지만 나오는 것이 없었다.
없이 사는 놈들이라 그런지 정말 밀가루 한 줌 안 남기고 싹 털어갔다.
죽은 형제 중 한 명의 옷을 벗겨 입은 것 외에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없었다.
이마저도 찜찜해서 입고 싶지 않았지만, 배에 구멍이 뚫리고 피에 젖은 옷조차 아르센이 입고 있는 넝마보다는 훨씬 나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조사를 마치고 성주관 문을 열고 나온 순간, 바로 앞에 꾀죄죄한 부랑자 하나가 정글도같이 생긴 칼을 들고 서 있었다.
“아으, 씨바. 머리에 혹 났나. 아파 뒤지겠네…엥?”
아까 전 봤던 약탈자들보다 나을 것 없는 차림에 그들과 한 패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 털고 간 줄 알았는데!’
녹슬긴 했지만 날이 서 있는 데다 피까지 묻은 칼을 든 장정을 앞에 두자 뱀이라도 만난 것처럼 몸이 굳었다.
아르센은 자신에게 마력이 생겼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걸로 한 번도 싸움을 해본 적 없는 마당에 칼을 든 상대에게 자신감을 가질 수는 없었다.
칼잡이 역시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는지 순간 몸이 굳었지만, 아르센이 작고 어린데다 겁먹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자 순간 굳은 자신이 어이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고놈의 새끼 목숨 질기기도 하다. 내가 친히 저승으로 보내…”
칼을 좌우로 휙휙 휘두르며 다가오던 칼잡이가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아르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도 잠시, 무표정하게 쳐다보던 칼잡이의 얼굴에 흉측한 웃음이 걸렸다.
아르센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얼굴에 걸린 감각을 느끼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너 꽤 귀엽게 생겼구나. 난 너 같은 꼬맹이를 좋아하지.”
그것은 욕정이었다.
칼을 땅에 푹 꽂은 칼잡이가 바짝 굳은 아르센의 두 팔을 붙잡았다.
방심하는 것이 당연했다. 키가 큰 편은 아니지만 170cm는 되는 성인이 자기보다 머리 한두 개는 작은 어린아이를 맨손이라고 이기지 못하겠는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르센에게는 조금 전 얻은 마력이 있었다.
마력으로 활성화된 육체에서 나온 아르센의 육체는 생각보다 강인했고, 한쪽 팔을 털어 순식간에 칼잡이의 잡은 손을 떨치며 주먹을 배에 꽂아넣을 수 있었다.
미처 반응할 수도 없는 속도에다 한 방에 제압하기 충분한 힘이 담긴 펀치였다.
“커헉! 켁!”
갈비뼈 하나가 부러진 칼잡이가 주저앉자마자 아르센은 바로 그 위로 올라탔다.
몸이 워낙 가벼워 그가 힘만 주면 떨쳐버릴 수 있겠지만 그럴 틈을 주지 않고 바로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한 방, 두 방, 쇠망치 같은 힘이 담긴 주먹이 꽂힐 때마다 칼잡이의 얼굴이 피로 물들었다.
“죽어! 죽어! 이런 개, 씨발, 죽어!”
아르센은 생명과 정조의 위협, 자칫하다 반격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폭력을 행사한다는 흥분으로 반쯤 공황 상태에 빠져 폭력을 행사했다.
이빨이 우수수 부러져 날리며 애원하듯 들어 올린 손이 힘을 잃고 땅에 털썩 떨어질 때까지.
주먹질을 수십 번 갈기고서야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허억, 헉…하아…”
칼잡이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자신의 첫 살인에 충격을 받는 것도 잠깐, 상황이 아직 위험함을 깨달은 아르센은 재빨리 주변을 휙 둘러보며 땅에 꽂혀 있던 칼을 뽑아냈다.
시체의 허리에 매달린 가죽 주머니 두 개를 뜯어 열어보니 하나는 물이, 다른 하나는 말린 육포가 몇 개 들어 있었다.
한 놈이 남아있던 상황에서 몇 명이 더 있을지, 혹은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아르센은 한 손에 칼을 쥐고 다른 한 손에 주머니를 든 채 성채의 서쪽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